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이즈
제임스 설터 지음,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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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중의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즐거움일까? 제임스 설터의 책 <어젯밤>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그 즐거움에 도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설터의 대표작이라는 <가벼운 나날>을 샀지만, 아직도 못 읽고 있다. 그리고 다시 올해 나온 <스포츠와 여가>도 샀지만 지지부진하다. 그러던 중에 제임스 설터 작가가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설터 작가의 마지막 작품인 <올 댓 이즈>가 인터넷 연재로 독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마침 원서를 아마존을 통해 구매해 가지고 있던 차라, 번역서와 원작을 교차해서 읽는 즐거움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몰아 읽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게 매일 매일 읽는 재미도 쏠쏠치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올 댓 이즈>(그런데 왜 이 제목은 원서 그대로 가져갔을까? 번역한다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 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양장의 표지는 물살을 헤치고 수영하는 사람의 이미지다. 그것은 마치 소설의 주인공 필립 보먼의 인생유전을 상징하는 시니피에처럼 다가온다.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작정하고 제임스 설터의 책의 표지로 삼고 있는 던컨 한나의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일개 독자로서 어찌하겠냐만서도. 일찍이 해군 소속으로 태평양 전쟁을 누빈 베테랑 군인이었던 필립은 전역하고 나서 하바드 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의 전형이다. 자신과 어머니 비어트리스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낸 아버지의 부재는 보먼의 성장과 더불어 극복되었다고나 할까. 남부 출신의 사랑스러운 아내 비비언을 만나지만, 둘의 결혼은 비비언의 아버지와 필립의 어머니가 예언한 대로 지속되지 않는다.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실제 모습을 그 누구보다 꿰뚫고 있다는 제임스 설터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군인에서 잘 나가는 출판사의 편집자(물론 자신은 작가였다)로 변신한 필립 보먼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에서 살짝 지면의 연출가로 변신한 설터는 필립 보먼이 관계하고 있는 주변인물을 요소마다 투입시키고, 이런저런 관계들을 꾸준하게 설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들을 각 챕터마다 등장시키는 기법으로 매끄러운 내러티브 전개를 선보인다. 낯선 이들이 계속해서 등장함에도 이질감이 들지 않게 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리라. 소설의 2/3가 진행될 때까지 작가는 소설의 선도를 이런 방식으로 유지한다.

 

변이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해야 할까? 뉴저지 출신의 보먼은 무미건조한 비비언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돌싱으로 밀레니엄 캐피탈 뉴욕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니드와 크리스틴 같은 매력적인 여인들과의 연이은 만남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낯선 바다를 헤쳐 나가는 남자가 만나게 되는, 소설 표지의 남자가 물결을 가르는 왼손으로 지향하는 목표처럼 다가왔다. 결국 인생은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의 총합이 이루는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구순의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더불어 노년의 설터가 그리는 에로티시즘의 정수는 <스포츠와 여가>에서 나온 젊은 날의 청춘들이 추구하는 그것과는 다른 농밀함이 뚝뚝 묻어난다. 간결하면서도 관계의 핵심을 찌르는 예리한 문장들은 독자로 하여금 되새김질하듯 읽게 만들어준다. 제임스 설터의 글은 죽을 때까지 아름다웠노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과언일까 싶을 정도로.

 

