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 마크 트웨인 걸작선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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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크 트웨인, 현대 미국 문학의 대가라고 하지만 왠지 나에게는 어린 시절 톰 소여와 그의 절친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만 각인되어 있는 작가였다. 그리고 20년도 넘게 그의 작품들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가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그의 단편 걸작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이라는 책과 만나게 됐다. 125년 동안이나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빛을 보게 된 책의 제목의 동명의 타이틀을 제목으로 뽑았다.

이 책에는 모두 5개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다.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가 그 첫 번째 이야기인데, 정직함을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한 마을 해들리버그가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우선, 그 마을 사람들에게 개인적 원한을 지닌 사나이가 현금 4만 달러에 상당하는 금화가 든 돈 자루를 에드워드 리처즈 집에 맡기면서 시작이 된다.

그리고 같이 동봉된 편지 한 장으로 하여금, 마을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 돈에 대해 욕심을 갖게 만들어 버린다. 그 사나이가 그전에 마을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20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도박으로 딴 돈으로 하여금 그에게 은혜를 갚고자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암호 같은 말을 기억하는 이가 주인공이라는 거다. 그가 의도한 대로 마을에 사는 19가구의 가장들은 모두 자신들이 그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하면서, 일의 집행을 맡은 버지스 목사에게 편지를 보낸다. 해들리버그를 파멸시키려고 하는 사나이의 교묘한 덫에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해들리버그 사람들은 걸려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개적인 망신.

마크 트웨인이 여기서 고안해낸 장치들은 참으로 교묘하기 그지없다. 물질에 대한 개인적 탐욕에 대한 스케치는 그야말로 너무나 정교하다.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불로소득에 대한 욕망은 정직함으로 ‘무장한’ 해들리버그 개인들의 위선적인 가면을 남김없이 발가벗기고 만다. 왜, 그들은 처음에 그 선행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고한 바클리 굿슨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들이 그 돈 자루를 챙기려고 했을까. 아마 이 이야기를 통해 마크 트웨인은 한창 자본주의적 성과가 고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미국의 모습을, 쁘띠 부르주아들이 가지고 있던 위선의 탈을 벗기려고 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결말은 너무나 교훈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 <100만 파운드 은행권>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것 같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미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를 재확인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 헨리 애덤스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요트를 타다가 조난이 되어서, 런던으로 하는 범선에 구조를 받고 런던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역시 황당하면서도 매혹적인 설정이다,

그리고 어느 영국의 내기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두 노인네들의 제안에 휘말려서 30일 간 실제로 영국 정부에서 발행된 100만 파운드 은행권을 건네받고 생활하게 된다. 내기의 쟁점은 총명함과 정직함을 두루 갖춘 외국인이라는 조건에 부족함 없이 딱 들어맞는 헨리 애덤스가 제격이었다. 영국의 두 후보 형제 신사들은 고약하게도, 단돈 한 푼 없는 주인공이 30일 동안 굶어 죽느냐 그렇지 않냐를 가지고 내기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헨리 애덤스가 원하는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조건이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모든 것을 움직인다고 하지만, 이런 고약한 제안에 쓴 입맛이 다셔졌다. 하지만, 주인공으로서는 그 제안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당장 자신은 손해 볼 일이 없으니 말이다.

주인공이 가진 100만 파운드 은행권은 그야말로 카드 판에서 조커 같은 역할을 한다. 우선 허름한 식당에 가서 문자 그대로 배가 터지게 음식을 먹고, 예의 지폐를 제시한다. 그 주인이 거스름돈을 거슬러 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삶의 방식을 터득한 그는 옷도 거저 입게 되고, 호화판 호텔에 머무르면서 외상을 지게 된다. 그리고 상류 사회의 인사들과도 어울리게 되면서 유명인사가 된다. 물론 빠지지 않고 자신의 평생의 반려자도 만나게 된다.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다.

