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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줄리안 이야기 ㅣ 독깨비 (책콩 어린이) 36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5년 6월
평점 :
나는 이 책의 전작인 <아름다운 아이>를 읽지 못했다. 이 책은 그 후속편이다. 그래도 이 작품 한 편에 충분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어서 전작을 읽지 않은 것이 걸림돌이 될 것은 없었다. 물론 읽고 나니 전작이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기는 한다.
선천성 안면기형인 오기라는 아이가 있다. 전작에서는 이 아이가 주인공인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오기를 괴롭히는 같은 반 학생 줄리안이 주인공이다. 줄리안은 주인공이자 화자이다. 그 아이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다. 일이 언제나 단순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줄리안의 입장을 정리해본다.
1. 나는 어렸을 때 공포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야경증'이라는 진단을 받음)
2. 오기의 얼굴은 너무 끔찍해서 어릴 적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3. 나는 4학년 때까지 매우 잘나갔었다. 잘나가는 패거리에 속해있었고 인기도 많았다.
4. 오기가 온 후부터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
5. 그래서 나도 괴롭다. 괴롭다고.
이렇게 줄리안도 힘든 점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 그래. 나도 안다, 알아. 나는 그동안 어거스트 풀먼에게 못되게 굴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냐고! 이 넓은 세상에 천사들만 사는 줄 아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이제 그만 좀 물고 늘어지지? 그만 좀 넘어가고, 제 할 일이나 잘하며 살자고. 알겠어?"
"처음부터 작정하고 못되게 군 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못돼먹은 아이가 아니다! 물론 가끔 농담도 하지만, 나쁜 마음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냥 장난삼아 놀리는 말들이다. 사람들이 좀 가볍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좋다, 대로는 내가 던진 말이 다소 심할 수 있다고 쳐도, 그건 그냥 그 사람이 없는 데서 흉을 좀 본 것 뿐이다. 이제 그만 좀 예민하게 구시지!"
이런 말들을 읽으니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은근한 분노가 올라왔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니다", "농담이었다", 나쁜 마음으로 한 말이 아니다", "장난 삼아" 이런 말들은 주로 아이들 입에서 들던 말.
"다소 심할 수 있다고 쳐도", "너무 예민하신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그만 좀 넘어가죠" 등은 주로 어른들의 입에서 나온 말.
줄리안은 오기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친한 패거리 중의 한 명인 잭까지 오기와 친구가 되자 줄리안은 적개심을 품는다. 더구나 그 친구 앞에서 오기를 괴물이라고 말했다가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후로는 더더욱. 이 때 줄리안은 피까지 났었는데 주먹질을 한 잭은 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줄리안이 잭과 오기의 사물함에 넣어놓은 쪽지들은 큰 문제가 된다. 그 일로 줄리안은 2주의 정학 처분을 받는다.
이 일에 승복하지 못하는 줄리안의 엄마는 길길이 날뛴다. 얼핏 불공평해 보이기는 한다. 쪽지가 주먹질보다 더 큰 처벌을 받다니? 그런데 쪽지의 내용에 흠칫한다.
"야, 흉측한 다스베이더. 넌 너무 못생겨서 매일 가면을 써야 돼."
"보나마나 너희 엄마는 네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했겠지. 모두를 위해 친절을 베풀어 봐, 죽어 줘."
그래도 줄리안의 엄마는 이것이 쌍방의 일이며 잘한 짓은 아니지만 그럴 만 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어한다. 너무나 익숙한(그러면서도 고통스러운) 장면이다. 거기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말씀.
"그렇지만 문제는 말이다. 선이라는 게 있단다. 줄리안.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 있어. 네가 쓴 쪽지들은 그 선을 넘어 버렸단다. 네 쪽지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야."
그 "선"이라는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준에 맞추어 교사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교장선생님처럼. 하지만 난 그게 좀 두렵다. 줄리안의 엄마처럼 공평함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나를 공격할 구실이 되기 때문에. 움츠러든 내 모습을 바라보니 씁쓸하다.
어쩔 수 없이 줄리안은 정학 기간을 보내게 되고, 화가 난 줄리안의 부모는 다음 학기에 새로운 학교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그 여름방학을 줄리안은 할머니 집에서 보내게 된다. 극적인 일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할머니의 과거 속에 <아름다운 아이, 줄리안>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줄리안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을 쏟는다. 그 때 할머니가 줄리안을 위로하시는 말. 난 이 말을 가슴에 새겨 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아이들을 이렇게 위로했어야 했다........
"줄리안, 너는 아직 어리단다. 네가 저지른 일들이 옳지 않았다는 걸 너도 잘 알지. 그렇다고 그게 네가 옳은 일을 할 수 없는 아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네가 옳지 않은 일을 선택했다는 뜻일 뿐이지. 네가 실수를 했다고 한 건 바로 그런 뜻이란다. 하지만 줄리안, 인생을 살면서 좋은 점은 말이다. 실수는 고칠 수도 있다는 거야. 우리는 실수로부터 배우지. 너도 네 실수를 통해 배우게 될 거다. 실수 한 번으로 너를 단정지을 수는 없는 법이란다. 줄리안, 내 말 알겠니? 다음에는 더 잘 행동해야 해."
그 쪽지의 내용을 보면 줄리안은 정말 못돼 처먹은, 공감능력 제로의 싸가지 없는 놈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못돼 처먹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점, 나도 되돌아보면 이불 차고 벌떡 일어날 부끄러운 짓을 하기도 했다는 점을 기억한다. 실수을 인정하고 책임지면 그것은 실수에서 끝난다. 그러나 그것을 합리화하고 반복하면 그것은 범죄가 된다. 이 점은 부모들이 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처음엔 제목에 태클을 걸고 싶었다. 이런 밥맛없는 놈이 무슨 '아름다운 아이'야? 그러다 할머니의 과거 속의 줄리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름다운 아이는 여기에 있었구나.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이 책의 줄리안도 '아름다운 아이'라는 것을. 내가 바라보는 모든 아이가 아름다운 아이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