소설의 가독성을 높이는 유려한 번역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때로는 번역이 원작의 그것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성을 들인 부분도 눈에 띈다. “바로 이때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he never forgot this moment)”이나 “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stars appeared in the black sky)” 같은 표현들은 정말 대단했다. 물론 반대로 ‘후리다’란 가치중립적이지 못하고 주인공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한 표현이나, 원문에는 있지만 번역에서는 생략된 부분들도 눈에 띄지만 옥의 티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인생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올 댓 이즈>와 만나면서 인생의 그런 통과의례에 대한 진실과 예의 진실이 드러나기까지의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전조들을 문학적으로 다루는 데 일가를 이룬 제임스 설터의 작가의 필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원서를 손에 넣은 뒤, 오랫동안 기대한 만큼 즐거움도 그 못지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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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09 0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 원서로도 읽으시다니@_@;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저도 보관함에 넣어둔 책인데 어서 읽고 싶네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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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 시대에 나는 <로맨스 푸어>라는 소설의 제목을 보고, 달달한 로맨스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기대를 품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예상한 그 달달한 로맨스 대신 아이볼을 모으기 위해 골프채를 휘둘러 대는 유다영이라는 32살 먹은 앙칼진 처녀의 생존투쟁기를 목도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로맨스 푸어>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합정역으로 대변되는 장소만큼이나 이혜린 작가의 소설은 현실적이다 못해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 <28>에 나오는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이 강북을 휩쓸고(불과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한 것이 몇 달 전의 이야기다), 그 여파로 좀비(아니 소설에서는 파지티브라는 아주 고상한 명칭으로 불리운다)와의 사투가 시작된다. 제도 교육을 참하게 받고, 사회에 편입된 주인공 다영은 열심히 연애전선을 구축하고자 하지만 별무소용이다. 비타민 주사를 맞고,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훈남 우현과 엮이는 통에 자신의 본거지인 강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북에 남아 지긋지긋한 좀비와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소설에서 주인공 다영은 꾸준하게 강남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시뮬라크르에 집착한다. 게다가 그녀는 때마침 이성욱이라는 강남 120아파트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또다른 남자와의 관계도 이미 친절하게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 갈등구조는 완벽하게 이뤄진 셈이다. 현실세계에서 바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 같은 남자 우현(그런데 이 남자 드럽게 눈치가 없다)과 딱히 땡기지는 않지만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조건과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남자 이성욱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주인공 다영은 갈팡질팡하게 되어 있다.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었다고야 할까. 하긴 우리가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같은 여주인공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스스로를 나쁜 년이라고 부르며, 강북의 유일한 생존 공간인 팰리스 시민이 되기 위해서라면, 아니 흰쌀밥에 죽죽 찢은 김치를 먹기 위해서라면 죽은 좀비의 아이볼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까지도 팔 준비가 된 다영이라면 충분히 입체적인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좀 더 좀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지닌 부조리에 전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좀비가 살벌하게 판치는 강북의 모습은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 내몰린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주거비 부담을 견딜 수 없게 된 이들의 모습이 팰리스에 입주하기 위해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주인공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주인공들이 수집하기에 혈안이 된 아이볼은 그대로 금전, 다시 말해 돈으로 치환된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 그렇게 살기 좋다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조금의 파렴치한 행동도 묵인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지적은 예리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마무리가 조금 아쉬운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너무 멀리 와서 이제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스스로도 실종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요즘 유행하는 썸타는 관계를 유지해 가면서, 종결로 치닫는 작가의 기법은 마음에 들었다. 주변 인물들이 모두 좀비와의 싸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 마음을 다잡고 살아남은 주인공들의 결말은 어떻게 보면 허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작가가 고른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타인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당사자들은 당시에 모름지기 자신의 판단 아래 항상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기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내 한여름 밤의 독서는 그래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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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의 그리스신화 1 - 올림포스 신들 유재원의 그리스신화 1
유재원 지음 / 북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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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즐겨 읽었다. 천상의 신들이 인간들처럼 시기 질투하고, 또 애인을 두고 다투거나, 누가 제일 미인이냐를 두고 경쟁하는 장면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 나중에 아주 오래 시간이 흘러, 그 시절에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들은 오리지널 버전이 아니라 훗날 토마스 불핀치가 19세기에 새로 편집한 저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신화>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불핀치 판보다 정교하면서도 원전 신화에 가깝다는 점에서 기존의 그리스 신화와 변별점을 가진다는 점을 평가하고 싶다.

 

최근 그리스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로존 탈퇴와 구제금융 그리고 그렉시트(Grexit)라고 불리는 안건에 대한 국민투표를 감행한 치프라스 총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은 그리스 저간의 사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올림포스 신화의 나라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상황에서 읽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는 카오스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의 저자는 우주의 생성을 카오스(무질서)에서 질서로 이동하는 과정이 과학계의 설명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이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인들 역시 우주와 인류의 탄생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서였을까.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올림포스 신화에 들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당대 혹은 그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근동 지방의 신화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 올림포스 신화를 대표하는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우스 이전의 티타네스와 기간테스와의 전쟁은 아직 인류에 자연에 무기력하던 시절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진이나 태풍, 해일 그리고 홍수 같은 무자비한 자연 재해로부터 여전히 인류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류는 협력과 지혜를 바탕으로 자연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올림포스 신들은 인간을 돕는 수호자로, 때로는 징벌자라는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계에 간섭하면서 서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미처 몰랐었는데, 두 차례의 거인 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제우스가 마지막 승부였던 티폰과의 싸움에서 한 때 패배해서 코너에 몰린 적도 있다고 하니 놀라웠다.

