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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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글을 배워 글을 쓴다. 하지만 녀석은 정식 교육을 배운 게 아니라 맞춤법이 엉망이다. 게다가 녀석이 배운 글은 영어다. 맞춤법이 죄다 틀린 영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려니 얼매나 어려웠을까. 조지 손더스의 <여우 8>을 읽으면서 내가 한 걱정 중의 하나다.

 

웃기는 건, 워낙 이러저러한 글들을 읽다 보니 이제 여우가 글을 배워서 쓴다고 하더라도 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도 우리네가 사는 세상에 별별 일들이 다 생기다 보니 여우가 글을 배운다고 해도 뭐 그럴 수 있지 않나하는 너그러움이 자리를 잡은 걸까.

 

우선 우리의 주인공 여우 8’이라는 녀석은 인간사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보니 가축화된 동물이 손에 꼽을 정도라지. 쇼핑몰 <폭스뷰커먼스>에 들락거릴 정도라면 가축이나 혹은 반려동물로도 삼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상상을 해본다. 미국식으로 제인이나 션 뭐 그런 이름이 아닌 여우라는 명사 뒤에 숫자를 달아 인식하는 방법이 참신했다.

 

여우가 글을 배울 수 있다는 장애물을 건너뛰면 그 다음에는 자연 파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여우들의 삶의 터전인 멀쩡한 숲을 밀어 버리고, 새로 생긴 부지에 거대한 쇼핑몰을 짓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업자나 개발업자들에게 자연보호나 환경보존 같은 구호들은 1도 먹히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익의 추구니 말이다. 자신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후손들 걱정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현세에서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관심사다.

 

조지 손더스의 시작이 어떤 특정인들에 대한 비판이라면, 다음 차례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멋들어지게 만든 쇼핑몰을 드나드는 이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쇼핑의 편리함을 극대화한 쇼핑몰이라는 존재는 21세기 미국 소비문화의 상징이다. 온갖 먹거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소품 옷가게 전자제품 가게 등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아마 멀티플렉스 극장도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주차장은 기본이다. 그런 쇼핑몰이 들어서기 위해 자연이 얼마나 훼손이 되었는 지에 대해 내가 알게 뭐냐 그래. 그저 입안에서 살살 녹는 팝콘과 탄산음료를 흡입하면서 마블에서 만든 영화를 즐기면 그만이지. 안 그래?

 

이런 무개념한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존재가 바로 여우 8이라는 녀석이다. 녀석은 자신과 함께 인간 세계를 탐험해 보겠다고 나선 친구 여우 7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했다. 그것도 인간에게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원래 집단은 찾을 수가 없게 되어, 다른 집단으로 소속을 이전한다. 그곳에서 만난 짝꿍 여우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여우 8.

 

대가가 쓴 짧은 우화가 주는 울림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간다. 현재 우리 인류는 전대미문의 신종 전염병과 치열한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무제한적인 여행과 인적 교류가 거의 중단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던 동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자연이 복원된다는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사는 지구별을 파괴하고 밑천을 드러내는 근원은 우리의 탐욕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덜 소비하고, 혀의 즐거움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작금에 누리는 삶의 질이 급격하게 달라지거나 그러는 것도 아닐진대 말이다. ‘우리의 초록빛 지구별의 지키자라는 거대한 구호로 타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나만이라도 당장에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재활용품 활용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여우 8>은 자연의 또 다른 동반자인 여러 동물들과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아주 멋진 책이었다.

 

[뱀다리] 어제 바닷가 개펄에 가서 바위 밑에 숨어 있던 게들을 잡다가 어느 난폭한 녀석에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깨물렸다. 나중에 보니 피가 철철 나더라. 꼬맹이가 그걸 보더니 대신 복수해 주겠다며 어느 녀석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짱돌로 난폭한 게를 바수어 버리겠다며 나서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하도 아파서(정말 아팠다고!!!) 그런 생각을 잠시 안한 것도 아니었지만, 게의 평온한 일상에 개입한 건 내가 아니었던가. 대승적 차원에서 녀석을 비롯해서 잡은 게들을 모두 개펄에 풀어주고 왔다. 나에게 위해를 가했다고 해서, 내가 녀석의 삶을 터미네이션할 권리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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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13 03: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표현방식이 참신한 동화네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라면 바로 사서 같이 읽었을 것 같아요.
게에게 물린 손가락은 잘 치료하셧나요? 그 녀석 참.... 그래도 아이가 복수하겟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에고 귀여워라... 뽀뽀 백개를 날리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21-06-13 08:55   좋아요 4 | URL
조지 손더스 작가의 책들이 많은데
<링컨의 바르도>는 사두기만 하고
읽을 생각은 못하고 있네요.

게에 물린 손가락보다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개펄에서 베인 발바닥이
더 심하더라구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6-13 1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도 읽으셨군요. 저는 이거 너무 동화스러울 거 같아서 패스했는데..ㅎㅎ 별 세 개! 이 의견을 접수하여 쭉 안 읽기로. ㅋㅋㅋ

레삭매냐 2021-06-14 09:18   좋아요 1 | URL
저의 별점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굳이 고려하시지 않아
도 될 듯 합니다.

미국식 소비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새파랑 2021-06-13 10: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프로필사진하고 책표지가 왠지 닮은 느낌? ㅎㅎ 어제 즐거운시간을 보내신거 같네요. 상처 잘 치료하시면 좋겠네요^^

레삭매냐 2021-06-14 09:19   좋아요 1 | URL
저의 프로필 하마는 제가 예전
에 일러스트 배우던 시절에
맹근 것이라, 깊은 애착을 가지
고 있답니다.

오늘 아침에 마데카솔 발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