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고백할게 하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그 낱말은 바로 ‘철학’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이라는 말이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그것도 다 읽고 나서, 책날개 맨 끝에 있는 출판사의 철학의 재발견 시리즈 제1탄이라는 말이 눈에 꽂혔다.

저자인 피터 케이브의 경력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인터넷이 우리가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들을 쏟아내는 이 마당에, 의외로 그에 대한 정보들의 거의 전무했다. 나이도, 국적도(영국인인가 호주인인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20년간 저널리스트로 주요 사건의 현장들을 커버했다는 점 정도가 내가 알 수 있는 그의 경력의 전부였다.

어쨌든 피터 케이브는 무척이나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철학적 주제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에 접목을 시도한다. 이 책에는 모두 33개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데, 역시 책의 타이틀인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가장 먼저 읽고,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었다. 피터 케이브가 다루는 주제들이 심오해서인지, 아니면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 자신이 철학적 담론들을 받아들일 역량이 되지 않아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쉽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일 수박에.

작가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을 했을 때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을 먹고 생존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은 용납이 되지만(이것도 의문이긴 하지만), 식도락을 목표로 해서 식인풍습을 즐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다른 호모 사피엔스들을 존중을 하고, 그들의 신체에 대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존경을 하기 마련이다. 자발적인 시신 공여가 있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허용이 되지 않는 이슈였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중의 하나는 말미에 서로 연관되는 주제들의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차례차례 읽을 필요는 없다. 화살표대로 점프를 해서 읽게 되더라도 책 읽는데 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것도 역설(패러독스)이라고? 피터 케이브가 이 책에서 내내 펼쳐 보이는 언어의 유희에 대한 패러디라고 해두자.

11장에 나오는 “케세라세라”(될대로 되라) 주의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작가의 주장을 들어 보자.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지극히 숙명론적 주장이 등장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무척이나 숙명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피터 케이브는 이것이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를 상정하지 않은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단순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논증을 펼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작가는 참으로 비트게슈타인을 사랑하는지 그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론 말미에 등장하는 친절한 레퍼런스 부분에서도 어김없이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15장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피터 케이브식 접근은 또 색다르다. 물론 베짱이가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여름 내내 놀아서 결국에 가서는 개미에게 구걸을 하게 된다는 지극히 교훈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개미는 단순하게 겨울에 잘먹고 잘 지내기 위해 그 뜨거운 여름 내내 그렇게 일만 하면서 지냈단 말인가. 반면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노래 부르고 놀고먹은 베짱이의 삶의 질이 개미의 그것보다 우월한건 아닐까? 언제나 비가 올 때만을 대비해서 사는 삶이 과연 멋진 삶일까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쉬운 이야기가 피터 케이브의 머릿속에서는 무지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22장의 <생활방식의 충돌>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일찍이 주장했던 위해원칙(harm principle)이 무척이나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런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타인에게 종교적이거나 개인적 차이에 의해 위해를 가할 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이 책의 진짜 비밀은 말미에 실린 레퍼런스 부록에 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여기저기서 참고하고, 발췌한 내용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 부록을 꼭 잊지 말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소개가 되지 않은 책들이 많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작가가 이 글을 짓게 되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지금이라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들을 간과할게 아니라, 철학적 시선을 가지고 대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작가의 고백대로, 나 자신의 즐거움이 타인의 고통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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