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의 책 -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지은이 윤성근은 헌책방 주인이라 했다.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된 사실이지만, 은평구에 위치해 있다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헌책방이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헌책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소품들도 많이 있고, 포근한 느낌의 소파와, 약간의 간식도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문화 공간이며, 때때로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지금껏 내가 다녀본 오래된 빵냄새가 나는 골방같은 헌책방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은 이 책 이전에 이미 두 권의 '책에 관한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책에 관한 책을 유별나게 좋아하긴 하지만, 특히 이 책이 탐났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닌 좀 색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듯한 지은이의 이력이 탐났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내 기대가 실망스럽지 않을만큼 충분히 색다르고, 어쩌면 엉뚱하기까지 한 책 목록을 얻었다.

 

흔적없이 사라지는 스파이기술과 암호 해독을 위한 책이라던가, 방안에 앉아 세계를 여행하는 책,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으는 콜렉터에 관한 책은 그다지 놀랍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악령의 힘을 빌리는 흑마술에 관한 책, 좀비와 목숨을 건 사투를 담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1700년대 후반에 800명이 넘는 아기를 받은 산파의 일기 등에 비한다면이야.

낯설고 새로우며, 엉뚱 황당한 이 책들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닌지라 꼭 읽어봐야겠다 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지은이의 책방을 찾아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줄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침대 밑의 책>을 본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 글쎄 '코 파기의 즐거움'에 관한 책이라니!

 

지은이 추천의 엉뚱 발랄 유쾌 통쾌 신기한 책목록을 살펴보다가, 나름 관심이 가는 책을 찾아내었다.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게을러서도 그렇지만 두려움 때문에도 기계 종류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지은이가 <모험도감>을 발견하고, 어린시절에 <모험도감>과 같은 책을 사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했듯이 나도 그랬다. 엄마가 진작에 <도구와 기계의 원리> 같은 책을 사주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됐을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고라도, 과학과목에 그토록 경기를 일으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당장 사보고싶은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현재로서는 절판된 책이다. 인터넷 헌책방을 두루 살펴본 결과 원래 책 가격의 네배를 훌쩍 넘는 이 책을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야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헌책방 순례를 해보지 않은 자 없겠으나, 나 역시 한때는 헌책방에서 숨어있는 책 찾기를 즐겼었다. 정기적으로 신촌에 줄져있는 헌책방들을 찾은 것은 물론이고, 인천 배다리, 부산의 보수동까지 원정을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읽기 위한 책을 찾는 것인지, 수집을 위해 책을 사냥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나름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희귀본이나 귀한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읽고싶은 책을 읽어야 겠다는 욕심이 크다는 깨닫음이 왔다.

그 후로 헌책방 순례는 그만두고 말았다. 정기적으로 책을 사다 쌓아놓기보다는 그시간에 한권이라도 더 읽자는 쪽으로 기울은 것이다. 읽고 싶은 책중, 이미 절판된 책은 인터넷 헌책방을 이용하곤 하지만, 여간 운이 좋지 않은 다음에야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서는 절판본을 구하기가 쉽지않다. 해서 한번씩 헌책방을 순례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는 이때에, 어째서 헌책방들은 모두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헌책방을 따라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가까이에 아무때고 들러볼 수 있는 헌책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책 한 권을 읽고 지식을 얻었다면 그는 작은 것을 얻은 것이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자기 발밑만 보는 것과 같다. 책 한권은 브라질 밀림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하나의 우주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 내 읽고, 또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읽을 수가 있다. 그럴때마다 책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 모든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254쪽) 

 

나 역시 책을 읽는 이유가 지식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되는 것들은 참으로 많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독서를 선호한다. 때문에 어떤 책을 읽든 지은이의 입장에서 책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나름의 느낌을 소중히 하는 독서를 강조하는 지은이의 생각이 나와 꼭 같아 몹시 기뻤다. 뿐만아니라 나로서는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색다른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음, 뭐랄까. 늘 월넛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알갱이가 팡팡터지는 아이스크림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기분이랄까.

 '어느 지하 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라는 부제를 단 윤성근의 또다른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심야책방>을 기어코 지르고 말았다. 커다란 저택의 한없이 많은 방문들을 일일히 열어보는 것처럼 '책에 관한 책'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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