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읽는 시간 - 오래 시선이 머무는 66편의 시
권혁웅 엮음 / 문예중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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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태풍이 몰려 올 것이라고 뉴스 특보가 쏟아지던 새벽이였다. 목이 말랐던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의 욕구가 있었던 것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불현듯 자다깬 그 새벽, 거실 창을 통해 바라본 하늘이 유난히도 밝고 푸르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시하늘에서 그토록 많은 별을 본 것이 처음있는 일이였다. 태풍이 오려고 이다지도 하늘이 맑은 것인가 감탄하다가, 잠든 아이에게 보여주고싶은 생각에 휴대폰을 들었지만, 아무리해도 내가 보는 것처럼 맑은 하늘과 별이 사진에 박히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 보는 것이 아까워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별 좀 봐." 천둥처럼 코를 골고 자던 남편은 부스스 일어나 열린 베란다 창으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툭 내뱉는 한마디.

"너, 장난할래!!!"

헉, 어렸던 날 마당에서 오줌을 누다 은하수를 보기도 했다던 남편은, 내가 느끼는 감동의 물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쏟아지는 별이란 그런것이 아니라며, 그래도 많긴 많다고 한마디 더하고 들어가는 남편이 그처럼 야속하기도 참 오랫만이였다. 그러나 어쨌든 바람이 소소히 부는 새벽, 나는 분명 쏟아지는 별을 보았다. 그리고 그 푸른밤 파랗게 빛나던 별들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은하수보다 더 푸르게 빛나는 별들의 무더기였다고.

 

 

시가 내게로 오는 요즘이다. 꼭 가을이기에 시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작년 가을에도, 재작년 가을에도, 이해할 수 없는 시어들으 읽는 다는 것은 사실 지겨움이였으니까. 때문에 어느 계절, 어느 때에 특별히 시가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는 누군가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새벽, 남편은 느끼지 못한 별무더기를 나 혼자서만 느꼈듯이 시를 느끼는 것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나 혼자서만 느껴야 하는 '완전한 고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은 <당신을 읽는 시간>이다. 시인이 풀어놓은 물감과 같은 시어들이 내 가슴을 지나 내 전체를 물들이고, 그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를 오롯이 느끼는 시간. 바로 시를 읽는 시간이다.

 

 

스타킹을 신는 동안/최정례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이

본처들은 급습해

첩의 머리끄뎅이를 끌고 간다

상투적 수법이다

저승사자도 마찬가지다

퇴근해 돌아오는 사람을

집 앞 계단을 세 칸 남겨놓고 갑자기 심장을 멈추게 해 끌고 가버린다

오빠가 그렇게 죽었다

전화를 받고 허둥대다가

스타킹을 신는 그동안만이라도 시간을 유예하자고

고작 그걸 아이디어라고

스타킹 위에 또 스타킹을 신고

끌려가고 있었다

 

같은 시를 읽어도 느낌은 서로가 모두 다르다. 작가 권혁웅이 내놓은 해설은 이렇다. '어떤 고통 앞에서는 더듬는 일밖에 못한다고, 그러니 고작 이런걸 해설이라고 내놓는다고.'

느닷없이 닥친 오빠의 죽음 앞에 시인은 스타킹을 두겹으로 겹쳐신을 만큼 당황한다. 거기에 더해 언제가 느닷없이 닥칠 자신의 죽음 또한 미리 황망해 한다. 해설을 적은 작가 권혁웅은 죽음의 어이없음을 '어쩔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그리고 시와 해설을 동시에 읽는 나는 코끝이 붉어온다. 그것은 실제 내 오빠의 불행을 무릎 앞으로 느낀 것처럼, 그리고 연이어 닥칠 나의 불행을 직감하는 것처럼, 슬프다.

