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밴디 리 엮음, 정지인.이은진 옮김 / 심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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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의 분위기가 물씬 무르익고 있는 중이다. 정전협상을 평화협상으로 바꾸어 영구적인 평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 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방국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원하는 어느 이웃국가인 일본은 현재 패싱 위기에 직면해 있는 중이다.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덕담은커녕 내정간섭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지도자는 정말 밥맛이다. 또 강력한 우방국인 미국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

 

부동산 재벌 출신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 첨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또 무슨 미국스러운 일인가 싶었는데 그가 쟁쟁한 공화당 후보들을 제치고 공화당 대선후보의 자리에 올라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하게 되자 이러다 진짜 대통령이 되는 거 아냐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503호나 716호처럼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가 대통령이 될 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식인 계층에서도 널리 퍼졌던 모양이다. 우려가 현실이 되자 27명의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27편의 에세이를 펴내기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는 그런 결과의 집대성이다.

 

한국계 출신 밴디 리는 트럼프 당선 직후, 명백해 보이는 당선인의 정신적 불안정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권력자가 명백하게 정신적 장애징후를 보여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할 때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이른바 골드워터 규칙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는데, 연예인과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 경조증을 언급해서 의학회에서 제명되었다. 아마 책을 내면서 변호사들의 조언을 받았겠지만 결론은 도널드 트럼프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이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 문제가 걸린 대통령직이라는 막대한 권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아울러 공공의 정신 건강의 증진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 정가를 강타한 트럼프의 섹스 스캔들은 그가 가진 나르시스트로서의 자기성애적인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활발한 SNS 활동을 하면서도 왜 섹스 스캔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책에 의하면 그는 극단적 쾌락주의자로서 자신에게 유리한 가짜 뉴스들을 칭송하고, 불리한 진짜 뉴스에 대해서는 가짜 뉴스라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트럼프 시대에 우리는 과연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예전에 빌 클린턴이 전 미국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이 그의 섹스 스캔들이 아니라,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현대판 양치기 아저씨, 나르시스트의 경우에는 시민들이 그의 거짓말에 면역이 되어 버린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강화되는 편집증, 판단력 저하 그리고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신뢰의 결여로 트럼프를 대통령을 만든 이들조차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에게 그의 변덕이 두려운 사실은 취임 4개월 동안 러시아 스캔들로 비화된 내부의 공격을 외부로 향하게 하기 위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여름, 한창 북한을 상대로 한 전쟁 위기설에 우리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생각해 본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또다른 곳에서는 그의 소시오패시적인 성격에 대해 심층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다시 한 번 골드워터 규칙을 적용해서, 저술에 참가한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상대로 직접적인 진단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책에 소개된 진단들은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가정 혹은 가설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북한을 상대로 냉온탕을 오가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십대 이래 계속된 반복된 거짓말, 자신이 한 말조차 지키지 않는 일관된 무책임성과 충동성 같은 케이스가 위에서 언급된 가설을 지지해 준다.

 

미국의 국내 문제를 돌아보면,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창하며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포를 들으면서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왜 그동안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창조하면서 기존의 브레턴우즈 질서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미국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그래온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팍스 아메리카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경찰국가로서의 위상 역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있는 중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자신이다. 주변의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독불장군식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다시 한 번 자극해서, 올해 가을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자신과 공화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진 모르겠지만 추락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위신은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자신에게 불리하게 조성된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기존의 잘못된 정책과 거짓말들을 반복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이지 않는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예스맨으로 내각과 백악관을 채우고, 권력 남용 그리고 성공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장면은 어쩌면 그렇게 지금은 감옥에 가 계신 716호와 똑같은지 모르겠다. 어쩌면 물건너 이웃나라 대통령에 대한 글을 읽어볼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의 케이스를 조명해 보는 게 훨씬 나은 게 아닐까. 그들이 천조국으로 떠받드는 명백한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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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4-02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뉴스공장에도 출연한 심리학자의 책인 것 같네요... 트럼프는 예능에서는 높은 인기를 끌었지만, 정치까지 나와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8-04-02 09:13   좋아요 1 | URL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예능에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게 아닐까요.

