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구판절판


다른 어떤 동물도 죽을 줄 아는 길로 걸어가지 않는데, 왜 사람만은 그게 자기를 파멸시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일까?-49쪽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 어떤 애잔함 같은 것을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 그런 소설을 가리켜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고 말했다. 식탁에 앉아서 쓰는 소설이라는 뜻인데,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 듯 하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여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60쪽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세를 닮은 재벌 3세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내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남산 꼭대기에 세워 준다고 해도 나는 그 일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그 일들을 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때로 너무나 행복하므로 문학을 한다. 그정도면 인간은 충분히 살아가고 사랑하고 글을 쓸 수 있다. -67쪽

하늘이 나 같은 재질을 냈다면 반드시 쓸 곳이 있으리라
천냥 돈은 다 써버려도 다시 생기는 것을
양을 삶고 소를 잡아서 우선 즐기자
한꺼번에 삼 백 잔은 마셔야 된다
-84쪽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86쪽

아직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내 계획은 정확하게 입대할 때까지만 세워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후반 까지는 간신히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지만 서른 살 너머까지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서른 살 이후라는 것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122쪽

'10여년 전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눈빛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발을 동동거리며 즐거움에 가득 차 거리를 걸어가던 그때의 그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어떤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123쪽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집 마루에서 벌어지는 술자리에는 일종의 형재애나 자매애 같은 느낌이 있었다.-136쪽

그러나, 정말 나는 너무 슬펐다. 새벽마다 가슴은 찢어지고.
달빛은 잔인하고 햇빛은 가혹하여,
쓰디쓴 사랑이 무감각한 도취로 가슴을 부풀게 하였다.
아 용골이여 부서져라, 아 이 몸이여 바다에 떨어져라. -164쪽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라질 때를 상상할 수 있다면.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190쪽

그렇게 한 3년 정도 그와 함께 지냈다. 그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광경을 봤고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들었다. 대개는 처음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았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듣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뜻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을 더 밝고 멀리 보라는 까닭이다.-194쪽

어쩌자고 삶은 그처럼 빨리 변해가는가? 어쩌자고 열아홉 살에 우리는 헤어지게 된 것일까? 어쩌자고 모든 것은 조금만 지나면 다 나아지는가? 어쩌자고 고통은 때로 감미로워지는가?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끝이 없으나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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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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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토속주라는 것은 그 지역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좋아지는 법이다. 키안티 지역을 여행했을 때는 와인만 마셨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일 버본 소다를 마셨다. 독일에서는 시종일관 맥주에 절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아토스에서는.....그렇다, '우조'인 것이다. -65쪽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국땅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그것이 바로 타향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은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128쪽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이하네에 들어가게 된다. 잠깐 휴식을 취하기에 편하기도 하지만 터키에 있다 보면 자연히 차이가 마시고 싶어진다. 몸이 차이를 원하게 된다. 어쩌면 기후 탓일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조금 오래 있다 보면 그런 식으로 기호가 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에스프레소가 마시고 싶었던 것보다, 그리스를 여행하다가 그리스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우리는 차이에 끌렸다. "그럼, 잠깐 저기에서 차이라도 한잔 마실까"하는 터키식 습관에 금방 물들어버린 것이다.-184쪽

그곳 공기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뭔가 특수한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에 와 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이제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공기였다. 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그 공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일어난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그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었다)몇 가지 일들을. 나는 그 후 많은 나라를 다녔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다른 공기를 맡아왔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터키의 공기는 그 어떤 다른 나라의 공기의 질과 달랐다. 어째서 터키의 공기가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나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분히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이다. 예감은 그것이 구체화 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런 예감이 나타날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다. 그저 몇 번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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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8-1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공기 이론 공감. 하루키 정말 단 한번도 매료되었던 적 없지만 이건 읽어보고 싶네요. 여행을 앞두고 읽겠어요. 여행 없는 삶의 이 책은 독일듯 ㅋㅋㅋㅋ

