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몸값 캐드펠 수사 시리즈 9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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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BC 이번 시리즈는 12세기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에 벌어진 잉글랜드 내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펙터클한 에피소드다. 114122, 링컨 전투에서 기사도 타령을 하던 스티븐 왕은 모드 황후 편에 선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게 역사적 사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국왕의 편에서 출전했던 슈롭셔의 행정 장관 길버트 프레스코트의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 역시 부상을 당했지만 무사히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문제는 그의 상관인 프레스코트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는 부상당하고 역시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왕과 행정 장관으로 포로로 잡아 기세가 오른 반란군들은 휴 베링어 관할 내의 슈루즈베리 지역으로 침투를 시도한다. 하지만 고드릭 포드로 침공한 웨일스인 부대는 매그덜린 수녀가 지휘하는 지역 민병대와 숲 사람들에게 호된 패배를 당한다. 그리고 청년 엘리스 압 키난이 포로 신세가 된다. 역시 같은 웨일스 사람이자 TCBC 시리즈의 해결사인 캐드펠 수사가 나서서 통역도 하고, 엘리스가 나중에 프레스코트와 포로 교환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다.

 

TCBC 시리즈에서 역사적 배경과 살인사건을 능수능란하게 해결하는 캐드펠 수사의 맹활약이 중심이긴 하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매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선남선녀들의 로맨스다. 웨일스 출신으로 오만한 엘리스는 거의 원수나 다름 없는 프레스코트 장관의 딸 멜리센트를 보는 순간 바로 사랑에 빠진다. 아니 이 녀석이 금사빠였나? 멜리센트 역시 훨칠하고 잘 생긴 낙천주의자 엘리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문제는 엘리스에게는 고향에 오래 전부터 정혼한 크리스티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멜리센트의 완고한 아버지 길버트 프레스코트가 둘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으리라는 점이 강력한 장애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캐드펠 수사의 노력으로 길버트 프레스코트가 비록 심각한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엘리스와의 맞교환을 성사시킨다.

 

낙천주의자 엘리스 압 키난은 포로 신세지만 사랑에 빠진 멜리센트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공연하게 자신의 연정을 사방에 떠들고 다닌다. 철부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환갑을 지난 노련한 캐드펠 수사의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언행과 어쩌면 이렇게 비교가 되는지 역시 작가의 훌륭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가마를 타고 귀환해도 되는데 굳이 말을 타고 돌아오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낙마해서 상처가 덧난 길버트 프레스코트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진료소로 옮겨진다. TCBC 시리즈에서 살인사건은 디폴트지. 그렇다면 이번에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프레스코트가 예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다양한 이들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실제로 엘리스는 자신과 함께 자란 젖형제 엘리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굳이 결혼 승낙을 프레스코트에게 받겠다고 진료소로 그를 찾아간다. 그전에 멜리센트를 얻기 위해서라면 프레스코트를 없애겠다는 말까지 했으니, 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 외에도 재산 문제로 악연을 쌓은 모리스 수사 그리고 자신의 이복동생을 프레스코트의 판결로 잃은 목동 애나이언이 차례로 의심을 받는다.

 

한편, 우리의 탐정 캐드펠 수사는 죽은 프레스코트의 시신에서 질식사의 결정적 단서들을 찾아낸다.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증거 확보를 시도하는 동시에, 냉철한 추리와 직관으로 유력 용의자들을 수사 선상에서 배제해 나가는 실력을 보여준다.

 

슈롭셔 지역을 책임지는 행정 장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회로 삼아, 반란군들이 준동을 시작하고 위기가 계속된다.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캐드펠 수사는 양측 모두에게 얻은 신임을 바탕으로 해서 사건의 진실과 진범을 찾는 노력을 계속한다.

 

잉글랜드 내전에서 결정적 장면이었던 링컨 전투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스티븐 왕이 반란군에게 포로로 잡히면서 무게 중심의 추가 모드 황후 측으로 갑작스럽게 기울기 시작했다.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지 못하고 흔들리던 헨리 주교 역시 모드 황후 편이 되었다. 이런 급변하는 잉글랜드 역사를 무대로 해서, 엘리스 피터스는 작가는 속세의 정의를 추구하는 캐드펠 수사와 그의 파트너 휴 베링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에게 끊임없이 미션을 부여한다.

 

평소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시리즈에서는 내전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슈루즈베리 수도원과 마을이 초토화될 수도 있는 그런 위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전에 이미 실력이 검증된 휴 베링어는 웨일스의 오아인 귀네드와 동맹을 맺어 반란군들로부터 자신의 영지와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을 지키는 임무를 탁월하게 처리해낸다. 휴가 슈롭셔 북부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떠났을 때, 본진을 지킨 앨런 허바드의 등장도 반갑다. 그전 에피소드에 등장한 여걸 매그덜린 수녀처럼 사이드킥으로 이렇게 시리즈의 주요 인물들을 보필해 주는 조연들도 필요하니 말이다.

 

러브 트라이앵글 역시 진부하긴 하지만, 시리즈의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번 편에서도 엘리스-멜리센트-엘리드 그리고 크리스티나 4인의 실타래처럼 엉킨 이야기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핵심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너무 속세로 흐를 수도 있는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은 역시 캐드펠 수사다. 하지만 그가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거둘 수 없다는 핸디캡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그 점이 바로 캐드펠 수사의 장점이기도 하지 않을까. 성속의 경계선에서 우뚝 선 거인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그의 노련미에 흠뻑 빠져 버렸다.

 

이제 출간된 10편의 TCBC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앞으로 외전까지 해서 11편이 더 남아 있는데, 더욱 현명해진 해결사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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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26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시리즈 5편까지 읽었는데 빨리 읽으셧군요.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근데 5편 세인트 자일스의 나환자는 앞의 편들보다 좀 맥이 빠지더라구요. 근데 뒤로 가니 또 이런 스펙터클이.... ㅎㅎ 언제나 기대되는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