 

바로 이 거인 족과의 패권 다툼에서 결정적인 조력을 한 캐릭터로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한다. 자연에 무기력한 인간에게 불을 제우스 몰래 전달해 주고, 이모저모로 인간을 도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미운털이 박혀 독수리에게 내장을 파 먹히면서도 죽지 못하는 가혹한 형벌에 처해지기도 한다. 그런 프로메테우스를 구출해내는 영웅이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신과 인간의 관계는 고정불변의 그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타협과 교정이 가능하다는 점이야말로 훗날 르네상스와 근대의 동력으로 이어지는 인문주의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다음은 저자가 소개하는 신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신은 바로 아름다움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라틴어로는 비너스라 불리는 신이었다. 보티첼리의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은 바로 그리스말로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디테 탄생 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코린토스는 바로 이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도시로 유명했고, 사랑과 정욕을 갈구하는 모든 고대 남성들이 방문하고 싶은 장소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신으로서 후대에 거품에서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로 그리스 신화에 편입된 편입생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가 위세를 떨치던 시대에는 번식과 사랑의 신으로 제우스에 필적할 만한 걸출한 능력의 소유자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 시스템/이데올로기가 확립되고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이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독교 사상이 서구 사회에 침투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아프로디테의 위상은 그리스의 쇠락과 더불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신의 생성과 융성기조차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전하는 저자의 예리한 분석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 분석은 돼야, 숱한 그리스 신화와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독자 스스로 그 정도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다음 타자로 내가 읽은 신은 바로 헤르메스(라틴어로는 머큐리)였다. 한 때 인터넷 아이디로 삼을 정도로 매력적인 신 중의 하나인 헤르메스는 올림포스 정상의 주신인 제우스의 아들로, 제우스의 공적 권력을 위임받은 아폴론의 이복동생이다. 상인과 도둑 그리고 나그네의 수호신이기도 한 헤르메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특기인 도둑질과 뻔뻔한 거짓말을 장끼로 삼게 된다. 신들 하면 양지를 지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사에 어디 밝은 면만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신참내기 헤르메스에게는 어두운 면이 할당된 모양이다. 이 책의 저자는 헤르메스가 자신의 이복형 아폴론에게 도전하기 보다는, 타협과 협상을 통해 자신의 몫을 적당히 챙기는 전략을 발휘했다고 분석한다. 태양신이자 호남자인 아폴론이 꼬맹이와 다투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우습지 않은가. 게다가 헤르메스는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부지런히 아버지 제우스의 메신저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특출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존재해야할 그런 캐릭터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는 방탕한 주신(酒神)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우스가 인간의 딸인 세멜레와 관계해서 낳은 디오니소스는 태어날 때부터 헤라 여신의 질투로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멀리 오지에서 자라나고, 한 때 미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올림포스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인류에게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는 술[포도주]을 공급하고, 번식의 상징으로 수많은 마이나데스라는 광적인 팬들을 여신도로 거느린 디오니소스는 아프로디테와 마찬가지로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신앙으로 그리스 본토에 상륙하는 과정이 디오니소스 자신의 신격화와 유사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게다가 다른 올림포스의 신들과는 달리 디오니소스 신앙은 천신(天神)이 아닌 지신(地神)이고, 귀족 중심의 올림포스 신앙과는 이질적인 민중 중심의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스 세계가 쇠락하면서, 왕과 귀족 중심의 올림포스 신앙은 자연히 몰락했지만, 올림포스 시스템 속에서 기묘한 공존을 하고 있던 디오니소스 신앙은 반대로 위력을 발휘해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유사하면서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 신앙이 전도사 바울의 노력에 의해 지중해 세계를 석권하면서 디오니소스 신앙이 대표하던 고대 세계의 종말이 도래하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 1편에서 올림포스 신앙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신들의 향연이 펼쳐졌다면 후속편에 해당하는 