물론 일반 대중의 슈퍼엘리트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반감도 한 몫 했겠지만 말입니다.
힐러리는 우리로 치면 716호처럼 시장에 가서
국밥이라도 먹는 쇼를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토니 모리슨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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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니 모리슨과 존 쿳시의 책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이 달에만 이 두 작가의 책을 5권 읽었다. 한 권씩 번갈아 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주에 우연히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사다가 읽었다. 사실 그동안 토니 모리슨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지 않아 그녀의 스타일이며, 주제 의식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3월에 <술라>와 <하나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를 읽으면서 감을 잡았다.

 

소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는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의 시선에서 내러티브가 진행된다. 우선 브라이드(룰라 앤)에 대한 이야기부터. 예전에 검다는 것이 아주 나쁘다는 사회적 인식에 사로 잡혔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악랄했던 인신매매를 행했던 노예제를 거쳐, 1960-70년대 치열한 인권운동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기도 했다. 브라이드의 엄마 스윗니스는 딸의 검은 피부색에 경악한다. 어미로서 제 할 일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은 듬뿍 나눠주지 못했다. 훗날 실비아 주식회사의 유능한 지역 매니저로 성공한 브라이드에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스윗니스라고 부르는 그런 트라우마의 시작이었다. 엄마에게 천대받은 검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녀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

 

그런 브라이드에게는 브루클린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여자친구가 있다. 브라이드의 성공을 시샘하면서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브라이드가 자신이 15년 전에 법정에서 한 거짓 증언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소피아 헉슬리가 출소하는 날, 그녀를 찾아가 그녀를 돕겠다고 했다가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을 때 곁에서 자신을 도와준 이가 드레드 머리의 백인 친구 브루클린이었지. 한 사람에게서 선과 악 두 가지를 모두 보는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엄마에게 느끼지 못한 애정결핍을 브라이드는 성공과 숱하게 자신을 이용해 먹는 남자친구들에게서 찾았다. 모두가 오고 가는 가운데, 한 명만을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의 이름은 부커 스타번. 소설에 후반에 가서 부커가 브라이드를 떠난 진짜 이유가 드러나게 되는데, 우리 모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비밀들을 가지고 있고 그런 비밀들이 주는 내적 상처로부터 치유받아야 한다는 말을 토니 모리슨은 조용하게 들려 주기 시작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소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에서 토니 모리슨은 브라이드/룰라 앤과 부커 스타번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들이 가진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감성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소설에서 브라이드는 멋진 재규어를 타고, 자신을 매몰차게 걷어차 버린 부커의 행적을 쫓아 나서지 않던가. 물론 그런 구도의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교통사고로 육체가 형편없이 부서진 브라이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히피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부커는 또 어떤가. 어린 시절, 형인 애덤을 추악한 범죄자에게 희생당하고 평생 형의 죽음이 드리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트럼펫에 전념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 결과 노예제도, 린치, 시민권, 인종주의 그리고 흑인혁명에 이르는 모든 문제의 핵심은 돈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무언가 기대해 보았지만, 매스 미디어에서는 온통 무의미해 보이는 오락만 제공할 뿐이었다. 부커가 원하는 유익한 통찰과 지식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두 개의 학위를 가진 거리의 음악가이자 철학자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브라이드를 만나 운명적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불투명한 미래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결말 부근에 이르러 브라이드의 임신과 화상으로 죽은 올리베 고모를 정성으로 간호하는 동안 되살아난 연인관계의 회생은 솔직히 낯설게 다가왔다. 뭐랄까, 개인적으로 화끈한 한 방을 원했었나 보다. 토니 모리슨 작가의 스타일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어쨌든 모든 관계에 있어, 회복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진실이다. 장황하고 구구절절한 이유보다, 진심이 담긴 한 장의 편지가 더 위력적이지 않은가라고 토니 모리슨은 거장의 실력으로 증명해 보인다.

