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evous Angel (Paperback)
Jane Hill / HarperCollins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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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보실 분 없을 거 같아서 줄거리 쫙 다 적었습니다 스포일러 싫으신 분은 읽지 마세요 특히 '결론은' 이후로 절대 절대 절대 읽지 마세요!!!^^  

세일 하길래, 그렇고 그런 로맨스 소설이구나 하고 읽기 시작했다. 대략의 설명에 따르면, 십대 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구남친이 할리우드 무비스타로 성공하였는데 주인공 녀성은 서른 아홉살이나 먹고서도 아직도 그 옛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설정. 그러던 차에 무비스타 구남친이 영화 촬영 도중 실종되고... 그가 남긴 마지막 쪽지가 무언가를 암시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로맨스 소설 쫌 읽어봤다는 독자라면, 이 출판사의 기본적 설명만 듣고서도 소설의 기승전결을 얼추 90퍼센트 이상 막힘없이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구남친과 주인공은 정말 열렬히 사랑했지만 어쩔수 없는 이유로 인해 헤어졌겠지...구남친은 주인공을 떠올리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헐리웃에서 성공했을거야!!!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 정점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확신한 순간 돌연 사라진거지 중요한건 그녀이지 커리어 따위가 아니거든..!!! 구남친과 주인공은 몇가지 사소한 일들을 해결하고서 다시 재회하게 될거야....마침내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거지!!!그리고 해피리에버애프터를 하는거즤!!!! 하하하하핳ㅎ하하  이렇게 가벼운 맘으로 이 책으로 시간이나 때우자, 깜칙한 계획을 세웠던 내가 마지막 챕터까지 남자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느꼈던 심정은 뭐랄까 ...시.망. 정도..........................? 굳이 마지막 챕터까지 가지 않아도 절반정도 읽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은 감 정도는 잡았었다.  

여주인공은 십대 시절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껄렁한 미국 남자를 만나 hoplessly 사랑에 빠진다.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젖은 진흙 잔디밭에서 첫 경험을 하고 온갖 파티를 돌아다니고 기숙사 낡고 좁은 침대에 엉켜 킬킬거리는 전형적인 10대 스러운 관계였다. 몇 달간의 짧은 교환학생 기간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고 둘은 몇 주 뒤 뉴욕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진다. 하지만 몇 주뒤 약속한 뉴욕의 그 장소에 남자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주인공은 쓰라린 가슴을 안고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간다. 사랑했던 사람과 어이없이 헤어지게 된 상황이 힘들었던 여주인공은 일자리를 얻고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그런데, 정확히 1년 뒤, 구남친이 나타났다. 영국의 집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린 것이다. 왜 뉴욕에서 그날 나타나지 않았냐는 그녀의 물음에 '미안 길이 막혀서 늦고 말았어' '난 다음날 MOMA에서 널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SHIT 난 구겐하임에서 하루종일 기다렸었다구' .............둘은 다시 불 붙었고 하루하루가 꿈결같이 지나간다. 심지어 해안가를 산책하다 그에게 정열적인 프로포즈까지 받았다!! 녹지 않는 것이 신기한 그 캔디같은 생활은 2주가 되지 않아 쫑난다..격렬한 섹스 도중 삔 손목을 치료하러 병원에 들른 사이 그는 사라진 것이다. 거울에 립스틱으로 thanks 4 everything 이란 메세지만 남기고. 아, 이유를 모르는 실연의 고통을 아는지라 주인공의 삽질을 나도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내가 이 말을 했었더라면, 그 말은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무슨 행동을 했길래??? 이 끝없는 자학은 그가 몇 년후 그가 영화배우로 데뷔하며 더욱 심해진다. 그녀는 그가 나오는 모든 잡지를 사모으로 그의 영화를 수없이 반복해서 보고 그에게 편지도 쓰는 그녀..안녕..잘 지내니..새 영화 좋타...그리고 답장이 돌아오길 미친듯이 기다린다......새 남자와의 연애는 잘 될리가 없다. 나 옛날에 장동건이랑 섬씽 좀 있었어^^** 맨날 이 소리하는 여친을 감당할 이 누구인가.... 그녀의 이 집착이 거의 책 반권동안 이어지니 짜증이 나지 않을리가. 그때까지 로맨스 소설이라는 건 당연하다 믿었기에 장르에는 의심을 품지 않고 다만 내가 구린 로맨스 소설을 고른 것이라 생각했다. 맨 뒷페이지 작가 사진 보며 욕 좀 했었다. 이거 순 당신만의 판타지 아냐? 마른 금발 영국인 여 주인공. 스스로 안 이쁘다고 하지만 모든 남자가 그녀에게 빠져들지(남주인공 빼고 주변 남자들이 모두 여주에게 대쉬함. 심심찮게 술마시다가 사고도 침) 학창시절 미국으로 교환학생 다녀온 추억 너무 우려내고 계신거 아니신지.  

