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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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년 휴가철이 됐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산으로 들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행렬이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다고 한다. 한편, 예년과는 달리 불경기 탓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이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어쨌든 간에 해외여행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 세월 좋게 파리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스코틀랜드에 가서 양치기개와 뛰놀고, 이웃나라 일본의 천년도시 교토에 가서는 다도와 오리가미를 배우는 세월 좋은 아줌마 얘기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이라는 요란한 제목을 단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출신의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여행 에세이다.

이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책이 여행 시즌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여느 여행 책들과 변별력을 가지는 콘셉트는 바로 “배움”이다. 대개 여행 책들의 경우에는, 내가 어딜 가보았는데 어디 어디가 어떤 이유로 해서 좋았다는 체험 위주의 글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걸 체험하는 이들이 누구냐는 점이다. 하지만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그런 전통적인 여행가의 시선이 아닌, 학생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부러운 점이라면 그 학생이 무척 부유하다는 것이다. 호텔에 거처를 정하고,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앙트레를 즐기는.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은 아마 꿈꿀 수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 이유로 해서 저자의 체험담에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좀처럼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파리와 스코틀랜드를 거칠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문화강좌를 들으러 피렌체로 가면서부터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피렌체에 가보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수년 전에 로마에서 피렌체행 기차표를 다 끊어 놓고도 미처 가지 못했던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소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너무나 인상 깊데 보았던 두오모 생각 탓이었는지, 작가의 글이 내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피렌체의 스케치에서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관광객들이 마치 피렌체의 유서 깊은 건물들의 부속물처럼 보인다는 말이 어찌나 그리도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하긴 1966년 11월 대재앙으로 다가왔던 대홍수로부터 피렌체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에 대한 묘사를 전설적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빗대어 언급할 때의 감동이란.

하지만 그 다음 장에서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제인 오스틴 이야기에서는 바로 맥이 빠져 버렸다. 이렇게 업 앤 다운(up & down)이 심해서야 즐거운 독서가 이루어질 턱이 있나 그래. 드디어 내가 가본 교토가 등장하면서 다시 독서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온과 기요미즈테라 그리고 마이코 등 익숙한 지명과 이름들이 등장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 간사스러운 이 마음이란! 하지만 여전히 <게이샤의 추억> 같은 서양인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에서 어떤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프라하에서의 글쓰기 워크숍(작가가 글쓰기를 다시 배운다고?)과 프랑스 프로방스에서의 정원기행으로 모두 7개의 에피소드를 마무리 짓는다. 개인적으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진 몰라도 프라하에서의 체험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부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작가는 특히 나홀로 여행객의 마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다. 여행길에서 어떤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는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길을 잃어 버려서 그렇게 걸었을 수도 있고, 빠듯한 여행 스케줄 대신에 여행 그 자체에 몸을 내맡긴 채 걷는 즐거움의 미학을 작가는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일상의 모습에서 보이는 것들을 여행지에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의 순간 역시 작가가 포착한 경계선에 서 있었다.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책 중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문화를 끌어안는 것만으로 여행이 갖는 목적 중의 하나는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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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사수 효과만점 일본어 첫걸음
야마노우치 타스쿠.커뮤니케이션 일본어 연구회 지음, 커뮤니케이션 일본어 연구회 엮음, 오이 / 사람in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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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일본어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 1년 때 이루어졌다. 제2외국어로 우리 학교는 모두 학생이 예외 없이 일본어를 선택해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간에 그 시절에 강제로 암기한 히라가나로 지금까지도 적어도 히라가나는 읽고 쓸 줄은 안다. 물론 그 당시에 배웠던 단어들이나 문법들은 모두 허공으로 휘발해 버렸지만.

그리고 나서 그동안 두 번 일본에 다녀왔다. 하지만 일어를 말할 줄 몰라서 영어로 대화를 해야만 했다. 항상 언젠가 일어 공부를 좀 해야지 하면서도 내내 기회가 없던 차에, 이번에 <재미사수 효과만점 일본어 첫걸음>에 도전하게 됐다. 항상 어학교재 하면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에 젖어 살곤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교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우선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지만 2권으로 분권할 수 있는데, 첫 번째 권에서는 역시 뭍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 기초인 문자와 인사법, 명사 부분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권에서는 일단 익힌 문자와 명사에 더해, 사물의 모양새와 움직임을 묘사하는 형용사와 동사에 대해 알려 준다.

