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품절


- 저기, 카이에다 씨는 쭉 여대에서 일하셨죠?
- 여대에 있다 보니 여자들 패턴은 빠삭하게 꿰고 있지.자네 같은 아이들 많이 봤거든. 자네는 똑똑하지만, 한층 더 똑똑해 져야 해. 여자는 어리석지만, 남자는 그보다 훨신 더 어리석거든.-78쪽

있잖아, 나, 그동안 내내 머리가 깨지게 생각했는데, 역시 난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살아오면서 나의 싫은 점이라든가 못난 면을 부정하기도 이젠 지쳤어.-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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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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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엔 남성 1인칭 화자 시점의 불륜 단편집인가 싶었다. 남자 주인공은 근육이라곤 한 점 없을듯 한 초식룸펜들인데 여자들이 알아서 달려든다. 한 번 만난 여자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고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남주는 아주 드라이 하게 그 관계를 이어나간다. 아내는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귀찮은듯이 마지못해 어쩌다 한번 내연녀들을 '만나 주러' 가는 식이다. 그들은 문어체로 대화를 나눈다. 불륜의 찌질함을 담아내기에 그들의 언어는 너무나 고상하고 시적이다.


아직 불륜을 경험하기엔 어리고 양다리를 걸치기엔 게으른 나는, 소설 소재로서의 불륜에 대해서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불륜이란 중년의 인간이 권태의 골목에서 택하는 가장 쉬운 자기기만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륜으로 주변에 민폐만 끼치고 있는 줄은 모르고서 자기가 마치 큰 거사를 도모하는 듯, 인생이 드라마인 듯, 별다른 노력을 한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대담한 선택으로 인생이 특별해졌다며 자위하는 것이 웃기다고 생각한다. 그 뒤에 찾아올 더 큰 허무를 생각하면 참 멍청하구나 싶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불륜을 자신의 소설을 쿨해보이게 만들 소재로 삼는 작가들은 더 웃기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인간들의 띨띨함을 적나라하게 파헤치지는 못할 망정 그 장단따라 정말로 그게 쿨한 일인것마냥 따라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이 전투적 마인드론 이 책의 불륜 이야기와 싸울 수가 없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불륜을 저지르며 그렇게 신나보이지도 않고 시들시들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 참 웃기다고 나서면 주인공 캐릭터들은 쟤는 뭐니, 곁눈질 한번 하고 계속 소주만 따르다가 '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요?' 조용히 이야기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기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불륜을 쿨함의 상징으로 차용하기 보다는 맥없는 초식동물 인생사의 상징으로 차용했기 때문인듯하다. 불륜 앞에서도 고만고만하고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막지도 않고 붙잡지도 않고 무심하고 의욕없고 냉소적인듯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마음이 약해지는 캐릭터들.


모르겠다. 살다보면 이런 불륜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지도. 별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지만. 다른 건 다 무심하게 살아도 남녀 사이의 일에서 만큼은 바닥까지 가는 뜨거움을 지키고 싶은데 살다보면 이렇게 의욕없이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걸까? 그렇게나 강하게 불륜을 비웃다가 책을 읽고서 이렇게 갸웃하게 되는 건 어느 부분들은 정말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게 작가의 글빨 때문인지 불륜의 또다른 모습을 가슴으로 이해해서인지 모르겠다. 전자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분간 다시 또 읽고 싶진 않다. 가슴 아프던 그 구절들만 조용히 조용히 되새기고 싶다. 10년쯤 뒤에 무기력하게 불륜의 유혹을 받을때 읽으면 어떨까 싶기는 하다. 그러면 야채박스 속 시든 야채같은 불륜 보다는 이혼을 하겠다는 용기가 솟구칠 지도 모른다. 그래. 그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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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7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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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나와 함께 갑시다."
그러자 퀭한 눈으로 해란이 윤수를 쏘아보았다. 눈가엔 아직도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결국 그래서 만나자고 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나도 갈 데가 없어서 하는 말이오."
"그래봐야, 냄새 나는 여관이나 싸구려 모텔 따위겠죠. 지겨워."
"누추하지만 내 집으로 갑시다. 편히 재워주고 아침밥도 해드리리다."
"왜 그러는 건데요?"
"언젠가 누가 내게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니까요."-93쪽

"존재가 원래 혼자라는 뜻이라는 건 알겠는데, 저 들판의 비석 없는 무덤처럼 말이다, 그게 가끔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 것이다. 네가 뭘 알겠냐만."-129쪽

