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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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먼저 고백할게 하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그 낱말은 바로 ‘철학’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이라는 말이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그것도 다 읽고 나서, 책날개 맨 끝에 있는 출판사의 철학의 재발견 시리즈 제1탄이라는 말이 눈에 꽂혔다.

저자인 피터 케이브의 경력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인터넷이 우리가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들을 쏟아내는 이 마당에, 의외로 그에 대한 정보들의 거의 전무했다. 나이도, 국적도(영국인인가 호주인인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20년간 저널리스트로 주요 사건의 현장들을 커버했다는 점 정도가 내가 알 수 있는 그의 경력의 전부였다.

어쨌든 피터 케이브는 무척이나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철학적 주제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에 접목을 시도한다. 이 책에는 모두 33개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데, 역시 책의 타이틀인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가장 먼저 읽고,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었다. 피터 케이브가 다루는 주제들이 심오해서인지, 아니면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 자신이 철학적 담론들을 받아들일 역량이 되지 않아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쉽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일 수박에.

작가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을 했을 때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을 먹고 생존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은 용납이 되지만(이것도 의문이긴 하지만), 식도락을 목표로 해서 식인풍습을 즐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다른 호모 사피엔스들을 존중을 하고, 그들의 신체에 대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존경을 하기 마련이다. 자발적인 시신 공여가 있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허용이 되지 않는 이슈였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중의 하나는 말미에 서로 연관되는 주제들의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차례차례 읽을 필요는 없다. 화살표대로 점프를 해서 읽게 되더라도 책 읽는데 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것도 역설(패러독스)이라고? 피터 케이브가 이 책에서 내내 펼쳐 보이는 언어의 유희에 대한 패러디라고 해두자.

11장에 나오는 “케세라세라”(될대로 되라) 주의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작가의 주장을 들어 보자.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지극히 숙명론적 주장이 등장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무척이나 숙명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피터 케이브는 이것이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를 상정하지 않은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단순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논증을 펼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작가는 참으로 비트게슈타인을 사랑하는지 그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론 말미에 등장하는 친절한 레퍼런스 부분에서도 어김없이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15장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피터 케이브식 접근은 또 색다르다. 물론 베짱이가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여름 내내 놀아서 결국에 가서는 개미에게 구걸을 하게 된다는 지극히 교훈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개미는 단순하게 겨울에 잘먹고 잘 지내기 위해 그 뜨거운 여름 내내 그렇게 일만 하면서 지냈단 말인가. 반면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노래 부르고 놀고먹은 베짱이의 삶의 질이 개미의 그것보다 우월한건 아닐까? 언제나 비가 올 때만을 대비해서 사는 삶이 과연 멋진 삶일까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쉬운 이야기가 피터 케이브의 머릿속에서는 무지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22장의 <생활방식의 충돌>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일찍이 주장했던 위해원칙(harm principle)이 무척이나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런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타인에게 종교적이거나 개인적 차이에 의해 위해를 가할 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이 책의 진짜 비밀은 말미에 실린 레퍼런스 부록에 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여기저기서 참고하고, 발췌한 내용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 부록을 꼭 잊지 말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소개가 되지 않은 책들이 많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작가가 이 글을 짓게 되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지금이라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들을 간과할게 아니라, 철학적 시선을 가지고 대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작가의 고백대로, 나 자신의 즐거움이 타인의 고통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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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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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자못 낯설다.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라, 책의 표지에는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들이라고 적혀 있다. 작가는 일본 출신 교고쿠 나쓰히코, 괴담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역시 무더운 여름날에는 오싹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기담집도 좋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아, 참 그전에 이 소설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보기 시작했다. 다른 책읽기와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었다. 우선 애니메이션을 한 편 보고 나서, 그에 해당하는 에피소들을 차례로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은 이야기의 비주얼화가 뛰어나서 나중에 책을 읽는데 있어서 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역시 25분 남짓한 애니메이션으로는 책이 주는 풍부한 상상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의 완벽한 승리였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는 모두 해서 7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에도 교바시 출신의 괴담수집가 곰곰궁리 야마오카 모모스케, 부적팔이 어행사 마타이치, 미모의 인형술사 오긴 등의 캐릭터의 시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그들 캐릭터들의 정체가 좀 더 모호하게 묘사가 되면서 일본 전국을 떠돌면서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신군(神君)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패권을 차지한 에도 시대가 시대적 배경이다. 서구세계에서는 르네상스기를 거쳐 과학적 사고와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지만, 전국시대 이후의 일본은 여전히 귀신과 요괴 같은 신화적 요소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교고쿠 나쓰히코는 탐욕과 질투 같은 인간 본연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파고든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아즈키아라이>(팥 씻김이)에서는 어느 상인의 후계자 살인에 관계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조금은 모자라지만 됫박의 팥 알갱이를 정확하게 맞춰내는 후계자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살해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소설에서는 타고난 모사꾼이자 소악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마타이치와 그의 일당이 의뢰를 받아 예의 범인을 응징한다. 그들의 응징은 복수의 의미를 뛰어 넘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자, 혹은 천륜을 거스르는 악당들을 상대로 한다. 글쟁이 모모스케는 항상 그들을 돕거나 하면서, 마지막 장에 가서 마타이치들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사건의 전개와 연유를 알려준다. 친절하시기도 하셔라.