문자와 발음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생각 없이 읽어왔던 일본어 발음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다. 그리고 역시 어느 언어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소개하기, 인사법 등이 소개된다. 다시 한 번 다르면서도 동시에 어떤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이 되는지, 명사를 이용한 짧은 문장 만들기, 의문문 그리고 지시대명사 사용법에 대한 용례들이 나열된다. 특히 문장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영어와는 달리, 나름 간단한 의문문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보너스로 중간에 삽입된 호칭에 대한 예 등도 도움이 많이 됐다. 아는 동생이 일본에서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데, 고객에게 호칭을 잘못 써서 당사자에게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는 일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역시 관계에 있어, 존경을 미덕으로 삼는 이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서문, 부정문 그리고 의문문은 어느 언어에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보통형과 정중형으로 나뉘어진다는 점이 또 영어와 상이한 점이었다. 하긴 우리 말도 그렇지만 말이다. 1권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된 부분은 바로 7장의 “얼마예요?”였다. 지시대명사와 더불어 숫자 세는 법과 스시 주문하는 법 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일본에 다시 가게 되면 간단한 회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젖어 봤다.

이제 두 번째 권으로 넘어가 보자. 예전에 일본어를 배울 적에도 난감함을 느꼈던 부분이었던 형용사 활용표를 보는 순간, 옛 트라우마로 인해 머리가 핑~ 돌았다. 이건 영어에 있어서 현재 완료 같은 시제들은 저리가라할 정도였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동료분 중에서 일본어를 잘하시는 분에 카운슬링을 받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때로 어떤 것들은 시간에 맡겨야 하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형용사 심화학습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형용사 파트에서도 버벅거리던 나의 언어 습득능력은 동사에서 완전 무너져 버렸다. 아무래도 동사 부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할 것 같다. 특히 あらう(씻다)는 아주 반가웠다. 최근 <항설백물어>라는 일본 괴담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 첫 번째로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あずき あらい>(팥 씸깃이)로 아는 단어가 나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본어 카운슬러에게 조언을 받았는데 일단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어 접근성에 있어서는 탁월하지만 초급과 중급 사이를 넘나드는 형식이 조금은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일본어 단어에 로마자 표기는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미에 일어 단어 플래시 카드 같은 것을 보너스로 넣었으면 하는 아이디어도 제시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입하고 그러는 가입 절차가 귀찮아서, 사람인 홈페이지에 있다는 mp3 파일들은 미처 들어 보지 못했는데 역시 회화에는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다시 나의 일본어 공부에 대한 욕구를 일깨워준 <재미사수 효과만점 일본어 첫걸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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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현실에 말을 걸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통섭
이면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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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그건 뭐니 뭐니 해도 “경제”가 아닐까? 어느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너끈하게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경제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인 주변인들도 모두 펀드와 주식 열풍에 휩싸여 있다. 심지어 경제학이라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도 이렇게 경제학 책을 읽게 되지 않았나 말이다.

동시에 경제학은 쉽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면희 교수의 <경제학, 현실에 말을 걸다>는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한 방에 날려 버려주었다. 일단 그 어렵다는 경제학 공식일랑은 딱 두 번 등장시키고, 고래의 농업혁명 이래 현대 자본주의 근간이 되었던 산업혁명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연 정보혁명에 이르는 경제의 역사를 나 같은 경제학맹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조근조근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서두에서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경쟁과 사적 이익(사유재산제)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설명으로 오늘날의 경제학 현실에 접근하는 첩경을 짚어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화가 사고 팔리는 ‘시장’이야말로 인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시장에는 ‘가격’이라는 무시무시한 통제력을 가진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다음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그리고 맬서스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등장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어떻게 보면 최근까지 하늘을 찌를 듯한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고래의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현대 자본주의에 맞게 수정한 게 아닌가 하고 유추해 본다.