근데. 딱 그 절반정도 시점을 넘어서니 이야기가 급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구남친이 촬영현장에서 사라지고 어쩔줄 모르던 여주는 그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가 그녀의 언니가 남긴 자살메모와 비슷하단 걸 알아차리고 그 역시 자살했을 거라 추측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끈을 놓지 못하고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주신 은행계좌를 터서 미국으로 날아간다. 단지 그의 흔적을 뒤좇기 위해.......근데 그의 고향에서 시작한 여행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그가 고향이라고 말했던 곳은 그의 고향이 아니고, 그가 이야기해 준 고향에 대한 추억은 모두 지역안내리플렛 내용이다. 모다.???? 힘들게 찾아낸 학교 동창은 말한다. "난 사실 너 불쌍하다 생각했었어..걔랑 사귄건 나였잖아? 넌 그냥 장난감이었고. 나 걔량 2년 사귀었고 여름엔 유럽여행도 갔었어" 유럽여행 기간은 구남친이 여주를 방문한 2주정도 시간과 겹친다.."우리 유럽에서 싸워서 파리에서 헤어졌었어. 그리고 미국에서 다시 만났지" 헐........여기서부터 미ㅓ니ㅓ라ㅣㅓ미ㅓㅏ  하나하나 밝혀지는 미스테리한 그의 과거..엇갈리는 기억들..'그는 누구?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하지만 그건 사랑이었어!! 진짜라구!!' 여주인공의 외침이 페이지를 넘어 들려온다.

결론? 

마침내 그녀는 구남친을 찾아낸다. 하지만 어느 오래된 모텔에 숨어 은거하고 있던 그는 그녀의 등장에 그동안 기대하던 사랑의 미소가 아닌 냉소어린 비웃음을 보낸다. 그가 쓰고 있던 대본을 발견한 그녀는 자신을 스토커로 묘사한 대본의 내용에 손을 부들부들 떨 뿐. 사랑했잖아, 라고 외치는 그녀에게 그는 말한다. '넌 심지어 내 여친도 아니었어. 니가 날 따라다닌 것일 뿐이잖아?' '그럼 왜 뉴욕에서 보자고 한건데?' '널 입닥치게 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거든. 얼마나 옆에 들러붙어서 주절거리는지' '그럼,,, 여름방학 때 우리집엔 왜 찾아온건데???' '내 여친이랑 파리에서 싸웠는데 호텔 들어갈 돈이 없더라고 ㅋㅋㅋ 유럽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뭐 너네 동네 좋긴 좋더라?' '그럼...그 프로포즈는 뭐였는데?' '무슨 프로포즈?????????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였냐고!!!' '니가 딴데보는 사이에 자빠졌는데 너무 쪽팔리더라고 그래서 프로포즈하는 척 한거지..그건 조크아냐? 넌 그걸 다 기억하냐?' 20년 동안 구남친 생각만 하고 살았고 동네 사람들에게 '한때 탑 무비스타랑 사귀었던 애'로 기억되는 것에 무한 자부심을 느끼던 여주가 느꼈을 배신감이야. 그리고 로맨스 소설인 줄 알고 시작했던 내가 이 결말에 이르러 느낀 감동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웬만한 로설보다 10배쯤 나은 전개아닌가) 분노로 가득찬 여주는 맥주병을 집어들고 그를 쳐죽이기 위해서 뛰쳐나간다. 그리고 그의 대갈을 맥주병으로 시원하게 날린다...동시에 빈 수영장 옆에서 얼쩡거리던 구남친은 지 알아서 자빠져 수영장 바닥과 합체하시고 수영장을 피로 물들여주신다. 짝짝짝짝짝  

