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인 철학하는 아이 3
마이클 포먼 글.그림, 민유리 옮김, 이상희 해설 / 이마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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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사두기만 아직도 읽어볼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시대를 다룬 대역사물이라고 하는데, 전쟁 뒤에 따르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을까라고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독자의 심정으로 생각해본다. 어린이 브랜드 이마주에서 나온 마이클 포먼의 <두 거인>은 책의 뒷면에 나온 대로 전쟁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시간적 배경은 아주 오래전 옛날, 그리고 공간적 배경은 아름다운 나라다. 이 나라에는 샘과 보리스라는 두 명의 친한 거인이 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아무 것도 아닌 분홍색 조가비였다. 샘과 보리스는 분홍색 조가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움을 벌인다. 결국 싸움판 끝에 대홍수가 나고, 신발은커녕 양말도 서로 바꿔 신고 멀리 떨어진 섬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 때문에 큰 돌멩이를 날려 다치게 하고, 커다란 돌 방망이를 들고 쳐들어가 친구를 해칠 계획까지 세운다. 그러다 샘과 보리스는 서로 짝짝이 양말을 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싸움이 모두 부질 없었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분쟁에 대한 아주 이상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없다. 나머지는 둘 다 행복하게 잘 지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전쟁/다툼의의 시초는 아무 것도 아닌 분홍색 조가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분홍색 조가비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닐까. 다시 동화 속의 이야기로 돌아가, 현실세계의 전쟁도 그렇게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다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을까.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는 영토분쟁을 필두로 해서, 자국에서는 없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무력 충돌, 특정지역의 패권과 정치적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부른 전쟁 등 분쟁의 원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래도 영국 출신의 노작가 마이클 포먼은 <두 거인>에서 분홍색 조가비라는 아무 것도 아닌 재화를 등장시켜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이유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가설을 세운다.

 

전쟁과 평화는 야누스처럼 이면을 가지고 있다. 전쟁이 시작이라면 평화는 끝을 상징한다. 어떤 전쟁도 끝이 없을 수 없고, 한쪽편이 이기든 지든 평화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두 거인이 싸움을 벌이면서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평화 대신 전쟁을 누구 원하겠는가. , 천문학적 무기 시스템을 팔아야 존재할 수 있는 다국적 군산복합체 정도가 있을까. 역설적으로 전쟁/다툼의 시작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타협을 통한 평화도 거인들의 짝짝이 양말이 가져다준 화해처럼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마이클 포먼이 그린 동화답게 정교한 그림 대신, <두 거인>은 큼지막한 글씨와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거인의 그림은 골판지 재료를 찢어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전쟁과 평화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는 과연 철학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그들의 생각도 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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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무것도 아니긴요..무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분홍의 조개라는 실체를 두고 전쟁..
그런 것이니..눈에 뵈지않는 이념과 사상을
놓고 싸우는 것보단 적어도 실리주의.끝이나도 양말이 짝짝이라도 곧 어깨동무 하겠지요.

그런데. 이야기라는건 다 거기서 거기인가봐요.아니면 모티프ㅡ얻어..그런건가??
이 거인족 하니..갑자기 일애니 원피스 중
거인족스토리가 상당히 비슷하다 했어요. 투박하고 단순한 그림체 맘에들어요..
처음 앞의 질문부분까지만 읽고 답을 했어요.
다 읽으면 결론을 내 놓으실 듯 해서요.
그럼 누가..이 동화를 보겠나..싶어.
서둘러 제 답을 쓰고..결론은 같더라도.
그때는
아..양말을 나눠 신자..하고..ㅎㅎ
생각하는 동화 고맙습니다. 계속 소개 부탁드려요..재미있네요..
그럼 깊은밤 ~ 굿나잇! 꿀나잇~!!
 
