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크리스티앙 드 메테르 그림, 임호경 옮김 / 미메시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 주문 내역을 검색해 보니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여름에, 피에트 르메트르의 공쿠르상 수상작인 <오르부아르>를 중고책방에서 구매했다. 물론 책은 읽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그래픽 노블로 <오르부아르>를 만나게 됐다. 그 사이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더라. 그래픽 노블만으로는 원작을 가늠할 수가 없어, 너튜브에서 찾은 영화 리뷰도 참조했다.

 

그래픽 노블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11,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프랑스군 진영으로부터 서사의 출발을 알린다. 독일과의 휴전 소문이 나면서, 양진영은 암묵적인 휴전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광이자 전장에서 무공을 세우고 싶었던 앙이 도네프라델 중위의 잔인한 음모로 2명의 신병이 정찰에 나섰다가 독일군의 총탄에 쓰러지자, 프랑스군 병사들이 적진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한 전우 알베르 마야르를 구하기 위해, 전장에서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에두아르 페리쿠르가 나섰다가 그만 적탄(영화에서는 적의 포탄)에 맞아 하관이 부서지는 참혹한 부상을 당한다.

 


전장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자신의 모습에 경악하는 에두아르. 게다가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에두아르는 몰핀을 몰래 구해다 주사한다. 하관에 보철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알베르의 제안에 에두아르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막대한 자산가 아버지 마르셀의 몰이해를 떠올리고 거부한다. 알베르는 이에 전사한 외젠 라리비에르라는 고아 병사의 신분을 위조해서, 에두아르의 그것과 바꿔치기에 성공한다. 이 장면은 훗날 전직 은행원 출신 알베르가 대규모 사기를 벌이게 되는 장면에 대한 암시라고나 할까. 사람이 지닌 기술은 어딜 가지 않는 모양이다.

 

영화에서 악당 역을 맡은 도네프라델의 모함으로 베테랑 참전용사 알베르는 연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미 죽은 사람 신분인 에두아르 역시 마찬가지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그들은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런 반면, 도네프라델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한다. 전사자들의 묘역 조성에서 막대한 돈을 챙긴 도네프라델은 심지어 에두아르의 누나인 마들렌과 결혼도 했다. 이런 드라마틱한 구성이야말로 복수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좋은 소재가 아닐까 싶다. 빌런들이 현재에는 그런 성공을 구가할 지는 몰라도 결국에 가서는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뭐 그런 서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픽 노블과 영화는 디테일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데, 개인적으로 볼 때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그다지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소설은 또 다르지 않을까 싶다.

 

하관 부상의 시달리는 에두아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빚진 알베르는 거리에 나가 전상자들로부터 몰핀 약탈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실의에 빠져 있던 에두아르는 신문배달 소녀 루이즈를 만나고 자신의 존재를 가리는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투지를 불사르기 시작한다. 에두아르, 루이즈 그리고 알베르 삼총사는 전후 프랑스 사회에서 일기 시작한 전사자 추모 분위기에 편승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사기를 구상한다.

 

사기를 치려해도 돈이 필요한 법이다. 우연히 에두아르의 누나 마들렌을 통해 마르셀 페리쿠르 아저씨의 눈에 든 알베르는 회계출납원으로 페리쿠르 사에 취업해서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고객들의 돈을 슈킹하기 시작한다. 부자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이라는 장사를 통해 돈을 벌었다면, 알베르 삼총사는 바로 그들로부터 정당한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는 심산으로 이런 일들을 시작했던 걸까.

 


영화의 후반은 그래픽 노블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서사에서 조금씩 궤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엔딩 장면에서 아버지와 화해에 성공한 에두아르가 뤼테시아 호텔에서 비상하는 장면은 참 판타스틱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사기죄로 잡힌 알베르는 자신을 조사하던 경찰 수장의 호의로 리비아 트리폴리로 탈출하는데 성공해서 잘먹고 잘 살았다는 동화로 끝이 난다. 참고로 경찰 수장은 전장에서 도네프라델의 총에 맞은 신병의 아버지였다고. 영화가 아무래도 그래픽 노블보다는 더 친절하고 개연적인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네프라델 몰락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공무원 조제프 메를랭을 알베르 삼총사가 픽업하는 장면도 그래픽 노블에서는 빠진 부분이다.