여주가 구남친을 그리는 과정이 너무 절절해서 이 소설이 이런 식으로 끝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너무 좋을 뿐. 우리가 기억하는 옛사랑이란 결국 혼자만의 착각이요, 기억을 재가공해 만들어낸 판타지일 뿐이란 듣기 좋은 소리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그냥 스토리만으로 통쾌^^하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특히나 백미는 구남친과 재회한 후 교차되는 그와 그녀의 대화내용. 왜 프로포즈 했냔 물음에 '자빠졌는데 자빠졌다고 하기 쪽팔리니까'이건 정말 밑줄긋기 할 만한 대목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그의 찌질함은 책 내내 그려지던 dreamy한 그의 이미지와 교차되며 한층 더 상황을 비극적으로 몰고간다.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장을 덮으며 내 구남친을 떠올려보았다...어떻게든 좋게 생각하려는 나의 노력은 이제 접어야 하는것인가..? ㅋ.ㅋ.ㅋ  

바라만 보아도 엄마미소짓게 만들던 이가 구남친이 되는 순간 찌질해지는 자연불변의 이치와 진리.....아 사랑의 불가사의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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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19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LAYLA님의 이 리뷰를 읽으니 이 책이 무척 읽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책 정보를 보니 아직 번역본이 나온건 없나봐요. 전 원서를 못읽는데, 말씀하신 것 처럼 둘이 재회하고 나서의 내용이 참 읽고싶어지는데 말이죠.

2010-02-19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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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구판절판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습관적인 믿음을 버린다면, 우리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게 보이는 존재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수많은 시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4쪽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32쪽

친교란 얄팍한 노력이다.
"....본질적으로 소통 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유일한 부분을 피상적인 자아를 위해 희생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친구란 결국은......
"우리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지 않게 하려는 거짓말"
이상이 아니다.-150쪽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지적인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일단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에는, 그들이 친절하고 신실하기만 하다면, 그들이 지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적인 대화를 할 때에도 프로스트가 우선시한 것은, 개인적인 지적 관심사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성을 쏟는 것이었다.-167쪽

프로스트는 한번은 친교를 독서에 비유하였다. 왜냐하면 두 가지 활동 모두 타자와의 교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독서에 결정적인 우위가 있다고 덧붙였다.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수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초대를 거절하면 소중한 우정이 앞으로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친구의 정당하지 않지만 회피할 수 없는 예민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위선적인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책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는가? 독서할 때는 적어도 우리가 원할 때만 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지루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으며 필요할 때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 -173쪽

프루스트는 "우정을 경멸하는 자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아마도 그런 경멸하는 자들이 우정이라는 유대관계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길 회피하는데, 이것은 그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화라는 무계획적이고 두서없고 궁극적으로는 피상적인 매체의 처분에 맡기기엔 너무 중요한 주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질문에 답하기보다 질문을 하는 입장에 있다고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친교를 남들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에 대해 배우는 장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그들은 남들의 예민한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는 거짓으로 상냥해하고, 늙어가는 전직 고급창녀의 용모를 장미와 같이 아름답다고 해석하며, 의도는 좋지만 시시한 시집에 대해 관대한 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전투적으로 진리와 애정을 동시에 추구하기보다는 분별 있게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두가지 목적을 분할하여, 국화와 소설을, 로르 아이망과 오데트 드 크레시를, 보내는 편지와 -180쪽