2편에서는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반에서도 다뤄졌듯이, 그리스 신화는 오로지 신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과 상호작용 혹은 맞서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저 단순한 흥밋거리 차원의 신화에서 이렇게 멋진 해석을 곁들여서 분석한 저자의 내공에 감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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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지음 / 아카넷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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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토르 정이 빠라이소 쿠바를 찾았다. 그는 미국 유학파 출신 감독으로 경제학과 정책학은 연구한 사람인데, 영화감독이 되었단다. 그리고 작년 세월호 사건을 보고 나서 먹먹한 가슴을 안고 쿠바에 갔다. 쿠바는 그에게 힐링의 장소였을까? 미국과 반세기 넘는 대결을 벌이면서도 혁명의 가치를 고수해온 고집스러운 나라. 하지만, 미국과의 혹독한 엠바고 결과 국민들의 생활은 피폐해질 대로 피혜해졌다. 얼마 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쿠바와의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드디어 국교정상화를 발표했다. 사회주의 쿠바는 이제 자본주의를 허용하고 세계질서로 편입되는 걸까. 쿠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디렉토르 정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어떤 특정한 인물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혁명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21세기 오늘의 쿠바를 있게 만든 두 인물에 대해 작가는 상세하게 이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한 명은 아직도 살아 있는 피델 카스트로이고, 자신이 솔직하게 체빠라고 밝히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다. 소싯적 남미 전역을 도는 여행(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참조하시라)을 통해 소위 바바나 공화국이라 불리는 신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남미 여러 나라의 처참한 현실을 깨닫게 된 체 게바라는 평생의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카스트로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동지가 된 두 사람은 불가능해 보이는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일약 전설이 되었다. 미완의 혁명을 여전히 지도하고 있는 카스트로와 달리 체 게바라는 콩고와 볼리비아를 전전하며 혁명전파를 위해 애쓰다가 젊은 나이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 둘의 합작품인 쿠바의 오늘이 작가의 글쓰기 타깃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특별시기를 거치면서 쿠바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작가의 진단이다. 콜럼버스가 상륙한 이래, 제국주의 스페인의 특별한 식민지이자 구대륙과 신대륙을 이어주는 전초기지로서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은 익히 입증된 바 있다. 한 때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정도의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던 쿠바는 사탕수수 재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제조업의 부재와 이웃 베네수엘라처럼 풍부한 석유자원을 가지지 못해 공산품 수입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했다. 미사일 위기 이래, 강력한 우방이었던 소련이 붕괴하고, 경제지원이 끊기면서 쿠바 경제 역시 막심한 타격을 입어야 했다. 오랜 골칫거리였던 쿠바를 고사시키기 위한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항해서 쿠바 사람들은 레솔베르라 불리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국가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생존에는 성공했지만,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약속한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그들의 혁명공약이 지켜졌는가라는 본질적인 국민들의 질문에 답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디렉토르(왜 자꾸만 디텍이터(dictator)’가 연상되는 걸까) 정은 자신이 숙소로 정한 마그다 아줌마네 아들인 페페와 그의 유사 여자친구인 다리아나를 등장시켜 오늘날 쿠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중계해준다. 나도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과거 같은 역사는 그동안 축적된 정보로 파악이 가능하지만, 진행 중인 현재와 미래를 알고 싶다면 당대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을 것이다. 페페가 답답할 정도로 순진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스마트함이 있다면, 다리아나는 세상에 닳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잘 알고 있으면서 현재 쿠바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생기 없고, 무얼 해도 할 수 없음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고급 호텔에서 재떨이와 식기를 챙기는 영악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시설의 물건들을 공공재라고 생각하는 쿠바사람들 특유의 변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구차하려나.