 

내가 다음에 읽을 토니 모리슨의 책은 <재즈>다. 예전에 들녘에서 나온 책도 있고, 새로 나온 책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만난 토니 모리슨의 책인 <자비>는 읽기만 하고 리뷰를 쓰지 않았네.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리뷰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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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 지음, 조규형 옮김 / 책세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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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존 쿳시의 네 번째 작품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문학적으로 패러디한 <포>였다. 그런데 내가 <로빈슨 크루소>를 읽었던가? 아마도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 만나지 않았나 싶다. 외딴 섬에 표류하게 돼서, 28년인가를 홀로 산 영국 출신의 크루소. 그의 곁에는 식인종들에게서 구해낸 프라이데이가 있었다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쿳시 작가가 새롭게 쓴 <포>에는 좀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소설의 중요한 화자로 등장하는 수전 바턴이다. 딸아이를 찾아 신대륙 브라질의 바이아까지 먼 길을 나선 수전은 고향인 잉글랜드로 돌아가는 길에 선상반란을 만나 크루소와 프라이데이가 사는 섬에 표류하게 된다. 섬의 절대군주라고 할 수 있는 크루소는 모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유일한 동료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데이와 소통을 위한 언어를 가르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하긴, 크루소의 말에 의하면 노예상인에게 혀를 잘린 프라이데이는 기본적인 대화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된 섬에서 밭뙈기를 일구며 간간이 찾아오는 열병을 앓던 크루소는 드디어 구조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 수전 역시 환영했지만 크루소는 결국 고향으로 향하는 뱃길에서 그만 죽고 만다. 프라이데이와 잉글랜드에 도착한 수전 바턴은 자신과 크루소의 표류기를 쓰려고 마음 먹는다. 근대의 여명기에 문명인으로서 왜 크루소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지 그녀는 궁금해 한다. 어떤 책에서 보니, 크루소야 말로 제국주의 시대 혹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 첨병이라는 비판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인 다니엘 디포 역시 그런 취지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쓰지 않았나 하는 추정에 대해 적잖이 공감이 갔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던 영국인들은 바닷길을 이용해서, 새로운 시장과 원료공급지를 해외 식민지에서 찾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세계를 자아와 타자로 구분했고, 고대 그리스 시대의 헬라인들처럼 나머지 세계인을 바바리안(야만인) 취급을 했다. 소설의 후반에 등장하는 포와 수전과의 대화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수전 바턴은 현대 페미니스트 같은 모습으로 노예 같은 처지에 처한 프라이데이에게도 자유와 욕망이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 반대에 서 있는 포는 수전의 성화 때문에 마지못해 프라이데이에게 문자를 가르치기 시작하지만, 야만인에게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며 묻는다. 오히려 그런 수전의 강요야말로 프라이데이를 피곤하게 만드는 거라고 주장한다. 이 둘의 대화를 보면서 어쩌면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문자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타자에 의한 행복 추구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다.

 

사실 길지 않은 분량의 내용이고, 로빈슨 크루소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을 차용해서 새로운 스타일의 그야말로 논쟁적인 주제를 존 쿳시는 <포>에서 다루고 있다. 그가 성장한 남아프리카의 인종주의 현실도 역시 빠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래 주인들이었던 흑인들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토지와 권력을 소유한 외지에서 도래한 백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장면이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포류해서 군주 노릇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역사는 수없이 반복된다고,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플리머스에 상륙한 영국 청교도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그를 창조한 다니엘 디포에게 무슨 보시하듯 관계하는 수전 바턴의 모습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녀의 주장대로 자유롭기에 욕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이름의 소녀가 등장해서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포는 소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그런 장치를 만들어 냈다는 것인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독자는 혼란에 빠져든다. 사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존 쿳시의 작품과 다른 결 때문인지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에 재출간된 도끼 선생의 일화를 다룬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존 쿳시 작가의 설렉션들이 잇달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일단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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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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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아름다운 흉기>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작가의 책이었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는 순간,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도무지 그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야마나카 호수 근처의 별장지대. 센도 고레노리와 그녀(타란툴라)의 은밀한 트레이닝은, 4명의 침입자들의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잡히면서 중단된다. 그리고 옛 동지들(?)로 자신들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센도의 주거지에 불법침입을 해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찾는 히우라 유스케, 사쿠라 쇼코, 니와 준야 그리고 안조 다쿠마. 결국 불의의 사고로 센도는 쇼코가 쏜 총에 살해되고, 일행은 증거를 남기지 않고 강도의 소행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방화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창고처럼 보이는 트레이닝 시설에서 이 모든 과정을 보고 있던 ‘그녀’는 복수를 다짐한다.