쓸 필요는 있지만 숨겨두는 편지를 현명하게 분리시킨다.-181쪽

세련된 귀족의 이미지는 거짓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위험스럽게도 단순한 것일 뿐이다. 세계에는 ㅁ루론 우수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씨를 기초로 편리하게 그들을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낙관이다. 속물은 이것이 터무니없는 낙관이라는 것을 믿기를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구성원들 모두가 특정한 성질을 모여주는 완벽한 계급의 존재를 믿는다. 일부 귀족들은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게르망트 부부의 잘난 특질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미덕이나 교양처럼 예측이 불가능하게 분배된 어떤 것을 골라내고자 할 때 쓰기에 '귀족'이라는 범주는 너무나 조잡한 그물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게르망트 공작에게 품었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마도 전기공이나 요리사 또는 법률가라는 예상 밖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프루스트가 결국 인식하게 된 것은 이런 예측불허였다.-211쪽

프루스트는 알베르틴을 어떤 특정한 그림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키운 후에 드레스덴을 방문하는 한 학생에 비유한다. 반면에 공작부인은 어떠한 소망이나 지식도 없이 여행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당혹과 지루함과 피로감밖에 경험하지 않는 부유한 여행객과 같다. 이것은 물리적 소유가 단지 이해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원할 때 바로 드레스덴에 갈 수 있거나 카탈로그를 보고 나서 바로 옷을 살 수 있다는 게 부자의 좋은 점이라 할 지라도 그들은 재산으로 자신의 욕망을 그렇게 빨리 충족시키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할 수 있다. 그들은 드레스덴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그곳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탈 수 있고, 옷을 보자마자 그것을 옷장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덜 혜택받은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욕망과 기쁨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 이러한 시간적 간격은 겉으로는 못마땅한 일이지만, 셀 수 없이 막대한 이득을 준다. 사람들이 드레스덴의 그림들, 모자들, 실내복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시간이 없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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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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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젊음 자체의 아름다움 이외에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25쪽

내가 왜 당신과 결혼했는지 알아요?
당신 동생 도리스보다 먼저 결혼하고 싶어서였지.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녀에게 이상한 감정의 기류가 몰려왔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인 그 순간에도 그것이 그녀의 동정심을 일깨웠다. 그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지 않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 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96쪽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97쪽

처음에 그녀는 그가 단지 그녀를 상대로 장난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막상 그들이 실제로 출발할 때도, 아니, 그후에 그들이 강을 벗어나 국토를 횡단하는 길을 떠나기 위해 가마에 오를 때까지도 그가 특유의 작은 웃음을 떠뜨리면서 그녀는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죽기를 바라다니 그가 그럴 리 없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사랑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난 지금, 그가 보여줬던 수많은 애정 표현이 그녀에게 새로새록 다가왔다. 프랑스 식 표현대로 말하자면 그의 하루 날씨가 좋고 나쁨은 전적으로 그녀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잔인한 대우를 받았다고 사랑을 멈출 수 있을까?-125쪽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제가 도와드리죠"
"제 은밀한 슬픔에 함락되신 건가요? 제 옆얼굴을 보시고 제 코가 그리 길지 않다고 부디 말씀해 주세요"
그는 생각에 잠겨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파란 눈 속에 심술궂고 비꼬는 표정이 떠올랐지만 강가에 서 있는 나무가 수면에 그림자를 비추듯이 그 속에는 온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키티의 눈에 눈물이 핑 돌게 했다.-155쪽