달과 6펜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7
서머싯 몸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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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이제야 읽게 됐다. 하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가 많아, 대강의 줄거리는 꿰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읽은 것하고는 또 다른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해 양가적 감정이 내적으로 치열하게 충돌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이 40세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열정 하나만 가지고,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난 한 남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쏟아내는 자아와 또 한편으론 참 멋지다라는 느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현실과 이상이라는 서로 상이한 두 세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성장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라는 자조적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이 생활에 충분한 돈까지 벌어다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 영국 출신의 작가 서머싯 몸이 프랑스 야수파 출신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삼은 소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영국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으로 활동하던 중,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17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훌쩍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트릭랜드 부인은 참을 수가 없다. 그녀는 찰스가 그림이 아닌 다른 이유, 젊은 여자가 생겨 떠났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때 절실하게 사랑한 사람이 자기가 사랑했다고 믿는 남자의 꿈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에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서머싯 몸은 작가의 페르소나 역할을 충실하게 대행할 인물로 화자인 나(역시 작가다)를 투입한다. 나레이터 역할의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행적을 쫓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캐릭터다. 찰스의 관심 분야와는 다르지만, 명확한 예술가이며 일반인들의 일상적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찰스와 그나마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 찰스가 이야기를 털어 놓으니 소설의 진행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다.

 

소설 <달과 6펜스>는 크게 세 개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초반부의 영국 런던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에 개입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에 소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프랑스 파리가 그 무대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특정한 공간에 가야 한다는 공식이 그 시절에도 있었나 보다. 이 소설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더크 스트로브와의 애증에 얽힌 삼각관계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왠지 초중반의 긴장감에 비해 남태평양 타히티에서의 찰스 스트릭랜드의 최후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김빠진 콜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시켜 버린 예술가에게 마지막 걸작을 남기는 것 외에 무슨 사명이 있단 말인가.

 

이상적인 도덕론자도 아니면서 독자의 양심을 건드리는 것은 17년간 함께 한 가족마저 저버린 찰스 스트릭랜드의 행동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어디까지인 걸까. 스트릭랜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가족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영원히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찰스는 가족 특히 아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모름지기 예술가는 이상과 현실을 병행할 수 없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서머싯 몸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프라하의 어느 천재 작가 역시 현실 속에서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하지 않았던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소설의 제목처럼 하나는 이상을 지칭하는 ‘달’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물질이라는 이름의 현실을 상징하는 ‘6펜스’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 명의 캐릭터가 자못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스트릭랜드야 도덕성 때문에 실컷 욕을 먹었을 테니,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충분할 것이다. 첫 번째 인물은 바로 나레이터인 ‘나’다. 어떻게 해서 나는 계속해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에 개입하게 되는 걸까. 그 때는 아직 인간의 본성이 모순되고, 성실성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위선이 내재되어 있는지 몰랐다는 고백에서 미생(未生)의 인격을 만나기도 했다.

 

어쨌든 런던, 파리 그리고 마지막의 타히티까지 아우르는 여정은 도저히 개연성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타히티의 숲 속에서 태고적 아름다움의 비밀을 만났게 되었다는 건 어느 정도의 개연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타히티까지 갈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내가 그곳까지 가서 직접 스트릭랜드의 최후를 목격한 사람들의 전언을 듣게 된 것은 운명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소설적 장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예술가가 아닌 다른 직업군의 사람이 나레이터 역할을 맡았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그야말로 불사른 천재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열정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물론 두 번째로 이야기할 문제적 인간 더크 스트로브야말로 그 누구보다 앞서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일찍이 인정했다. 후반에서 찰스 스트릭랜드가 죽기 전에 쉽게 그의 그림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허다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나레이터의 말은, 예술마저 물신화되고 돈이라는 가치로 계량화된 현대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또 다른 문제적 인간은 바로 더크 스트로브다. 나는 그를 어릿광대라고 부르곤 하는데, 비록 그것이 그의 특징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적인 행위를 한 그에게 지나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배은망덕이라고 한다면 세계 챔피언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스트릭랜드는 더크 스트로브와 부인 블란치의 지극한 정성으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으면서도 결국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고야 마는 신공을 보여준다. 주변의 호의를 아무런 염치도 없이 받아들이면서, 최소한 지켜야할 인간의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것이 예술가의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냉혹한 잔인성에 그만 질려 버렸다. 어쩌면 서머싯 몸은 이런 극단적 대비를 통해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론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나라 방송계를 쥐락펴락하는 막장드라마의 원조격이라고나 할까.

