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지만 한국 출판계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루이즈 글릭)


지난주에 노벨문학상 발표가 났다.

생전 처음 들어본 작가가 상을 받았다.

 

지금은 탄자니아, 예전에는 탕가니카라고 불리던 동네에서 태어난 작가라고 한다.

이름은 압둘라자크 구르나. 19481220일 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73세다.

 

잔지바르 술탄국 출신으로 () 18세가 되던 해인 잔지바르 혁명으로 고향을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니까 미스터 구르나는 난민이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학위를 받고, 나중에 은퇴할 때까지 교수직을 역임한 켄트 대학에서 서아프리카 소설 연구로 PhD 학위를 받았다.

 

유럽 쪽에서는 나름 알려진 작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전혀 소개된 바가 없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번역된 책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10편의 소설을 비롯해서 다양한 저술들이 있다.

 

이 시점에서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찾아보니...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일년이 다 되도록 단 한 권의 시집도 번역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놀랍지 않은가!

자그마치 노벨문학상 작가인데 말이다.

 

예전에 그렇게 말이 많던 밥 딜런의 책들도(아마 그가 쓴 책은 아니고 평전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나왔는데 말이다. 명색이 노벨문학상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음반들을 사서 듣는 건 좀...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이번 수상 역시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성추문으로 노벨문학상이 거센 타격을 받은 후, 유럽 남성작가 위주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새로운 작가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미스터 구르카는 그런 점에서 아주 적당한 타협이 아닐까 싶다.

 



(미스터 구르나의 대표작들)


우선 그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이다. 일단 제3세계 작가라는 점에서 득점이다. 유럽 작가들이 다 해먹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우 수가 있다. 게다가 지난 8월 대규모 아프간 난민이 발생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난민 이슈가 부상되었다. 아니 아프리카 출신에 난민이기까지! 더 좋은 건 미스터 구르카가 모국어인 스와힐리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 작가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그런 선택이 아니었을까.

 

국내 출판계에서는 이런 추세를 미리 읽었다면 투자하는 셈치고, 이런 작가에게 투자를 했어야 한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미래의 잭팟을 기대하는 심정으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해서 한두 작품만 번역해서 출간했어도 가을 노벨문학상 특수를 제대로 누렸을 텐데... 우리 책쟁이들도 당장은 읽지 않더라도, 호기심 구매를 했을텐데 말이다.

 

노벨문학상 발표가 나자마자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를 장식할 수 있는 영광은 올해에도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매년 단군 이래 가장 어렵다는 신기록을 매년 갱신하고 있는 출판계가 적은 투자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뱀다리] LA Times 추천 미스터 구르나 5 Books


1. “By the Sea” (2002)

2. “Gravel Heart” (2017)

3. “Admiring Silence” (1996)

4. “The Last Gift” (2014)

5. “Paradise” (1994)


과연 미스터 구르나의 10권의 소설 가운데 어떤 책이 가장 먼저 번역이 될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마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낙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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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10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정말 예전엔 노벨상 발표나면 각종 서점들이 그 책들로 도배가 돼서 오히려 너무 심하단 생각도 했었는데 작년도 올해도 번역책 하나 없군요. 구르나가 선정된데는 이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있나보군요. 새로운 면을 알게되네요 ~ 좋은 글 고맙습니다 ~얼릉 번역되면 좋겠어요. 궁금해요 ㅎㅎ

레삭매냐 2021-10-11 00:28   좋아요 3 | URL
노벨문학상이 점점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
입니다...

문학에 대한 상을 주는 것 자
체가 참 그렇긴 하지만요.

일단 책은 궁금하니 번역부터
쩜.

단발머리 2021-10-10 2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관계자들 다들 잠 못 이루는 밤일텐데 레삭매냐님 일침에 더 맘이 아프겠군요.
한 권이라도 나왔으면 좋았을텐데요. 안 읽어도 다 사기는 할테니 판매는 걱정 없을 텐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10-11 00:29   좋아요 2 | URL
을매나 속이 애릴 까요...

