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구판절판


겨울이 긴 북구의 집들에겐 형광등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후 세 시면 컴컴해지는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조명은 삶의질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형광등에 비해 아늑한 느낌을 주는 백열등의 조명기술은 꽤 오래된 문화다. 이는 초를 켜던 과거 오랜 관습의 연장이다 -16쪽

리추얼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도 바로 리추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지식인들은 깊이 고뇌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야만이 어떻게 독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괴테, 쉴러, 베토벤의 나라 아니던가?
그들은 독일의 권위주의적 사회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가족, 학교, 일터에서 반복되는 권위주의적 리추얼이 권력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과 충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독일인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남겨진 이 집단 리추얼을 철저하게 해체했다. 그래서 독일의 대학에는 졸업식이 없다. 졸업식 가운도 물론 없다. 졸업식을 집단으로 모여 권위를 확인하는 세리머니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그래서 한 번도 졸업식 가운을 입어본 적이 없다. 반성이 철저한 독일인들은 초등학교의 합창시간도 없앴다. 함께 노래하는 행위가 집단에 대한 무의식적인 충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소리가 아주 착한 리코더를 불게한다. -29쪽

후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 그리고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은 반드시 오래, 아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이게 한결같이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38쪽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만지고 싶은 것이다. 키스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뇌를 사용하여 느끼고 깊은 까닭이다. 뇌에서 차지하는 혀의 비중을 보면, 왜 혀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입술만큼이나 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67쪽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108쪽

사는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 . 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도대체 열매의 단맛을 겪어봤어야 그 단맛을 즐길 것 아닌가.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153쪽

오늘날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재미있니?라고 하는 문장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일상적 용어가 되었다. 물론 재미라는 단어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재미가 아니다. 재미라는 단어 사용은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fun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1쪽

서양이늗ㄹ에게 타인의 존재는 항상 나의 상대방으로서의 너다. 동등한 주체로서의 상대방에 대한 무례함은 곧 나라는 주체에 대한 부정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곧바로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너의 존재를 인정할 때 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거가 그의 책 '나와 너'에서 나라는 존재의 근거로 너와의 관계를 지적하고, 이 나와 너의 관계를 모든 의미구성의 기본 단위로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한국인의 상호작용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나와 너의 상호작용이 서구인들처럼 곧바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라는 상호주체의 만남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와 남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야 가능하다. 남은 상호작용의 상대방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질문이 무서운 것이다. 남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타인이 일단 우리라고 하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타인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에게 절대 무례해서는 안되다. 우리라는-226쪽

경계선을 넘어오는 순간 상대방은 너라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나와 너라는 주체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성립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를 지탱해왔던 우리라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산업사회의 공동체 구성방식으로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존재근거가 되었던 우리라는 그 울타리가 변형되어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의 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안적 우리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존재 확인 방식이 없다는 이야기다. -227쪽

문화심리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눈 단순하다. 재미없어서다. 보다 재미있는 사회를 가능케 하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동경이 동독의 몰락을 가져왔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당시 동독은 절대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1989년 당시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이상이었다. 당시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동독 사람들이 정말 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통일 후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들을 살펴보면 된다. 장벽을 뚫고 서독으로 넘어온 다음날부터, 서독 시내의 섹스숍은 동독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발그레한 얼굴로 섹스숍을 나서는 그들에게 기자들이 느낌을 묻자, 그들은 그랬다.
"망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인데 오히려 사회주의가 망했다"-242쪽

어릴 적 꿈꿨던 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충족되지 않는 어릴 적 욕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260쪽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저사람 누구지요?/저 사람 잘나가는 회사의 전무에요
만약 내 친구들의 입에서 이런 식의 대답이 나온다면 내 미래는 곧 참담해진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곧 망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266쪽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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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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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시대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면 스스로의 양식과 양심 이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댈 수 없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양식과 양심이 건강하게 작동하는지 늘 서로 감시하고 격려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남의 이목에 초연하고 상호 의존도가 높은 괴짜 가족이 되어 있었다. -8쪽

