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15일. 인터폴은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 영장을 전 세계에 배포했다. 그를 살인 및 불법화기 소지 혐의로 고소한 주체는 리비아 사법 당국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주요 테러범으로 국제수사망에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정보기관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빈 라덴의 테러 지원 혐의를 포착하고 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진 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을 받았고 실패한 카다피 암살 작전에도 관여
하고 있었음이 드러났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대학에서는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심취했었다. 그래서 급진적인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아프간의 이슬
람 저항단체에 동참했는데 그 배후에는 미국 CIA의 지원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미국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하면서 배신자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쌓아갔다. 그의 아버지 모하메드는 1931년 사우디 빈 라덴(SBG) 그룹을 창시하여 중동에서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 그가 사망하자 오사마가 3억 달러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오사마는 이러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하여 소련
에 저항할 당시 자신이 조직한 알 카에다를 관리하고 있었다.
1997년 5월 9일, 백악관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비밀회의가 열리고 있었는데 CIA 국장 블랙이 ‘초승달 작전’이라는 빈 라덴의 제거 작전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는 미국의 개입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여 갑론을박하다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쉬미르 분쟁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서 흐지부지 성과 없이 끝나버리는가 하였는데, 한 순간 대통령이 빈 라덴을 제거하는 작전을 조속히 시행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Bojinka가 끝나면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암호를 놓고 테러범을 추적하는 CIA와 그들을 피해가며 작전을 준비하는 '슬픈 게이'와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