2장에서는 오늘날의 금융경제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실물경제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자본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해낸다는 월가의 금융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파생금융상품들이 어떻게 창조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위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이면희 교수는 짧은 단락들을 통해 그 핵심을 찌르고 있다. 사실 장황한 서술보다, 실제 상황들을 통한 분석적 설명이 더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세 번째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공황,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진 후의 10년간에 걸친 장기불황 그리고 1997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을 강타한 외환위기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 이전까지는 공급이 수요를 스스로 창출한다는 고전학파 학자인 세이의 주장이 힘을 얻었지만, 공급과잉으로 미국 산업계가 붕괴되면서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전 세계를 덮쳤다. 그 때 영국출신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주장하는 경제 주체 중의 하나인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실업난과 공황의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물론 완전히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변수인 전쟁(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 경제는 완전 고용의 신화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오늘날의 세계 경제의 현황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경제학자가 어떤 경우에도 적용이 되는 경제 전망을 내놓을 수는 없다. 앨빈 토플러가 말했던 정보혁명으로 지구촌 개념이 현실화된 이 시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적 상황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같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지난 IMF위기를 겪으면서, 성장일변도 신화에서 탈피해서 수익우선구조로 체질개선을 이뤄냈다. 때마침 IT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원이 등장함으로써 단군 이래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돌파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말의 경제 위기는 빚으로 연명해 가는 미국의 위태로운 상황과 더불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동안 국가주도 형태의 경제발전을 해온 우리나라는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시장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할 것이다. 건전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실물경제에 초점을 맞춘 장기적 경제발전 플랜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 마디로 말해 패러다임의 극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고용불안과 그동안 성장과정에서 제기된 분배의 문제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 해소를 위한 거시적인 지적 투쟁의 장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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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리뷰해주세요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윤용인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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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라는 노래생각이 불쑥 들었다. 노래 <소원을 말해봐>는 작가 윤용인 씨가 이 책에 꿈이 뭐야? 라는 쓴 그것과 미묘한 동조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다, 이 책은 바로 사십대의 중년 남성이 쓰는 동종 수컷들에 대한 딴지일보식 리포트다.

물론 거창하게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있지만 보통 남성들이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체험한 이야기들, 혹은 술자리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윤용인 작가의 거침없이 뱉어내는 ‘솔직담백’이야말로 바로 이 책의 최고 강점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심리학”이라는 말 때문에 조금은 주눅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우선 심리학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점과 함께 고리타분하거나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그런 심리학 서적이 아닌가 하는 편견이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제트기처럼 휙하고 지나갔다. 모두들 작가의 말대로 그런 염려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 책에서도 나오지만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가 쓸모가 없다고 했던가. 그 나머지 4% 마저도 우리의 통제권 안에 들어있다고 하니, 부담일랑은 다 털어 버리고 두 팔 두 다리 쭈욱 뻗고 부담 없이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즐겨 보도록 하자.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선 1부에서는 남성 일반에 대한 이야기라면, 2부에서는 남편이나 혹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작가는 질투나 혹은 수다, 감성 부분에 있어서 남자들의 그것이 여자들 못지않다고 주장한다. 보통 여자들이 귀가 얇다고 하지만, 남자도 인간인 이상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게다가 그것이 남자들의 가장 취약지구라고 할 수 있는 자존심 버튼을 건드린다면 더더욱! 그래서 남자들은 절대 길을 잃어도 길을 묻지 않고, 도로에서 뒤에 오는 차에게 추월이라도 당할라치면 모두들 카레이서로 ‘트랜스포밍’한다고 했던가. 정말 핵심을 꼭꼭 찝어낸다.

오늘날 작아져만 가는 부상(father figure)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회사 술자리에서 사장님의 고백과 어찌나 그리도 일치하던지 정말 깜짝 놀랐다. 작가가 우리의 술자리 옆에서 감청을 했나 싶을 정도였다. 당신은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한 밖에서 열심히 돈을 버는 존재이고, 집에서 자신의 공간은 자식들이 커갈수록 점점 줄어든다는 고백이 책에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랄 노자였다. 책에서 읽을 것을 바로 현실세계에서 바로 확인하는 체험이야말로 우리 독서쟁이들의 꿈이 아니던가.

어려서부터 가부장적인 시스템 아래서 자라온 남자들은, 모름지기 강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마초식 주입교육을 받고 자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라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 남자들 역시 인간이 아니던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고함을 치고 싶고, 마누라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을 때도 있다. 불완전한 존재들은 남자들을 위해, 무조건 화를 내며 맞설게 아니라 때로는 보듬어 주기도 하고 같이 역정을 들어주길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살포시 코치해주고 있었다.