그러나 나보다 훨씬 더 얼니 나이에 홀로 섰던 우리 부모님의 인생에 비하면 그까짓 대학생 아르바이트야 도리어 호강이었고, 그런 부모님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는 어떤 일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다.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설계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선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성적 관리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ㅇ벗었다. 바쁜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 라는 자신감으로 늘 당당했고 자유가 충만한 젊음을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 존중했다. -101쪽

열정 없이 남 보기에만 그럴듯한 턱걸이 인생만 피해도 성공한 인생이라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단지 성적이 된다고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큼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세속적인 경쟁력도 열정이 좌우하지 학력이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체험하지 않는가?-139쪽

"내가 너를 사교춤 코스에 등록한다면?"
"어마 돈만 깨지는 거"
"네 친구들이 너만 빼고 전부 사교춤을 배우러 다닌다면?"
"나만 시간 낭비 안하는거"
"네가 사교춤을 안 배워서 출세에 지장이 있다면?"
"난 춤이 아니라 실력으로 출세해"
"출세를 하더라도 사교춤을 못 춰서 상류 사회에 진출하는데 지장이 있다면?"
"나는 억지로 춤춰야 하는 사회에는 오라 그래도 안 가"
아들보다 세살 어린 딸아이가 내 배턴을 이었다.
"오빠가 사교춤 못 춘다고 여자들이 싫어하면?"
"나도 그런 여자들 싫어"
"나중에 춤추고 싶어하는 애인을 사귀게 되면?"
"그때 가서 같이 배우면 돼. 엄마 아빠처럼"-153쪽

현대의 독일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을 적에 상부의 명령이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178쪽

나는 모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지성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주된흐름이란 말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어제와 다름없이, 이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다수이다. 그리고 지성인은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수이다. 지성인은 개인의 양식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용기있게 표현해 주류의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권은 주류의 시녀일 따름이고 주류의 물길을 조정하는 것은 지성인이다.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주류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고 지성인은 물가에 박혀서 물이 흐르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조약돌이라고 하겠다. -194쪽

꼭 학식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야만 지성인이 되는 게 아니다. 머리를 빡빡 민 채 낙화산 부대의 장화를 신고 설치던 신나치주의 청년들의 폭력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시기에 독일의 많은 가게의 출입문에는 엽서 크기의 노란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 카드에는 자기네 가게는 외국인이 폭력을 피해 들어올 수 있는 피난처이니 위험에 처한 외국인은 언제든지 뛰어 들어오라고 쓰여 있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자기네들이 나서서 깡패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하는 도자기 가게, 유리 가게, 꽃집 주인들은 바로 독일의 지성인들이다.-200쪽

남과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경쟁적인 사람보다 감정의 소모가 적어 실력 발휘에 거침이 없다. 남과 자신에게 너그럽다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자 사회의 힘이 아닐까?-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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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2-0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한테 이 책 빌려줬었는데 어제 뜬금없이 전화해서 153페이지의 대화를 읽어주더군요. ㅎㅎ 인상깊었다고. 책 어떻게 읽으셨어요?

LAYLA 2009-12-07 01:07   좋아요 0 | URL
좋았어요 정말 ^^ 리뷰 쓸게요~

노이에자이트 2009-12-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때문에 추천입니다.

LAYLA 2009-12-07 01:09   좋아요 0 | URL
유럽의 힘은 저런 합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수정을 하는 바람에. 노이에자이트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178쪽입니다. )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왜 책을 읽는걸까.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그것으로 짧게 요약될 수 있는게 삶이고 독서란 그런 삶을 살아내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독서란 행위가 하나의 성처럼 고고히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가치를 지니고 삶 속에서 군림하게 된 것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그간의 독서를 반성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타인의 삶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백권 이백권 책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약간의 자괴감. 그래서 이 책이 참 좋다. 백권 이백권 알량한 숫자로 '나는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자기 합리화를 인정하지 않아줘서. 이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서조차 '평범'으로 설명가능한건 사실 별로 없다는걸 여실히 보여준다. 모두가 자신만의 드라마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독서따위 이런 생생한 삶 앞에선 너무 빛이 바래더라는 이야기.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누군가를 이해한다는건 불가능한 행위이지만 그래도.그래서 노력해야겠구나란 초심을 찾을 수 있었다. 책 몇권 더 봤다고 만족하지 말고 말이다. 더불어 모두가 이처럼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임을 되새기며 생활하기. 나 역시 이런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게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가기. 이런 교훈들까지 얻을 수 있었던 참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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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절판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말아요. 진로를 고민하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니까. 진로를 고민한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꿈을 꾸는 거잖아요...

