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스트 가을 호에 실린 리뷰를 보고서 장강명 작가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부터 도발적이지 않은가. 한국이 싫어서, 무슨 행동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한국이 싫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는 서울 아현동에 살며 재개발 신화를 기다리는 가정에서 세 자매와 복닥거리며 홍대를 나와, 증권회사 다니다 호주 행을 결심한다. 이유는 제목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란다.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먹고살기 힘들다, 대학 가기 힘들다, 그렇게 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21세기 한국 사회의 성공 사다리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턴 자리마저 상층부 카르텔 자녀들이 싹쓸이하는 마당에, 지잡대를 나와 내세울 것 없는 스펙을 가지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한국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암담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계나는 한국을 버리고 호주로 떠났다.

 

장강명 작가는 주인공 계나가 호주로 떠나야 하는 절실한 이유들을 아주 정교하게 설치했다. 사실 갑갑한 현실은 계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2,500만 월급쟁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다. 직장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명령에 따라야 할 때도 있고,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기도 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스트레스의 벽은 견고하기만 하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문제는 아무리 필사적인 노력을 해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나는 본능적으로 그 점을 깨닫고, 시원하게 호주 이민을 결심한다. 단돈 2,000만원을 들고 젖과 꿀이 흐를 것으로 생각되는 땅 호주에만 가면 만사형통되리라는 희망을 안고서. 과연 계나에게 호주는 그런 땅이었을까.

 

호주에 상륙하면서부터 유학생 신분이라기보다 워홀러에 가까운 그리고 그럴싸한 일자리를 잡기 위한 언어 실력조차 구비되지 않은 후진 발음으로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한 푼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셰어하우스에서 각양각색의 인종들과 뒤엉켜 사는 삶은 계나의 환상을 처절하게 박살낸다. 과연 계나가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고생을 해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물설고 낯선 호주가 그녀를 반겨 주었을까? 수많은 이민자들이 낯선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덜 쉬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고생하면서 이룬 성취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을지 나는 묻고 싶다. 어떤 점에서 보면 계나는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하고, 데이트와 문화생활을 즐기는 소중한 일상이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절대 그것을 범인(凡人)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호주에 가서도 회계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기 위해, 각고를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를 받들고 신대륙에 상륙한 그녀의 선배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바로 이 지점에서는 난 묻고 싶어졌다, 차라리 그런 노력을 한국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물론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애당초 비교 가능한 가시적 행복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랜 기간을 함께 보낸 지명이 애절하게 계나를 원해도, 계나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4년간의 천신만고 끝에 밑바닥 쉐어러에서 랜드로드 혹은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간 그녀의 삶은 미국 출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한 때의 워너비 엘리의 일탈적 행동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타인의 삶을 그렇게 망가뜨려 놓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엘리의 모습에서 서양인들의 이기적인 합리주의 정신의 본질이 언뜻 비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착취당하던 이가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그 과정이 비합법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맨 손으로 쫓겨나야했다는 설정이 공수래공수거 인생의 교훈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이미 신문 지상과 블로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호주 워홀러들의 생생한 사례가 책에 담겨 있어 궁금했는데, 책의 말미에 작가가 호주 생활을 직접 체험한 이들과 인터뷰를 통해 사례를 발굴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국이 싫어서>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십대 청춘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기 혹은 탈출기록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예리하게 저격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영어를 하지 못하는 한국 출신 워홀러들이나 다른 여타 동양인들의 처지는 도긴개긴이지만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식 인종차별주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에서 옥외에서 맥주 한 캔 마시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호주에서는 명백히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나와 제인이 신세한탄을 하며 호주 생활 초반에 음주를 하는 장면도 단순무식함에서 비롯된 사소한 위법행위였다고 했던가. 그렇게 시작된 사소한 행위들이 창대해져서 결국 계나의 호주 생활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수도 있는 그런 태풍이 될 뻔했다.