매 에피소드마다 에도 시대 화가인 다케하라 슈운센의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하나씩 게재하고 있다. 위의 책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의 모티브가 된 괴담집이라고 하는데, 각각의 그림들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에 대한 실마리라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씩이고, 다시 맨 앞 장으로 돌아가서 그 그림들을 살펴보곤 했었다.

개인적으로 사무라이 이야기들을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세 번째 에피소드인 <마이쿠비>(춤추는 목)를 아주 재밌게 읽었다. 동네에서 만행을 일삼는 야수 같은 악당,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귀 그리고 썩어 빠진 관리를 한 방에 처리하는 마타이치들의 활약이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론 여전히 신분제 사회에 얽매여 있던 일본의 시대상이 엿보이기도 했다.

작가의 서술 방법 중에서, 대화를 하는데 한 쪽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곧잘 등장을 한다. 아마 모모스케의 질문일텐데, 질문들은 모두 빠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답만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독자들은 이야기꾼의 대답을 통해 묻는 이의 질문을 유추해 볼 수가 있는데 요런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인 <가타비라가쓰지>에서는 삶과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조금은 엽기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어느 사무라이의 비정상적인 애정행각이 옛 고사와 오버랩이 되는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항설백물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고른다면 어떤게 될까? 난 “신심”과 “인과응보”라는 낱말을 꼽고 싶다. 오만가지 잡신과 요괴들이 횡행하는 일본에 기이한 이야기들이 판을 치는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곳곳에서 신심을 강조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다만 그 구체적 대상들은 살짝 빼놓은 채 말이다. 다음으로 인간답게 살라는 교훈이 배어있는 인과응보를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마타이치들은 실천에 옮긴다. 물론 폭력적인 방법 대신 아주 교묘한 방법을 사용해서 말이다.

사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놀랐지만 책을 읽다 보니 전혀 그런 볼륨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속도감과 캐릭터 묘사 그리고 집중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정교하지 짝이 없다. 모모스케를 내세워,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 들게 하는 기술부터 시작해서 끝에 가서 마타이치의 설명으로 매조지하는 기법이 여느 추리소설 버금가는 재미를 부여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 책의 조속한 출간을 애타게 기다려 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도 어느새 교고쿠 나쓰히코의 팬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속항설백물어> 그리고 <후항설백물어>가 출간예정이라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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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리뷰해주세요.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상처에서 치유까지, 트라우마에 관한 24가지 이야기
김준기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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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트라우마(trauma)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잡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트라우마가 과거의 발생했던 사건 후에 나타나는 증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사건 자체였다. 내가 트라우마라고 생각했던 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라우마 연구의 전문가라는 김준기 박사는 이 트라우마와 PTSD를 24편의 영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영화와 심리학 에세이와의 만남이라 상상만 해도 재밌지 않나? 예전에 영화 리뷰와 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방법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심리학적 분석이었다. 당시 드라마로는 <앨리 맥빌>을 그리고 영화로는 <샤인>을 분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24편의 영화중에 <샤인>을 보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일단 이 책은 잘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나의 관점으로 볼 때, 바로 그 “좋은 책”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이다. 그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영화들을 저자가 분석적으로 다룰 때는 그 기시감으로 인해, 그렇지 않고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들을 소개할 적에는 있는 그대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이 책을 보고 나서, 꼭 봐야지 하는 영화들의 목록이 늘어났다. 과연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접하지 못한 영화들에서는 어떻게 연출이 되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우선 영화중에서 역시 리뷰를 썼던 <샤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의 뒷부분에서 작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어린 시절의 애착관계와 애착관계에 있는 사람의 지지와 공감적 반응을 꼽는다. 대개 경우에 있어, 그 애착관계에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와 형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샤인>에서는 주인공 데이비드 헬프갓의 아버지가 트라우마 그 자체로 작용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완벽한 피아니스트로 키워 내기 위해, 칭찬과 격려 보다는 모욕과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그 결과 어린 데이비드는 자신의 천재성이 비로소 꽃피우게 되는 순간, 그동안 억눌려 왔던 자아가 파열을 맞이하게 된다. 도대체 이럴 경우에 해결책은 시간 뿐이라는걸까?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분석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영웅을 다룬 <람보>였다. 우리에게는 1편보다 2편이 더 유명하지만, 1편 역시 단순한 스탤론표 액션 영화가 아닌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전영화적인 성격이 농후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고, 본국으로 돌아온 수많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처럼 람보 역시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명분 없는 전쟁에서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한 추악한 전쟁을 치렀다는 미국인들의 냉소적인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전쟁을 치르면서, 급격한 인격의 파괴를 경험한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기가 참으로 난망하다는 사실을 영화 <람보>는 그의 절규를 통해 조용히 보여준다.

