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디의 왕 - 할인행사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 Niro)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 : 코미디의 왕

원제 : The King Of Comedy

감독 : 마틴 스코시즈

촬영 : 프레드 슐러

음악 : 로비 로버트슨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제리 루이스, 다이앤 아보트, 산드라 버나드

 

197634세의 마틴 스코시즈가 칸느 영화제에서 <택시 드라이버>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을 때 미국은 시대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참담한 패배를 기록한 베트남전이 막 끝나고 세계경찰국가로서의 헤게모니를 상실한 미국의 위상을, 월남전에서 귀환하여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한 사나이의 분노에 찬 폭력과 사랑, 사회 정의, 정치에 대한 허무와 냉소를 통해 그려낸 <택시 드라이버>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시대정신의 표현이라는 비평가들의 찬사 속에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제는 우디 앨런과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미국 영화계의 거장이 된 스코시즈는 이미 20년 전에 <New York, New York>이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영화들에서 오늘날 뒤틀린 미국의 자화상과 자아 정체성을 잃은 채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초상을 조명해오고 있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이 이제는 영화학도들에겐 텍스트가 된지는 이미 오래이고 사회학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에겐 한편의 사회학 논문으로 인용되고 있을 정도다. 코폴라가 대부 시리즈를 통해 영광으로 채색된 미국의 역사의식에 대해 메스를 들었다면 스코시즈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현대 미국이 당면한 현실을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시즈는 1973<비열한 거리>에서 호흡을 맞춘 이래 자신의 영화적 페르소나가 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80년대 미국영화의 최고걸작으로 꼽히는 <성난 황소>을 만들어냈다. 비록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모두 고배를 들었지만 로버트 드 니로에게 마침내 오스카 주연상을 안겨주었으며 비평가들은 아직도 이 작품을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스코시즈는 2년 뒤 다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위선으로 가득찬 미국의 텔레비전 쇼비즈니스 업계를 비판한 영화를 만드는데, 이 영화가 바로 <코미디의 왕>이다.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 니로 분)은 뉴욕에서 제일가는 인기 절정의 코미디언 제리 랭포드(제리 루이스)를 능가하는 코미디언이 되기를 원하는 34세의 코미디언 지망생으로 '코디미의 왕'을 꿈꾼다. 그는 팬들에게 둘러싸인 제리를 위기에서 구해줌으로써 제리와 인간적 관계를 맺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제리에게 자신의 유머를 들려주려고 하지만 인사치레로 루퍼트에게 자신의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라고 말하는 제리. 이에 용기를 얻은 루퍼트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모해오던 리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일은 루퍼트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인기 스타인 제리는 루퍼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테이프를 듣기는커녕 그를 문전박대한다. 마침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쇼에 출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루퍼트는 제리의 열혈팬인 마샤와 함께 그를 납치하기로 결심한다. 제리를 볼모로 TV제작자를 협박해 텔레비전 쇼에 출연한 루퍼트. “코미디의 왕이라는 소개로 시작된 그의 성공적인 코미디언 데뷔, 그리고 다음날 바로 납치, 감금죄로 루퍼트는 연방교도소에 수감된다. 2년 뒤 이제는 유명인사가 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꿈에도 바라던 나이트쇼의 호스트 자리였다.

 

오늘날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가장 원하는 직업 중의 하나인 방송인에의 꿈은 매스 미디어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화려한 카메라 플래시의 스포트라이트와 열광하는 관중들의 환호는 고대 그리스 이래 만인의 꿈이었으니까. 스코시즈는 바로 이런 화려함 뒤로 펼쳐지는 방송계의 입문을 꿈꾸는 사람들의 애환과 열혈 팬들의 굴절된 사랑 그리고 시청률만을 외쳐대는 상업주의에 물든 방송계 인사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코미디의 왕>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극단적인 자의식과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좌충우돌하는 루퍼트 펍킨이란 돈키호테적 인물에 대한 영화다. 그는 유행에 뒤떨어진 우스꽝스러운 옷과 구두를 신고 다른 사람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해댄다. 물론 그의 목표는 성공이다. 그러나 그는 제리의 충고대로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성공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는 야심가이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아무도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이러한 루퍼트가 지닌 사고의 결과는 극단적인 일탈행위(제리의 납치)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대로 나이트쇼에 출연해서 마음껏 세상 사람들을 웃긴다. 바로 이 장면에서 루퍼트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기과시욕의 현시와 자아충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해피엔딩이다. 인생의 패배자였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된다. 나이트쇼의 호스트 자리와 사회적 명성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루퍼트 펍킨에 견줄만한 또 하나의 개성적인 캐릭터로 제리 랭포드를 짝사랑하는 부유한 유대인 아가씨 마샤 역의 산드라 버나드가 있다. 오프닝 시퀀스의 프리징 프레임에서 제리의 차안에서 발버둥치는 열혈 팬이 바로 그녀다. 마샤는 루퍼트와 모의해서 제리를 납치하고는 루퍼트가 쇼에 출연하러 간 사이에 의자에 테이프로 꽁꽁 묶여 있는 제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씬은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의 하나이다. 그녀는 갖은 방법으로 제리를 유혹하지만 광기 어린 그녀의 모습에 겁에 질린 제리. 그녀는 상대방의 감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스코시즈의 카메라는 이런 뉴욕의 광기를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플래시백은 루퍼트의 미래를 보여준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제리 랭포드가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자신의 쇼에 출연해 달라는 애원을 하고 한술 더 떠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까지 동원해서 텔레비전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보여

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행이라는 일반적 관행을 쫓아가던 사람들은 순간 당황한다.