부부생활에 있어서 “18세기”와 “20세기” 유머는 가히 눈물을 찔끔 자아내게 만들었고, 또 어느 장에 등장하는 대한민국 남정네들만이 유일무이하게 가지고 있는 오빠 판타지 역시 남성 심리학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아니할 수가 없다. 특히 쩍벌남의 다리를 조용히 오무려준 경험담은 작가가 기고하던 어느 언론매체에서 이미 읽어봐서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 때도 속으로 낄낄대며 읽었었는데, 그 통쾌한 감정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렇다고 해서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가 이런 가벼운 유머들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부모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려준 조강지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야말로 험난하기 그지없는 결혼생활의 거센 파고를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었다고 고백했던가. 미처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유경험자의 진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가 있었다.

신구의 갈등의 표본을 보여준 <꼰대 정신>에서는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ce disorder)라는 조금은 어려운 이론까지 동원을 해서, 명백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합리화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우리네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기도 한다.

자, 이제 조금은 장황했던 북글의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와이프도, 아이들도 아닌 내 자아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무엇보다 자신이 즐거워야 그 즐거움을 타인에게도 나눠주거나 전파할 수가 있는게 아닌가. 불완전한 존재인 남자들이여, 그대들부터 즐거워지길!   

*** 내가 찾은 오탈자

1. 혐의을 -> 혐의를 (144쪽)
2. 적자 -> 嫡子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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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빈센트 람 소설
빈센트 람 지음, 이은선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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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의사출신의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해서 왠지 지루하겠구나하는 선입견을 가졌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지루함 대신 마치 짧은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매 장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진 이야기들에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들이 적절하게 개입되면서 전개되는 양상이 도저히 신예작가의 작품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의례 의학소설이라고 하면 떠오르게 되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전문 의학용어들을 의식해서인지 작가 빈센트 람은 주인공들의 관계에 먼저 초점을 맞춘다. 의과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밍과 피츠제럴드라는 캐릭터들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의대진학이라는 지상과제에, 남녀간의 밀고 당기는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치명적인 로맨스로 <기적>을 시작한다.

사랑의 장애가 되는 인종간의 격차,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였더라도 어느 순간 타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관계의 휘발성 등이 빈센트 람의 글을 통해 하나하나 재현이 된다. 성공의 뒤안길에는 그렇게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짙은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카피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과연 그들이(미래의 의사 지망생들) 아픈 이들을 돕는 휴머니스트로 적어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고결한 도덕주의로 무장한 이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렵다는 의대 시험을 위한 시간을 30분단위로 쪼개 공부를 해대고, 족보를 외우고, 이어질 면접에 대비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니 취업대란 속에서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청춘들의 그것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사실 <기적>은 보통 의학소설들이 독자들에게 제공해주는 싸구려 감동보다는 좀 더 의사들의 내면 묘사에 중점을 둔 것 같다. 그들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에 상처받고, 외로움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는 인생들이라고 빈센트 람은 선언을 하고 있다. 같은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해 달라는 말일까?

메디컬 드라마가 그렇듯이 의학소설 역시 그 꽃은 응급실에서의 상황일 것이다. 담당의들의 처방이 생과 사의 경계를 구분하는 그 순간의 미학이야말로 소설 <기적>에서 작가의 진가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정신상담을 맡기도, 혹은 경찰관에 의해 끌려온 환자에게 깨물리기도 하는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아무리 의사가 직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충실한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SARS에 감염되어 격리병동에 갇힌 천이 동료의사 피츠제럴드를 구하기 위해 보호막을 부수고 응급처치를 하는 장면이었다.

각 에피소드들에 시간과 공간적 갭을 배치한 작가의 탁월한 선견지명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의대입학을 위해 치열하게 살던 주인공들이 어느새 의대생이 되어, 해부를 하고 팀워크를 배우는 장면으로 또는 필드에 나가 각자 고유의 영역에서 치열한 삶을 사는 장면들로의 점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런 빈 공간들을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라는 작가의 조금은 까탈스러운 주문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을 보면서,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자 후기에 보니 캐나다에서 이미 드라마화되었다고 했던가. 과연 드라마 버전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의학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빈센트 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곧 이어 출간될 전망이라는 그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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