아는만큼 느낀다라는 말은 '시'에도 어김이 없다. 여기서는 '아는만큼' 대신 '여는만큼'으로 치환해야 하리라. '나를 여는 만큼 느낀다' 바로 당신을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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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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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나는 소비하고, 혹은 소비하기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비는 의식주 해결을 위한 단순소비를 넘어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확장된 소비, 현실적인 것의 소비로부터 이상적인 것의 소비욕망까지, 소유욕과 그 후의 만족감까지를 포함한 소비에 관한 모든 행위까지를 다 포함한다.

소비라는 행위를 이렇게 포괄적으로 이해할 때, 한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는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비의 주체인 한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체제와 사회 문화적 관습, 구성원들의 가치관에 따라 그의 소비패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한국인의 일상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소비현상을 탐색하고 그들의 소비 행동 안에 감춰진 심리를 추리하는 책으로, 한국이라는 사회 공통의 소비심리 안에 각 개인의 다양한 소비심리를 파악해 기업의 입장에서 마케팅 기법을 살펴보는 책이다. 그렇다고 소비자인 내 입장에서 이 책을 볼 필요가 없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마케팅의 대상은 소비자이고, 때문에 소비자 입장의 '나'는 기업의 입장에서 '나'를 객관화시켜 봄으로써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읽었던 것이다. 즉,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기업의 마케팅에 맞서 나의 소비욕구를 조절해보겠다는 야무진 다짐으로 읽은 책인 것이다.

 

황상민 교수는 2011년 <한국인의 심리코드>에서 한국인을 이해하는 심리 코드 중 '소비'를 들었고, 이 책은 <한국인의 심리코드>의 연장에서 특별히 '한국인의 소비 심리 집중 연구 편'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황상민 교수에 의하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소비를 이해하는 한국인의 소비 패턴은 무엇보다 '비교 심리'에서 비롯된다. 나는 남보다 낫다는, 혹은 나도 남과 다르지 않다는 심리에서 '대세'와 '유행'을 쫓는 심리가 출발하고 이러한 심리는 '보편'으로 이어진다. 보편적인 것을 쫓는 심리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것'이 있다는 믿음이기도 한데, 이는 다양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정해진 하나의 옳은 답 즉, '정답'을 쫓는 한국인의 안정 갈구 심리와 일맥상통 한다. 결국 한국인만의 사회 문화적 공통의 심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의 소비 심리는 다양한 선택, 다양한 소비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마케팅도 다양한 마음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황상민 교수는 선거도 소비심리와 소비행동의 측면에서 볼 때 시장에 나온 상품을 고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했는데, 나는 책을 다 읽고난 지금까지도 책의 제목이 <대통령과 루이비통>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특정 이슈나 사안, 혹은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마음 등을 정확하게 밝히는데 몹시 서툰 한국인으로서는 자기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비보다는 유행을 쫓고, 자기만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 보다는 '대세'를 쫓는데서 안정감을 느낀다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한국인의 이러한 심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로 정리될 것이다.

 

튀는 것을 좋아하고, 일부러라도 유행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애초에 한국인 공통의 소비심리보다는 내 개인적인 소비행동을 조절하고 싶어 읽은 이 책을 통해, 소비 행위에도 사회문화적 기질이나 관습 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명품 가방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속물적이라 여김과 동시에 로고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진짜 명품 가방을 하나쯤 갖고 싶었던 나의 감춰진 이중심리를 이 책을 통해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역시 한국인으로 묶이기 보다는, 나 개인으로 분류되고 싶다. 때문에 한동안은 '튀기 위한 소비'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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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심리코드
황상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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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체성에 관해 생각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여성, 한 남자의 아내이며 한 아이의 엄마, 직장인, 그리고 한국인.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나'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라는 것, 아내이며 엄마라는 것, 한국인 이라는 것은 나를 설명하는 외적 조건은 될 수 있으나 '나'는 되지 못한다. 그것들의 총합이 반드시 '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들을 좋아하고, 다른사람들에게 세련되게 보여지길 원하고, 명랑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지만 실제의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 틈에 있기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한다. 또 나는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지향하는 성형수술을 혐오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가꾸지 않는 사람 또한 경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아이가 명랑하고 쾌활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를 학교에서 학원으로 돌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고, 4대강 공사는 시작부터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자살했다는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다. 또한 여자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 보다는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며,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 우울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그중 아이를 특히 사랑한다. 또 나는 애완견을 사랑하고, 애완견에게도 견격이 있다라고 믿는 사람이다.