 

장강명 작가가 <한국이 싫어서>의 전개 방식을 계나가 마치 친구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선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것은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을 계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는 이런저런 체험을 해봤다네 친구라며 평범한 술자리에서 나누는 한담처럼 독자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점이 작가의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계나는 한국 사회에 부조리한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방식보다, 차라리 다른 시스템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탈출을 도모했다. 그런데 예의 시스템은 단기간의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출생과 성장 그리고 교육이라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라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계나는 한국에서도 이방인이었지만, 호주에 가서도 영원한 이방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느 시기의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귀화인이 어떻게 그 지위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그래서 계나가 아니 모든 이는 모름지기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설교로 소설의 말미를 뭉뚱그렸는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사회가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믿지 않지만, 모두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사는 사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파묻힌 거인>이 다음 주에 출간될

예정이란다. 오늘 아침에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를 ESPN 온라인 중계로 보다 말고 들춰

본 네이버 책 소식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그동안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책은 모두 민음사에

서 출간돼 왔는데 이번에는 출판사를 갈아탄 모양이다. 시공

사에서 나왔다고 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구매 결정을

내렸다. 다른 일에는 뭉기적 대는 데 이런 결정은 참 빠르다.

 

그렇지 않아도 아마존 북카트에 원서를 담아 두고서, 살까

말까 고민 하던 중이었는데 10년 만에 나왔다는 이시구로 작

가의 책이 생각보다 빨리 번역돼서 출간됐다. 그러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3월에 나왔는데 6개월만에 나온 거면

정말 빠른 거지. 물론 원서의 표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나왔지만.

 

참 이번에 알라딘에서 네이버페이 결제 방식도 허용하게 돼

서, 그동안 고이 모아 두었던 네이버페이 적립금을 사용했다.

참 세상은 빨리도 변하고, 그 변화를 쫓아가기란 쉽지 않겠

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들었다.

 

솔직히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책은 모두 구비는 해두었지

만 막상 읽은 책은 <Never Let Me Go>와 <우리가 고아였

을 때> 뿐이다. 전작은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읽어도 여전

히 좋았지만, 후자는 좀 실망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차례가 되는 대로 찬찬히 읽어볼 계획이다.

그래도 신작 <파묻힌 거인>은 좀 더 빨리 읽게 되지 않을까

나.

 

리얼리즘 계통의 전작들과 달리 이번 <파묻힌 거인>은

용가리와 기사가 등장하는 정통 판타지 로맨스에 가까운

모양이다. 시공사에서 잽싸게 미리 보기 서비스를 제공해서

초반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겠지만, 아직 책을 수중에 받아

보려면 아직도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해서 잠시 망설이고 있

는 중이다. 책 읽기에 왜 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한참

궤도에 오르려는데 미리 보기가 중단되면 다시 읽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판타지 장르를 좋아했던가? 이창래 작가에 이어

좋아하는 작가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올리기 위해서는 그의

전작을 모두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어쨌든 이번 추석 때 읽을 책 걱정은 없어서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의딸 2015-09-1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시구로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저는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빼고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은 다 읽었어요. 그중에서는 <남아있는 나날>이 가장 좋았어요. 물론 <나를 보내지마>도 좋았구요. 반면에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손이 가질 않더군요. 왠지 읽고싶지 않은...^^
<파묻힌 거인>은 좀 기대가 되네요. 추석 지나고 올려주실 리뷰도 기대할께요.

레삭매냐 2015-09-17 14:51   좋아요 0 | URL
지금 읽고 있는 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
부터 시작해서 <소호의 달>, <숨바꼭질> 등등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해서 과연 추석 기간 동안 이시
구로 선생 책을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참... 아쉽더라구요.
 