 

더크 스트로브는 찰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팔리는 화가지만,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하는 찰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은인을 환쟁이라고 부르면서 주저하지 않는다. 창조의 재능이 없다고 해서, 그 창조력을 분별하고 비판하는 능력까지 부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더크 스트로브는 온 몸으로 대변해준다. 물론, 이런 찰스의 행동을 파악한 나레이터 나는 교묘하게 그를 자극하면서 이야기의 빠진 퍼즐 조각들을 하나둘씩 채워 넣는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에게 빠져 자신을 버린 블란치가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용서하겠노라고 나에게 선언한다. 문제는 블란치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비극의 피날레에서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가 그린 블란치의 누드화에 칼질을 하려는 순간, 영혼의 고뇌를 거쳐 정화된 예술혼의 결정체에 압도되는 장면이야말로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사족에 불과할 따름이다.

 

<달과 6펜스>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폴 고갱의 삶에 대해 호기심을 느껴 찾아보았더니 정말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나름의 논리를 갖춘 냉혹한 예술가 찰스 스트릭랜드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란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 현실에 견주어 볼 때, 사후에 비로소 재평가를 받게 된 과정조차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토록 원하는 달(개인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정도는 문제없다는 인식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달에도 가기 어렵지만, 현실세계에서 6펜스를 얻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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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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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꾸준하게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때로는 엄청난 분량 때문에(최근에 출간된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혹은 정말 처음 듣는 생소함, 그것도 아니라면 읽기 시작했지만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 실패작으로는 에른스트 윙거의 <대리석 절벽 위에서>을 꼽을 수 있다. 다닐로 키슈의 책도 호기심에 사기는 했지만 아예 펴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중국 3대 문호로 손꼽히는 바진 선생의 신간 <휴식의 정원>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냉큼 사기는 했지만 독서는 요원하게만 느껴지던 차에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틀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바진 선생의 다른 작품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200쪽 조금 넘는 분량이라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었다고나 할까. <휴식의 정원>은 기본적으로 바진 선생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문인 라오리의 시선을 통해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청두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한 바구니에 꿰어 담아 만든 이야기다.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전쟁에 대한 일화는 공습경보 한 차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가 대후방이라고 칭하던 국민당 정부가 장악하고 있던 일본군의 침략이 미치지 못하는 쓰촨 지방의 청두가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십 수 년간을 타지에서 떠돌던 소설의 화자 리 선생은 청두에 돌아와 잠시 호텔에 머물다가 거리에서 우연히 소학교, 중학교 심지어 대학까지 동문한 친구 야오궈둥을 만나게 된다. 부친으로 받은 받은 전답이라는 경제적 바탕으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유복한 생활을 누리던 지기에게 리 선생은 식객으로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라오야오가 몰락한 양씨 일가에게 사들인 대저택에 위치한 “휴식의 정원(憩園)”에 머무르게 되면서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한 일들을 독자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역사시대 이래 유력자들이 문인들을 식객으로 보호해왔다. 예나지금이나 예술가들은 예술활동과 경제활동을 더불어 할 수 없었기에, 유복한 경제력을 지닌 이들이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식객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인 우리의 리 선생은 비록 친구의 집에 얹혀사는 식객이긴 하지만, 염치를 아는 지식인으로 아랫사람들에게조차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리 선생의 인격에 대해 합격점을 주고 싶다.

 

그가 “휴식의 정원”에 들어오게 되는 첫 날, 아름다운 정원에 있던 동백꽃 가지를 꺾어 가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은 저택의 이전 주인이었던 양씨네 셋째 나리의 두 번째 아들로 이름은 한얼이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당돌하게 자기주장을 펼쳐 보이는 이 소년의 가계에 얽힌 이야기가 소설의 한 축을 구성한다. 바진 선생은 조금 뜸을 들이면서 휴식의 정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얽힌 사람들의 일상과 미스터리를 조금씩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소설 쓰기에 매진하는 바진 선생의 페르소나 리 선생의 창작욕을 섬세한 바늘로 찌르듯 환기시키는 역할을 맡은 친구 라오야오의 새부인 완자오화가 등장한다. 조용하면서 동양적 외모를 가진 전형적 현모양처의 화신으로 등장해서, 소설가 리 선생에게 왜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글을 쓰지 않느냐고 되묻는 당찬 여성상을 들어내 보이는 결기가 인상적이다. 자고로 모든 예술가에는 예술혼을 자극하는 뮤즈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런 점에서 야오 부인은 훌륭한 독자이자 비평가가 아닐 수 없다. 첫만남에서 그녀의 웃음 덕분에 자신의 창작열의 매개였던 ‘알 수 없는 중압감’마저 덜어낼 수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녀에게 들은 자아의 확장이라는 말은 큰 울림으로 작가에게 다가온다.