"저 여자냐? 근데...좀 연로한 것 같다."
"다섯 살짜리 딸도 있다네요."
"딸?"
그로부터 맥주 두 병을 마실 동안 삼촌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뭐 꼭 또래를 사귀라는 법은 없지. 하지만 모쪼록 상처에 대비하거라. 상처라는 건 대개 스스로 받는 거니까."-136쪽

"오늘도 저랑 같이 자고 싶지 않은 거죠?"
"변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
"그리고 어쩌면 내가 연미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녀는 덧없이 웃었다.
"아뇨, 사실은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나란 존재는 단지 환절기에 잠시 필요할 뿐인 거예요."
"..."
"삼촌은 언니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글쎄, 그럴까?"
"삼촌이 다른 여자들에게서 구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에요. 말하자면 호텔 여직원의 훈련된 미소나 서비스 같은 거. 그런 건 원래 집에 없는 거니까요."
연미가 위스키를 더블로 한 잔 주문했다.
"나에게 바라는 게 없다는 것 잘 알아요. 단지 삼촌은 가끔 베풀어주고 싶은 어떤 여자가 필요한 거예요. 언니한테는 그럴수가 없으니까요."-191쪽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시는 여자와 같은 것이더군."
"왜죠?"
"한 번 배신당하면 두 번 다시 울어주지 않더군. 시는 또 물질적으로 눈물과 성분이 같거든. 그것이 굳어 고요한 새벽에 푸르른 돌로 변하게 되지."-229쪽

스물아홉에 천둥 같은 사랑이 찾아왔다가 서른에 떠나갔죠. 그후 마음을 놓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강구항에 오게 됐어요. 그날 서른 마리나 되는 고래가 바닷가로 떠밀려왔죠. 그런데 죽은 고래들을 보면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여관에서 잠이 깼는데 마음이 숲처럼 고요한 거예요. 마치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예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이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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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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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깬 적이 있었다. 눈을 떠보니 미연이 일을 끝내고 돌아왔는지 슬립 차림으로 거실 구석에 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 군살이 좀 붙긴 했지만 슬립 위로 드러난 미연의 몸매는 아직 탄력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화장을 다 지운 뒤에도 한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며 일어설 생각을 안 했다. 어딘가 처연한 표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얼굴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방에 들어가 잠들었는지 집 안이 고요했다.
나는 일어난 기척을 할까 했지만 왠지 미연의 비밀스런 순간을 엿본 것 같아 그냥 자는 체하고 있었다. 그녀는 삼십 분도 넘게 목석처럼 앉아 자신의 얼굴을 뚤어지게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미연은 도대체 자신의 얼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이미 지나가버린 젊음의 흔적? 아니면 유난히 신산스러웠던 인생의 뒤안길? 또는 안개처럼 불투명하고 생각할수록 두렵기만 한 미래의 자화상?-103쪽

나는 여자의 그런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미연이 아니라 중년 무렵의 엄마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을까? 엄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다 말고 지금의 미연처럼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입고 있던 낡은 슬립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남아 있어 그저 가난하고 각박하게 살아온 세월의 두께만이 무겁게 얹혀 있을 뿐 여자의 속옷이 주는 특유의 성적 긴장이나 평온한 휴식 같은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훔쳐보며 희미하게나마 엄마의 부서진 희망 같은걸 감지했다. 그런데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또다시 여동생의 뒷모습에서 여자의 무겁고 숙연한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다니, 여자의 인생은 그렇게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인가?-104쪽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왔노라-147쪽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222쪽

하지만 캐서린은 곧 냉정을 되찾고 능숙한 솜씨로 내 상처를 돌봤다. 낯선 나라에 가서 가족들을 힘겹게 건사하며 쌓은 내공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민 초창기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 가족들이 아파도 웬만한 응급처치는 자신이 직접 했다고 했다. 오랜 외국생활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엔 '플리이즈'라고 쓰여 있었다.-262쪽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고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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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구판절판


그는 아버지가 보다 나은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 비굴한 태도나 교활한 면모를 키우지 않은 것을 크게 자랑스러워했다.
"부동산을 팔려면 정말 사람들 비위를 잘 맞춰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것에 능하지 않으셨지요. 성향 자체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거든요. 그게 나는 존경스러웠어요."-29쪽

캘리그라피 수강은 잡스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워 놓으려고 시도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만드는 모든 제품에서 기술에다 멋진 디자인과 외양, 느낌, 품위, 인간미, 심지어 로맨스가지 결합하려 애썼다.-79쪽