봄을 잃다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
하창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아리 작가의 <미인도>를 읽고 나서 바로 하창수 작가의 <봄을 잃다>를 읽기 시작했다. 로망 컬렉션 시리즈는 언어유희로 나를 헷갈리게 만드나 보다. 전자가 그림에 대한 착각이었다면, 후자는 계절 이름이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 유몽인이 실종된 아니 사라진 나어린 연인을 찾는 데서 연유한 제목 이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젊음을 잃어버린 중년 남자가 꽃다운 시절을 회상하는, 혹은 이십년이나 같이 산 수학교사 박신혜와 쿨하게 이혼하고 새로 생긴 여자를 찾아 헤매는 그런.

 

초반에 젊은 애인 김봄을 잃어버리고, 대뜸 전처에게 전화를 거는 주인공 유몽인에 대해 알 수 없는 적개심이 타올랐다. 이거 미친 놈 아닌가. 그냥 동성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전처에게 전화를 한 걸까. 알 수가 없다. 유몽인이 매달리는 전화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괴로운 장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서 자신의 괴로움을 덜겠다는 이기적인 그의 탈출구처럼 보인다. 20년을 같이 산 와이프에게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꼴랑 얼마 살지 않은 어린 연인에게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어느 순간, 봄을 다시 찾아도 그에게 남은 애정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서걱거리기 시작한다.

 

하창수 작가는 봄을 찾는 주인공 꿈꾸는 아저씨 혹은 호랑이꿈 뭐라고 불러도 좋을 남자의 이야기에 몇 가지 층위를 더한다. 우연히 탄 택시 기사가 사진 전문가나 알 법한 하셀브라드를 안다거나, 미국 뉴저지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급거 귀국한 오랜 친구 박선규와 그의 형수에 얽힌 이야기, 선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찍고 현상과 인화를 맡기러 간 디피점에서 일하는 남자와 새벽녘에 돼지갈비를 뜯은 일 등 범상치 않은 일들이 20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에 연달아 일어난다. 먹고 자는 동안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사랑은 흔적을 지우고,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어찌 어찌 수배해서 만난 애인은 그가 도저히 답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동안의 정을 떼려는 듯 돼지라는 비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찾은 봄이 예전에 그가 알던 그 여자란 말인가. 불과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취향과 입맛까지 모조리 바꾼 것 같은 여자 봄은 몽인에게 필연적으로 각성을 요구한다. 물론 그가 각성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만, 주인공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이로다.

 

사진이라는 매체로 물리적 기억을 더듬는 작가라는 양반이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사라지는 순간에 연연하는 장면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어쩌면 주인공은 연인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과거의 빛나는 순간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그의 추레한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선규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나와 우연히 만난 노숙자들의 주사위 게임을 통해 거의 득도에 이른다는 설정은 낯설게 다가왔다.

 

주인공 몽인의 말처럼, 인생이 그가 생각하는 수학처럼 매사에 답이 있다면 그 정답대로 살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리수만이 오직 진리라고 생각한 피타고라스가 역설적으로 무리수란 존재를 밝혀낸 것처럼, 우리네 삶은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인도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5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아리 작가의 책은 이번 <미인도>가 처음이다. 나무옆의자 출판사에서 이번에 로맨스 소설, 장르 소설 부활의 신호탄으로 로망 컬렉션 시리즈로 5편의 소설을 내놓았는데 그 중에 다섯 번째 작품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한국 문학의 위기 타령을 해대는데, 이렇게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 주는 작가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학도 하나의 소비재라고 한다면, 독자라는 소비자가 작가들이 생산해 내는 책들을 꾸준히 읽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건 또다른 문제겠지만.

 

<미인도>를 처음 보면서, 미인 그림[畵]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미인들이 사는 섬[島]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인도> 바로 전에 읽은 <빨간구두당>처럼 기존 서사의 패러디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시작된다. 황종민이라는 이름의 이십대 젊은이가 늙은이 모습을 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그의 친구를 자처하는 또다른 늙은이가 단돈 4,000원이 없어 무전취식 대신 귀가 솔깃해질 만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해장국집 주인장을 꼬신다. <미인도>의 화자는 박성우라는 이십대 남자로 자신을 대낮에 길에서 횡사한 황종민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시사철 봄날씨로 화창하고,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으며 여인들이 사는 환상의 섬을 다녀온 이들은 미인도라고 부른단다. 춘화를 수집하는 어느 노교수의 집을 지키는 아르바이트를 한 내력으로부터 시작해서(이것이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다), 어느 날 스키장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임사체험을 하다 깨어 보니 미인도에 도착해 있더라는 말이다. 현실계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솜씨가 아주 그럴싸하다.