전후 거의 폐인 같은 삶을 살던 에두아르는 루이즈를 만나 마스크를 만들어 쓰면서 부활과 갱생의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리고 비록 타인을 속이는 사기라는 범죄를 공모하긴 했으나, 그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영화에서 에두아르는 마스크의 입모양 하나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입모양이 위로 올라 가면 우울하거나 기분이 언짢다는, 그리고 아래로 내려서 웃는 모습이 되면... 영화 <마스크>에서 일상에서는 변변찮았던 짐 캐리가 마스크가 쓴 다음에 다른 사람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전쟁은 비극이다. 그리고 지옥 같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알베르와 에두아르 같은 피폐해진 육신과 영혼을 가지고 새로운 지옥에서 살아야 했다. 국가는 조국을 위해 희생하라는 대의명분 아래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돌아온 그들을 조국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전쟁과 죽음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번 것은 안전한 후방에서 전쟁을 치른 일단의 모리배들이었다.

 

기억전쟁을 통해 100년 전 프랑스의 실상을 다룬 피에르 르메트르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원전에서 파생된 2차 저작물로는 아무래도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만나봐야할 것 같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1-11-13 1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좋았습니다. 근데 르메트르는 이 작품 이후로 점점 내리막길 걷는 듯 해요..

레삭매냐 2021-11-13 12:05   좋아요 4 | URL
아 그렇군요 !

워낙 연세가 드신 다음에
집필 활동에 들어 가셔서
그런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의
욕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초란공 2021-11-13 16: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있었군요. 궁금하던 그래픽 노블도 살짝 보여주셔서 좋고요. 작품에 다가가는 좋은 방법을 보여주시네요~!!! 저도 좀 부지런해야 겠다는... ㅋ

레삭매냐 2021-11-13 19:31   좋아요 5 | URL
저번 이번에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맨 오브 마스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더라구요.

서니데이 2021-11-13 19: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그래픽노블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생겼군요.
몇 년 전에 원작 소설이 유명해서 그래픽노블도 출간된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1-11-13 22:59   좋아요 3 | URL
1차 저작물에서 단물 빼는
재주는 일본하고 프랑스가
쵝오인 것 같습니다.

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mini74 2021-11-13 1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5년은 그래픽노블을 만나기위한 시간인가요. 그래픽노블은 쫌 멋진거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21-11-13 23:01   좋아요 3 | URL
아무래도 원작 소설보다는
그래픽 노블의 접근성이
확실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5년이나 걸렸네요. 소설은
어디에 갔는지 -

라로 2021-11-14 0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기를 치려해도 돈이 필요한 법이다. ㅎㅎㅎㅎ
암튼 책은 읽으실 예정이신가요?? 저는 얄팍한 사람이라
책은 패스하고 그래픽 노블이랑 영화를 보겠어요.^^;;

레삭매냐 2021-11-14 00:06   좋아요 2 | URL
책을 찾으면 한 번 봐보고
싶은데 당최 책의 소재 파
악이 안되니...

영화는 일단 구했는데
리뷰를 보고 나서 그런지
선뜻 시작하기라... 책이
왠지 더 나을 듯 하더라는.

레알 얄팍한 닝겡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
시지요 핫하 -

라로 2021-11-14 00:50   좋아요 2 | URL
설마 존경하는 매냐님께 감히 그럴리가요!!^^;; 이 닝겐 이야기랍니다.ㅠㅠ(커밍아웃;;)
그나저나 책이 너무 많아서 소재 파악이 어려우실 지경!!
그런데 어떻게 5년 전에 사셨다는 기억은 하시는지
그것도 대단하시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