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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 ㅣ 철학하는 아이 3
마이클 포먼 글.그림, 민유리 옮김, 이상희 해설 / 이마주 / 2014년 12월
평점 :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사두기만 아직도 읽어볼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시대를 다룬 대역사물이라고 하는데, 전쟁 뒤에 따르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을까라고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독자의 심정으로 생각해본다. 어린이 브랜드 이마주에서 나온 마이클 포먼의 <두 거인>은 책의 뒷면에 나온 대로 전쟁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시간적 배경은 아주 오래전 옛날, 그리고 공간적 배경은 아름다운 나라다. 이 나라에는 샘과 보리스라는 두 명의 친한 거인이 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아무 것도 아닌 분홍색 조가비였다. 샘과 보리스는 분홍색 조가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움을 벌인다. 결국 싸움판 끝에 대홍수가 나고, 신발은커녕 양말도 서로 바꿔 신고 멀리 떨어진 섬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 때문에 큰 돌멩이를 날려 다치게 하고, 커다란 돌 방망이를 들고 쳐들어가 친구를 해칠 계획까지 세운다. 그러다 샘과 보리스는 서로 짝짝이 양말을 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싸움이 모두 부질 없었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분쟁에 대한 아주 이상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없다. 나머지는 둘 다 행복하게 잘 지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전쟁/다툼의의 시초는 아무 것도 아닌 분홍색 조가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분홍색 조가비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닐까. 다시 동화 속의 이야기로 돌아가, 현실세계의 전쟁도 그렇게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다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을까.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는 영토분쟁을 필두로 해서, 자국에서는 없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무력 충돌, 특정지역의 패권과 정치적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부른 전쟁 등 분쟁의 원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래도 영국 출신의 노작가 마이클 포먼은 <두 거인>에서 분홍색 조가비라는 아무 것도 아닌 재화를 등장시켜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이유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가설을 세운다.
전쟁과 평화는 야누스처럼 이면을 가지고 있다. 전쟁이 시작이라면 평화는 끝을 상징한다. 어떤 전쟁도 끝이 없을 수 없고, 한쪽편이 이기든 지든 평화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두 거인이 싸움을 벌이면서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평화 대신 전쟁을 누구 원하겠는가. 아, 천문학적 무기 시스템을 팔아야 존재할 수 있는 다국적 군산복합체 정도가 있을까. 역설적으로 전쟁/다툼의 시작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타협을 통한 평화도 거인들의 짝짝이 양말이 가져다준 화해처럼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마이클 포먼이 그린 동화답게 정교한 그림 대신, <두 거인>은 큼지막한 글씨와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거인의 그림은 골판지 재료를 찢어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전쟁과 평화”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는 과연 ‘철학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그들의 생각도 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