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0쪽
스물다섯 살까지는 정말 그저 그런 인생이었다. ...딱 하나 잘한 게 있었다.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믿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에잇, 그럴거면 차라리 보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현재에 충실했던 것 같다. -20쪽
인생이 예순부터라면, 청춘은 마흔부터다. 마흔 살까지는 인생 간 좀 보는 거고, 좀 놀려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지 오리엔테이션에나 참가하는 거다. 그러니까 마흔 이전에는 절대 절망하면 안 되고,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체념해서도 안 되는 거다. -23쪽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인생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면, 종이를 낭비해도 괜찮다면, 코앞에 목적지가 보여도 돌아갈 마음이 없다면, 소설을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낭비를 낭비로 느끼면 곤란하다. 101년 후,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을 내밀지 모른다. 피 같은 시간에, 금쪽같은 나이에,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생각하면서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인간을 상상하고 있다니,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부터 낭비를 생활화해왔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 잠을 줄인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아마 그래서 남들보다 더 쉽게 소설 쓰는 일에 매달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38쪽
한 편의 소설을 끝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주인공을 죽일지 살릴지, 왼쪽 길로 보낼지 오른쪽 길로 보낼지, 사랑에 빠지게 할지 배신하게 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라고 쓸지 '그러나'라고 쓸지 '그런데'라고 쓸지 선택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선택 사항을 썼다가 지운다. 나는 그 무수한 선택들을 거쳐왔다. 나는 그게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선택과 현실 속의 선택은 분명 다르지만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취한 것은 아껴 써야 한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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