또 나는 누구도 하고싶어 하지 않는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 예를들면 화장실 청소부, 뙤약볕에서 일하는 막노동자,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앉을 틈도 없이 비지땀을 흘리며 빈대떡을 구워대는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나라는 사람에대해 이야기 하려면 멀었지만, 이정도로만 정리해도 '나'라는 사람을 '한국인'이라는 틀만으로 규정하기엔 모순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생각이 든 것은, 각 개인을 규정하는 정체성과 함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듯 한국인만이 갖는 심리 코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이렇듯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무던히도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노려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인은 사회 구성원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황상민 교수의 <한국인의 심리코드>를 읽으며 무던히도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발뺌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아닌가, 나는 정말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더 낫게 보이고 싶어했거나 혹은 낫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숨기고 싶어하지 않았나. 내 자신의 시각으로 나 자신을 보기 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확인하며 단속하지 않았나.

내 스스로의 가치 판단을 부르짖으면서도 무심결에 '나 어떠냐'는 물음을 남발하고, 식당을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가 외국인 보기에 부끄럽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지점이다.

한국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다양한 심리코드는 뚜렷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해 혼란스러운 한국인 각 개인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대세를 따르는 데서 출발한다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며 모든 것이 파괴되었던 상황에서 빠른 시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인들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나 혹은 자신감을 상실한데서 오는 정체감의 혼미를 겪으며 다른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찾는데서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돈으로 무엇이든 다 된다고 믿는 졸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특히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것을 종용하는 3장 교육에 크게 공감했는데, 황상민 교수는 우리 교육의 진짜 문제는 교육을 잘 받으면 성공하고, 출세하며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믿는 집단 심리가 우리 교육의 진짜 문제라고 지적한다. 돈을 모든 것의 척도로 삼는 사회에서는 교육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자기 포장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을 사느냐가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는 한국인의 소비 심리에도 많은 부분 공감했지만, 나는 살짝 한국인의 집단 심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황상민 교수도 말하듯이 어떻든 새로운 세대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집단 심리 코드를 알았다면 이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인데, 그 해결책은 바로 이렇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던 사회인식 불능증에서 너도나도 벗어남과 동시에 각자 다르게 직면하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다양한 심리코드를 인정하며, 소통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황상민 교수는 행복하고 잘 살기 위해 남에게서 답을 찾는 행위를 멈추고 '한국인, 나는 누구인가요?'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에 묻는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떠나, 그저 나 자신이 누구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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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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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겨레21>의 기자들은 무계급 시대인 현 시대, 현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가장 낮은 계급으로 분류되는 '불안정 노동', 즉 '비정규직 노동'의 현장에 직접 취업하고, 불안정 노동자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입으며 월급을 받을때까지의 체험기사를 책으로 묶었다.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은 점심식사 후에도 4,200원 짜리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시대에 4천원 대의 최저 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한 책이다. 

네 명의 기자들은 각각 가구 공장의 공원, 감자탕 집 종업원, 마트 종업원, 공장 노동자의 삶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들의 "너무 절망스럽다. 왜 대안과 해법은 말하지 않는거지?" 라는 의문을 갖었고, 대안이라고 내놓은 것은 "식당 아줌마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 불안정 노동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 그 시선이 연대의 출발점이 되게 하자"는 것 이었다.  선정적인 제목의 이 책을 읽고 당시 나는, 문제만 잔뜩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시선을 충분히 끌어 발행부수를 높이기 위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언론 플레이 라고 생각했다, 라고 적었다. 아마도 기자들이 대안이라고 내놓은  '불안정 노동자에게 친절하기' 따위가 너무 어처구니 없게 들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3년 우리나라 시급기준 법정최저임금은 4,860원 이다.