저는 단 한번도 제 미래에 대한 걱정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제가 교육에 대해서 평생 고민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의 개발과 발전에 대해 늘 같은 무게로 고민해왔죠.-79쪽

편견을 줄이려면, 내 세상을 넓히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인정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인식을 넓혀간다는 것. 어떻게 보면 이게 교육의 본질 아닐까요.-82쪽

지금은 모르는 환자들이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도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불으면 바로 "저 레즈비언인데오. 여자 친구가 있어요"라고 답해버린다. 그랬을 때 누가 충격을 받거나 편견을 갖는다면 자신의 탓이 아니라 그 사람 소양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용기를 내고 당당해지니 세상이 좀 편안해졌다. 자신이 조금 다르다고 모든 상처를 떠안을 이유는 없다.-99쪽

세레나는 아홉 살 때 큰 병을 앓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청므으로 죽음을 맞닥뜨렸다. 그때 걱정하고 발을 동동 굴러봤자 소용없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럴 시간에 뭔가 도전하고 즐겁게 사는 게 좋다는 걸,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튈 수 있다는 걸 이미 그 나이에 알아버렸다. 그래서 세레나는 마음속에 뭔가 떠오르면 즉각 실천해버리는 화끈한 사람이 되었다.-139쪽

사미어는 나라와 인종이 정체성을 결정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특히 런던같은 대도시에서는 말이다. 이미 국적이나 출신 지역이 혹은 조상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해주던 세월은 지나가고 그 대신 자기 정체성은 스스로 완성시켜야만 한다고 믿는 편이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돈을 벌고 어떻게 쓰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이러한 것들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만드는 요소로 바뀐 세상이 된 것이다.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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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9-11-03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게이예요?

히나 2009-11-0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영국에 거주하시는 여성분이세요.
예전에 잠깐 일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게이다에는 잡히지 않던데요 ^^;

LAYLA 2009-11-0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친절하신 스노드랍님 말씀대로 레즈비언 나오는 부분은 인터뷰 내용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구판절판


주변 도로에서는 공사가 흔해, 차들은 거의 가다 서다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는 가정용 크기로 포장된 것만 보던 물건들이 산업용으로 엄청나게 크게 포장되어 스카이아나 이베코 트럭에 잔뜩 실린 채 조금씩 움직여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초콜릿 바, 시리얼, 생수, 메트리스, 마가린이 어둠 속에서 북쪽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 광경은 어떤 면에서는 강물처럼 위로를 주기도 한다. 끊이지 않고 움직이는 그림자의 흐름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정체된 분위기를 걷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흘러 지나가는 삶 자체다. -44쪽

...이 거대한 식량 창고는, 적어도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우리 인간이 수천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다음 끼니를 어디서 찾아먹을까 안달하는 일로부터 벗어난 유일한 동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 결과 우리는 황제펭귄과 아라비아의 오릭스라면 지금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시달리고 있는, 절실하기 짝이 없는 먹이 걱정에서 벗어나, 스웨덴어를 배우거나 미적분을 익히거나 우리 관계의 진정성을 걱정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와인이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빵이 알프스처럼 잔뜩 쌓인 우리의 풍요로운 세계는 기근에 시달리던 중세의 조상들이 꿈꾸던 생기발랄한 곳과는 다르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신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기능들을 단순화하거나 가속화하는 데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50쪽

