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에도 슬픔이

  

 감독 : 김수용

 출연 : 김천만(이윤복). 김용연(윤식).

          정해(순나). 신영균(김동식).

          조미령(김영옥). 장민호. 김동원.

          주증녀김성원. 황정순. 방수일

          등

  수상 : 1965년 제3회 청룡상 작품,

           독, 특별상(김용연). 5회 대종

           상 특별장려상(김용연). 1회 대일영화상 감독상. 9회 부일영화상 특별상(김천만). 2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출품.

 

  1965년에 이윤복의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작된 실화다. 책은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도 국제극장에서 개봉되어 흑백영화의 흥행 기록(29만 명)을 세우는 등 1965년도 관객동원 1위에 올랐다. 당시 서울 인구는 500만 명. 그러나 영화검열 과정에서 비참한 산동네를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영화가 보류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다.

 

 이 영화의 원본은 국내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대만 영상자료원에 보관하고 있던 것을 빌려 2014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대구 명덕국민학교 4학년에 다니는 윤복(김천만)이네 가족은 집세를 내지 못해 남산동의 살던 집에서 쫓겨나 앞산 밑의 버려진 움막집을 찾아간다. 윤복의 아버지(장민호)는 노름꾼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주증녀)는 아버지의 학대를 못 이겨 집 나갔다.

 

  윤복은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소년 가장이었다. 그는 여동생 순나(정해정)와 다방을 돌며 껌을 팔아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날

그날의 일을 일기장에 담는다......

 

  국민학교 시절 단체 관람을 하였는데 온통 극장 안이 울음 바다였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끝나고 운 것이 창피하여 친구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고......

 

  그때를 생각하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보니 몇 장면 가슴이 뭉클한 부분도 있었지만 당시의 감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은, 나이 먹고 그만큼 정서가 메말랐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는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절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잊혀진 이야기가 되어가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여겨졌다.

 

  감독은 담담한 일상을 살아가는 남루한 가족을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새 얼굴을 찾기로 하고 응모자 400여 명 중 네 명을 뽑아 맹훈련을 시켰다고 하며 당시 경화 프로덕션은 이윤복 어린이에게 원작료 10만 원과 시나리오료 15만 원 등 총 25만 원과 대구에서의 개봉 첫날 수입도 이윤복 어린이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 후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지만 흥행에는 실패하였고, 이윤복의 삶 또한 평탄치 않았다고 하는데 그는 1990년 간경변으로 발병 2주 만에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제는 영화보다 그 사실이 더 아프고 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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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0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진짜 눈물 콧물 다 짜면서 봤었는디.?어쩜 그 뒤의 삶이 더 마음아 아프네요

하길태 2020-09-09 07:02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신(神)은 항상 공평하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