LAYLA 2012-08-16 16:29   좋아요 0 | URL
여행 못해서 이거 대신 읽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이 책엔 여행지에 대한 신경질이 묻어있거든요. ㅋㅋ
 
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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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고 성숙해지는 순간부터 남은 인생은 밑지면서 사는 거라는데 얘(책의 주인공)12살부터 세상이치를 다 알았다고 하니, 읽는 내내 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보여 안타까웠다. 어떤 어른이냐면. 아까운 젊음은 냉소로 흘려보내고, 나이 들어 불륜남 앞에 벌거벗은 시든 몸으로 뒤늦게 이런 생각을 하는 어른.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치른 것이 내 인생일지라도, 걸어온 삶을 되돌릴 수 없음을 잘 안다는 이 체념이 슬것이고,

열 둘의 문장에서부터 이 체념이 스며들어 있으니 더 슬프다.

 

인생을 아는 사람은 인생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초연하다고 하지만, 초연함과 용기 없음의 경계는 모호하지 않은가? 다가오는 생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살아 내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물살 따라 흔들리는 수초처럼,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나도 생각했다. 내 삶은 내 의지 따위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므로.

 

...하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어차피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것이면 그냥 의지를 가져 보는게 어떠한가? 어차피 지 멋대로 흘러가는 인생이라면, 나도 내 멋대로 의지를 가져보면 어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당연히 해 봐야 하는거 아닌가? 오기와 만용일지라도 여기서 포기하긴 싫다는 마음.

 

모르겠다. 자기연민을 극복하는 과정인지, 삶에 다시 한 번 더 속아 넘어가는 것인지. 삶이 날 속이겠다 작정하였다면 한번만 더, 그냥 속아 넘어가고 싶다. 너무 명민해서 속아 넘어가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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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15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새의 선물> 읽을래요.
계속 미루다가 안 읽고 있어요ㅠㅠ

LAYLA 2012-08-15 19:11   좋아요 0 | URL
한번 시작하면 금방 읽을거에요 ^^

tintin2506 2017-08-0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책을 다 읽고 리뷰를 검색하던 중이였는데, 5년 전 작성된 이 글에서 제가 갈증을 느꼈던 부분을 정확히 언급해 주시네요! : ) 너무 일찍 성숙해버렸지만 사랑스러운 ‘애어른‘ 진희가, 여전히 냉소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이 된 모습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더라고요. 정말로 12살에서 성장이 멈춘 느낌이랄까. 물론 이러한 설정이 미학적으로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지만요 ㅎㅎ

LAYLA 2017-08-17 20:06   좋아요 0 | URL
틴틴님 댓글로 저도 오랜만에 이 글을 찾아봤구요
제가 이 글을 쓸 때 이십대 중반이였는데
저 역시 뭔가 애늙은이 같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ㅎㅎㅎㅎ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카포티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3년 11월
품절


그녀는 낡아빠진 붉은 벨벳 의자에 주저앉더니, 양반 다리를 하고 방을 둘러봤다. 눈을 더 가늘게 뜨고서.
"이런 방을 어떻게 견디죠? 공포의 방인데."
"아, 뭐든 적응되기 마련이죠."
나는 대꾸하면서도 좀 짜증스러웠다. 내 아파트를 자랑으로 여기던 참이었으니까.
"난 안 그래요. 아무 것에나 적응하지 않을 거에요. 그런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31쪽

사람의 성격은 자주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 몸도 몇 년에 한 번씩은 변한다. 바람직하든 아니든, 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여기 변하지 않을 두 사람이 있었다. 마일드레드 그로스먼과 할리 골라이틀리. 둘의 공통점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너무 일찌감치 개성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벼락부자처럼 균형 감각이 없어진다. 한 사람은 머리가 큰 현실주의자로 몰입했고, 다른 사람은 균형 감각이 없는 낭만주의자로 빠졌다. ... 그들은 왼쪽에 있는 낭떠러지도 쳐다보지 않는 단호한 걸음으로 인생을 시작해, 똑같은 걸음으로 인생의 끝에 다다르리라. -92쪽

