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잃다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
하창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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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 작가의 <미인도>를 읽고 나서 바로 하창수 작가의 <봄을 잃다>를 읽기 시작했다. 로망 컬렉션 시리즈는 언어유희로 나를 헷갈리게 만드나 보다. 전자가 그림에 대한 착각이었다면, 후자는 계절 이름이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 유몽인이 실종된 아니 사라진 나어린 연인을 찾는 데서 연유한 제목 이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젊음을 잃어버린 중년 남자가 꽃다운 시절을 회상하는, 혹은 이십년이나 같이 산 수학교사 박신혜와 쿨하게 이혼하고 새로 생긴 여자를 찾아 헤매는 그런.

 

초반에 젊은 애인 김봄을 잃어버리고, 대뜸 전처에게 전화를 거는 주인공 유몽인에 대해 알 수 없는 적개심이 타올랐다. 이거 미친 놈 아닌가. 그냥 동성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전처에게 전화를 한 걸까. 알 수가 없다. 유몽인이 매달리는 전화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괴로운 장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서 자신의 괴로움을 덜겠다는 이기적인 그의 탈출구처럼 보인다. 20년을 같이 산 와이프에게는 그렇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꼴랑 얼마 살지 않은 어린 연인에게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어느 순간, 봄을 다시 찾아도 그에게 남은 애정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서걱거리기 시작한다.

 

하창수 작가는 봄을 찾는 주인공 꿈꾸는 아저씨 혹은 호랑이꿈 뭐라고 불러도 좋을 남자의 이야기에 몇 가지 층위를 더한다. 우연히 탄 택시 기사가 사진 전문가나 알 법한 하셀브라드를 안다거나, 미국 뉴저지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급거 귀국한 오랜 친구 박선규와 그의 형수에 얽힌 이야기, 선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찍고 현상과 인화를 맡기러 간 디피점에서 일하는 남자와 새벽녘에 돼지갈비를 뜯은 일 등 범상치 않은 일들이 20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에 연달아 일어난다. 먹고 자는 동안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사랑은 흔적을 지우고,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어찌 어찌 수배해서 만난 애인은 그가 도저히 답할 수 없는 선문답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동안의 정을 떼려는 듯 돼지라는 비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찾은 봄이 예전에 그가 알던 그 여자란 말인가. 불과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취향과 입맛까지 모조리 바꾼 것 같은 여자 봄은 몽인에게 필연적으로 각성을 요구한다. 물론 그가 각성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만, 주인공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이로다.

 

사진이라는 매체로 물리적 기억을 더듬는 작가라는 양반이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사라지는 순간에 연연하는 장면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어쩌면 주인공은 연인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과거의 빛나는 순간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그의 추레한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선규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나와 우연히 만난 노숙자들의 주사위 게임을 통해 거의 득도에 이른다는 설정은 낯설게 다가왔다.

 

주인공 몽인의 말처럼, 인생이 그가 생각하는 수학처럼 매사에 답이 있다면 그 정답대로 살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리수만이 오직 진리라고 생각한 피타고라스가 역설적으로 무리수란 존재를 밝혀낸 것처럼, 우리네 삶은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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