연동동의 비밀 창비아동문고 310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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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이 책이 단순히 무섭기만 한 책은 아니다. 괴기스러운 공포가 아니라 생활의 공포? 현실적인 무서움이라고 하겠다. 추리동화라고 할 수 있지만 명탐정의 대활약 같은 건 없다. 마을의 다양한 인물들, 과거부터 이어져온 그들의 사연들, 그들이 엮어가는 다양한 사건들. 이들이 모여 긴장감있는 추리장편을 만들어냈다. 프로 이야기꾼 이현 작가님의 작품임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책.

정효가 이사오면서 이 마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울시 마포구 영미산로. 구 주소로는 연동동. 아파트보다는 주택과 빌라들로 구성되어 토박이들도 많고 이웃과의 교류도 꽤 남아있는 동네다. 5학년 정효는 할머니댁으로 혼자 이사왔다. 아빠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엄마랑 단둘이 살던 중 엄마가 해외근무를 나가게 되었는데 정효는 남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교류도 없었던 친할머니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 것은 할머니네 3층집이 맘에 들었던 탓도 있다. 아빠 어릴때 지어졌다는 그 집은 1층에 할머니의 미용실이 있고 다양한 입주자들이 함께 산다.

할머니네서의 첫날 밤, 잠이 안 와 나와 본 3층 테라스에서 정효는 사건을 목격한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1. 방화 사건. 누군가 한밤중에 화염병을 주차된 자동차 밑에 던져넣어 불이 났다.
2. 진돗개 습격 사건. 이웃집 진돗개가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머리가 피투성이 되도록 부상을 입었다.
3. 정효네 반 단톡방 왕따 사건. 그걸 누군가 담임선생님께 밀고(?)했는데 반 아이들은 그 아이를 배신자라 규정하고 찾아내려 애쓴다.
4. 해외입양되었던 분이 3층집의 새로운 입주민이 되어 희미한 사진 속의 친어머니를 찾는다.
5. 정효 할머니 친구분 실종 사건. 50년 만에 실체를 드러내는.... 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혹한 일은 많다. 몰라서 그렇지 옛날엔 더 많았는지도.
6. 자전거 절도 사건. 할머니집 창고에 들어있던, 정효가 기대하던 아빠의 자전거가 사라졌다. 누가 가져간 건가?

이런 모든 사건들이 주변 인물들과 함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실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의 이야기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 구조를 가져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추락해가는 자존감에 몸부림치다 거짓말과 범죄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인간들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가엾은 인생도 있다. 이런 측면을 보게 되면 세상은 태어나지 않는게 복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세상엔 아직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연동동 사람들, 명탐정도 없고 영웅도 없고, 부끄러운 과거나 현재의 약점도 다 가진 사람들이지만 손내밀고 잡고, 함께 겪어나가는 과정에 무서움이 점점 밀려오다 와락 달려들다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

정효를 비롯한 학급 친구들, 할머니 3층집에 사는 사람들, 이웃 빌라 주민들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설정에도 공을 들인 느낌이 든다. 전형적인 인물도 없지만 과하게 튀는 인물도 없이. 어쩌면 엄마와 떨어져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멘탈이 나가지 않고 성장해가는 정효가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인지도?ㅎㅎ

세상은 공포영화일 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총집합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긴박하게 읽으며 온실 속 밖을 좀 내다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리고 적당한 오지랖을 가지면 그 밖도 꽤 살 만하다는 것도.

참 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창조하고 빈틈없이 엮으신 작가의 수고에 박수를. 탐정없는 추리동화는 더욱 쓰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모두가 탐정이고 모두가 용의자인 이야기. 추리동화에 한 획을 긋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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