야성적인 것은 사랑하지 마세요, 벨 씨. 그게 그이의 실수였어요. 그는 늘 집에 야생 동물을 데려왔어요. 날개에 상처 입은 매 같은 거요. 한 번은 다리가 부러진 살쾡이를 데려왔어요. 하지만 야생 동물한테는 마음을 줄 수 없는 법이죠. 마음을 쏟을수록 그것들은 더욱 강인해져요. 강해져서 숲으로 달아나죠. 나무 위로 날아가거나. 그 다음에는 더 높은 나무로 가고. 결국 하늘로 날아가죠. 마침내 그렇게 끝나고 만다니까요, 벨 씨. 야성적인 것을 사랑하면 결국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요.-116쪽

따분한 말이지만, 결론은 착한 사람에게만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착하다는 거요? 정직함이라고 해야겠지요. 법을 잘 지키는 의미의 정직함은 아니고- 난 그날의 즐거움에 도움이 된다면 보석이라도 훔치겠어요. 25센트짜리 동전이라도 훔칠 거에요. 내 자신에게 정직한 걸 말하는 거예요. 겁쟁이, 허풍쟁이, 감정 이상자, 창녀만 아니면 뭐든 되겠어요. 정직하지 않은 심장을 갖느니 암에 걸리겠어요.-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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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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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과 놀이공원, 의회 복도와 병원 대기실에서 '선착순'이라는 줄서기 윤리가 '돈을 낸 만큼 획득한다'는 시장 윤리로 대체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한때 비시장 규범이 지배했더 삶의 영역에 돈과 시장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1쪽

(경제학자들은 주장한다) 최고 가격을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사람에게 입장권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공연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을 결정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설득려깅 없다....어떤 재화에 기꺼이 가격을 지불하려는 것이 꼭 해당 재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에는 자발적으로 지불하려는 마음만큼이나 지불할 수 있는 능려도 반영된다.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레드삭스 경기를 가장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도 입장권을 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최고 가격을 내고 입장권을 손에 넣은 사람이라고 그 경험의 가치를 전혀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55쪽

줄서기를 비롯해 재화를 분배하는 기타 비시장적 방식이 시장논리로 대체되는 경향은 현대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현상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장에서 살펴본 공항, 놀이공원, 셰익스피어 축제, 의회 공청회, 콜센터, 의사 진료실, 고속도로, 국립공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치기 권리 구매 현상은 30년 전만 해도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것으로 대부분 최근에 발달했다는 사실이 이목을 끈다. -67쪽

한 경제학자가 주로 저소득층 학생으로 구성된 텍사스 소재 학교에서 실행하는 AP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밀착 조사했을 때, 이 프로그램은 돈을 많이 지급할수록 학생들의 점수가 높아진다는 일반적인 '가격 효과'가 아니라 다른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킨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 "단지 수입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으로만 행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돈은 결과를 외부로 드러내는 효과를 내서 학업 성취를 '멋진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인센티브 액수가 학업 성취의 결정적 요인이 아닌 이유다. 해당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유는 학업 성취를 이루도로고 돈으로 학생들을 매수해서가 아니라 학업 성취와 학교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86쪽

이 시나리오에서 시장은 도구로서 작용하지만 순수한 도구는 아니다. 시장 메커니즘으로 시작한 방법이 시장 규범이 되고 있다. 분명히 우려되는 점은,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돈을 주면 아이들이 독서를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며, 결국 독서의 내재적 장점을 퇴색시키고 밀어내거나 서서히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94쪽

경제학자들은 흔히 시장은 무기력해서 스스로 통제하는 재화에 관여하거나 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시장은 사회 규범에 흔적을 남긴다. 종종 시장 인센티브는 비시장 인센티브를 잠식하거나 밀어낸다. -98쪽

산아제한 담당 관리는 부유한 위반자들ㄹ에게 부과하는 벌금을 인상하고, 정책을 위반한 유명 인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벌금은 부자들에게는 푼돈이다. 정부는 부자들이 실제로 타격을 받을 만한 영역, 즉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지위, 평판, 명예 등을 더욱 세게 겨냥했어야 한다."