밀가루 반죽으로 심리적 갈망에 응답을 하겠다는 계획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로렌스는 그런 계획이 노련한 브랜딩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면 비스킷의 폭, 형태, 코팅, 포장, 이름 등으로 구체화되며, 이런 결정에 따라 비스킷도 위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상황에 어울리는 기묘한 느낌을 발산하는 인격을 부여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로렌스는 처음부터 자신의 비스킷이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ㄷ고 한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원과 여성성과 전체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쾌적한 탐닉의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작은 건포도 조각과 초콜릿 칩이 들어가는 것도 필수였다. 그러나 노골적인 퇴폐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은 막아야 했기 때문에 크림은 넣지 않았다. -82쪽

제조업자는 자신의 일이 인류에게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경박한 방식을 보면 그 주장의 빛이 약간 바랜다. 한 직원이 핌블수라고 부르는 만화 캐릭터들이 인쇄된 공짜 스티커 증정 행사를 골자로 한 슈퍼마켓 프로모션을 고안하는 데 3개월을 보냈다는 소식에 대한 합리적 반응은 슬픔뿐이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치사하게 자신의 책임을 방기할까? 두건이 달린 검은 망토 차림의 죽음이 어깨에 낫을 둘러메고 지평선에 나타나기 전에 한번 이루어보고 시은 더 큰 야망은 없을까?-107쪽

이 얼마나 독특한 문명인가. 엄청나게 부유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또 아주 작은 의미밖에 없는 것들을 팔아 부를 늘리는 문명. 돈은 쓸만한 가치 있는 묵적과 돈을 버는 매커니즘-종종 도덕적으로 경멸스럽고 또 파괴적인 메커니즘-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분별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명.
교역,사치,개인 재산을 중심에 놓고 더 높은 목표의 추구에 관해서는 입에 발린 말밖에 하지 않는 상업적 사회의 역설과 승리를 경제학자와 정치 이론가들이 처음 의식한 것은 18세기였다. 이 사회의 관찰자들은 처음부터 두 가지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 깜짝 놀랐다. 부와 영적 타락. 베네치아는 그 전성기에 바로 그런 사회였고,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고, 18세기 영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그 예들을 쫓고 있다. 정신이 고결하고 도덕적인 야심이 있는 구성원들은 사회의 방종에 경악했다. 그들은 소비주의를 매도하면서 대신 아름다움과 자연, 예술과 우애를 찬양했다. 그러나 비스킷 회사는 초콜릿 비스킷의 효율적인 생산을 무시하고, 사회의 가장 유능한 구성원들이 혁신적인 마케팅 프로모션 기법을 개발하면서 인생을 보내는-111쪽

것을 막는 나라들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늘 직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런 나라들은 가난하다. 너무 가난해서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도 없고,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국민을 돌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이런 나라의 국민은 기근이나 전염병에 목숨을 빼앗긴다. 고상한 나라들은 국민이 굶주리게 놔두는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한 나라들은 도넛과 6천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덕분에 산과병동과 두개골 스캐닝 기계에 투자할 자원을 갖추고 있다. -111쪽

어린 시절 개인의 형성은 마천루의 기초를 올바르게 잡는 작업만큼이나 민감하고 중요한 일이며, 이 기초 단계에서 약간이라도 불순한 것이 들어오면 죽는 날까지 인간이라는 동물의 균형을 흔들어놓을 만한 압제적인 힘을 휘두를 수 있다는 증거는 많다. 유년의 학대가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해서 그 의미를 계속 부정하는 것은, 한때 우리 조상들이 핀 머리만 한 크기의 침 한 방울에 치명적인 미생물 군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경멸할 때 보여주었던, 강건하지만 아무래도 무모한 상식적태두롤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136쪽

나는 시먼스의 회사를 나오면서,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이쓴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라게 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운명에서 갈망과 오류를 위해 마련된 자연스러운 자리를 부정하여, 우리가 경솔하게 결혼을 하고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142쪽

