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구판절판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습관적인 믿음을 버린다면, 우리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게 보이는 존재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수많은 시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4쪽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32쪽

친교란 얄팍한 노력이다.
"....본질적으로 소통 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유일한 부분을 피상적인 자아를 위해 희생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친구란 결국은......
"우리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지 않게 하려는 거짓말"
이상이 아니다.-150쪽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지적인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일단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에는, 그들이 친절하고 신실하기만 하다면, 그들이 지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적인 대화를 할 때에도 프로스트가 우선시한 것은, 개인적인 지적 관심사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성을 쏟는 것이었다.-167쪽

프로스트는 한번은 친교를 독서에 비유하였다. 왜냐하면 두 가지 활동 모두 타자와의 교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독서에 결정적인 우위가 있다고 덧붙였다.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수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초대를 거절하면 소중한 우정이 앞으로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친구의 정당하지 않지만 회피할 수 없는 예민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위선적인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책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솔직해질 수 있는가? 독서할 때는 적어도 우리가 원할 때만 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지루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으며 필요할 때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 -173쪽

프루스트는 "우정을 경멸하는 자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아마도 그런 경멸하는 자들이 우정이라는 유대관계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길 회피하는데, 이것은 그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화라는 무계획적이고 두서없고 궁극적으로는 피상적인 매체의 처분에 맡기기엔 너무 중요한 주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질문에 답하기보다 질문을 하는 입장에 있다고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친교를 남들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에 대해 배우는 장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그들은 남들의 예민한 감정을 이해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는 거짓으로 상냥해하고, 늙어가는 전직 고급창녀의 용모를 장미와 같이 아름답다고 해석하며, 의도는 좋지만 시시한 시집에 대해 관대한 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전투적으로 진리와 애정을 동시에 추구하기보다는 분별 있게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두가지 목적을 분할하여, 국화와 소설을, 로르 아이망과 오데트 드 크레시를, 보내는 편지와 -180쪽

쓸 필요는 있지만 숨겨두는 편지를 현명하게 분리시킨다.-181쪽

세련된 귀족의 이미지는 거짓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위험스럽게도 단순한 것일 뿐이다. 세계에는 ㅁ루론 우수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성씨를 기초로 편리하게 그들을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낙관이다. 속물은 이것이 터무니없는 낙관이라는 것을 믿기를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구성원들 모두가 특정한 성질을 모여주는 완벽한 계급의 존재를 믿는다. 일부 귀족들은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게르망트 부부의 잘난 특질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미덕이나 교양처럼 예측이 불가능하게 분배된 어떤 것을 골라내고자 할 때 쓰기에 '귀족'이라는 범주는 너무나 조잡한 그물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게르망트 공작에게 품었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마도 전기공이나 요리사 또는 법률가라는 예상 밖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프루스트가 결국 인식하게 된 것은 이런 예측불허였다.-211쪽

프루스트는 알베르틴을 어떤 특정한 그림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키운 후에 드레스덴을 방문하는 한 학생에 비유한다. 반면에 공작부인은 어떠한 소망이나 지식도 없이 여행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당혹과 지루함과 피로감밖에 경험하지 않는 부유한 여행객과 같다. 이것은 물리적 소유가 단지 이해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원할 때 바로 드레스덴에 갈 수 있거나 카탈로그를 보고 나서 바로 옷을 살 수 있다는 게 부자의 좋은 점이라 할 지라도 그들은 재산으로 자신의 욕망을 그렇게 빨리 충족시키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할 수 있다. 그들은 드레스덴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그곳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탈 수 있고, 옷을 보자마자 그것을 옷장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덜 혜택받은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욕망과 기쁨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경험할 기회가 없다. 이러한 시간적 간격은 겉으로는 못마땅한 일이지만, 셀 수 없이 막대한 이득을 준다. 사람들이 드레스덴의 그림들, 모자들, 실내복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시간이 없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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