브랜드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대부분 컴퓨터를 중앙화된 통제 도구의 대표적 물건이라면서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해커라고 불리는 소수의 사람들은 컴퓨터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자유를 위한 도구로 바꾸기 시작했지요. 돌아보면 그거야말로 미래로 가는 진정한 지름길이었어요."-107쪽

플라스틱 케이스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애플이 선택했던 색상 전문 업체 팬톤 사는 2000가지 종류의 베이지색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에, 스티브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게 없다고 했어요. 좀 더 다른 베이지색을 원했어요. 결국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요."-144쪽

이 연구 센터의 선구적 인물 가운데 앨런 케이가 있었다. 그는 잡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다음 두 격언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162쪽

그의 개인 생활과 회사 모두를 돌아보면 그와 친한 핵심 인물들 대부분이 아부에 능한 사람이 아닌 강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맥 팀은 이 점을 간파했다. 1981년부터 그들은 매년 잡스에게 가장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상을 수여했다. 물론 반은 장난이었지만 부분적으로는 진짜 상이기도 했다. 잡스는 그 상에 대해 알고는 마음에 들어 했다.-204쪽

하루는 잡스가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던 엔지니어 래리 케니언의 작업 공간으로 찾아갔다. 그러고는 부팅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케니언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잡스는 그의 말을 끊었다. "만약 그걸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부팅 시간을 10초 줄일 방법을 찾아볼 의향이 있는가?" 그가 물었다. 케니언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잡스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더니 만약 맥 사용자가 500만명인데 컴퓨터를 부팅하는데 매일 10초를 덜 사용한다면 그들이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연간 3억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100명의 사람들의 일생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다. "래리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몇 주 후에 보니 부팅 시간을 28초나 앞당겨 놓았어요" 앳킨스는 회상한다."스티브는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206쪽

"잡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계 팀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독려했어요" 허츠펠드는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잡스는 심지어 팀을 데리고 루이스 티파니의 유리 제품 전시회를 보러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은 적도 있었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출하는 티파니의 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루이스 티파니가 제품을 손수 제작하는 대신 어떻게 자신의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버드 트리블은 회상한다. "스스로 이런 다짐들을 했어요. '어차피 뭔가를 만들 거라면 이왕이면 아름답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207쪽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느낌을 줘야 해. 폭스바겐의 비틀처럼 말이야. 위대한 예술품은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확장시키지."-215쪽

잡스는 전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야.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아." 몇 년 후 매킨토시가 출시되고 나서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잡스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교훈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이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222쪽

마침내 디자인이 완성되었을 때, 잡스는 매킨토시 팀을 모아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그가 말했다. 그러곤 제도용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쓰게 했다. 그들의 서명은 모든 매킨토시 내부에 새겨질 것이었다. 내부를 들여다볼 일이 있는 수리공이 아니라면 아무도 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팀원들은 모두 자신의 서명이 컴퓨터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회로 기판이 최대한 아름답게 설계되었음을 알듯이 말이다. 잡스는 그들을 한 명 한 명씩 호명했다. 베럴 스미스가 먼저였다. 잡스는 45명의 차례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종이의 정중앙에 여백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소문자로 근사하게 휘갈겼다. 그러고 나서 샴페인으로 건배를 제안했다. 앳킨슨은 말한다. "바로 그런 순간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작품을 예술로 보도록 한 겁니다."-223쪽

사실 애플은 창조력과 상상력이 더 풍부했으며 실현해 내는 방식도 더 품격 있었고 디자인 역시 더 뛰어났다. 하지만 남의 것을 대충 모방하여 일련의 제품을 생산했다 해도 결국 운영체제 전재으이 승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일종의 심미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가장 품질이 높고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10년 후 잡스는 다소 교만하고 도가 지나치긴 하지만 약간의 진실도 포함된 불평을 내뱉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문제는 미적 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사소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중요한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도 못하고 제품에 문화적인 요소를 별로 가미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슬프네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때문이 아닙니다. 어쨌든 노력으로 얻은 결과니까요. 제가 문제 삼는 것은 그저 그들이 삼류 제품만을 만든다는 사실입니다."-297쪽

