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구판절판


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과 취향,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 나도 함께한 바 있는 그 삶의 모든 객관적 표징을 모아 볼 것이다.-21쪽

난 내가 사는 아파트와 루이 필리프풍의 시크리터리 책상, 빨간 벨벳의 소파며 하이파이 오디오 세트 등에 대해 얘기했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은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자신은 모르는 사치를 내가 누릴 수 있기만을 바라며 나를 키웠던 아버지는 흐뭇해 했지만, 던롭필로 가구나 옛날 서랍장 같은 것은 그에게 내 성공을 확증해 주는 것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었다. 이 모든 걸 요약하듯 그는 말하곤 했다. 그럼! 너희들은 당연히 누려야지!-111쪽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빗속에서도 땡볕 속에서도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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