정부 당국자들은 국민들이 정책을 위반했을 때 내는 벌금을 처벌로 생각하고, 여기에 따라다니는 불명예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벌금이 요금으로 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책의 이면에 놓인 규범이다. 벌금이 단순히 요금 개념으로 바뀐다면, 능력있고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자녀를 더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이상한 산업에 정부가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105쪽

인센티브는 경제학적 사고에서 최근에 등장한 용어로 애덤 스미스나 기타 고전 경제학자의 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20세기까지도 경제학적 담론에는 출현하지 않않고,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시장과 시장 중심적 사고가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인센티브라는 단어의 사용량은 급격히 증가했다. 구글 도서 검색에 따르면 194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센티브라는 용어의 사용이 400퍼센트 넘게 증가했다. -125쪽

어째서 경제적 효율성을 신경 써야 할까? 아마도 선택의 합계로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맨큐가 설명하듯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면 사회 구성원 전체의 경제적 행복이 극대화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 질문을 무시하거나 공리주의 도덕적 철학의 견해에서 대답을 찾는다. 하지만 공리주의에는 몇 가지 친숙한 반박이 따른다.. 시장논리에 가장 적절한 반박은 어째서 도덕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선택의 만족을 극대화햐야 하는가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개싸움이나 진흙 레슬링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느 우리는 개인적 판단을 내리지 말고 공리주의적 계산법에 따라 각 선호를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야 할까? 시장 논리가 자동차.토스터.평면 텔레비전 등 물적 재화와 관련이 있다면 이러한 반박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재화의 가치가 단순히 소비자 선호에 따라 달라진다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128쪽

하지만 시장 논리를 섹스.출산.육아.교육.건강.범죄처벌.이민정책.환경보호 같은 문제에 적용하면 모든 사람의 선호가 똑같이 가치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도덕척 책임이 따르는 영역에서는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어떤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더 수준 높고 더 적절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도덕적 가치를 묻지 않고 사람들의 선호를 무차별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자녀가 독서를 하도록 가르치고 싶은 부모의 욕구는 바다코끼리를 코앞에서 쏘고 싶은 사냥꾼의 욕구와 정말 똑같이 중요할까?-129쪽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쓸 계획이라면 충분히 많이 지급하든지 아니면 전혀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인센티브(보상금)를 주는 것이 그 행동의 특징을 바꾸기 때문이다. 재정적 인센티브가 공공정신에서 우러난 활동을 보상받기 위한 노동으로 바꾼 것이다.
(행의의 의미가 인센티브 지급으로 이미 달라진 시점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충분한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함. 적은 인센티브 지급은 안 주느니만 못한 결과)-165쪽

미덕에 대한 경제주의의 견해(미덕은 사용하면 고갈된다)는 시장에 대한 신념을 불타게 하고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시킨다. -고갈되는 미덕에 불완전하게 의지하느니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낫다-하지만 비유가 잘못되었다.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하게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180쪽

역사적으로 생명에 대해 보험을 드는 행위와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하는 행위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생명보험을 도덕적으로 불미스러운 제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생명보험은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생명에 시장 가격을 붙이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수 세기 동안 생명보험을 금지했다. 18세기 프랑스의 한 법학자는 이렇게 썼다. "인간의 생명은 상업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죽음이 이윤을 노리는 투기의 근원이 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생명보험 회사가 없었다. 일본에 생명보험 회사가 처음 등장한 것도 1881년이었다. 생명보험은 도덕적 타당성이 부족해서 19세기 중반이나 후반까지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발달하지 않았다. -200쪽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 자체는 미덕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저런 시장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경기의 선을 향상시키는지 훼손시키는지 여부다.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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