이제는 판권값이 치솟아서
그전에 미리 쟁여 두지 않았
다면 바가지 쓰게 생겼네요.

그 덕에 책값이 비싸지지나
않았으면 합니다 ㅋㅋ

청아 2021-10-10 23: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년 수상자의 작품이 번역이 안되었다니 놀랍네요!! 시집이라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할거라 생각한건지...이번 수상작은 번역을 꼭 해주길. 과연 얼마나 기다려야 나올지도 궁금해요. 프루스트 작품도 제가 출판사랑 통화까지 했는데 나온다고 하고선 전혀 소식이 없네요.😭

레삭매냐 2021-10-11 00:31   좋아요 4 | URL
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래도
명색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데
국내 역서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말이죠.

하긴 시집이 장사가 안되긴 하니
깐요. 저도 시집은...

뭐 때가 되면 나오지 않을까요,
노벨문학상의 열기가 다 식은
다음에요. 그때 사는 사람들은
진짜 책쟁이덜!

얄븐독자 2021-10-11 05: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벨상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너무나 생소한 작가라 저는 번역작이 있었다해도 판매량은 크지않았을것 같습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작가가 모두 흥행한것도 아닌것 같고요
출판사 편을 들자는건 아니지만 생소한 작가를 놓칠수도 있다고 보구요 다만 부커상 후보 작가들 정도라면 관심을 갖고 소개 차원에서 좀 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듭니다

레삭매냐 2021-10-11 11:27   좋아요 1 | URL
지적해 주신 세 가지 뽀인트가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아예 번역도 하지 않은 모양이
입니다.

유명하지도 않고, 팔릴 것 같지
도 않으며 노벨문학상의 아우라
도 예전만 못하더라는.

탁월하신 분석이십니다.

그레이스 2021-10-11 09: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시가 홀대 받는 이유 아닐까요
시집이 많이 팔리지도 않고, 번역시도 그렇구요. ㅠ
시집 중 개인 블로그나 sns에 올려져 소비되고 있는 현상도 그렇구요. ㅠ
시집출간을 꺼려하는 이유.

저도 이 분 시집은 원서로 살까 생각했던...^^
그러다 잊었어요 ㅎ

레삭매냐 2021-10-11 11:28   좋아요 3 | URL
참으로 동감해 마지
않는 바입니다 -

시는 SNS에 딱 맞아
떨어지는 그런 콘텐츠
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든지 짤로 소비하는
시대에 장황한 리뷰는
인기가 없죠.

짤막한 시 정도라면
후닥닥 베껴서리 ~!

미스터 구르나의 원서를
저도 살까 하다가... 패스
하고 번역을 기다리는 것으로.

새파랑 2021-10-11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넓고 위대한 작가는 많은거 같아요 ㅎㅎ 어서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한글로^^

레삭매냐 2021-10-11 11:29   좋아요 2 | URL
제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클
보이스> 원서를 가지고 있어서
역서와 번역을 비교해 보았는데
(아주 초큼!) 확실히 원서랑은
차이가 있더라구요. 미세한?

어쨌든 미스터 구르나의 번역서
를 기대해 봅니다. 어여 빨랑 속히.

바람돌이 2021-10-11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올리신 글 보니 부커상 쪽도 난민 출신이 많던데 아무래도 문화적 혼란이 문학의 형상화에 있어서는 다양한 이야기와 깊이를 끌어낼 수 있을거 같기도 해요. 탄자니아라니 너무 모르는 멀고 먼 나라라 막막 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21-10-11 23:04   좋아요 1 | URL
이번에 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프랑스
식민지 세네갈 병사들을 다룬 소설이
하나 있는데, 미스터 구르카는 자신의
모국이었던 탄자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소설로 다룬 것 같습니다.

그 작가의 책도 함께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