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나하고 줄리언 반스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세상에 6월에 읽기 시작한 책을 10월달에야 마무리를 짓게 되다니. 사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금세 다 읽을 줄 알았건만, 정확하게 나의 오산이었다. 소설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시대, 파란만장한 굴곡의 삶을 살았던 구 소련의 위대한 음악가 드리트미 쇼스타코비치가 1936년, 1948년 그리고 1960년 윤년마다 겪어야 했던 소극처럼 보이는 비극을 그려냈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였는데 악전고투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혹자는 번역 탓을 하기도 하는데, 원서를 접하지 못해 비교할 수가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소련이 자랑하는 천재 작곡가 미트 쇼스타코비치는 이미 십대 시절에 자신이 직접 작곡한 교향곡을 발표한 바 있고,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위대한 소비에트 작곡가다. 문제는 모든 소련 인민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의 비위를 맞춰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시기를 살았다는 점이다. 한 때 ‘붉은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투하쳅스키 원수조차도 스탈린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숙청의 회오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는데, 붉은 나폴레옹과 친분이 있었던 일개 작곡가가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시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게다가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붉은 베토벤’이 야심차게 작곡한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혹평을 가하자, 숙청의 시기에 곧 자신의 차례가 될 거라고 짐작한 우리의 주인공 미트는 가방을 싸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언제 자신을 찾아올 줄 모르는 비밀경찰을 기다린다.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948년, 이번에는 미국을 방문한 미트에게 또다른 차원의 시련이 닥친다.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을 상대로 한 애국전쟁에서 승리한 소련은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선수가 되어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에 미트를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파견해서 사회주의 음악의 우월성과 체제 선전에 이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서 보듯이, 정치를 배제한 순수한 예술이 과연 존재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예술이 보여주는 연성적 코드야말로 대중의 호응을 열렬하게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자신 스스로도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공식 석상에서 비난해야 하는 미트의 심정을 줄리언 반스는 소설가적 차원에서 뛰어난 심리분석을 통해 제공한다.

 

모든 것이 독재자의 심기경호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시대에 과연 음악이 순수하게 음악으로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었을까? 음악이 어쩌면 시대가 원하지 않는 소음은 아니었을까라는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이 아니라, 독재자가 지시하는 방향에 맞춰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는 점으로도 충분히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트 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시련은 1960년, 독재자가 죽고 나서 흐루시초프 시절에 찾아왔다. 암울한 시절은 이제 모두 지나가 버렸지만, 권력의 주구에 봉사하던 잔존 세력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예술가에게 새로운 시대는 공산당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게 말이 되냐고 덤비는 이들에게 미트는 하는 수 없이 굴복하고 만다. 스탈린 시절에도 꿋꿋하게 당원 가입을 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자존심이 부러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바로 이 점 때문에, 드미트리 스쇼타코비치가 훗날에도 공산당에 부역한 예술가였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게 아니었을까.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예술가의 실존적 고뇌를 그렸다는 점에서 줄리언 반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를 휘두른 이오시프 스탈린 시절을 복기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왜 그렇게 정치권력은 집요하게 예술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용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피상적 접근보다 보다 실존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그 내면을 파고드는 마치 일종의 르포르타쥬적인 형식이 마음에 들었다.

 

소극처럼 보이는 비극이 소용돌이치던 시기에 살아남은 예술가에 대한 줄리언 반스의 서술은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접근장벽이 의외로 높았던 게 아닐까 싶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사실 냉전 기간 동안 우리에게 금지되었었고,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낯설었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에 가서는 마치 못다한 숙제를 하는 것처럼 읽고 나서, 미안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조사해 보기도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작곡가를 알게 된 흥미로운 독서였다.



[뱀다리] 난 특히 이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그는 새우 칵테일 소스 속의 새우처럼 명예 속에서 헤엄쳤다(171쪽).


He swam in honours like a shrimp in shrimp-cocktail sauce.


