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기행 2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권에서 분노와 금욕이 지배하는 광물적 세계인 이슬람의 바다를 헤쳐 나온 후지와라 신야는 이번에는 신의 세계인 티베트를 찾는다. 지금도 티베트를 여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당시에 캐슈미르 분쟁으로 인해 아마 국경이 개방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티베트 기행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하늘의 테두리에서 그가 찍은 <하늘, 구름, 바위산, 흙, 초목, 물, 집, 사람, 절>(18-9페이지) 사진처럼 티베트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사진도 없을 것 같다. 하늘과 구름의 광활한 배경을 뒤로 하고, 바위산이라는 공간 안에 담겨 있는 흙-초목-물-집 그리고 사람. 마지막으로 티베트 정신세계의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사원에 이르기까지 티베트가 보여 주는 모든 것의 집합체였다.

이 인도령 티베트에서 작가는 라다크라는 지역에 있는 심산의 사원을 찾는다. 엄격하게 기도와 수양을 위한 공간인 예의 사원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21일간의 수도에 들어간다. 역시 사원에서의 경험을 원하는 이와 사원에서 삶을 사는 이들 간의 차이는 그가 말하는 흙덩이와 야채즙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에게 21일은 최대한 그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시간과 공간이 멈춰 버린 듯 그 사원 속에서 그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지와라 신야가 만나는 이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가 그렇게 그 나라 말들에 정통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임의 대로의 생각을 적은 걸까, 풀리지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이제는 미얀마라는 익숙하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는 버마였다. 이슬람권-힌두권을 거쳐 드디어 불교의 나라에서 다시 한 번 식물적 세계에서 만나는 기습적 폭우, 스콜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자세를 관찰하는 작가. 많은 관찰을 통해서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주홍색 법복이 인상적이었던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절로 그려졌다. 버마식 카레로 식사를 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응달을 만들어주는 자기희생에 감복하는 모습은 <동양기행>을 읽으면서 느낀 최고의 감동이었던 것 같다.

역시 불교의 나라지만 버마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는 태국의 치앙마이로 무대는 바뀐다. 다시 한 번 유곽을 찾은 작가의 광화(狂花) 에피소드는 책에서 소개된 여느 이야기보다 싱겁기만 하다. 회색빛 상하이의 통제된 관광 스토리도 역시 다를 게 없었다. 홍콩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된 리콴-유콴 브라더스의 이야기는 역시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흥미를 가지게 된다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불변의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접하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들렸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었는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이미지들은 택시 안에서 들은 판소리와 시장 좌판에 둔기를 맞고 죽은 돼지머리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일 년 전의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하면 안 되는 거였고, 여전히 통금이 실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왠지 모를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번, 복잡하기 그지없는 정치 이야기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고 마는 작가가 그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돌아간 작가는 오사카 근처의 고야산에서 402일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자신을 다시 찾고, 되돌아보기 위해 이런 대단한 모험으로 가득한 여행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은 작가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한다고 보았을 때, 작가 후지와라 신야와 더불어 일희일비가 교차하는 많은 순간들을 경험했던 것 같다. 눈발이 내리는 이스탄불의 황량한 거리에서, 지중해 태양과 장미향이 깃든 안탈리아에서, 지상에서 가장 더럽다는 캘커타의 숙소에서, 시간과 공간이 멈춰버린 라다크의 이름 모를 사원에서, 사람 응달을 만들어 준 버마의 노천식당에서의 그 특별한 경험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서양의 물질세계와 동양의 정신세계라는 아마도 서양에서 유래한 그의 도식적인 이분법적 분류에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행자는 결국엔 타자의 시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근 30년 전에 ‘동양기행’이라는 이런 멋진 기획을 하고, 실천에 옮긴 한 사나이의 열정에 마냥 부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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