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2009년 휴가철이 됐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산으로 들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행렬이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다고 한다. 한편, 예년과는 달리 불경기 탓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이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어쨌든 간에 해외여행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 세월 좋게 파리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스코틀랜드에 가서 양치기개와 뛰놀고, 이웃나라 일본의 천년도시 교토에 가서는 다도와 오리가미를 배우는 세월 좋은 아줌마 얘기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이라는 요란한 제목을 단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출신의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여행 에세이다.

이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책이 여행 시즌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여느 여행 책들과 변별력을 가지는 콘셉트는 바로 “배움”이다. 대개 여행 책들의 경우에는, 내가 어딜 가보았는데 어디 어디가 어떤 이유로 해서 좋았다는 체험 위주의 글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걸 체험하는 이들이 누구냐는 점이다. 하지만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그런 전통적인 여행가의 시선이 아닌, 학생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부러운 점이라면 그 학생이 무척 부유하다는 것이다. 호텔에 거처를 정하고,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앙트레를 즐기는.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은 아마 꿈꿀 수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 이유로 해서 저자의 체험담에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좀처럼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파리와 스코틀랜드를 거칠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문화강좌를 들으러 피렌체로 가면서부터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피렌체에 가보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수년 전에 로마에서 피렌체행 기차표를 다 끊어 놓고도 미처 가지 못했던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소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너무나 인상 깊데 보았던 두오모 생각 탓이었는지, 작가의 글이 내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피렌체의 스케치에서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관광객들이 마치 피렌체의 유서 깊은 건물들의 부속물처럼 보인다는 말이 어찌나 그리도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하긴 1966년 11월 대재앙으로 다가왔던 대홍수로부터 피렌체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에 대한 묘사를 전설적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빗대어 언급할 때의 감동이란.

하지만 그 다음 장에서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제인 오스틴 이야기에서는 바로 맥이 빠져 버렸다. 이렇게 업 앤 다운(up & down)이 심해서야 즐거운 독서가 이루어질 턱이 있나 그래. 드디어 내가 가본 교토가 등장하면서 다시 독서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온과 기요미즈테라 그리고 마이코 등 익숙한 지명과 이름들이 등장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 간사스러운 이 마음이란! 하지만 여전히 <게이샤의 추억> 같은 서양인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에서 어떤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프라하에서의 글쓰기 워크숍(작가가 글쓰기를 다시 배운다고?)과 프랑스 프로방스에서의 정원기행으로 모두 7개의 에피소드를 마무리 짓는다. 개인적으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진 몰라도 프라하에서의 체험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부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작가는 특히 나홀로 여행객의 마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다. 여행길에서 어떤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는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길을 잃어 버려서 그렇게 걸었을 수도 있고, 빠듯한 여행 스케줄 대신에 여행 그 자체에 몸을 내맡긴 채 걷는 즐거움의 미학을 작가는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일상의 모습에서 보이는 것들을 여행지에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의 순간 역시 작가가 포착한 경계선에 서 있었다.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책 중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문화를 끌어안는 것만으로 여행이 갖는 목적 중의 하나는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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