 

어쨌든 혁명의 대의를 지키기 경제적 궁핍 혹은 다른 표현을 쓰자면 결핍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거인에 맞선 쿠바 사람들의 결기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래도 최소한 굶어 죽지 않고(물론 상대적인 판단일 것이다), 국가가 교육과 의료를 책임진다는 작가의 전언은 깊이 새겨볼 만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각자도생해서 살아남아 한다는 천박한 신자유주의 사고가 만연한 곳과 비교한다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고 살아가는 그네들의 모습이 정말 천국보다 낯설게 다가왔다.

 

경제학과 정책학 전공자답게, 디렉토르 정은 오늘날의 쿠바를 다방면의 앵글을 통해 잡아낸다. 어떤 한 면만으로 그 나라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오늘날 쿠바를 이루게 만든 혁명, 더 앞서서는 바티스타 정권의 파렴치한 독재, 스페인 제국주의의 침탈 등의 역사를 양념으로 해서 이제 곧 우리에게도 개방될 사회주의 쿠바의 곳곳을 종횡무진 누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디렉토르 정은 자신의 기념비적인 쿠바원정기를 국내 유수의 보수일간지를 통해 연재했다고 한다. 아마 그 신문의 특성상, 작가의 뼈있는 혼잣말 같은 이야기들은 모조리 걸러지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마지막으로 쿠바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미국 출신 대문호 헤밍웨이가 간간히 등장하는 판타지 시퀀스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도 말레콘 방파제에서 카리브 바닷내음을 음미하며 즐기는 모히또 한 잔의 여유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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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사랑이다 - 로마.피렌체 In the Blue 18
백승선 지음 / 쉼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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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백승선 작가의 인 더 블루 시리즈를 재밌게 보고 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순간, 시리즈를 놓쳐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무려 18번째!). 다시 만난 인 더 블루 시리즈의 최신판은 로마 그리고 피렌체, 꽃의 도시 플로렌스라는 이름의 두 도시 이야기였다. 역시 한 번이라도 가본 곳에 대한 감상은 이런 것일까. 전자는 가봤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리고 후자는 기차표만 끊어 놓고 가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다스리며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유럽의 어느 한 도시에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그곳의 향취를 잔뜩 머금고 싶지만,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여행객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로 수박겉핡기식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명소를 찾아 부리나케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 이동. 그렇기에 백승선 작가의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보며, 아 맞아 나도 포로 로마노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었지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콜로세움 기둥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개선문과 팔라티노 언덕이 아마 저쯤인가 더듬어 보기도 했었지. 현재의 순간에 과거를 회상해 보는 기분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런 감동이었다. 베르니니의 수작, 아폴론과 다프네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왠 일인지 로마에 근 일주일간이나 머무르는 동안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정말 대리석 속에 숨겨 놓은 캐릭터들을 찾아내는 것이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들의 사명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상은 사진으로 봐도 여전히 감동으로 다가왔다. 죽어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은 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앳되다는 말이나 인체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들을 모두 뒤로 하고 비탄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대리석상을 고작 25세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 500년 동안 입어온 스위스용병의 제복을 디자인한 것도 미켈란젤로였다니 스타일은 정말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바티칸 뮤지엄에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어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라오콘>상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까지 올라가는 이야기(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당시 트로이의 제관이었던 라오콘이 신기누설로 신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게 자신과 두 명의 아들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1506년 로마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역동적인 장면은 지금 다시 사진으로 봐도 여전했다.

 

여행의 첫 번째 재미가 볼거리에 우선한다면 두 번째 볼거리는 아마도 먹거리가 아닐까. 사실 여행하면서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맛집에 가서 제대로 된 주문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엔 해외여행 블로그들이 워낙 많아져서 그럴 일도 없었지만 내가 로마에 다녀온 십년 전만 해도 그런 고급정보들은 거의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로마 수도원에서 유학하던 사촌형 덕분에 판테온 근처의 로마에서 제일 간다는 젤라또 맛은 보았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로마에 이은 다음 코스는 못가봐서 아쉬운 피렌체였다. 피렌체는 순전히 <열정과 냉정 사이>의 아오이와 준세이의 재회로 널리 알려진 두오모를 빼고는 아마도 말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으로 널리 알려진 우피치 미술관을 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게 다가왔다. 백승선 작가의 지상(紙上) 투어로 대신 만족할 수밖에.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예술가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비롯해서, 시뇨리아 광장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죽음으로 비롯된 근대 민족주의 운동과 종교 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고향답게 그의 걸작 중의 하나인 거대한 다비드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조각가들이 남긴 아름다운 조각들을 책으로 보니, 꼭 피렌체에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최근에 콜린 맥컬로의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로마를 여행했던 그 무더운 시절이 떠올랐다.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한편으로는 좋아하면서도(얼마나 더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행의 참맛은 ‘우연’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 다시 한 번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도시 로마 그리고 조각의 도시 피렌체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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