긍정의 힘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극복을 말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경우에는 지나친 개연성과 미국예찬 탓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가 않았다. 맷 데이먼이 자신의 지기 벤 어플렉과  직접 각본을 맡았다는 <굿 윌 헌팅>은 여전히 내게는 탐구의 대상인 채로 남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의심과 경계의 벽을 허물고, 소통의 중요성을 잘 톺아낸 수작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조금은 낯선 제목의 <미스 리틀 선샤인>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영화였다. 김준기 작가는 트라우마가 우리네 삶에 영향을 미치건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 그것이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 중심에는 바로 소통과 통섭이라는 조금은 거창해 보이는 주제가 가로 놓여 있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가장 첩경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상호간의 소통을 통해 타인이 가지고 있는 PTSD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들을 돕는데 훨씬 용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무엇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 기반을 두는 “변연적 공명”(limbic resonance)을 트라우마에 의해 상처받은 신경 회로, 좀 더 거창하게는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처방전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책 읽기는 쉽고 즐거웠지만,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참으로 심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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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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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년 휴가철이 됐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산으로 들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행렬이 고속도로를 메우고 있다고 한다. 한편, 예년과는 달리 불경기 탓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이들의 수가 부쩍 줄어들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어쨌든 간에 해외여행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로망이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 세월 좋게 파리에 가서 요리를 배우고, 스코틀랜드에 가서 양치기개와 뛰놀고, 이웃나라 일본의 천년도시 교토에 가서는 다도와 오리가미를 배우는 세월 좋은 아줌마 얘기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이라는 요란한 제목을 단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출신의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여행 에세이다.

이 앨리스 스타인바흐의 책이 여행 시즌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여느 여행 책들과 변별력을 가지는 콘셉트는 바로 “배움”이다. 대개 여행 책들의 경우에는, 내가 어딜 가보았는데 어디 어디가 어떤 이유로 해서 좋았다는 체험 위주의 글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걸 체험하는 이들이 누구냐는 점이다. 하지만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그런 전통적인 여행가의 시선이 아닌, 학생의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부러운 점이라면 그 학생이 무척 부유하다는 것이다. 호텔에 거처를 정하고,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앙트레를 즐기는.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은 아마 꿈꿀 수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 이유로 해서 저자의 체험담에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좀처럼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파리와 스코틀랜드를 거칠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문화강좌를 들으러 피렌체로 가면서부터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피렌체에 가보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수년 전에 로마에서 피렌체행 기차표를 다 끊어 놓고도 미처 가지 못했던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소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너무나 인상 깊데 보았던 두오모 생각 탓이었는지, 작가의 글이 내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피렌체의 스케치에서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관광객들이 마치 피렌체의 유서 깊은 건물들의 부속물처럼 보인다는 말이 어찌나 그리도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하긴 1966년 11월 대재앙으로 다가왔던 대홍수로부터 피렌체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들에 대한 묘사를 전설적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빗대어 언급할 때의 감동이란.

