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삼각함수를 풀다
공자님 말씀인데, 논어에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란 말이 있다. 모두 아시겠지만 이 말은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는 이 구절 속에 ‘지’자가 많아서 구절을 계속 빨리 읽으면 ‘지지배배’하고 우는 제비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서 사람들은 제비가 논어를 안다고 했단다.
우리는 한자 공부도 열심히 해서 배우면 꼭 써 먹는다. 안 잊어먹으려고.
어제 과음을 한 모양이다. 어릴 때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게 되면, 양조장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꼭 주전자 꼭지에 입술을 대고 몇 모금 빨아 먹었다. 어린 나이에 술 맛을 알았겠냐만, 호기심에, 재미도 있고, 그때 아이들이 다 그랬으니까 나도 그랬다.
어쩌다 측량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금 더 마시게 되어 아버지께서 양이 적다고 말씀하시면 뛰어오다가 조금 쏟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ㅋㅋㅋ
그런데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담배는 안 피워도 막걸리는 종종 한 잔씩 했다. 담배는 피우면 불량 학생이지만 술은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심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분위기였다.(나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래서 우리는 미리 사회 경험을 한다는 핑계를 대며 종종 막걸리 집으로 갔다.
전날은 막걸리에 생고구마, 번데기 안주로 친구들과 인생을 논하고, 진로를 걱정하며 꽤 마신 것 같다. 다음 날까지 술이 덜 깨어서 알딸딸하니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첫 시간인 수학시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문제를 풀란다. ‘어? 이 장은 ‘삼각함수의 미분’으로 아직 다 안 배웠고 오늘 배워야 하는데......?’
평소 같으면야 걱정할 것 없다. 내가 그래도 수학하면 ‘수학박사’로 학교 안에서 한 수학 하지 않나. 그런데 덜 깬 술로 아직도 머리 속이 멍하니 삼각함수의 미분
공식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 생각이 없다.
혹시 지명을 받을까? 조마조마, 두근두근 거리는데. 아! 머피의 법칙은 오늘도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 출석부를 뒤적이던 선생님께서 내 번호를 부르신다. ‘아이쿠, 엿 됐다.’ 주섬주섬 책을 들고 칠판 앞으로 나가 문제를 판서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락가락 모르겠다는 단어만 머리 속을 맴돈다. ‘에라이 모르겠다.’ 칠판에 갈겨
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그리고 답 : 모름.
써 놓고 쓱- 선생님 눈치를 살피는데 가차없이 날아오는 선생님의 출석부 뒤통수 한 방.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약간의 힌트에 일사천리로 좍-좍- 풀어재끼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다시 출석부 뒤통수 한 방. 알면서도 제대로 안 풀었다고. ㅋㅋㅋ ‘술이 웬수여∼’
그래도 뒤통수 두 방에 제비가 삼각함수를 풀었다. 지금 생각하니, 잊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낭만과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