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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사랑이다 - 로마.피렌체 ㅣ In the Blue 18
백승선 지음 / 쉼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오래전부터 백승선 작가의 인 더 블루 시리즈를 재밌게 보고 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순간, 시리즈를 놓쳐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무려 18번째!). 다시 만난 인 더 블루 시리즈의 최신판은 로마 그리고 피렌체, 꽃의 도시 플로렌스라는 이름의 두 도시 이야기였다. 역시 한 번이라도 가본 곳에 대한 감상은 이런 것일까. 전자는 가봤지만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리고 후자는 기차표만 끊어 놓고 가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다스리며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유럽의 어느 한 도시에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그곳의 향취를 잔뜩 머금고 싶지만,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여행객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로 수박겉핡기식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명소를 찾아 부리나케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 이동. 그렇기에 백승선 작가의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보며, 아 맞아 나도 포로 로마노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었지 하고 공감하기도 했다. 콜로세움 기둥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개선문과 팔라티노 언덕이 아마 저쯤인가 더듬어 보기도 했었지. 현재의 순간에 과거를 회상해 보는 기분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런 감동이었다. 베르니니의 수작, 아폴론과 다프네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왠 일인지 로마에 근 일주일간이나 머무르는 동안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정말 대리석 속에 숨겨 놓은 캐릭터들을 찾아내는 것이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들의 사명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상은 사진으로 봐도 여전히 감동으로 다가왔다. 죽어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은 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앳되다는 말이나 인체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들을 모두 뒤로 하고 비탄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대리석상을 고작 25세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 500년 동안 입어온 스위스용병의 제복을 디자인한 것도 미켈란젤로였다니 스타일은 정말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바티칸 뮤지엄에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어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라오콘>상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까지 올라가는 이야기(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당시 트로이의 제관이었던 라오콘이 신기누설로 신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게 자신과 두 명의 아들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1506년 로마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역동적인 장면은 지금 다시 사진으로 봐도 여전했다.
여행의 첫 번째 재미가 볼거리에 우선한다면 두 번째 볼거리는 아마도 먹거리가 아닐까. 사실 여행하면서 그 나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맛집에 가서 제대로 된 주문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엔 해외여행 블로그들이 워낙 많아져서 그럴 일도 없었지만 내가 로마에 다녀온 십년 전만 해도 그런 고급정보들은 거의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로마 수도원에서 유학하던 사촌형 덕분에 판테온 근처의 로마에서 제일 간다는 젤라또 맛은 보았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로마에 이은 다음 코스는 못가봐서 아쉬운 피렌체였다. 피렌체는 순전히 <열정과 냉정 사이>의 아오이와 준세이의 재회로 널리 알려진 두오모를 빼고는 아마도 말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으로 널리 알려진 우피치 미술관을 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게 다가왔다. 백승선 작가의 지상(紙上) 투어로 대신 만족할 수밖에.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예술가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비롯해서, 시뇨리아 광장에서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죽음으로 비롯된 근대 민족주의 운동과 종교 개혁에 대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고향답게 그의 걸작 중의 하나인 거대한 다비드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조각가들이 남긴 아름다운 조각들을 책으로 보니, 꼭 피렌체에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최근에 콜린 맥컬로의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로마를 여행했던 그 무더운 시절이 떠올랐다.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한편으로는 좋아하면서도(얼마나 더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행의 참맛은 ‘우연’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 다시 한 번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도시 로마 그리고 조각의 도시 피렌체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