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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 아흔 살 넘은 부모 곁에서 살기, 싸우기, 떠나보내기
라즈 채스트 지음, 김민수 옮김 / 클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3년 전에 NYT에서 선정한 베스트북 10 자료를 다시 보게 됐다. 그 땐 그냥 시큰둥했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이 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10권이 아니라 22권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예전에도 부커상 수상작에 꽂혀서 책들을 사모으지 않았던가. 절판된 책이 애로사항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책사냥꾼의 본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바로 사냥에 나서서 아일랜드 분쟁을 다룬 논픽션 <세이 나씽>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바로 뉴요커에 카툰을 그리는 라즈 채스트의 그래픽 노블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였다. 역시나 “시티” 출신의 라즈 채스트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작가였다. 벌써부터 귀가 솔깃해지지 않는가. 어쩌면 미국 문학판의 주류는 유대인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쪽 출신들이 차고 넘친다.
아흔이 넘은 부모님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나의 부모님들도 연세가 드시고, 이런저런 병환을 가지고 계시다 보니 남의 일 같이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계속해서 날아오는 부고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다.
라즈 채스트 역시 부모님 슬하에서 벗어난 뒤, 시티 대신 코네티컷에 둥지를 튼 모양이다. 교사 출신의 부모님들은 구두쇠 유대인답게 한 푼이라도 아껴야 잘 산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다. 그들과 쇼핑하는 장면을 작가는 “광인과의 쇼핑”이라고 명명했던가. 도대체 은행에서 예금하면 주는 공짜 믹서기가 왜 그렇게 필요하단 말인가.
어머니가 무슨 서류인가를 찾으시겠다고 사다리에 올라 가셨다가 다치고, 또 노인성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방치할 수 없었던 작가는 결국 많은 비용이 드는 요양원으로 부모님을 모신다. 모든 이들이 그렇지만 다가오는 이별, 그러니까 죽음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는 걸 외면하고 싶어한다. 한 달에 자그마치 7,200달러 그리고 나중에 14,000달러까지 치솟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지점에서 한푼두푼 아낀 돈을 모두 저축한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한다. 아니 어쩌면 라스트 부부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그 돈들을 알뜰하게 모아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담담해질 수는 없겠지. 그게 또 타인의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라면 더더욱 말이다.
자그마치 부모님이 48년을 사신 아파트를 정리하는 장면에서도 울컥했다. 우리 아버지는 뭘 그렇게 밖에서 주워 오신다. 지난 번에 방문했을 적에는 왜 지하실에 스노보드가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심지어 제법 쓸만하기까지 했다. 당신은 타시지도 못할 인라인스케이트의 모습도 보였다. 놀라운 허섭쓰레기들의 행진이었다.
라즈 채스트는 수천권의 책들과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나도 그 못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마구 내다 버려도 돈 한푼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쓰레기들을 버릴 적에도 돈이 든다. 어머니가 지난 번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1차로 정리를 시도하셨는데 내다 버리는데도 제법 돈이 들었다고 하셨다. 다 내다 버리고 나니 지하실이 훤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하실에 가서 꼬맹이와 같이 탁구도 치고 그랬다. 내가 처음 탁구를 배울 적에 어머니와 지하철 역사 빈 공간에 준비된 탁구대에 가서 탁구공 줍느라 고생하던 기억이 났다.
IQ 152의 엘리자베스 채스트 여사는 채스트 집안의 그야말로 폭군이었다. 그녀의 말은 가족 모두에게 권위있는 법이자 명령 그 자체였다. 그러니 작가와 사이가 좋았을 리가 있나 그래. 아버지 조지 채스트의 마지막 순간과 달리 어머니와의 이별은 참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지난 주말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 토론에서 부모 세대와의 갈등 그리고 화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지. 내가 읽는 것들이 그리고 내 삶의 어느 부분들이 연결되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모두가 기피하는 주제이긴 하지만, 또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 부모의 죽음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그네들의 문화가 좀 이질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롤랑 바르트와 아니 에르노의 애도 일기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싶다. 죽음이라는 가장 대면하고 싶지 않은 강렬한 주제를 그래픽 노블이라는 방식으로 녹여 내서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도서관에도 비치가 되어 있지 않고, 근처의 중고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어서 우주점 서비스로 샀다. 이렇게 싸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격이 착했다. NYT 추천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절판된다는 게 아쉽다.
[뱀다리] 아 ‘더께’ 이야기도 있었지. 세월과 함께 쌓인 먼지가 더께가 되고, 더께가 내려 앉은 물건에는 왠지 손이 가지 않게 되더라. 나의 책들 위에도 더께가 쌓이고 있다. 자주 본 책들은 그렇지 않던데. 세월의 더께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읽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