"여기 온 게 겨우 몇 주 전인데, 마치 한평생이 흐른 것 같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잠시 그녀는 이런 저런 생각에 방황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영혼이 불멸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그 질문에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전 그들이 월터를 관에 넣기 전에 씻길 때, 그를 봤어요. 그는 아주 젊어 보이더군요.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죠. 당신이 나를 처음 산책에 데리고 나갔을 때 우리가 봤던 거지를 기억하세요? 내가 겁에 질렸던 건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조금도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그저 죽은 동물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월터도 마찬가지로 멈춰 버린 기계와 너무나 흡사했죠. 그게 너무나 두려워요. 그것이 단지 기계일 뿐이라면 그 모든 고통과 가슴의 상처와 불행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264쪽

지난 몇 주 동안 그녀가 깨달은 것은 남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때론 필요하지만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는 언제나 비열한 짓이라는 점이었다. -282쪽

"그곳의 시원한 바다 소리오 드넓은 파란 하늘 아래 여자 애가 태어난다면 좋겠어요"
"성별에 대해서 벌써 마음을 정한 게냐?"
그가 살짝 웃음기를 보이며 중얼거렸다.
"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범한 실수를 그 애가 저지르지 않도록 잘 키우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 모습을 돌이켜 보면 제 자신이 싫어요. 하지만 제겐 기회란 게 전혀 없었어요. 내 딸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 거에요. 난 그 아이를 세상에 던져 놓고는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하 여자로 키우기 위해 평생토록 입히고 먹일 생각은 없어요"
아버지가 경직되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그는 그런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말이 자기 딸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듣고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거 한 가지만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저는 바보였고 사악했고 가증스러웠어요. 그리고 끔찍한 형벌을 당했죠. 결단코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제 딸을 보호하겠어요. 나는 그 애가 거침없고 솔직하기를 바라요. 그 애가 스스로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이길 바라고 자유로운 남자처럼 인생을 살면서 저보다 더 나은 삶을 -328쪽

살기를 바라요"-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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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10-02-0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머셋 모옴! 이 작가가 e인가 o인가 하는 발음이 잘 안되서 그게 컴플렉스였데요. 그래서 고심 끝에, 그 발음이 나는 단어들을 쓰지 않고 대신 다른 단어를 쓰려고 어휘공부를 엄청 했다고 하네요ㅋㅋ 특이한 사람.

LAYLA 2010-02-05 16:23   좋아요 0 | URL
와- 재미있는 이야기!^^ 책보니 프랑스어도 잘하고 이탈리아어도 잘하고 라틴어도 잘하는거 같은데 그저 부러울 뿐..ㅋㅋ

비로그인 2010-02-0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생의 베일 얼마전에 읽었어요. 발병 지역에 도착해서 옛궁성의 아름다움에 정화되는 부분도 인상적이더군요..

LAYLA 2010-02-05 23:54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하나하나의 문장이 모두 좋은데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한심스럽더라구요 !!!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해주세요.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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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자신을 일깨우는 일상속의 글쓰기 방법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는 책이다. 그렇기에 어떤 화려한 글쓰기 기술을 전수해준다거나, 작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류의 내용은 아니다. 글쓰기 습관이 들지 않은 일반인들이 생활에 치여 이게 제대로 사는건가 고민될때 '그럼 글을 써보세요'하며 손을 잡아 펜을 쥐게 혹은 키보드를 치게 해주는 글쓰기 입문 선생님 같은 책이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초보자들에게 저자는 여러가지 팁을 알려준다. 나만의 이쁜 노트를 마련할 것, 나에게 맞는 도구 찾기, 배우자와 함께하는 글쓰기 등. 하지만 이런 부분은 거의 나와는 해당없는 부분인데다가 너무 뻔해 보이는 내용이라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고 저자가 제시한 '즐겁게 글을 쓰기 위한 색다른 시도'는 나름 유용했다. 멈추지 않고 글쓰기/낱개의 조각이 모여 작품으로-콜라주/갈팡질팡한 마음을 잡아 주는 글쓰기:두 단락 기술/글로 나누는 대화:다이얼로그 등이 그 예들이다.  

