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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살아갈 행복한 사회 - 복지국가를 생각한다
이상이 외 지음 / 한권의책 / 2012년 9월
평점 :
2012 대선을 앞두고 복지논쟁이 뜨겁다. 신문을 봐도 뉴스를 봐도 온통 '복지복지' 하는데, 나 역시 복지국가를 희망하면서도 구체적인 복지국가의 상이 없다. 그저 막연하게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차원에서 책임지우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사회적 안정망이 갖춰져 이처럼 불안한 사회를 종식시켜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좀더 너그러워지고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내가 생각하는 복지국가의 상이라고 할까.
복지에 대한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을 듣다보니, 좀처럼 이해도 쉽지 않고, 그저 마구 퍼주겠다는 후보의 말은 오히려 실현가능성이 없게 들린다. 후보들의 복지 담론을 담은 책이 출판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꿈꿔야할 복지국가의 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던 많은 사람들 조차 생활이 불안해 지면서 복지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 되었다라고 이 책의 지은이들은 말하고 있다.
내가 피부로 느낀 본격적 복지논쟁은 김상곤 교육감의 무상급식으로 부터 였다. 2010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 논쟁으로 온나라가 들썩였는데, 이는 비단 한달에 몇만원하는 급식비 때문만이 아니라 어째서 나라가 아이들의 급식을 책임져야 하는지의 문제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없던 의식이 생기는 데는 두가지의 경로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시민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수용되어 정책적으로 제도화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생활에서 실질적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으며, 우리나라의 무상급식 외 복지논쟁은 후자에 가깝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다수 국민들이 무상급식을 실제 필요에 의해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인데,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무상급식은 실직적 필요라기 보다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인권의 문제 즉, 의식의 문제였다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무상급식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생각하기 전에 욕구가 먼저일 것이다. 그러나 무상급식을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 뒤에는 '동일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나는 무상급식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나에게도 무상급식의 욕구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염두해 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무상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으며,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라면 그 유동의 가능성은 더 크다고 본다. 그렇기때문에 삶이 불안 한 것이다. 언제가 내가 떨어질 수도 있을 나락에서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어떻게 태평할 수 있겠는가. 복지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우리들은 불안하지 않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오늘을 송두리째 저당잡히는 삶을 멈추지 않고 있지 않은가. 학생들은 더 나은 취업을 위해, 성인들은 빈곤하지 않을 노후를 위해. 그것이 우리사회가 불안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잘리고 사업에 실패해도 사회가 보호해준다면,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나의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기 위해 그토록 난폭해 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나는 무상급식을 통해 국가의 존립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압력을 행사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국민 각 개인의 삶을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하는데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헌법에 명기된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가 주도의 보편적 복지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복지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항상 '도덕적 해이', '복지병'을 문제 삼는다. 그리스나 스페인을 예로 들면서 복지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극단적 논리를 피기도 하는데,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나는, 남유럽의 이야기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지곤 했다. 관광수입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국가들이 도대체 복지 때문에 망하고 있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도대체 모르겠는 거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알게 되었다.
남유럽은 유럽 내에서도 복지지출이 몹시 낮은 수준이며, 대부분의 복지제도가 현금성이다. 노령연금, 공무원연금, 실업급여 등 현금급여 정책은 아주 소극적인 복지정책으로, 도덕적 해이와 복지병을 부추긴다. 또한 세무를 담당하는 국가 공무원의 부패수준이 높을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지에 관한 문제를 늘어놓고 보면 복지를 해서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은 일견 맞는 주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복지로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이 합당하려면, 남유럽보다는 복지에 더 많이 지출하는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 북유럽이 먼저 망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현금성의 소극적 복지 정책이 아닌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육과 직업훈련등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 복지를 시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지를 위한 높은 세율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거다. 그만큼 사회적 신용이 높다고 하겠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편적이고 적극적인 복지 정책이다.
북유럽과 같은 높은 수준의 복지를 실천할테니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하면 당장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높다. 세금으로 실제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믿음도 없는 것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며, 어떻게든 낼 것은 적게 내고 국가가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도 악착같이 받아서 쌓아두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민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간의 경험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예의 하나로 보육정책을 들 수가 있겠는데,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반기 들어 보육서비스 혜택을 70%까지 확대했다. 0세부터 2세까지의 영유아와 5세 아이에 대해서는 대상자의 100%에게 무상보육 혜택을 주고, 3세와 4세 아이들에 대해서는 소득 하위 70%에게 무상보육 혜택을 준 것이다. 책에서 김윤태, 이상이 교수는 이를 두고 대단히 잘 한 정책이라고 칭찬했는데, 나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0세에서 2세까지의 영유아기 아이는 엄마에게서 양육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모에게서나 혹은 조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보육시설에서 정해진 분량만큼의 관심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보다 감성적으로나 인성적으로나 더 안정적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은 불안정한 시기의 사춘기도 무난하게 지낼 수 있고, 안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상보육 서비스가 실행되고 나자 일을 하지 않는 엄마들조차 공짜 서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마구잡이로 아기들을 보육시설에 내맡기고 있다.
복지가 경제, 생산 쪽으로만 기울여지다 보니 생산을 위한 재생산, 그러니까 가정에서의 주부 역할을 너무 가볍게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복지국가'의 출발이 노동과 생산을 위한 것이었다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생산성에만 중점을 두는 것은 그다지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생산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생산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여성복지는 '재생산'에 주력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원만한 가정이 원만한 사회를 만든다는 전통적 주장을 믿는 까닭이다.
그리고 또하나 복지를 생각할 때 늘 불만이였던 것은, '무상'이라는 용어다. 무상이라는 용어는 인정이나 시혜를 먼저 떠오르게 하고, 이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에 모두 불쾌감을 준다. 대선후보들이 '무상'이라는 강력한 주장을 펼때 몹시 거북스럽다. 어째서 무상인가, 복지는 국가의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국가의 돈은 국민의 피같은 세금이 모인 것인데 말이다. '무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정작 복지를 누려할 국민들이 강건너 불구경하듯 여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복지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높은 세율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국민의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상'이라는 프레임부터 걷어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이책을 읽고 나서 막연하게 아이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나는 복지의 기본 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책은 전 국민에게, 전 가정에 무상으로 배부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읽고 본 어젯밤 9시 뉴스에서 보도한 대선후보들의 복지정책은 유난히 더욱 쏙쏙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