 

다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청장년의 혈기를 다스려낸 중년의 바진 선생은 인생을 관조하듯 휴식의 정원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동백꽃송이, 바닥에 떨어진 사기 주걱 같은 모양의 목련꽃에 대한 단상은 물론이고, 몇 마리의 귀찮은 파리와 모기에조차 섬세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작가의 타인에 대한 진정성과 인도주의 정신은 도박과 축첩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처자식에게 외면당한 양씨 집안의 양멍츠를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과 아직 자아를 이루지 못한 십대소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한얼을 도우려는 모습에서 정확하게 포착할 수가 있었다.

 

한편, 늙은 하인에게 들은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이 야수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야오 집안의 말썽꾸러기인 샤오후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식객인 자신의 처지를 고려해서 친구에게 말하는 수위를 조정하는 장면 또한 일품이었다. 바진 선생이 전개하는 몇 가지 이야기 군상 속에서 적절하게 자리한 균형이야말로 <휴식의 정원>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구성의 화룡점정으로 작가 개인의 일과 생활 그리고 작품마저 공허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싸우며 글쓰기에 매진하는 예술가(자신)의 고뇌까지 얹어 놓으니 그야말로 천의무봉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휴식의 정원’은 중국인들이 이상향으로 품어온 무릉도원의 다름이 아닐 것이다. 걱정과 근심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전쟁이라는 폭력의 극한 속에서도 그런 공간은 가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진 선생은 한 발짝 더 나가 그런 공간이라도 모든 가정이 가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톨스토이의 예언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 주었다. 또한 작가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포기하지 않는 인도주의 이상(理想)과 희망이야말로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가치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핍진하게 그려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독서로 부족함이 없다.

 

[리딩데이트] 2014년 12월 21일 ~ 22일 오후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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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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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아직도 준전시상태라는 사실에 대해 미처 모르고 살았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한국전 휴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이렇게 긴 명칭의 휴전협정 어디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 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대치 상태에서 어디로부턴가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이북을 의심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미묘한 정전 상태에서 소설가 배명훈은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미사일 폭격이 자신이 즐겨 찾던 맛집을 골라 때려 부순다는 것이 <맛집 폭격>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 <맛집 폭격>을 보고는, 배명훈 소설가가 맛집 투어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맛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산문 에세이류가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듣도 보도 못한 인도음식인 마살라 도사나 터키식 패스트리인 바클라바 그리고 하몬 이베리코 같이 물설고 낯선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라는 희한한 명칭 소속의 민소는 미사일 피격 장소를 찾아 조사 하던 중, 피격 장소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혼자서 소설을 이끌어 가기에는 힘들었던 듯 윤희나라는 낙하산이지만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주인공과 어느 순간에라도 썸을 탈 수 있는 그런 사이드킥이 투입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의 페이지 사이로 미사일 하나가 책갈피처럼 파고들었다. (44쪽)

 

