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 - 한 디자이너가 그린 파리지앵의 일상과 속살
이화열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8월
품절


몇 년 전에 우연히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 <가요 톱10> 같은 프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날 넘버원을 차지한 가수는 플로랑 파니라는 남자 가수였는데 몇 년 동안 활동을 쉬다가 새로운 신곡을 가지고 인기 정상에 오른 날이었다. 플로랑 파니는 사회자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방청석에 있던 젊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마 동방신기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우리나라 아이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노래를 부르려던 플로랑 파니는 눈이 아주 똥그래지면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왜 그래? 눈을 떠. 소리 지르지 마. 사랑은 그런 게 아니야. 나를 쳐다 보란 말야. 그렇게 쇠를 악, 악 지르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36쪽

세상의 끝에서도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익숙함보다는 생경함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사람들 말이다. -92쪽

"네 인생에 후회는 없니?" 내가 물었다.
"난 한번도 지름길로 달려가본 적이 없어.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돌아가든 천천히 가든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아. 죽기 전에 자신과 근접한 모습을 발견 하고, 내가 걸어온 길이 단지 잘못된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거야."-105쪽

그녀가 바람 피우는 루이즈의 아빠를 조용히 내쫓은 것은 8년 전의 일이다.
"만약에 혼자 살기 두려워서 그냥 같이 삶을 선택했다면 내 자신에게 부끄러웠을 거야. 사랑은 시작할 수도 있고 끝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다음의 선택은 철저하게 자유로운 선택이야. 난 내 선택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선택하고 그 자유로움만큼의 현실적 무게를 감당하는 소피의 선택이 있는가 하면, 물질적인 안락함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선택도 있다.-162쪽

이혼율이 50퍼센트에 이르는 프랑스에서 소피와 루이즈처럼 변형된 핵가족의 개념은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도 하고 소비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이것은 감상이나 상처, 마음의 불치병이 아니라 현실이다. 몽후즈의 유명한 의사 부인이자 엄청난 교육열로 다른 부모의 기를 죽게 만드는 빠스깔은 아주 명료하게 말한다.
"나의 교육 목표는 내 딸들이 이혼을 해도 혼자 독립해서 잘살 수 있는 기능적 직업 교육이야.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 밥을 먹여주지 않을뿐더러,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것은 구걸만큼 치욕스러운 일이지"
빠스깔은 '교육이란 행복을 위해서, 행복은 독립을 위해서'라는 명쾌한 결론을 가지고 아주 노련한 솜씨로 아이 셋을 키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명쾌해서 감상주의가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소피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좌파적 감수성이 살아 있다.
"난 주어진 가치에 나를 끼워맞추고 싶지 않아. 혼자 산다는 것, 그리고 프리랜서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만족감을 스스로 찾는다는 명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거든. 난 남이 내게 던져준 모럴을 잡으려고 달려가지는 않을거야. 결혼이든 일이든 나 -163쪽

자신이 가치를 스스로 찾는 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소피가 그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지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데는 아마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164쪽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져 대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가 다른 회사의 디자이늘 자문해주고, 이젠 어디에 명함을 내밀어도 빠지지 않는 디자인 작업으로 포트폴리오가 꽉 차 있다 필립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열정과 논리,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경험을 축적한다.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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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03-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오늘 '일생에 한번쯤은 파리지앵처럼'을 봤어요. 재미있었지만, 그게 다였어요.
라일라님이 밑줄을 보니까 이 책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나는, 따라쟁이 ^^

LAYLA 2010-03-04 22:49   좋아요 0 | URL
저는 로렌초의 시종님 따라서 읽는 거에요 ㅋㅋ 책 기차놀이 같네요 ㅋㅋㅋ 이 책 좋았어요. 진짜 파리지앵-들이 나와요. 부러운 사람들...

