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염천 -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터키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11월
구판절판


하여튼 토속주라는 것은 그 지역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좋아지는 법이다. 키안티 지역을 여행했을 때는 와인만 마셨다. 미국 남부에서는 매일 버본 소다를 마셨다. 독일에서는 시종일관 맥주에 절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 아토스에서는.....그렇다, '우조'인 것이다. -65쪽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국땅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장소-그것이 바로 타향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은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128쪽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이하네에 들어가게 된다. 잠깐 휴식을 취하기에 편하기도 하지만 터키에 있다 보면 자연히 차이가 마시고 싶어진다. 몸이 차이를 원하게 된다. 어쩌면 기후 탓일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조금 오래 있다 보면 그런 식으로 기호가 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에스프레소가 마시고 싶었던 것보다, 그리스를 여행하다가 그리스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우리는 차이에 끌렸다. "그럼, 잠깐 저기에서 차이라도 한잔 마실까"하는 터키식 습관에 금방 물들어버린 것이다.-184쪽

그곳 공기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뭔가 특수한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에 와 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이제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공기였다. 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그 공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일어난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그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었다)몇 가지 일들을. 나는 그 후 많은 나라를 다녔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다른 공기를 맡아왔다. 하지만 불가사의한 터키의 공기는 그 어떤 다른 나라의 공기의 질과 달랐다. 어째서 터키의 공기가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나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분히 일종의 예감 같은 것이다. 예감은 그것이 구체화 될 때만 설명할 수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씩 그런 예감이 나타날 때가 있다. 그렇게 많이는 아니다. 그저 몇 번쯤.-193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orgettable. 2012-08-1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공기 이론 공감. 하루키 정말 단 한번도 매료되었던 적 없지만 이건 읽어보고 싶네요. 여행을 앞두고 읽겠어요. 여행 없는 삶의 이 책은 독일듯 ㅋㅋㅋㅋ

LAYLA 2012-08-16 16:29   좋아요 0 | URL
여행 못해서 이거 대신 읽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이 책엔 여행지에 대한 신경질이 묻어있거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