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빙허각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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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읽으며 나의 무식함을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 책도 그렇다. 빙허각 이씨라는 인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성 저자, 더구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책을 쓴 여성은 매우 드문데 그중 한분이었다. 저서는 <규합총서> 음... 이 책도 들어본 듯 만 듯하다...;;;;

작가는 실존인물인 빙허각 이씨와, 동화 속 허구 인물이자 조력자인 덕주를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 놓았다. 덕주는 조선후기 아주 가난한 양반가의 딸이고, 빙허각은 한양에 살다 노년에 덕주네 마을로 옮겨와 조용히 본인의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설정으로 나온다. 둘은 ‘눈이 맞았’는데, 그건 아마 끼리끼리 알아보는 감 같은 것이랄까?

사실 두 사람의 만남은 덕주의 아버지가 주선한 것이긴 했다. 두 여인의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의도로.... 몰락하여 궁핍한 중에도 아버지는 몸을 쓰는 일을 하지 않고 법도만 찾았고, 그러니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건 부인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한양에서 왔다는 그 큰 양반댁 마나님에게 시집가기 전 딸의 지도를 부탁하려 했던 것이다. 그건 아버지가 빙허각의 면모를 몰랐기에 그랬던 것. 눈과 마음에 불꽃을 품은 둘의 만남은 아버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걸 알면서도 눈감아준 덕주의 어머니가 내게는 가장 친근하면서도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오히려 두 주인공들보다도. 어딘가 나랑 비슷하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시절 양반가의 부인이면서도 아주 시니컬했다. 죽어라고 일을 했지만 남편한테 굽신거리진 않았다. 오히려 은근히 멕이는 장면들도 살짝씩 나오는데, 조연이고 조용한 인물이지만 가장 임팩트 있었다고 할까.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ㅎㅎ
「“그까짓 거, 먹고사는 게 더 중하지.”
어머니는 덕주가 읽는 여훈서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덕주가 소학에서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부분을 소리내어 읽자 우뚝 멈춰 서서는 말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다. 바깥에 나가지 않으면 일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그냥 다 굶어 죽으라는 소린가?”
어머니가 묻자 아버지가 계신 사랑방에서 못마땅한 기침 소리가 났다.」

사료에 남아있는 빙허각에 대한 사실은, 실학자 집안의 며느리였다는 것이다. 시동생이 서유구.... 그랬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도 같지만, 유달리 총명하고 성취 의욕이 큰 인물이었던 것 같다. 덕주가 그 집에서 보게 되었던 빙허각의 메모가 가득한 공책. 그 마지막장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덕주의 내면을 깨운 말이기도 하다.
“규합에 어찌 인재가 없으리오.” (규합은 안채 등 여인들이 거주하는 곳을 말함)
<규합총서>를 비롯한 저술 작업의 동력이 된 생각이기도 하지 않을까.

가슴에 불을 품은 여인들이 어찌 없었을까. 재능이 빛나는 여인들도 마찬가지. 지금 있듯이 과거에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여인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양반가의 딸이지만 여력이 없어 한자를 못 배우고 언문만 쓸 줄 아는 덕주를 통해 한글의 실용성과 중요성을 보여준 장면들도 좋았다.

이 집을 드나드는 양반집 도령 윤보도 중요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약간 한심하고도 밉살스럽게 나오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니 이해가 갈 뿐 아니라 선구적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나는 혹시 그 둘이 맺어지나 했는데 그건 너무 나간 것....^^;;; 마지막 장에 마치 에필로그처럼 등장하는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세책점(서점)을 찾는 모습이었다. 그의 생각을 잘 지키며 어른이 된 것 같아 좋아보이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장이 에필로그라면 첫장은 프롤로그. 남장을 한 나그네가 무덤을 찾아왔다가 무덤 주인공의 시동생을 만나 함께 고인을 그린다. (그 시동생이 바로...)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이었다. 다 읽고 나서 전체 구성을 보니 참 짜임새있게 쓰여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검색해보니 요즘 인기있는 역사동화구나. 역사동화도 이제 다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와 있는데, 그중 재미있는 책을 잘 골라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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