예상된 대로 파멸보다는 유쾌한 결말로 매듭이 지어지지만, 역시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삶에 모든 것들이 내기로 귀결되는 영국식 삶의 방식에 대한 마크 트웨인 식의 신랄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으로 화폐가 가진 지위와 힘으로 해결이 되는. 현대 유럽에서는 물질에 근거한 소비주의가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회 전반에 걸친 의식이 형성되었지만, 당시 19세기 폭발하는 자본주의의 힘은 상류사회로의 진입도, 친구와의 관계도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마저도 맘모니즘(Mammonsim)의 위력 앞에서는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1865년에 발표가 돼서 마크 트웨인에게 비로소 전국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는 <캘러베러스 군의 악명 높은 개구리>와 맨 마지막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는 전형적인 단편의 구성을 가진다.

역시 이 책의 백미는 타이틀인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이었다. 마크 트웨인 작품의 주 배경을 이루는 미주리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 속에 예의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이라는 인간의 욕망들을 드러나는 주제들이 담뿍 배어져 있다. 가난한 농장주 존 그레이는 자신의 딸인 메리를 휴 그레고리라는 부유한 집 자제와 결혼시켜 한 몫 잡아 보려는 엉큼한 속셈을 가지고 있다.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결마저도 금전적인 욕망과 결합되어 있다는 서글픈 현실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메리가 존 그레이의 형인 데이비드 그레이의 상속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존 그레이를 경악한다. 왜냐하면, 메리를 사랑하는 휴 그레고리는 데이비드와는 앙숙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 둘이 결혼한다고 한다면 데이비드는 자신의 상속 유언을 철회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여기서 존 그레이는 냉철하게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한다. 휴 그레고리가 상속받을 재산보다 몇 갑절이나 더 많은 돈을 가진 형의 재산이 탐이 난다.

이 때, 조지 웨인/휴버트 디 폰테인블로 그리고 장 메르시에라는 이름을 가진 미스터리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메리에게 청혼을 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오락가락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데이비드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하고, 휴 그레고리가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이야기는 독자들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마크 트웨인의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은 확실히 읽기에 재밌다. 과연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정말 100여 년 전에 쓰인 것인가 할 정도로 현대의 그것들과 많은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팽배한 물질주의 가운데 하루가 다르게 그 자취를 감춰 가고 있는 휴머니즘에 대한 통렬한 마크 트웨인의 지적이야말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유머와 재치가 넘치면서도, 그의 장끼인 ‘인간의 탐욕과 위선의 가면’을 사정없이 폭로해 버리고야 마는 그의 필력에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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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2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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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권에서 분노와 금욕이 지배하는 광물적 세계인 이슬람의 바다를 헤쳐 나온 후지와라 신야는 이번에는 신의 세계인 티베트를 찾는다. 지금도 티베트를 여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당시에 캐슈미르 분쟁으로 인해 아마 국경이 개방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티베트 기행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하늘의 테두리에서 그가 찍은 <하늘, 구름, 바위산, 흙, 초목, 물, 집, 사람, 절>(18-9페이지) 사진처럼 티베트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사진도 없을 것 같다. 하늘과 구름의 광활한 배경을 뒤로 하고, 바위산이라는 공간 안에 담겨 있는 흙-초목-물-집 그리고 사람. 마지막으로 티베트 정신세계의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사원에 이르기까지 티베트가 보여 주는 모든 것의 집합체였다.

이 인도령 티베트에서 작가는 라다크라는 지역에 있는 심산의 사원을 찾는다. 엄격하게 기도와 수양을 위한 공간인 예의 사원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21일간의 수도에 들어간다. 역시 사원에서의 경험을 원하는 이와 사원에서 삶을 사는 이들 간의 차이는 그가 말하는 흙덩이와 야채즙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게 21일은 최대한 그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시간과 공간이 멈춰 버린 듯 그 사원 속에서 그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지와라 신야가 만나는 이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가 그렇게 그 나라 말들에 정통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임의 대로의 생각을 적은 걸까, 풀리지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이제는 미얀마라는 익숙하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는 버마였다. 이슬람권-힌두권을 거쳐 드디어 불교의 나라에서 다시 한 번 식물적 세계에서 만나는 기습적 폭우, 스콜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자세를 관찰하는 작가. 많은 관찰을 통해서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주홍색 법복이 인상적이었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절로 그려졌다. 버마식 카레로 식사를 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응달을 만들어주는 자기희생에 감복하는 모습은 <동양기행>을 읽으면서 느낀 최고의 감동이었던 것 같다.

