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5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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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 작가의 책은 이번 <미인도>가 처음이다. 나무옆의자 출판사에서 이번에 로맨스 소설, 장르 소설 부활의 신호탄으로 로망 컬렉션 시리즈로 5편의 소설을 내놓았는데 그 중에 다섯 번째 작품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한국 문학의 위기 타령을 해대는데, 이렇게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 주는 작가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학도 하나의 소비재라고 한다면, 독자라는 소비자가 작가들이 생산해 내는 책들을 꾸준히 읽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건 또다른 문제겠지만.

 

<미인도>를 처음 보면서, 미인 그림[畵]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미인들이 사는 섬[島]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인도> 바로 전에 읽은 <빨간구두당>처럼 기존 서사의 패러디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시작된다. 황종민이라는 이름의 이십대 젊은이가 늙은이 모습을 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그의 친구를 자처하는 또다른 늙은이가 단돈 4,000원이 없어 무전취식 대신 귀가 솔깃해질 만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해장국집 주인장을 꼬신다. <미인도>의 화자는 박성우라는 이십대 남자로 자신을 대낮에 길에서 횡사한 황종민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시사철 봄날씨로 화창하고, 먹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으며 여인들이 사는 환상의 섬을 다녀온 이들은 미인도라고 부른단다. 춘화를 수집하는 어느 노교수의 집을 지키는 아르바이트를 한 내력으로부터 시작해서(이것이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다), 어느 날 스키장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임사체험을 하다 깨어 보니 미인도에 도착해 있더라는 말이다. 현실계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솜씨가 아주 그럴싸하다.

 

전술한 대로, 미인도는 사시사철 날이 좋고 무릉도원 같은 곳인데다가 여인들이 사는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두고 현실세계를 택하는 남자들이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승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까. 작가는 소설의 갈등요소로 남녀 간의 치정을 부각시킨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미인도를 지배하는 구질서의 주인공 수영 아씨와 그녀의 권력에 도전하는 가희와 그녀의 추종자들 간의 권력 다툼 정도로 해둘까. 기묘한 점으로는 힘이 드는 허드렛일을 하는 남자 소경들이 있다는 점과 숲에 사는 할망구라 불리는 나이든 사람들이 있다는 점 정도라고나 할까. 다른 남자들 서넛 있지만, 여인네들과 지내는 낙에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성우는 자신의 꿈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묘령의 여인이 섬에 사는 월화라고 생각하고 정념을 불태운다. 문제는 그녀를 선점한 현세의 친구 황종민이라는 존재다. 월화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수영 아씨의 권위에 도전하는 가희와 연합전선을 펴는 성우, 필연적으로 섬의 질서를 위협하는 갈등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미인도에 성우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네들은 기존의 질서대로 잘 살았을까? 기존의 질서는 모름지기 시대가 바뀌면 전복되기 마련이 아닌가. 소설이 그리는 삶의 진실은 손에 닿을 듯 말듯 긴장을 고조시킨다. 물론 대단원에 가서는 모든 해답이 드러나게 되어 있지만.

 

무릉도원에 가서 며칠 보내다 현실 세계에 왔더니, 수십 년이 지났다는 서사의 기본 얼개는 여전히 유효하다. 순간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들에게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라는 경고일까. 우리는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다. 그런 고지식한 충고보다는 펄펄 뛰는 날것 그대로의 욕망에 대한 전아리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이야기들의 아귀를 척척 맞아 떨어지게 그렇게 설계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 <미인도>는 그렇게 내게 어느 가을날의 추억으로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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