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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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0쪽

스물다섯 살까지는 정말 그저 그런 인생이었다.
...딱 하나 잘한 게 있었다.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에잇, 그럴거면 차라리 보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현재에 충실했던 것 같다. -20쪽

인생이 예순부터라면, 청춘은 마흔부터다. 마흔 살까지는 인생 간 좀 보는 거고, 좀 놀려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오리엔테이션에나 참가하는 거다. 그러니까 마흔 이전에는 절대 절망하면 안 되고,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체념해서도 안 되는 거다. -23쪽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인생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종이를 낭비해도 괜찮다면, 코앞에 목적지가 보여도 돌아갈 마음이 없다면, 소설을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낭비를 낭비로 느끼면 곤란하다. 101년 후,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을 내밀지 모른다. 피 같은 시간에, 금쪽같은 나이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생각하면서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인간을 상상하고 있다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부터 낭비를 생활화해왔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 잠을 줄인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아마 그래서 남들보다 더 쉽게 소설 쓰는 일에 매달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38쪽

한 편의 소설을 끝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주인공을 죽일지 살릴지, 왼쪽 길로 보낼지 오른쪽 길로 보낼지, 사랑에 빠지게 할지 배신하게 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라고 쓸지 '그러나'라고 쓸지 '그런데'라고 쓸지 선택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선택 사항을 썼다가 지운다. 나는 그 무수한 선택들을 거쳐왔다. 나는 그게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선택과 현실 속의 선택은 분명 다르지만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취한 것은 아껴 써야 한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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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11-1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에서 키득거리며 읽다가 문득 위로가 되는 걸 느꼈던 책이네요. 이번에 이효석문학상인가요? 김중혁 작가가 받았다던데, 그것도 읽어보고 싶네요 :)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노라 에프런 지음, 김용언 옮김 / 반비 / 2012년 6월
구판절판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저널리즘을 사랑해왔다. 나는 편집실을 사랑했다.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그 집단을 사랑했다. 담배를 피우고 스카치를 마시고 포커 치는 걸 사랑했다. 나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 직업에 종사했다. 나는 그 스피드를 사랑했고, 마감을 사랑했고, 사람들이 신문지르 생선을 포장하는 것을 사랑했다. 기사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꼬마 때부터 늘 나중에 뉴욕에서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이의 일들은 전부 인터미션일 뿐이었다. 나는 그 막간의 휴식 같은 시절 내내 뉴욕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면서 보냈다. 나는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신비롭고 가능성이 풍부한 곳이리라고 꿈꿔 왔다. 원하는 것을 진짜로 얻을 수 있는 곳. 미칠 듯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 완전히 둘러싸여서 살 수 있는 곳. 내가 유일하게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곳. 바로, 기자가 될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리고 그 꿈은 사실이 되었다.-49쪽

얼마 전 내 친구 그레이든 카터가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계획에 대해 경고했다. 식당 경영이야말로 모두가 철들면서 버려야 하는 보편적인 판타지의 일종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지 않으면 식당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식당 경영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따라붙는다. 주인 스스로 매일 거기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건 가장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식당을 열겠다는 판타지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자 피아제의 인지 발달 단계의 최종 심급이다.-126쪽

이혼의 장점이라면, 때때로 그 다음 남편에게 훨신 좋은 아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분노를 쏟을 대상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함께 사는 사람에게로 분노가 향하지 않는다.

또 다른 장점이라면, 결혼 생활 때문에 모호해졋던 어떤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바로 사람은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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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서재 2012-11-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 님,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어요. ㅎㅎ 저랑 똑같은 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네요. 기분 좋은데요^^ 좋은 덧글 감사했어요~ 종종 얼굴 뵈어요^^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절판


내 진정한 열정은 아파트에 집중됐다. 성인이 된 이래 가장 암울한 시절, 아파트 덕분에 구원받았다고 난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61쪽

아, 내 나이 26살 한창일 때 1년 내내 비키니를 입고 지낼 것을.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아직 20대라면 지금 당장 나가서 비키니를 사 입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34살이 될 때까지는 그 비키니를 절대 벗지 말기를.-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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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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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과 취향,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 나도 함께한 바 있는 그 삶의 모든 객관적 표징을 모아 볼 것이다.-21쪽

난 내가 사는 아파트와 루이 필리프풍의 시크리터리 책상, 빨간 벨벳의 소파며 하이파이 오디오 세트 등에 대해 얘기했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은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자신은 모르는 사치를 내가 누릴 수 있기만을 바라며 나를 키웠던 아버지는 흐뭇해 했지만, 던롭필로 가구나 옛날 서랍장 같은 것은 그에게 내 성공을 확증해 주는 것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었다. 이 모든 걸 요약하듯 그는 말하곤 했다. 그럼! 너희들은 당연히 누려야지!-111쪽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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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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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확신했다. 또한 그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자와 우유를 팔아 댄 덕분에 내가 대형 강의실에 앉아 플라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그 부당함에 대해서도.-66쪽

내가 집에 도착할 때면 그녀는 판매대 겸 계산대 뒤에 있었다. 손님들이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약간 얼굴을 붉히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마지막 손님이 떠나고 나서야, 부엌에서 키스를 나눴다. 여행과 학업에 관한 질문들. 그러고는 <빨랫감이 있으면 내놓으렴>, <네가 떠난 뒤로 신문들 다 모아 놨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더 이상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친절, 거의 수줍음이라고 할 만한 것들. 여러해 동안 나와 그녀의 관계는 떠났다가 돌아감의 반복에 머물렀다.-67쪽

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받았다. 우리 학업이 끝나는 마지막 해에는 재정적으로 우리를 도우려고 했고, 나중에는 우리가 무엇을 받으면 좋아할지에 대해 늘 염려했다.-72쪽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아닌 삶을 꾸며 냈다. 파리에 가기도 했고, 금붕어 한 마리를 사기도 했고, 누군가 자신을 남편의 무덤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102쪽

가공의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실질적 부재로서의 어머니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아마도 망각의 첫 번째 형태이리라.-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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