역시 불교의 나라지만 버마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는 태국의 치앙마이로 무대는 바뀐다. 다시 한 번 유곽을 찾은 작가의 광화(狂花) 에피소드는 책에서 소개된 여느 이야기보다 싱겁기만 하다. 회색빛 상하이의 통제된 관광 스토리도 역시 다를 게 없었다. 홍콩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된 리콴-유콴 브라더스의 이야기는 역시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흥미를 가지게 된다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불변의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접하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들렸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었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이미지들은 택시 안에서 들은 판소리와 시장 좌판에 둔기를 맞고 죽은 돼지머리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일 년 전의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거였고, 여전히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왠지 모를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번, 복잡하기 그지없는 정치 이야기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고 마는 작가가 그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돌아간 작가는 오사카 근처의 고야산에서 402일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자신을 다시 찾고, 되돌아보기 위해 이런 대단한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은 작가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한다고 보았을 때, 작가 후지와라 신야와 더불어 일희일비가 교차하는 많은 순간들을 경험했던 것 같다. 눈발이 내리는 이스탄불의 황량한 거리에서, 지중해 태양과 장미향이 깃든 안탈리아에서, 지상에서 가장 더럽다는 캘커타의 숙소에서, 시간과 공간이 멈춰버린 라다크의 이름 모를 사원에서, 사람 응달을 만들어 준 버마의 노천식당에서의 그 특별한 경험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서양의 물질세계와 동양의 정신세계라는 아마도 서양에서 유래한 그의 도식적인 이분법적 분류에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행자는 결국엔 타자의 시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근 30년 전에 ‘동양기행’이라는 이런 멋진 기획을 하고, 실천에 옮긴 한 사나이의 열정에 마냥 부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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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기행 1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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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02일 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을 해서 자신의 고국 일본에 달하는 엄청난 여정을 일본 출신의 포토 에세이스트 후지와라 신야가 종이와 사진으로 표현해낸 책이다. 우리나라에 지난 1993년과 1994년에 각각 <인도방랑>과 <티베트방랑>이 소개가 되긴 했지만 절판이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접할 수가 없게 된 마당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동양기행>의 출간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시아 대륙은 인도를 기점으로 해서 서쪽의 광물적 세계, 다시 말해서 이슬람권과 동쪽의 식물적 세계로 나뉜다고 한다. 그 이슬람권에서도 터키는 이웃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예전에 메메드 2세가 기존의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된 이스탄불을 유럽 대륙에 걸치고 있으면서도 자기네들이 유럽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터키. 그런 동서양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는 이스탄불의 겨울날 작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중동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막대한 석유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터키만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이 씌여지던 80년대 초반, 오일쇼크의 여파로 인한 불경기에 심각한 인플레이션, 테러 그리고 파업이 후지와라 신야가 터키에서 받은 인상들이었다. 그리고 시베리아 한랭기단의 영향으로 인한 나그네들에게 치명적인 추위 또한 사진들을 장식한다.

대도시 이스탄불 속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작가의 모습과 교차되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여행의 빙점 속에서, 사람들의 온기를 찾아 나선 작가의 그것이 투영되고 있었다. 그는 길 위에서 만난 그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어느 음식점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들을 거리낌 없이 먹어치우는 여성과의 만남에서도 말이다. 그 옛날 전 유럽을 무슬림화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오스만 터키의 영광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식당의 진수성찬으로 오늘날 다시 구현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음식들은 양머리를 정확하게 반으로 쪼갠 코윤 바쉬유(양머리 구이)와 양의 배설물이 들어가 있는 이쉬켐베 초르바스(양내장 수프)였다.