서울 도심 한복판에 미사일이 매일 같이 떨어지는 가운데도 사람들이 일상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이 아닌 마당에야,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삶은 평소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지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긴 북한이 보유한 어마어마한 수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안에 수도권이 들어가는 마당에 64년 전처럼 피란 가겠다고 바리바리 짐을 싸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슬쩍 빗겨나가 작가가 고른 소재가 바로 맛집 피격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소설의 제목에 대해 한 가지 딴지를 걸고 넘어지자면 폭격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적의 군대나 시설물, 또는 국토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설에서 미사일은 인도양의 모처에 위치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 않았나. 차라리 <맛집 때려 부수기>가 낫지 않았나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어찌어찌해서 주인공 민소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았던 “하나였던 영혼을 둘로 쪼개 나눠 가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일상화된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음모론도 등장한다. 유사 이래 사회가 혼란할수록 기승을 부리는 음모론 조성을 위한 모든 조건은 비정상이 일상화된 국가에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에스컬레이팅’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불안과 긴장을 각성제로 총력전에 돌입하려는 시민의 폭력적 측면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어쩌면 전쟁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의 완결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기존의 적과 우방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린 상황에서, 국지적 분쟁을 조장해서 계속해서 무기를 팔아 수익을 내기 위한 초국적 군사용역 전문 기업이 등장해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민소가 사랑하는 여인 송민아리가 예의 복잡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이트 칼라 용병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소가 맛집들을 정밀 타격하는 미사일 공격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에게 위해가 점증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 <맛집 폭격>은 마치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처럼 초반과 중반까지는 미사일 공격에 대한 미스터리와 맛집이라는 대칭 구조가 잘 어우러지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식의 설정(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소설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독자는 작가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당장에라도 달려가 맛보고 싶은 맛집 순례기에 가까운 절묘한 묘사와 기술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입안 한가득 침이 고여 오게 만드는 바삭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자극하는 찹쌀탕수육과 자본주의 정신이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먹고사니즘과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을 고찰해 본다면 그 또한 아주 황당무계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한발에 자그마치 100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토마호크 미사일급의 공격을 그토록 오래 감당할 수 있다는 설정은 여전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 또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소설이 아닌 현실적 핍진성의 연장에서 본다면 불가능한 의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오늘 점심은 그저 바삭바삭하고 입안 한가득 쫀득함이 물밀듯 밀려오는 그런 찹쌀탕수육으로 한 끼를 때웠으면 하는 바람일 따름이다. 아, 그리고 읽다가 만 배명훈 작가의 전작 <은닉>도 마저 읽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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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문득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모든 귀결점이 바로 죽음으로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스라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가 또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형철 선생의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일본 순문학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그렇게 죽음 혹은 상실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나의 편견일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일본 문학에 대한 나의 평가는 야박했다. 서구,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책을 꾸역꾸역 읽어대면서도 이웃 나라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왠지 서구의 그것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지금은 소원해진 지인도 언젠가 나에게 일본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예로 들면서 그런 충고를 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신형철 선생이 손에 꼽은 하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순문학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미야모토 테루 작가를 만나게 됐다. 소개된 세 명의 작가 중에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이유도 다른 작가의 작품에 앞서 이 책을 읽게 해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죽일 놈의 절판본에 대한 사랑이란.

 

신형철 선생이 직접 낭독해준 <밤 벚꽃>에 아무래도 먼저 손이 갔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읽는 낭독이 주류 독서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홀로 읽는 묵독이 대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낭독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독서라는 것이 개인적인 체험이다 보니 낭독보다는 묵독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단편 <밤 벚꽃>의 주인공은 고베에 사는 49세의 이혼녀 아야코다. 소설은 그녀의 단아한 목소리로 전개된다. 20년 전에 이미 이혼했고, 외아들이었던 슈이치를 1년 전에 사고로 잃었다.

 