[뱀다리2] 구글 번역기로 돌려 보았습니다.


그는 새우 칵테일 소스로 새우처럼 우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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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23 14: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읽다 만 책이나 읽기 진행이 느린 책을 완독하려면 최소 두세 달 걸리잖아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7-10-23 15:0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
어떤 책들은 아무리 페이지 수가 많아도
며칠이면 거뜬하게 읽어 내는데 말이죠 ~

단발머리 2017-10-23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는데, 정리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저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이후로 줄리언 반스 좋아라 했지만.....
했지만... 이 책은 어려워서 리뷰도 안 쓰고 패쓰했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레삭메냐님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레삭매냐 2017-10-23 15:03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뭘 읽었는지 몰라서
얼결에 리뷰를 적은 느낌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할 말은 참
많았었는데, 리뷰로 풀어 내려니
답답하기만 하네요.

무지한 독자의 부끄러운 글쓰기
였습니다.

stella.K 2017-10-23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이 사람은 독자를 위해 쉽게 쓸 마음도 없는 사람은
아닐까 싶어요. 콧대가 워낙 쎄서.
너 아니어도 읽어 줄 사람 많고,
내 책 어려워 못 읽겠다면 뭐라고 하지말고
니 수준을 생각해.
뭐 그러는 것 같습니다.ㅋㅋ

레삭매냐 2017-10-23 15:33   좋아요 1 | URL
만만하게 보고 덤벼 들었다가 큰코
다쳤습니다.

에잇 이런 불친절한 작가 같으니라구.
저처럼 무지한 독자를 위해 쉽게 쉽게
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ㅋㅋ

sprenown 2017-10-23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하다는 ‘줄리언 반스‘가 쓴 책이군요..리뷰나 댓글을 보니 아무래도 이 책은 저에게 무리일 것 같네요. 이 작자가 쓴 좀 더 쉽고, 감동적인 작품은 뭘까요? 진짜, 마지막 새우관련 문장은 압권이군요!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먹었다는 뜻인가? ㅋㅋ

레삭매냐 2017-10-23 17:27   좋아요 1 | URL
예의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더라구요.

줄리언 반스, 개인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요 ㅠㅠ

비로그인 2017-10-24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저는 있는 그대로 이해했어요... 새우칵테일 속의 새우, 처량해 보이지 않나요? 넓고 푸른 바다가 아닌 좁디 좁은 붉은 소스 안에 푹 담겨 있는 모습. 권력층에 기대어 살아남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으로요. 아, 게다가 마침 새우칵테일 소스가 붉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볼 수도 있겠네요, 쓰다 보니~~

레삭매냐 2017-10-24 10:16   좋아요 0 | URL
원작자의 글보다 아이다호피쉬님의 해석이
더 유려한 것 같습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Falstaff 2018-01-31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앞에서 같은 비유를 하는 문장이 95쪽에 나옵니다. 비행기 기내식 이야기군요.
˝그들은 자기에 담긴 음식과 리넨 천에 싼 묵직한 커트러리를 날라왔다. 새우 칵테일 소스 속에서 헤엄치는, 정치인처럼 살이 찌고 매끈한 엄청나게 큰 새우. 버섯과 감자.....˝
이 문장과 연결해 읽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좋은 글 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18-02-01 09:36   좋아요 0 | URL
아마 제가 대가의 비유 혹은 은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찾아봐야지
싶네요.

미트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전했는데 기대만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Falstaff 2018-02-01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스가 대가라기 보다....
흔히 작가들은 독자가 자신이 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몰두, 집중해서 읽어줄 것이라 착각하는 거 같아요. 반스 역시 독자가 95쪽에서 사용한 (2부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자기 생각엔 기막힌 묘사였던) 문장 또는 묘사를 171쪽에서도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던 것처럼 보입니다.
칵테일 소스 안을 헤엄치는 살찌고 엄청 매끈한 새우처럼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뜻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