그만의 진기한 여정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살을 에우는 추위를 피해 지중해 연안의 안탈리아의 뒷골목에서 본 사진 속의 젤린이라는 여자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앙카라 행 버스에 몸을 싣는 후지와라 신야. 결국 그녀가 아니 그가 성전환여자 수술을 했다는 남자 핫산 타슈테미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흑해의 바다 색깔이 검은 색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흑해 연안의 시노프라는 어항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했던 터키 외의 본격적인 이슬람권 나라들인 시리아-이란 그리고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리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하긴 그 400일간의 일정을 두 권의 책으로 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양기행 1권은 지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마무리 지어진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고 긴 여행길에 나선 후지와라 신야는 이 ‘동양기행’을 통해 기존의 사물들을 찍던 모습에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의 빛바랜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어느 문화권에 있든 간에 사람들의 삶은 영위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그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생생한 현장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장소는 시장이 되었건 식당 혹은 유곽이 되었건 간에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순간에 그들과 함께 했었다는 점이다. 2,000년에 시저가 한 표현을 빌리자면,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라고 할 수가 있겠다.

책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글을 읽고 있는데 가운데 사진이 삽입이 되어 있어서, 사진을 보다 보면 앞에 읽던 내용들을 잊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터키 리라 같은 현지 화폐를 왜 일본 돈인 엔화로 굳이 표시했나 싶었다.

1권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광물적 세계의 탐험을 마치고, 비로소 식물적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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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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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후유~ 왜 이 책을 다 읽고 이런 한숨이 나온 걸까. 곰곰 생각해 봤다. 우선 첫 번째로는 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책을 다 읽었다는 안도감에서. 두 번째로는 내가 도대체 이 책의 저자 애덤 필립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 중에 얼마나 이해했을까 하는 것에 대한 한숨이지 않았나 싶다.

영국 출신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애덤 필립스는 아마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멀쩡함’(sane, sanity)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주제에 도전장을 던진다. 아마 이 멀쩡함이라고 번역되는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인 광기의 경우에는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매달렸지만, 의외로 멀쩡함에 대해서는 연구성과가 없는 모양이다. 사실 광기가 보여 주는 매력적인 부분에 비해, 멀쩡함은 재미가 없다 이 말이다.

애덤 필립스에 의하면, 멀쩡함은 광기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멀쩡함의 반대는 광기라는 식의 도식화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멀쩡함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들에는 광기들과 크로스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흥미 있게 읽은 부분 중이 하나가 멀쩡함과 광기에 사이에 ‘열정’을 끼어 넣을 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유의 근원이 그렇듯이 지은이는 바로 이런 멀쩡함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도대체 멀쩡함이란 무엇이냐 이 말이다. 답이 되기에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멀쩡함은 합리적인 사고에 근거한 이성적 행동을 담보로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는 문제제기에 들어간다. 어린이들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보여지는 욕망하는 존재들의 모습은 바로 광기 그 자체라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상존하는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는 그들의 생존의 문제다. 그리고 그 욕구는 바로 다음으로 소개되는 ‘멀쩡한 섹스’라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의 조합과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인 돈에 대한 사랑을 통해 소개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청소년들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본능 중의 하나인 성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있어서 섹스만한 것이 없다고 애덤 필립스는 주장한다. 금기시된 터부는 언제나 깨지게 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점에서 성은 금지되어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요소라는 거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 자본주의에서 돈에 대한 광기만큼 복잡하면서도 일면 수긍이 가는 주제도 또 없을 것 같다. 너무나 단순한 명제이지만,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는 언제나 부정된다. 맹목적인 돈을 향한 광기는 인간성의 빈곤화와 몰 개성화에 더해서 냉혹한 자본주의 파괴성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살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물질적 행복이 주는 순간의 쾌락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을 획일화된 가치관으로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띄엄띄엄 떠오르는 멀쩡함에 대한 편린들을 조각이불 깁듯이 떠올리는 작업이 수월치가 않았다. 애덤 필립스도 다른 작가들처럼 멀쩡함이 아니라, 광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글을 썼다면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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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 노벨과 교육의 나라
박두영 지음 / 북콘서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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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구나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바로 그 말의 유래를 가져온 북유럽의 스웨덴을 자세하게 소개한 <노벨상과 교육의 나라 스웨덴>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스웨덴하면 무엇보다 먼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해서 번 돈으로,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을 연상시킬 것이다.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스웨덴에서 3년간의 (연구)생활을 한 지은이 박두영 씨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해서 노벨상이 그렇게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을까? 바로 행정을 맡은 노벨재단과 시상을 담당하는 위원회 간의 철저한 분리의 원칙이 그런 노벨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담보해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실 노벨상이 수상되던 초기만 하더라도, 스웨덴에서 자국의 연구자 혹은 과학자들을 우선적으로 시상했다는 주장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정말 수상할 만한 발명들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1913년 스웨덴 출신의 발명가 구스타프 달렌의 경우, 등대용 가스 어큐뮬레이터에 쓰이는 자동조절기를 발명한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다음 장에서는 제목에서 밝혔듯이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나아가 박사 과정까지 모든 공교육 과정이 무료라는 놀라운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같이 사교육 망국론까지 나오는 상황과는 전혀 달리, 각자의 능력과 취향에 맞는 그야말로 맞춤형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스웨덴 공교육의 현장을 냉정하게 소개해 준다. 무엇보다 이론이나 비현실적인 입시교육이 아닌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바로 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스웨덴 교육이 느린 듯 보이면서도 결국 장기 레이스에서 볼 적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런 공교육 시스템을 통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들을 적시에 제공하는 시스템이 수립되어졌다.