 

전술한 대로, 미인도는 사시사철 날이 좋고 무릉도원 같은 곳인데다가 여인들이 사는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현실세계를 택하는 남자들이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승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까. 작가는 소설의 갈등요소로 남녀 간의 치정을 부각시킨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미인도를 지배하는 구질서의 주인공 수영 아씨와 그녀의 권력에 도전하는 가희와 그녀의 추종자들 간의 권력 다툼 정도로 해둘까. 기묘한 점으로는 힘이 드는 허드렛일을 하는 남자 소경들이 있다는 점과 숲에 사는 할망구라 불리는 나이든 사람들이 있다는 점 정도라고나 할까. 다른 남자들 서넛 있지만, 여인네들과 지내는 낙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성우는 자신의 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이 섬에 사는 월화라고 생각하고 정념을 불태운다. 문제는 그녀를 선점한 현세의 친구 황종민이라는 존재다. 월화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수영 아씨의 권위에 도전하는 가희와 연합전선을 펴는 성우, 필연적으로 섬의 질서를 위협하는 갈등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미인도에 성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네들은 기존의 질서대로 잘 살았을까? 기존의 질서는 모름지기 시대가 바뀌면 전복되기 마련이 아닌가. 소설이 그리는 삶의 진실은 손에 닿을 듯 말듯 긴장을 고조시킨다. 물론 대단원에 가서는 모든 해답이 드러나게 되어 있지만.

 

무릉도원에 가서 며칠 보내다 현실 세계에 왔더니, 수십 년이 지났다는 서사의 기본 얼개는 여전히 유효하다. 순간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라는 경고일까.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다. 그런 고지식한 충고보다는 펄펄 뛰는 날것 그대로의 욕망에 대한 전아리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이야기들의 아귀를 척척 맞아 떨어지게 그렇게 설계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 <미인도>는 그렇게 내게 어느 가을날의 추억으로 잦아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구병모 작가의 이름만 보고 그가 남자라고 생각했다. 무슨 상관이랴, 책 쓰는 데 있어 남자 작가인지 아니면 여자 작가인지. 사실 이번에 어디서 들어본 서사 혹은 동화들을 다룬 소설집을 구병모 작가가 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적잖은 걱정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 꼽으려 했던 최제훈 작가가 <나비잠>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 기억이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구병모 작가의 신작을 게걸스럽게 읽으면서 든 생각은 판단유보라고나 할까.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이야기는 <카이사르의 순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유명한 성경구절을 필두로 삼은 이야기는 엄청나게 큰 순무를 경작하게 된 농부의 이야기다. 그냥 순무라면 아무 이상이 없겠지만,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한 은근한 응징의 서사가 숨어 있다. 고래로 모든 터부와 약속들은 깨지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깨지지 않은 터부와 약속은 서사의 기본 구조에 역행한다고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어찌어찌해서 얻은 순무를 황제에게 공납할 세금 대신 퉁치려는 얄팍한 수를 부렸던 농부 일가의 비극은 정체불명의 거한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순간부터 잉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에 덧붙여서 남동생을 버린 소녀의 행위 역시 독자의 양심을 건드린다. 살기 위해 정신없이 숲으로(여기서 숲이란 무언가 상실하기 위한 아주 적절한 장소로 등장한다) 도망치는 도중에 동생의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마을에 도착한 소녀는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아무도 예언을 듣지 않았던 카산드라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소녀의 예시를 듣지 않은 소녀 부모들 역시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구병모 작가가 풀어 놓은 동화 혹은 서사 비틀기는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교하게 붙어 있기도 하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의 현대판 자본주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갑소녀전>을 보자.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좇아, 그리고 당장의 추위와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거리에서 죽은 시신에서 신발을 벗겨내어 신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에 놓인 화갑소녀는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화광 공장을 찾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화광 공장은 확실히 안락하지만, 서서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할 정도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전자회사의 반도체공장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가. 사람이 공장에서 사용되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판타지는 어쩌면 그렇게 현실을 닮았는지. 모두가 생존을 위한 재화를 획득하고 소모하기 위해(소모의 악순환이라고 해야 할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지만, 코너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운명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돌아가는 사회의 법칙이 조금이라도 개선될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직진할 따름이라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다.