그렇게 폐경기에 접어 든 혼란스러운 그녀에게 두 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한 명은 전 남편인 야마오카 유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아들을 잃고 하숙을 친다는 말에 하룻밤 신세지겠다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신원불명의 한 청년이다. 이 둘 때문에 아야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여전히 서먹하지만, 죽은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유조를 대하며 아야코는 그동안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로 가차 없이 이별을 선언했지만, 그 때 한 번만 눈감아 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그녀를 엄습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전기기술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찾아온 다른 한 청년은 일박을 정중하게 요청하는데, 알고 보니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로 아야코가 거주하는 저택에서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 속셈이다. 그들을 유혹한 밤 벚꽃을 바라보며, 아야코는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회상한다. 존재의 부재를 대면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고나 할까.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데, 그 결과는 온전하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뒤에 바로 따라 읽은 <박쥐>는 맨숭맨숭한 느낌이었다. 나(곤스케)는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시절 친구로부터 친구 란도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마침 여자친구 요코와의 만남에 늦은지라 경황없이 그녀에게 달려간다. 요코는 교토의 시센도를 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시센도보다 요코에 대한 순수한 욕망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소설집 <환상의 빛>에서는 기묘한 순간에 죽음 혹은 상실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격발시킨다. 요코네 집에서는 가업을 이을 데릴사위를 찾고 있기에, 그녀와의 이별은 필연이다. 오래전 오사카의 어느 항구에서 봤던 박쥐처럼, 곤스케의 상념은 부서진다. 상남자였던 란도와 함께 오사카 항구에 산다는 묘령의 소녀를 찾아 나선 기이한 여정이 이어진다. 그 여행은 요코와의 교토여행과 대조를 이루며, 곤스케가 반추하게 된 삶의 진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요코와의 이별에 방점을 찍는다. 이거야말로 신형철 선생이 추천한 담백하기 짝이 없는 일본 순문학의 맛이었던가.

 

<침대차>는 밤을 타고 달리는 야행열차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나는 내일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야행열차를 타고 목적지 도쿄로 향한다. 우리네 삶에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가. 야행열차를 타는 나의 준비물은 주간지 두 권과 포켓용 위스키가 전부다. 신칸센을 타면 더 빨리 도쿄에 다다를 수 있겠지만, 저혈압이 있는 주인공은 침대차를 선택한다. 야행열차의 완만한 울림과 사람들의 북적거림 그리고 독특한 정적이 주는 감상이 야행열차의 제 맛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기계쟁이에서 능력 있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한 나는 파트너 고타니와의 합작품인 이번 계약에 얽힌 사연들을 회상하며 밤을 달린다. 그러던 중, 도중에 승차한 어느 노인의 통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가쓰노리와의 추억을 되살려낸다. 자신에 집에 놀러 왔다 강에 빠져 죽을 뻔한 가쓰노리가 결국 대학교 때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미야모토 테루 작가는 동승한 노인 역시 그런 참척의 슬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독자로 하여금 하게 만든다.

 

그렇게 세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표제작인 <환상의 빛>을 읽기 시작했다. 한신 전차에 치어 자살한 남편을 그리는 유미코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남편과 그렇게 사별한 후, 유미코는 7년이 지나 오쿠노토의 소소기 바다에 새로 둥지를 틀게 되었는데 그곳은 짙은 초록빛 물색과 일 년 내내 해명이 울어대는 가난한 바닷가였다. 우리 같은 속물들은 당장 이제 막 태어난 아들 유이치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가 걱정인데, 정작 당사자 유미코는 남편이 왜 죽었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죽은 남편이 그 이유를 들려줄 리 만무하다. 그에 대한 질문과 대답 모두 유미코의 몫인 셈이다.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유미코 역시 하루의 삶을 이어가고, 효고에서 멀리 떨어진 소소기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미야모토 테루는 그녀의 신산한 삶의 원형을 제공하는 과거사에 동반자살한 이웃의 돈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아버지의 이야기와 역시 치매로 가출한 할머니의 실종이 가족 책임이라며 경찰들이 찾아와 가난한 자기 집의 다다미까지 뜯어내고 땅바닥을 파낸 에피소드를 배치한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과연 유미코가 소소기에서 새남편 세키구치 다미오 씨의 아내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싶어 하는 삶의 진실은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새남편 다미오 씨와 새출발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여전히 죽은 남편과의 대화는 계속된다.

 

<환상의 빛>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솔직히 말해서 신형철 선생이 추천한 것처럼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나도 좋은 것은 아니니까. 좋다면 기발한 아이디어 혹은 구성이나 플롯이 좋다던가, 서사의 전개 기법이 좋다든가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에서는 나의 감성을 울리는 무엇인가를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나의 일본순문학에 대한 눈높이가 미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일본 출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표제작 <환상의 빛>을 영화화해서 데뷔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그의 작품도 한 번 영화로 만나 보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정말 유미코가 말한 그 소소기 바다가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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