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신문과 잡지에 실린 짤막한 기사들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해결해준

. 이처럼 이러한 일련의 플래시백 장면들은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한 가지 더. 영화를 보면 루퍼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히치콕의 <사이코>가 연상된다. 죽은 어머니에게 절반의 자의식을 빼앗긴 노만과 온전한 자의식으로 무장한 채 나르시소즘에 빠져 있는 루퍼트와의 비교는 흥미롭다. 그리고 방안에 유명인사들의 패널을 세워놓고 틈날 때마다 자신의 코미디를 연습하는 루퍼트가 환호하는 청중들의 환청을 들으며 무대로 나아가는 장면은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인간 묘사의 극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스코시즈는 약육강식이라는 전형적 자본주의 논리에 기반한 쇼비즈니스의 생태를 통해 날로 획일화되고 황폐해지고 있는 진실한 인간성 회복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비록 '심각한' 자기도취에 빠진 루퍼트지만 나중에 제리가 곤궁에 빠져 도움을 청할 때 옛 정(?)을 생각해서 선뜻 그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장면(루퍼트가 데뷰전에 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매정하게 내쫓던 제리와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여준다.)은 비정하기 짝이 없는 쇼비지니스계에 대한 스코시즈의 통렬한 일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코디미의 왕" 루퍼트 펍킨의 멋진 대사 한마디,

 

"평생을 멍청이로 사느니, 단 하루를 왕으로 사는 게 좋아!"

better to be a king for a night than a schmuck for a lifetime!

 

- 2007925일에 작성한 리뷰 -

 

무려 14년 전에 쓴 리뷰다. 다시 보니 그것 참 감회가 새롭다.

 

엔딩을 너튜브로 해서 찾아보니, 납치감금죄로 6년형을 받고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던 루퍼트 펍킨이 29개월의 형을 살고 가석방되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서는 장면이다. 죄를 짓고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쩍 컴백하는 현 세태를 꼬집는 것 같기도 해서 놀라울 뿐이었다. 39년 전에 이럴 줄 어떻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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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09 15: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앗 가물가물해요 이 영화 ㅎㅎ 80년대에 봤던 거 같기도 하고 ㅎㅎ

레삭매냐 2021-07-09 15:57   좋아요 5 | URL
스코시즈-드 니로 조합의 베스트
샷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미미 2021-07-09 15: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택시 드라이버>도 <코미디의 왕>도 명품영화! <성난 황소>와 <비열한거리> 찾아봐야겠네요ㅋㅋㅋ

레삭매냐 2021-07-09 15:58   좋아요 5 | URL
어려서는 몰랐었는데...

<택시 드라비어>는 보면 볼수록
명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21-07-09 16: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엇, 감독의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저도 감독의 영화 좋아하는데...
근데 아직도 보지 않은 영화가 몇 있군요.
본 영화중엔 <특근>이 참 인상 깊었는데
워낙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가물가물하네요.

레삭매냐 2021-07-09 17:10   좋아요 3 | URL
미국 감독 중에서 제가 우디 앨런과
더불어 좋아하는 감독이었죠.
뭐 지금은 아니지만.

<특근>은 1985년 작으로 원작 제목
은 <After Hours>인가 보네요.

온갖 고생을 하는 그런 영화라고 하네요.
저도 한 번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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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튜브로 15분 짜리 리뷰를 찾아 보았는
데, 개연성 없긴 하지만 흥미로워 보이
는 영화네요. 비급 코미디인데, 칸느에서
무려 베스트 디렉터상을 받았다네요.

페넬로페 2021-07-09 1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틴 스코시즈와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를 많이 본듯 한데 이 영화는 알지 못했어요~~
읽어야 할 책도.봐야할 영화도 많네요 ㅎㅎ
14년전에 쓰신 리뷰만큼이나 레삭매냐님은 젊으셨겠죠~~

레삭매냐 2021-07-09 21:29   좋아요 1 | URL
제가 책에 빠지기 전에는
영화에 미쳐 살았더랬죠.

요즘엔 영화를 거의 안 보고
살게 되었네요.

정말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
절 이야깁니다 넵 ㅋㅋ

붕붕툐툐 2021-07-09 19: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14년 전이라니~ 꼬꼬마 시절에도 생각이 깊으셨군요!!
인간은 왜 그다지도 타인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걸까요? 참 신기해요~ㅎㅎ

레삭매냐 2021-07-09 21:31   좋아요 1 | URL
어디선가 읽었는데 우리가 하는
SNS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윤 추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들 열심으로
하는구나 싶기두 하구요...

꼬꼬마 시절에는 니나노하느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