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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토니 모리슨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평점 :

요즘 토니 모리슨과 존 쿳시의 책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이 달에만 이 두 작가의 책을 5권 읽었다. 한 권씩 번갈아 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주에 우연히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사다가 읽었다. 사실 그동안 토니 모리슨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지 않아 그녀의 스타일이며, 주제 의식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3월에 <술라>와 <하나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를 읽으면서 감을 잡았다.
소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는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의 시선에서 내러티브가 진행된다. 우선 브라이드(룰라 앤)에 대한 이야기부터. 예전에 검다는 것이 아주 나쁘다는 사회적 인식에 사로 잡혔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악랄했던 인신매매를 행했던 노예제를 거쳐, 1960-70년대 치열한 인권운동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기도 했다. 브라이드의 엄마 스윗니스는 딸의 검은 피부색에 경악한다. 어미로서 제 할 일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은 듬뿍 나눠주지 못했다. 훗날 실비아 주식회사의 유능한 지역 매니저로 성공한 브라이드에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스윗니스라고 부르는 그런 트라우마의 시작이었다. 엄마에게 천대받은 검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녀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
그런 브라이드에게는 브루클린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여자친구가 있다. 브라이드의 성공을 시샘하면서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브라이드가 자신이 15년 전에 법정에서 한 거짓 증언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소피아 헉슬리가 출소하는 날, 그녀를 찾아가 그녀를 돕겠다고 했다가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을 때 곁에서 자신을 도와준 이가 드레드 머리의 백인 친구 브루클린이었지. 한 사람에게서 선과 악 두 가지를 모두 보는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엄마에게 느끼지 못한 애정결핍을 브라이드는 성공과 숱하게 자신을 이용해 먹는 남자친구들에게서 찾았다. 모두가 오고 가는 가운데, 한 명만을 그녀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의 이름은 부커 스타번. 소설에 후반에 가서 부커가 브라이드를 떠난 진짜 이유가 드러나게 되는데, 우리 모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비밀들을 가지고 있고 그런 비밀들이 주는 내적 상처로부터 치유받아야 한다는 말을 토니 모리슨은 조용하게 들려 주기 시작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소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에서 토니 모리슨은 브라이드/룰라 앤과 부커 스타번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들이 가진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감성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소설에서 브라이드는 멋진 재규어를 타고, 자신을 매몰차게 걷어차 버린 부커의 행적을 쫓아 나서지 않던가. 물론 그런 구도의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교통사고로 육체가 형편없이 부서진 브라이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히피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부커는 또 어떤가. 어린 시절, 형인 애덤을 추악한 범죄자에게 희생당하고 평생 형의 죽음이 드리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트럼펫에 전념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 결과 노예제도, 린치, 시민권, 인종주의 그리고 흑인혁명에 이르는 모든 문제의 핵심은 돈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무언가 기대해 보았지만, 매스 미디어에서는 온통 무의미해 보이는 오락만 제공할 뿐이었다. 부커가 원하는 유익한 통찰과 지식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두 개의 학위를 가진 거리의 음악가이자 철학자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브라이드를 만나 운명적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불투명한 미래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결말 부근에 이르러 브라이드의 임신과 화상으로 죽은 올리베 고모를 정성으로 간호하는 동안 되살아난 연인관계의 회생은 솔직히 낯설게 다가왔다. 뭐랄까, 개인적으로 화끈한 한 방을 원했었나 보다. 토니 모리슨 작가의 스타일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어쨌든 모든 관계에 있어, 회복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진실이다. 장황하고 구구절절한 이유보다, 진심이 담긴 한 장의 편지가 더 위력적이지 않은가라고 토니 모리슨은 거장의 실력으로 증명해 보인다.
내가 다음에 읽을 토니 모리슨의 책은 <재즈>다. 예전에 들녘에서 나온 책도 있고, 새로 나온 책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만난 토니 모리슨의 책인 <자비>는 읽기만 하고 리뷰를 쓰지 않았네.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리뷰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