로렌초의시종 2010-03-0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라일라님 이 책 읽으셨군요ㅎㅎ 정말 빨리 구해 읽으셨네요~ 전 예~전에 사다놓고 아직까지 책등만 어루만지고 가끔 들춰만 보고 있답니다. 언젠가 정말 파리에 가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싶은 날이 온다면 읽게 되겠죠. 그 도시의 삶은 한국의 그것처럼 경박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이 책이 품절상태였군요. 몰랐어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셨나요?

LAYLA 2010-03-05 03:04   좋아요 0 | URL
네 신간이 아니라서 책장에서 고이 앉아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후훟ㅎ후후후 로렌초의 시종님이 아껴 읽으실만한 책이었어요. 파리 냄새만 맡거나. 파리지앵인 척 하거나 하는 책들하곤 다르더군요. ^^
 
에펠탑 없는 파리 - 프랑스 파리 뒷골목 이야기
신이현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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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그의 집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차르트 거리에 있는 자신의 신접살림을 차리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 집을 보기 전까지 나는 모서리가 둥그스름하게 처리된 애매모호한 가구와 온통 꽃과 식물로 새겨진 장식품들, 아르누보라 칭하는 것들에 별로 호감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집은 트집을 잡기에는 너무 완벽하다. 돌로 만든 집인데도 비누로 빚은 것처럼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볼륨으로 지어졌다. '미친 작은 성'이 의도적으로 곡선을 넣은 실험적인 패기가 넘치는 집이라면, 이 집은 곡선으로 된 건축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집 전체가 살짝 내쉰 한숨에 흔들리는 푸딩 덩어리 같다. 거실의 창문은 암탉이 품은 달걀처럼 포근하며 꼭대기 모서리에 있는 하녀방의 지붕은 소녀의 모자를 얹어둔 것처럼 귀엽고 우아하다. 어디 하나 억지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곡선들이 그윽함을 자아낸다. 결혼을 앞둔 건축가의 마음이 그토록 애틋했던 것일까.-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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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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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라는 게 뭘까요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홀로 있다가 아무도 없는 세상에 둘이서만 있게 되는 게 연애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외롭지 않게 되는 건 아니지요. 아무도 없는 세상에 기껏해야 한 사람이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하니까. -68쪽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이를 먹으면 많은 욕구들이 사그라들어 젊어서는 가져보지 못한 안정감을 갖게되는데 그 욕구라는 것이 왜 사그라드는가를 생각해보면 또 서글프다. 젊어 생리적으로 왕성히 생성되던 호르몬이 줄어든 탓에 성욕을 비롯한 다른 많은 욕구들이 동반하여 줄어들고, 따라서 젊은 활기를 잃어버린 대가로 화분을 가꾸거나 읽지 않던 책에 손이 가곤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미 그 시기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그 안정감이 주는 장점과 위력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온다는 것이다. -75쪽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만약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 내 몸, 내 키, 내 머리와 재능, 우리집, 내 나라, 그 어떤 것도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겁니다.뿐입니까. 나의 성별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며 나의 이웃, 나의 가족, 친척, 친구 등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은 없죠. 인생이라는 게임이 왜 이렇게 모순되고 불공평한지 38년을 살아왔지만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뿐. -96쪽

저는 하루하루가 희망으로 넘쳐흐른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들어요.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저렇게 희망만이 가득한 사람의 희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190쪽

품 안의 애인


헤어지는 게 잘하는 것인지는 헤어져봐야 안다.
그게 문제다.-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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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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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를 5집 발매 기념 콘서트에서 딱 한번 봤었다.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리곤 질려버려서 다시는 보고 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질린다'- 그게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던 사람의 노래를 듣고 난 뒤의 감상이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는요...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서요...제가 만든 음악을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낮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면...미쳐버릴거 같아요." 