하지만 그 다음 장에서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제인 오스틴 이야기에서는 바로 맥이 빠져 버렸다. 이렇게 업 앤 다운(up & down)이 심해서야 즐거운 독서가 이루어질 턱이 있나 그래. 드디어 내가 가본 교토가 등장하면서 다시 독서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온과 기요미즈테라 그리고 마이코 등 익숙한 지명과 이름들이 등장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 간사스러운 이 마음이란! 하지만 여전히 <게이샤의 추억> 같은 서양인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에서 어떤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프라하에서의 글쓰기 워크숍(작가가 글쓰기를 다시 배운다고?)과 프랑스 프로방스에서의 정원기행으로 모두 7개의 에피소드를 마무리 짓는다. 개인적으로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진 몰라도 프라하에서의 체험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부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작가는 특히 나홀로 여행객의 마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다. 여행길에서 어떤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는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길을 잃어 버려서 그렇게 걸었을 수도 있고, 빠듯한 여행 스케줄 대신에 여행 그 자체에 몸을 내맡긴 채 걷는 즐거움의 미학을 작가는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일상의 모습에서 보이는 것들을 여행지에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의 순간 역시 작가가 포착한 경계선에 서 있었다.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책 중에서도 말했듯이, 다른 문화를 끌어안는 것만으로 여행이 갖는 목적 중의 하나는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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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사수 효과만점 일본어 첫걸음
야마노우치 타스쿠.커뮤니케이션 일본어 연구회 지음, 커뮤니케이션 일본어 연구회 엮음, 오이 / 사람in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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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일본어와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 1년 때 이루어졌다. 제2외국어로 우리 학교는 모두 학생이 예외 없이 일본어를 선택해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간에 그 시절에 강제로 암기한 히라가나로 지금까지도 적어도 히라가나는 읽고 쓸 줄은 안다. 물론 그 당시에 배웠던 단어들이나 문법들은 모두 허공으로 휘발해 버렸지만.

그리고 나서 그동안 두 번 일본에 다녀왔다. 하지만 일어를 말할 줄 몰라서 영어로 대화를 해야만 했다. 항상 언젠가 일어 공부를 좀 해야지 하면서도 내내 기회가 없던 차에, 이번에 <재미사수 효과만점 일본어 첫걸음>에 도전하게 됐다. 항상 어학교재 하면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에 젖어 살곤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교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우선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지만 2권으로 분권할 수 있는데, 첫 번째 권에서는 역시 뭍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 기초인 문자와 인사법, 명사 부분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권에서는 일단 익힌 문자와 명사에 더해, 사물의 모양새와 움직임을 묘사하는 형용사와 동사에 대해 알려 준다.

문자와 발음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생각 없이 읽어왔던 일본어 발음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다. 그리고 역시 어느 언어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소개하기, 인사법 등이 소개된다. 다시 한 번 다르면서도 동시에 어떤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이 되는지, 명사를 이용한 짧은 문장 만들기, 의문문 그리고 지시대명사 사용법에 대한 용례들이 나열된다. 특히 문장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는 영어와는 달리, 나름 간단한 의문문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보너스로 중간에 삽입된 호칭에 대한 예 등도 도움이 많이 됐다. 아는 동생이 일본에서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데, 고객에게 호칭을 잘못 써서 당사자에게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는 일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역시 관계에 있어, 존경을 미덕으로 삼는 이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서문, 부정문 그리고 의문문은 어느 언어에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보통형과 정중형으로 나뉘어진다는 점이 또 영어와 상이한 점이었다. 하긴 우리 말도 그렇지만 말이다. 1권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된 부분은 바로 7장의 “얼마예요?”였다. 지시대명사와 더불어 숫자 세는 법과 스시 주문하는 법 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일본에 다시 가게 되면 간단한 회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젖어 봤다.

이제 두 번째 권으로 넘어가 보자. 예전에 일본어를 배울 적에도 난감함을 느꼈던 부분이었던 형용사 활용표를 보는 순간, 옛 트라우마로 인해 머리가 핑~ 돌았다. 이건 영어에 있어서 현재 완료 같은 시제들은 저리가라할 정도였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동료분 중에서 일본어를 잘하시는 분에 카운슬링을 받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때로 어떤 것들은 시간에 맡겨야 하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형용사 심화학습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형용사 파트에서도 버벅거리던 나의 언어 습득능력은 동사에서 완전 무너져 버렸다. 아무래도 동사 부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할 것 같다. 특히 あらう(씻다)는 아주 반가웠다. 최근 <항설백물어>라는 일본 괴담 책을 읽고 있는데 거기 첫 번째로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あずき あらい>(팥 씸깃이)로 아는 단어가 나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본어 카운슬러에게 조언을 받았는데 일단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어 접근성에 있어서는 탁월하지만 초급과 중급 사이를 넘나드는 형식이 조금은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일본어 단어에 로마자 표기는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미에 일어 단어 플래시 카드 같은 것을 보너스로 넣었으면 하는 아이디어도 제시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입하고 그러는 가입 절차가 귀찮아서, 사람인 홈페이지에 있다는 mp3 파일들은 미처 들어 보지 못했는데 역시 회화에는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다시 나의 일본어 공부에 대한 욕구를 일깨워준 <재미사수 효과만점 일본어 첫걸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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