 

왜 여성은 자존감을 가지고, 존재에 대해 물으면 안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도발적인 대답이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에 들어 있다. 시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의 기본이 아닌가. 남녀 동등한 권리가 보장된 21세기라고 하지만, 사회의 여전한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집안일을 배워 장차 참한 신부가 되라는 전래의 위선적 정언명령을 전면으로 거부한 농부의 딸이자 현학가 엘제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남편이 촘촘히 짠 그물이다. 단순함과 현실안주를 추구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런 복잡한 논쟁과 토론은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지만, 엘제의 논리는 명징하고 거부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그런 말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남편의 방법은 폭력적일 수밖에(그물씌우기) 없다. 비겁한 남편은 장인인 엘제의 아버지에게 받은 결혼지참금이라는 조건 때문에 엘제를 처가로 돌려보내는 것도 거부한다. 생활을 풍족하게 만들어줄 결혼지참금 때문에 이혼을 거부한 남편은 노동 대신 한 줄의 독서를 선택한 아내 엘제를 가혹하게 응징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이런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엘제의 탈출 방법은 스스로 녹아 사라지는 것일 수밖에.

 

수상쩍은 풋내기 의사의 비밀을 다룬 <헤르메스의 붕대>는 또 어떠한가. 어디서 본 듯한 서사는 그렇게 반복된다. 일단 이 서사에서 기본 갈등은 마을의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토박이 의사와 도시에서 산전수전 다 경험한 젊은 의사 혹은 수련의의 갈등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잘 나가던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촉망 받던 대학생활을 접고, 나무꾼 생활을 하다가 어찌어찌해서 다시 일어서서 의과 대학을 다니던 젊은이가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마을을 찾는다는 설정부터가 알력과 갈등을 예고한다. 의외에도 이 젊은이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사실에 기득권을 대표하는 선수로 등장한 늙은 의사는 위기를 느낀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구조다. 그렇다면, 늙은 의사가 알 수 없는, 마을 사람 모두가 칭송해 마지않는 젊은 의사의 뛰어난 의술의 비결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로 서사는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젊은 의사가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제목인 상징하는 의술의 신 헤르메스가 준 더럽고 낡은 붕대가 바로 비밀이다. 대부분의 서사 구조에 등장하는 의외의 횡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는 주인공과 달리, 젊은 의사는 점진적으로 자신이 얻은 횡재를 사용하는 현명함을 보여준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그의 평생을 책임져줄 비법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덕분에 아니면 늙은 의사의 부질없는 오지랖 때문에 모든 것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다. 과연 마을을 떠난 그 젊은 의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병모 작가가 다룬 8편의 판타지는 모티프로 삼은 기존의 동화와는 확실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현실과 판타지의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며, 짜내린 이야기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무의식이 의식의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우리가 꿈꾸는 판타지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구병모 작가 이야기의 행간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롯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찾아낸 이야기는 조각에 불과하겠지 아마. 글쓰기가 작가의 몫이라면, 행간을 읽어내는 건 언제나 그렇듯 독자의 몫이겠다.

 

[리딩데이트] 2015년 9월 12일~13일 오전 10시 10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