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의 어느 날, 나는 토마스 만이 만든 “마의 산”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도대체 언제 샀는지도 모를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 지도 몰라서 책으로 가득한 책방을 뒤졌다. 그리고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마의 산>은 1924년 토마스 만이 세 번째로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그는 평생 모두 6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 작품을 쓰는데 무려 12년이나 걸렸다고.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1번을 장식한 토마스 만 샘의 책은 1편만 653쪽이다.
내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에, 카라마조프는 읽었는데 하는 만용으로 나는 마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읽기 전에 대략적인 워밍업을 시작했고, 자기 전에 독서에 돌입했다.
23세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스위스 다보스 베르크호프 결핵요양원에 입원한 사촌 요아힘 침센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만 샘은 시간에 대한 오묘한 설파를 서문에 공개했더랬지. 시간소설이라는 표현이 있던데...
어쨌든 나의 2020년은 고전의 해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구나.
그나저나 도끼 샘의 <죄와 벌> 재독은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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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와 벌>을 다 읽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어제 시작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인스타인지 어느 SNS에서 빡센 등정이라는 <마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그렇다면 나도? 하는 마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연 내가 1,300쪽이 훨씬 넘어가는 대작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한 번 읽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망했다지. 자그마치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1권의 당당한 타이틀이라는 점에서도 이 책은 꼭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그런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는 모름지기 자족적인 취미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취미활동에 비해 돈도 적게 든다. 가성비는 훨씬 더 좋다. 그렇다고 돈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다. 독서를 위한 근육이 필요하다. 어떤 지루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단과 쌩가는 기술도 필요하다. 내 경험에 유추해 보면 책에 나오는 모든 걸 이해하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토마스 만 같은 대가가 100년도 더 전에 살면서 피부로 느끼고 또 당대의 모든 것에 대해 능통하지 못하면서 그의 저술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 그 자체일 것이다... 라고 변명하면서 나는 쌩가기 기술로 고전 독파에 나섰다.
이번에 <마의 산>도 훌륭하게 등반에 성공하게 된다면 읽다 만 <모비 딕>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2020년은 나에게 고전의 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그런 해로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내친 김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그리고 에릭 홉스봄의 시대 3부작도 읽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독서기록장] 토마스 만의 <마의 산> 1권 등반 2일차 오전 11:54 현재 47쪽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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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는다.
주인공은 23세 한스 카스토르프다. 사촌 형제 요아힘 침센을 만나러 스위스 다보스 산중에 있는 베르크호프라는 결핵요양소를 3주간 방문할 계획으로 찾는다.
청년은 어려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었다. 그리고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그에게 죽음은 멀리 있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상회를 정리한 돈 40만 마르크는 종조부였던 영사님이 관리해주신다. 연수익의 2%의 이자를 띠면서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재산 관리자는 그에게 평생 유복하게 살려면 200만 마르크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이 제국이던 시절,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기차와 마차를 번갈아 타고 베르크호프에 도착한 한스는 사관후보생 요아힘 침센과 만난다. 건강 이상으로 이미 반년을 요양원에서 보낸 요하임. 나이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청춘들에게 6개월이 갖는 의미는 더 크지 않았을까.
한스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는 한스가 요양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옆방의 러시아 부부가 방에서 벌이는 상스러운(?) 행동에 청년은 뭐라고 했던가.
배에 대한 스케치에 재주를 보였던 한스는 조선기사 시험을 패스하고 엔지니어로 함부르크의 어느 회사에 취업했다지. 뭐 이 정도가 내가 만난 마의 산의 초반 이야기들이다.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적어 놓아야지.
* 핑계같지만 어젯밤에는 바빌로프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기록을 읽다 보니 <마의 산>에 조금 소홀했다. 일단 바빌로프와 그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지키려고 했던 종자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읽고 나서 <마의 산>에 다시 오를까 어쩔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