 

<노동의 배신>은 <4천원 인생>이 출판되기 적어도 9년 전인 2000년 초반, 호황기의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닷컴과 주식, 주택 등으로 신흥부자가 마구 출몰하던 그 시기에도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사회 밑바닥을 훑었던 비숙련 노동자들은 존재했고, 저널리스트이며 사회운동가인 바바라는 바로 이런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비숙련 노동자인 그들이 받는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

바버라가 실제로 노동자가 되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에 걸맞는 생활을 체험한 것인데, 어떻게 말해도 이것은 '빈곤 체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고백한다. '빈곤은 공포와 너무나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2010년 국회의원 차명진은 '최저생계비로 하루나기 체험'을 다녀오고 '6,300원으로 황제의 삶을 살 수 있었다'라는 체험기를 남긴 후, 많은 사람들로 부터 '무개념이란 이런 것'이란 비판을 들었다.  2012 현재 대선 행보 중인 박근혜는 최저임금의 정확한 금액을 아는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5,000원 조금 넘지 않나요.?" 라며 그녀 특유의 공주다운 머뭇거림을 담은 답을 내놓았다.

바버라는 책에서 빈민들은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했다. 텔레비전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빈민들은 부자들의 생활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부자들은 빈민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고, 공공장소에서 마주친다 해도 그들이 가난하다는 걸 눈치채기 쉽지 않다라고 적었다.  가난을 죄악시하고, 부자들을 끊임없이 우상화하는 사회에서 가난은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므로, 그 누구도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표내지 않기 때문이며, 부자들과 빈민들이 같은 공간에 있거나 공유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두가 표를 내지 않기 때문에 혹은 국회의원 차명진이나, 박근혜 의원이 가난한 이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따위의 황제스럽거나 공주다운 답을 내놓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나라의 위정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가난이라는 현실'이 강건너 불구경이 되서야 되겠는가. 그들은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나라 사람들을 보듯이 빈곤한 이들을 본다. 아니 그들은 빈곤이 '현실'일 수 있다는 것 조차 피부로 체험하지 못한다. 반대로 빈곤한 이들은 그들(차명진이나 박근혜 같은 상위 1%들)이 자신들을 '가난'에서 건져줄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철썩 같이 믿는다.

바버라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활이나 저임금을 체념하는 모습에서 답답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라고 적고 있다.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시의 아이를 방치하고, 남의 집을 쾌적하고 광이 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은 수준 이하의 집에서 살며, 궁핍을 견딤으로써 인플레이션이 떨어뜨리고, 주가를 올리는 역할을 '워킹 푸어'들이 맡음으로써 사회에 희생하고 기부하지 않는다면 중상류층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바바라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주고 주고 또 주는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 위에 올라선 이들은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일도 거의 없을 뿐더러, 워킹 푸어들이 가난한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비하를 일삼기 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저임금 노동자의 끊이지 않는 고통의 근원이며, 실체이다.

어쩌면 바바라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으로 들릴 수도 있다. 나 역시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성장했고, 누구누구의 '성공기' 따위는 주변에 차고 넘치도록 많으니까. 그러니까, 가난한 이들이 가난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상황에서 남들보다 더 게으른 그들 자신의 탓으로 여기기는 너무도 쉽다.

그러나 출발선이 같다고 해서 상황이 같은 것은 아니며, 상황이 같다라고 치더라도 주어진 것들이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많이 들켜버려서 이제는 그 누구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따위의 속담은 되새기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가난은 되물림될 수 밖에 없고, 가난이 되물림 되듯이 '부' 역시 돌고 돈다. 농담처럼 화자되지만,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4천원 인생>에서 기자들이 내 놓은 대안에 실소했던 나는 바바라의 글을 읽으며, 그녀가 내놓을 대안이 궁금했다. 그녀 역시 어떤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체험기를 쓰고, 판매 부수나 노리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른 것이 없으리란 결론을 미리부터 생각하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끔은 심사가 뒤틀리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최소한 나는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와 감사를 병행하기도 했다.