잡스가 애플의 프랑스 지사장 장루이 가세를 만난 것도 이 출장 때엿다. 가세는 잡스의 출장 중 그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데 성공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스티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보다 더 심하게 진상을 부리는 겁니다. 저 자신도 한때 분노로 가득한 사람이었어요. 예전에 진상이었다가 상태가 호전된 경우지요. 그래서 스티브 안에서 그런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고요."-308쪽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다면 너무 자주 뒤돌아 보면 안 됩니다. 그동안 무엇을 해 왔든, 어떤 사람이었든 다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바깥세상이 당신에게 '이게 바로 너'라는 식으로 모종의 이미지를 강요할수록 예술가는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지요. "안녕, 나 이제 가야 돼. 나 미칠 거 같으니까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그러고는 어딘가로 가서 은둔해 버립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약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요.-315쪽

어느 기자가 잡스에게 컴퓨터 출시가 왜 그렇게 늦어지는지 묻자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 "늦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 컴퓨터는 시대를 앞서서 5년이나 빨리 나오는 셈입니다."-383쪽

넥스트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된 제품을 판매하는 데 실패하자 잡스의 경영 철학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우리가 실수한 겁니다. 애플에서처럼 위젯 전체를 만드는 공식을 그대로 따랐으니 말입니다." 그가 1990년에 말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했어야 했지요." 하지만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러한 접근에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엔드투엔드 제품을 만드는 대신. 이제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다양한 하드웨어 플랫폼에 설치하고자 하는 기업들에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파는 사업체를 떠맡게 된 것이다. "내 열정은 거기에 있지 않았어요." 그는 훗날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개인 고객들에게 제품을 팔 수 없다는 사실에 몹시 낙심했어요. 저는 기업용 제품을 팔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시한 하드웨어에서 구동될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를 판매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게 아니에요. 그런 일은 결코 좋아할 수가 없었지요."-469쪽

그에게는 엘리슨의 과다한 소비 욕구도, 빌 게이츠의 박애주의적 충동도, 포브스 부자 리스트에서 순위 경쟁을 벌이려는 욕심도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자아 욕구와 개인적인 동기들로 인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유산을 창출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는 에드윈 랜드와 빌 휼렛, 데이비드 패커드 등과 같은 인물의 반열에 오르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애플에 복귀하여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 것이었다. -485쪽

잡스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한 가지는 바로 오랜 세월 존속하는 영속성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10대 시절 여름방학 동안 HP에서 일하면서, 창의적인 사람 한 명보다 체계를 갖춘 훌륭한 기업이 훨씬 더 커다란 혁신을 일궈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529쪽

존 래시터는 디즈니와의 결별 가능성에 경악했다. 그는 회상했다. "내 자식들이 걱정됐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만든 캐릭터들을 어떻게 망쳐놓을지 걱정된 겁니다. 그건 내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았으니까요." 그는 픽사 회의실에서 고위 임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스튜디오 안뜰에 800여 명의 픽사 직원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면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소중한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을 포기하고 어린이 성추행 전과범에게 입양시키는 것 같군요"-689쪽

"우리는 다 같이 둘러 앉아서 각자의 전화기가 얼마나 마음에 안 드는지 얘기를 나눴지요. 너무 복잡하더군요. 전화번호부를 포함해서 기능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무슨 미로를 헤치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변호사 조지 라일리는 법적 현안들을 논의하는 미팅에서 잡스가 따분해하며 라일리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그것이 왜 얼간이 같은지 조목조목 지적하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잡스와 그의 팀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싶은 전화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 점차 흥분을 고조시켜 갔다. 훗날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 최고의 동기부여라 할 수 있지요."-736쪽

"스티브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의견을 내놓는 성향이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쓰레기야'라는 말로 그 아이디어를 끝장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라는 건 아주 연약한 것이라서 개발 단계에서는 조심스럽게 다뤄 줘야 합니다. 그는 그 프로젝트에 대해 망신을 주면 정말 슬플 것 같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까요." -디자이너 아이브-739쪽

경제 및 정치의 안타까운 상태로 화제가 바뀌자 그는 전 세계에 걸쳐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두세 가지 예리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말했다. "오바마한테 실망했습닏. 그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화를 내는 일을 주저해요. 그래서 적절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고는 내 생각을 읽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시인했다. "그래요. 난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죠."-866쪽

신의 존재를 믿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50대 50입니다. 어쨌든 나는 내 인생 대부분에 거쳐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뭉서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왔습닏. 그는 죽음에 직면하니 내세를 믿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 가능성을 과대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8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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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4-2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잡스가 저를 만났다면 존경했을거예요ㅋㅋ저도 잡스 아버지같은 성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