   
 

 갈팡질팡한 마음을 잡아 주는 글쓰기 : 두 단락 기술 

두 단락 기술은 어떤 의문점이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점검해 보고 싶을 때, 이것을 택해야 할지 저것을 택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때 사용하기에 이상적인 방법이다. 두 단락 기술은 어떤 대상에 대한 사실과 감정 혹은 객관적인 관찰과 주관적인 해석을 분리하고 싶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 과정은 간단하다. 종이의 한가운데에 줄을 그어 두 단락을 구분하자. 주제가 무엇이든지 제목을 찬성/반대 혹은 사실/감정 혹은 관찰/해석으로 적고 그에 따라 글을 쓰면 된다.  

-97p

 

 글쓰기가 익숙치 않고, 글쓰기가 일상이 아닌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되어 줄 책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들-보다 좋은 글을 향한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던지-에겐 부족하다 느껴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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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사랑하는 법 (해외편 + 한국편) -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의 재발견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처 엮음, 김지은 옮김 / 앨리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진부한 제목에, 글보다 사진이 더 많고, 간지럽게 착한 문구들이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낯선 사람과 손을 잡아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해본 적이 있나요?' 알라딘에서 추천 포스팅을 보지 않았더라면 먼저 집어들지 않았을 책임이 분명한데 어제 읽으면서 울었다.  

'나를 더 사랑하는 법'(Learning to love you more)은 동명의 온라인 웹사이트에 올라온 수많은 사람의 포스팅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 저자는 따로 쓰여있지 않고 엮은이만 표시되어 있다.제목은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지만 내용은 '위로하는 법' 내지는 '상처를 치유하는 법'에 더 가깝다. 우기자면- 그동안 드러낼 수 없었고 인정할 수 없었던 내밀한 상처를 치유함으로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인과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본질은 어떻게 하면 더더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같은 경박한 제목으론 표현될 수 없다.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니 아 끔찍하다)  

포스팅주제목록만 봐서는 이게 뭐 사랑과 용서에 관련된 것인가 의문이 들 것이다. 사진앨범 편집해오기.누군가의 점이나 주근깨를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전쟁을 겪은 사람과 인터뷰해보기 등등(내가 방금 무작위로 책을 펼쳐서 나온 숙제 목록들이다) 이 사소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숙제의 힘은 실제 책을 펼치고 누군가의 숙제를 확인해 보면 알 수 된다. 단순한 한 점의 포스팅(숙제)이 얼마나 한 영혼을 짙게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이고 즉각적이고 강렬하게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지 말이다. 삶의 본질은 커녕  단편 쪼가리 하나 보여줄똥 말똥해 보이는 '누군가의 점이나 주근깨를 연결해 별자리 그리기'를 보자. 침대에서 누워 곤히 자고 있는 여자친구의 등에 있는 점 서너개를 볼펜으로 이은 허무하리만치 단순한 10센티의 선.... 그 어수룩한 선을 타고 느껴지는 그 둘만의 친밀함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입맞추는 사진도 아니고 결혼하는 사진도 아니고 새벽에 주섬주섬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여자친구의 등에 선을 긋고 플래시 터트려 사진을 찍는 그 작은 순간, 그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그 일상이 감동적이다. 굳이 연인 사이가 아니래도 좋다. 친구의 팔뚝 점을 이어 만든 북두칠성은 어떤가. 그들이 살갗에 선 그으며 낄낄대고 웃었을 그 순간의 반짝임을 생각해보면 내 가슴이 따스하게 차오른다. 위로를 보내기도 한다. '항의 팻말을 들고 시위하기' 숙제의 한 포스팅을 보면 젊은이가 아스팔트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온 몸으로 무언갈 말하고 있다. '나는 이라크 전 참전 병사입니다. 나는 나의 죄를 알고 있으며, 그러기에 고독합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게 위로를 보내는 것만으로 내가 위로받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하나의 포스팅에 한 영혼의 진심이 담겨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포스팅이 수십개나 한꺼번에 다가오니 울지않고 견딜 수 있을리가. 울고싶을 때 봐야할 책이다. 아나운서 번역이라지만 번역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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