그가 가진 보통의 인간의 몸은 이런 성미를 이겨내지 못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끊어지지 않고 어떻게 어떻게 이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허약하였던 그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아이돌 팬이었다면 "오빠 아니에요!!!! 오빠 노래 짱이에요!!!"이러면서 팬들이 실신 좀 해줘야 할 상황인데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장내가 숙연해졌다. 재능을 가진 자의 고통을 고작 5만원 내고 즐기고 있다는 죄책감이 나를 엄습했다.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막간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소개된 음반제작과정을 찍은 영상물은 마음을 더 번잡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날카로워진 그의 신경에 눈치보는 멤버들, 수시로 삐-소리내며 짤리는 목소리들, 원하는 걸 얻지 못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한층 더 깊은 불편함을 가져다 줬을 뿐. 누군가가 몸을 해치며 만든 작품을 내가 너무 쉽게 듣고 있다는 죄책감. 그의 독기에 질려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어지러운 마음으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노래가 노래인지 아닌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던 거 같다. - -----그리고 5집 음반은 그의 성미에 차지 않아 결국 5집 발매 기념 콘서트를 하고서도 반년인가 지나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모든 것은 어느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사람이 스스로를 보통의 존재라고 우기면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건가!! 하며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사실 어느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조금씩은. 결코 보통의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보통의 존재라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윽박지르고 그렇게 사는거. 이 사람에 비하면 난 정말 평범하기 그지 없단 생각에 주눅들어 시작했지만 그렇게 겁먹고 읽을 책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보통의 존재는 존재할 수 없는거고, 그래서 조금 더 재능 가진 사람이 나머지를 위로하고 그렇게 사는거라고 생각하면 몸 해치며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그를 무서워할 일이 아니다. 그에게 고마워할 일이지. 글쓰기가 좋다고 그러던데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보통스럽지 않은 존재들을 위한 글들 앞으로도 많이 써줬음 좋겠다. 그게 조금 덜 보통스러운 사람의 의무이다. 재능을 가진 사람의 의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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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10-02-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산문집 정말 정말 사고 싶었는데... ㅋㅋ 이석원씨 홈피에서 일기 쓴거 보면 알지만 글 진짜 잘쓰조

LAYLA 2010-02-27 22:13   좋아요 0 | URL
어제 이 글 쓰고 술마시러 나갔다가 언니네 노래 들었는데 캬 역시 노래는 좋고 이런 감상문은 쓰레기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은 역시 재능있는 사람이 수고해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ㅋㅋㅋ

2010-02-27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8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Paperback, Open Market ed)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 Bloomsbury Publishing PLC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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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비참한건 어디서나 똑같을 텐데 그걸 가지고 한국에선 황석영의 한맺힌 '손님'이 탄생하고 서구권에선 이런 달달한 소설이 탄생하다니 이걸 흙 묻은 나무 뿌리까지 캐어내 먹던 독한 민족과 감자 껍질으로라도 파이를 만들어 먹던 민족 사이의 간극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거대할 것이 없다. 얼마나 거대하지 않냐면, 전쟁 중 일어난 가장 비극적 사건이 (이념으로 인한 칼부림이 아닌) 현지여성과 독일병사와의 사랑 정도라는 거. 그런 소설이다. 강제노역하는 폴란드 아이를 데려다 먹이고 입히다 강제수용소로 잡혀가는 동네 주민들 이야기는 한국전의 처절한 바닥에 익숙한 우리같은 독자들에겐 '소설쓰네'류의 감상을 불러 일으키지만 이건 진짜로 소설인걸 어찌하랴. 거기다 이건 그냥 전쟁 소설이 아니라 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로맨스 소설인걸!! 전쟁이란 배경속에 단 이야기를 슬쩍 집어넣는 그 사랑스러움이 진정 저 먼나라 사람들 답다. 굳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시라. 우리가 18세기 결혼풍속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오만과 편견을 읽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잘못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 어려움의 순간에 어떻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보듬었는지가 중요할 뿐. 진정한 loveliness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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