그런것이다. 이런 책을 읽으며 나같은 사람이 얻는 것은 적어도 '나는 아니다'라는 위안, 또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안도를 감춘 인위적인 웃음을 날리는 센스, 인지도 모르겠다고 작위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안은 있다. <4천원 인생>의 기자들이 보여준 대안은 결코 실소로 묻혀버릴 만한 것은 아니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서 비난하지 않는 것, 작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노동자들이 조금더 많은 임금과 인간적인 대우를 성취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 공공복지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혼자만 잘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나머지 것들에 눈을 감는 짓을 당장 멈추는 것, 그것이 대안이다.

 

<4천원 인생>, <노동의 배신>을 대선 주자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그 밖에도 직접 투표를 해 대통령 및 위정자를 뽑는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한번 읽는 것은 나처럼 실소 혹은 체념으로 끝날 수 있지만, 비슷한 책을 반복해 읽는 것은 새로운 각성을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부디 우리 자신을 위해 이 책들이 두루두루 읽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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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08-1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주스러운답ㅎㅎ잘읽고갑니다.
 
안철수의 착한 분노 - 안철수가 말한 안철수, 심리학자가 분석하다
이경희 지음 / 예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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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철수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CEO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을 이미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CEO와 무엇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CEO를 비교해서는 안되겠지만, 어쨌든 CEO 대통령을 통해 경제는 경제인이 정치는 정치인이 가장 잘 할 수 있지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안철수가 정치가가 될 것을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는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더이상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하자면, 안철수가 '노무현 꼴' 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 책을 안철수의 정치적 능력을 알고 싶은 욕구에서가 아닌,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인간 안철수를 알고싶어 선택했다. 서로다른 아홉가지 성격과 그 성격 내면의 역동성을 설명하는 일종의 성격 유형론인 에니어그램은 자신과 타인의 이해를 돕는 도구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나 역시 심리학 개론 시간에 '에니어그램 성격유형 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데, 내 경우는 4번 낭만형으로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직관력과 감수성이 예민한 유형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에 대해 나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수긍했는데, 평상시 나는 특별함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유형의 성격인 것이다.

 

고대의 지혜와 현대 심리학이 결합되어진 결과라는 에니어그램은 심리상담 분야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는 도구이다. 상담과 심리분석 및 치유 전문가인 지은이 이경희는 안철수의 저서와 인터뷰, 평서의 언행 등을 보고 에니어그램을 이용해 안철수의 성격유형을 판별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이 책에 정리했다. ]솔직하고 가식이 없으나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주로 듣고 있는 안철수는 에니어그램에 의하면 본능형으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엄청난 내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평화주의자로 분석된다.

이처럼 책은 에니어그램에 집중해서 안철수를 분석하고 있지만, 역시 안철수라는 인물에 촛점을 맞춘 책답게 그가 정치를 해야할 이유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뒷부분에서는 그만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는 했어도, 안철수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여겼던 기존의 내 입장이 조금은 달라졌다.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가장 좁게 제한된 '나'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이 행하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행위들이라는 안철수에게 한번 더 기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안철수가 정치를 하고자 하는 것은 여타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 아닌, 불의한 세상을 자신의 힘을 보태 고쳐보고자 하는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의만으로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불안했던 나는 사회적 모순, 불합리한 관행, 무책임 등에 관한 공적 분노로 움직이기 시작한 안철수의 정치 행보에 대해 이 책으로 인해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그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부디 그가 쥔 칼이 외과의사의 사람 살리는 칼이길 진심으로 바라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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