테일러의 집 2층 침실 옆에 붙은 작은 방을 스튜디오라고 부른다면 너무 거창할 것이다. 어쨌든 그 방은 1년의 여러 철, 하루의 여러 시간에 그린 떡갈나무 그림으로 덮여 있다. 크기는 작지만 아주 쾌적한 방이다. 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한 장소에 모아둘 기회는 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저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204쪽

그럼에도 테일러는 예술을 말로 요약하려는 모든 시소를 수상쩍게 여긴다. 그는훌륭한 그림이라면 자동적으로 모든 논평을 부적절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그림이 우리의 논리적 기능보다는 우리 감각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210쪽

회계가 세상을 보는 특수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회계사는 나에게 책을 어떻게 또는 왜 쓰느냐고 묻지 않고, 어떤 책의 세금을 몇 년에 걸쳐 낼 수도 있느냐, 아니면 출판할 때 전부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사람을 보면 먼저 신장부터 생각하는 신장 전문의와 비슷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유산으로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성을 발휘할 때 누리는 내적 자유란 택시 운전사들이 길을 찾는 기술을 실행에 옮길 때와 비슷하다. 어디든 손님이 가라고 하는 방향으로 가는것이다. 그들은 이번 주에는 석유 시굴 회사의 재정 문제를 처리해달라느 ㄴ요청ㅇ르 받았다가. 다음 주에는 슈퍼마켓이나 광섬유케이블 공장의 조세 부담 문제를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도 있다. 다급한 내부의 기획 또는 병이나 그로 인한 고통 때문에 그 일을 미룰 수는 없다. 그들은 낯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시으 야망도, 둔감하고 덧없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통찰을 기록해두고 싶은 야망도 없다. 그들은 망각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잘 조정이 되어 있다. 감사 업무에 불멸을 위한 기회는 거의 -270쪽

없다는 사실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271쪽

사장은 또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는 권리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긴 인사이드와 와튼 졸업생들을 야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게 남은 한 가지 도구는 설득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제국 여러 곳에서 한달에 서너 번씩 연단을 올라가 재킷을 벗고 앞에 모인 회계사 3천 명을 건너다보며 파워ㅗ인트 구호들을 배경삼아, 그들이 존경할 만한 전문직업인이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뒤에야 그들이 일하는 방법에서 개선할 점들을 교묘하게 제시할 수 있다. 마치 신앙이 쇠퇴하는 시대에 겸손하게 호소하는 설교자 같다. -282쪽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밤에는 자비로운 칠레산 카베르네, 그리고 전혀 괴롭지 않게 최면을 걸듯 오늘의 범죄와 변화를 이야기해주는 저녁 뉴스의 안내를 받아 착륙 지점을 향하여 다가가게 될 것이다. -298쪽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그의 동료이자 과학자인 무함마드 쇼라비였다. 그의 고풍스러운 예의, 운율 잇는 영어, 트위드 양복은 오로지 근대 이전의 문학 작품을 매개로 영국과 접촉하는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영국 애호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었다.-304쪽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오를 가능성은 400년 전에 프랑스에서 귀족이 될 가능성보다 아주 약간 더 클 뿐이다. 외려 귀족 시대는 그 가능성에 관해 솔직했고, 그런 면에서 더 친절했다. 옛날 사회는 포테이토 칩에 미래를 한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먀,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311쪽

현대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죽은 뒤에도 기술과 사회가 계속 혁명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 노동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성취한 것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허리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건물, 스타일에 대한 감각, 우리의 관념들, 이 모든 것은 곧 시대착오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크나큰 자부심을 갖는 기계들은 햄릿이 들고다니던 요릭의 두개골만크이나 진부해 보일 것이다.-360쪽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 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이 좋으면 우리는 모든 나라의 모든 인간 경험과 동일시를 하고, 머나먼 땅에서 벌어진 살인에 한숨을 쉬고, 우리 자신의 수명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경제적 성장과 기술적 진보를 바란다. 우리가 악당 세포 몇 개만 거치면 바로 종말에 이르는 존재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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