게다가 산업계와 학계의 친밀한 관계 형성과 더불어 연구 개발 부분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막대한 투자는 기초 및 순수과학 부분에서 세계 유수의 과학강국들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는 스웨덴 국가 경쟁력의 진면모를 들춰내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IT 와 생명공학 부분에 있어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실물 경제부분에 있어서도 에릭슨과 아스트라제네커 같은 기업들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교육에 있어서 가장 부러웠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평생교육 시스템으로, 스웨덴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밥벌이를 위한 취업이 아닌,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이런 모두를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실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인구 900만의 스웨덴을 이끄는 정부는 작지만, 아주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기관으로 청렴결백을 모토로 하고 있었다. 책의 목차를 보면서 가장 관심을 끄는 타이틀 중의 하나가 바로 “초콜릿 하나도 물러난 정치인”이었다. 공용카드로 사적 물품을 샀다가 중도 퇴진하게 된 어느 여성장관의 이야기였는데, 그만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시인하고 책임지는 정치인들의 자세와 그런 정치인들을 용인하지 않는 스웨덴 국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에 소개되는 스웨덴 복지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굳이 더 말할게 있을까. 외전 형식으로 소개되는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 외의 예테보리, 말뫼 등의 도시에 대한 소개들과 스웨덴과 이웃인 노르웨이-핀란드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대한 소개들도 흥미로웠다.

물론 스웨덴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천국 같은 곳은 아닐 것이다. 지나친 사회복지 혜택으로 인해, 국민들의 노동을 통한 능률성은 여타 선진국에 비교할 적에 계속해서 하락세에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늘어야 하는데, 소득이 늘수록 누진세가 적용이 돼서 소득세를 그만큼 많이 내야 하는 점 때문에 근로의욕이 날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외국 이민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스웨덴에 정착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빚어내는 문제들 또한 적지 않다. 여느 선진국에서처럼 스웨덴 또한 높은 실업률 문제를 안고 있고, 역설적이게도 무료 공교육 시스템으로 인한 학력의 저하 또한 철저한 사회복지의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좀 아쉬웠던 부분은 짤막짤막하면서도 흥미로웠던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은이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에 대한 소개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년 간 스웨덴에서 살았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았을 텐데, 마치 어느 재단에 제출하는 딱딱한 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대표적인 기업 중의 하나인 이케아(IKEA)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이케아가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진출한다는 뉴스는 더더욱 반가웠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북유럽의 나라 스웨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면서도 유용한 정보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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