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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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아름다운 흉기>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작가의 책이었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는 순간,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도무지 그 결말이 궁금해서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야마나카 호수 근처의 별장지대. 센도 고레노리와 그녀(타란툴라)의 은밀한 트레이닝은, 4명의 침입자들의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잡히면서 중단된다. 그리고 옛 동지들(?)로 자신들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센도의 주거지에 불법침입을 해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찾는 히우라 유스케, 사쿠라 쇼코, 니와 준야 그리고 안조 다쿠마. 결국 불의의 사고로 센도는 쇼코가 쏜 총에 살해되고, 일행은 증거를 남기지 않고 강도의 소행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방화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창고처럼 보이는 트레이닝 시설에서 이 모든 과정을 보고 있던 ‘그녀’는 복수를 다짐한다.

 

자, 이제부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도록 개조된 걸작인간의 추격과 복수가 시작된다. 역시 이공계 엔지니어 출신답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격이라는 전형적인 구성을 재배열하면서 도망치는 도핑 4인방과 그들의 뒤를 쫓는 타란툴라 그리고 뒷북치는 무기력한 경찰들의 모습을 차례로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다. 물론 곳곳에서 후반에 등장하게 될 교묘한 반전들을 위한 암시들을 잠복시킨 채 말이다.

 

스테로이드와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신소재 약물들이 기록경기인 스포츠계를 타락시키면서부터, 공정한 경쟁이라는 스포츠 최대의 덕목은 더 이상 유효한 개념성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경쟁에서 자신의 열등감은 상대방이 반드시 약물을 했으리라는 확신과 더불어 자신의 도핑을 정당화시키는 방법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 점이 소설 <아름다운 흉기>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도핑 4인방들은(이미 죽은 오가사와라는 제외하자) 자신들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자신들의 치부들을 영원히 지우려고 한다.

 

이런 무리수들은 센도의 살인이라는 극단으로 치닫고, 센도가 애지중지하던 걸작인간 타란툴라는 센도의 복수에 나서게 된다는 원형의 순환적인 구조를 불러온다. 게다가 타란툴라는 보통 인간이 아닌 개조된 신체적으로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멜 깁슨과 대니 글로버가 듀오를 맡아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리썰 웨폰(lethal weapon)" 시리즈의 제목이 떠올랐다. 아마 이 말만큼 <아름다운 흉기>의 추격자에 적합한 표현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활보하는 도쿄라는 공간은 외국인에 장신이라는 남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장해 준다. 그 공간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지도를 사고, 음식을 사먹고, 택시를 타면서 태연하게 먹잇감을 노린다. 그녀에게 대도시 도쿄는 완벽한 은신을 제공해 주는 철저한 익명의 공간으로 전개된다. 하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공간적 장치들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급박한 긴장감을 한껏 조여 온다.

 

타란툴라라고 명명한 ‘아름다운 흉기’ 역의 그녀는 중세 이래 억눌려온 왜곡된 여성성의 현현처럼 느껴졌다. 이 타란툴라라는 거미는 거미류 중에서 가장 크고, 또 특이하게도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잡는 일반적인 거미들의 특성을 따르지 않고, 사냥감을 덮쳐서 잡아먹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흉기>에서 보여주는 팜므 파탈적인 ‘그녀’의 공격성 그대로다. 일설에 의하면 이 거미에 물리게 되면 정신착란 증세에 빠지게 된다고 하는데, 후반에 등장하는 최고의 반전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경탄할만한 아이디어의 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에 발표된 <아름다운 흉기>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황하지 않고 짤막짤막한 문장 구성으로, 긴장의 완급을 조정해 가면서 살인과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합에 서스펜스를 덧붙여서 추격과 도주의 이중주를 멋지게 빚어내는데 성공했다.

I can't stop reading this 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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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3-27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가 참 자주 바뀌네요. 인기가 많은가봐요. 여튼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8-03-27 15:55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그런데 표지가 갈수록 더 소설에 맞게
진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