 

자, 이제부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도록 개조된 걸작인간의 추격과 복수가 시작된다. 역시 이공계 엔지니어 출신답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격이라는 전형적인 구성을 재배열하면서 도망치는 도핑 4인방과 그들의 뒤를 쫓는 타란툴라 그리고 뒷북치는 무기력한 경찰들의 모습을 차례로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다. 물론 곳곳에서 후반에 등장하게 될 교묘한 반전들을 위한 암시들을 잠복시킨 채 말이다.

 

스테로이드와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신소재 약물들이 기록경기인 스포츠계를 타락시키면서부터, 공정한 경쟁이라는 스포츠 최대의 덕목은 더 이상 유효한 개념성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경쟁에서 자신의 열등감은 상대방이 반드시 약물을 했으리라는 확신과 더불어 자신의 도핑을 정당화시키는 방법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 점이 소설 <아름다운 흉기>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도핑 4인방들은(이미 죽은 오가사와라는 제외하자) 자신들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자신들의 치부들을 영원히 지우려고 한다.

 

이런 무리수들은 센도의 살인이라는 극단으로 치닫고, 센도가 애지중지하던 걸작인간 타란툴라는 센도의 복수에 나서게 된다는 원형의 순환적인 구조를 불러온다. 게다가 타란툴라는 보통 인간이 아닌 개조된 신체적으로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가 듀오를 맡아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리썰 웨폰(lethal weapon)" 시리즈의 제목이 떠올랐다. 아마 이 말만큼 <아름다운 흉기>의 추격자에 적합한 표현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활보하는 도쿄라는 공간은 외국인에 장신이라는 남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장해 준다. 그 공간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지도를 사고, 음식을 사먹고, 택시를 타면서 태연하게 먹잇감을 노린다. 그녀에게 대도시 도쿄는 완벽한 은신을 제공해 주는 철저한 익명의 공간으로 전개된다. 하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공간적 장치들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급박한 긴장감을 한껏 조여 온다.

 

타란툴라라고 명명한 ‘아름다운 흉기’ 역의 그녀는 중세 이래 억눌려온 왜곡된 여성성의 현현처럼 느껴졌다. 이 타란툴라라는 거미는 거미류 중에서 가장 크고, 또 특이하게도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잡는 일반적인 거미들의 특성을 따르지 않고, 사냥감을 덮쳐서 잡아먹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흉기>에서 보여주는 팜므 파탈적인 ‘그녀’의 공격성 그대로다. 일설에 의하면 이 거미에 물리게 되면 정신착란 증세에 빠지게 된다고 하는데, 후반에 등장하는 최고의 반전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경탄할만한 아이디어의 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에 발표된 <아름다운 흉기>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황하지 않고 짤막짤막한 문장 구성으로, 긴장의 완급을 조정해 가면서 살인과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합에 서스펜스를 덧붙여서 추격과 도주의 이중주를 멋지게 빚어내는데 성공했다.

I can't stop reading this 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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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3-27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가 참 자주 바뀌네요. 인기가 많은가봐요. 여튼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8-03-27 15:55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그런데 표지가 갈수록 더 소설에 맞게
진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토니 모리슨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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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서점에서 사서 바로 읽고 있는 중입니다. 토니 모리슨의 절판된 책들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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