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시계 - 개정판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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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종이 시계>를 읽은 것은 2003년 출간된 책이였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종이 시계>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읽은 책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중년부부의 일상적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에 읽은 책이라서 오래전 읽은 책이라고 기억하는가 보다.

2013년 올해, 새롭개 재출간된 <종이시계>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역자가 고 장영희 박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그 시절에는 역자가 누구건 관심도 없었지만, 장영희가 누군지도 몰랐었다. 고 장영희 박사는 소아마비 장애와 유방암, 척추암, 간암의 투병속에서도 번역가이며, 수필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간암으로 2009년에 사망했다. 나는  그녀의 책 중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감동깊게 읽었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 장왕록 선생도 번역가이며 영문학자 였다. 나는 그의 수필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에 다시 읽은 <종이시계>에서 주인공 매기의 오지랖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 공감은 쉽지 않다. 매사에 남일에 관심이 많은 매기는 초점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 잘못 꼬인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자기 관점에서 제자리로 돌려 놓고 싶어한다. 이러한 오지랖이 지나친 관심병, 혹은 간섭병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린시절이라고 기억되는 미혼때나 한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이나 여전하다. 단지 그녀는 자기뜻대로 모든것을 조정하고 싶었던 것이라 보여지는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처럼. 혹은 엄마처럼 행동하고 싶어하는 나처럼.

 

세레나가 말했다.

"모두 그대로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것이 내가 하는 식이야.

난 오늘 아침에 린다의 아이들이 뒷담장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저런, 안으로 불러들여야겠어 하고 생각했지.

그 예쁘고 작은 양복들이 찢어질 게 분명했거든. 하지만 난 다시 생각했어.

아냐, 잊어버리자. 내 일이 아니다 하고 말이야.

너희 애들도 다 떠나가게 내버려두라구."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매기가 말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117쪽)

 

그녀의 오지랖이 절정을 향해 치닫으며, 오랜 친구인 세레나의 남편 장례식을 끝내고 쫓기듯 돌아오는 길에 만난 흑인 노인 오티스에 관해서는 읽는 나조차도 그녀의 남편 아이러만큼 짜증이 났다. 어째서 매기는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어떤 관념병에라도 걸린 여자처럼 느껴졌다.

오지랖넓은 음모의 여왕, 매기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고 굳게 믿기에 그처럼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당연한 것이라는 듯. 그것이 '선의'에서 출발하는 관심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의 표적이 되는 입장에서는 내심 좋은 기분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건, 아들이건, 이혼한 전 며느리건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매기의 오지랖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도리질 치다가도 문득, 그녀의 간섭이 나에게도 미치기를 꿈꾸는 순간이 있었다. 지나친 관심이지만 그것을 충분히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누군가 내 인생에 매기처럼 마구 침범하려 든다면, 절대 허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종이시계>의 원제는 <숨쉬기 연습>이다. '숨쉬기 연습'이라는 원제가 우리나라에서 자칫 건강법으로 읽힐 수 있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저자가 추천한 제목이라고 한다. '숨쉬기 연습'과 '종이시계'는 순환과 반복, 즉 '일상'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친구 남편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하루 속에서 매기와 아이러가 그간의 일생을 일상처럼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생은 어떻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만큼 풀려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들려준다 함은 어쩌면 지루함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허를 찌르는 듯한 저자의 유머감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어이없게 웃다가도 간간히 가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것. 매기가 일하는 요양원의 한 노인은 천국에 가면 생전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자루에 넣어 성 베드로가 돌려준다고 믿는다. 매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자루에는 오빠의 부인이 가져간 살랑거리는 녹색 원피스라던가, 연애할 때 아이러에게 받은 첫번째 선물인 작은 고양이 '솜털'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뿐만 아니라 바람 한 병, 신선한 눈 한 박스, 그리고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아이러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줄 때 그들의 머리 위로 비행선처럼 떠돌던 달빛에 젖은 구름 등이 자루에서 나올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내 자루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꼬마시절 엄마처럼 여기던 할머니를 떠나올 때 싸준 수저세트와 예쁜 한복 한벌, 결혼식 전에 택시에 두고내린 투피스, 목욕탕에서 잃어버린 남편이 처음으로 사준 반지, 그 겨울 수정바다라고 불렀던 곳에 점점이 뿌려져 있던 바위들, 기억에 없는 따뜻한 엄마의 품..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할때면 나는 자못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를 10년만에 다시 읽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10년만에 다시 읽은 <종이시계>에서는 매기에 완전 공감하지 못했지만, 10년 후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매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내 뜻대로 옮기는 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안그랬으면 좋겠다. 영원히 매기와 완전공감할 수 없다 해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종이시계>를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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