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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맥주 여행 - 맥주에 취한 세계사
백경학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8월
평점 :
오랫동안 맥주를 마셔 왔다. 옥토버훼스트(Oktoberfest)를 운영하는 업자인 저자처럼만큼은 아니겠지만 맥주에 대한 사랑도 대단하다. 역시 최고의 추억은 뮌헨에 가서 호프브로이하우스와 뢰벤브로이에서 실컷 술을 마신 기억이지 싶다. 사실 에일 맥주와 라거 맥주의 차이도 잘 모르고 그냥 마셔댄다. 이유는? 그냥 좋으니까. 집에도 그롤쉬(저자는 ‘흐롤스’라고 부르더라) 500ml 한 캔이 있는데 어제 마시려다가 참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셔야지 싶었는데, 그전에 사둔 오다리랑 함께, 그만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오늘 집에 가서 마셔야지.
고대 이집트까지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맥주는 정말 서구 문명에서 빠질 수 없는 그런 재화였다. 병사들의 급여로도 지급이 되었고, 고된 노동을 한 노동자들에게는 영원같은 안식을 주기도 했다니 말이다. 지금도 불토면 가끔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고대 이집트의 센스 있는 작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단다. 물론 당시의 맥주는 지금의 그것과 같이 깔끔한 것이 아니라 거의 죽 같은 수준이었다나. 중세에는 수도원에서 거의 맥주 생산을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하는데, 지금 같은 대량생산이 가능하지 않아 수도원마다 맛이 다 틀렸다고 한다. 지금도 벨기에에서 생상되는 트라피스트 맥주인가는 정말 대단한 맛이라고 하는데, 맥주 애호가로서 한 번 맛을 보고 싶기는 하다.
맥주의 초창기에는 보리와 효모 그리고 물로만 빚었다고 한다. 맥주의 쌉쌀한 맛을 내는 홉을 첨가하기 전까지 그루트라는 갖가지 향신료를 맥주에 넣어 빚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현대 맥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는 일찍이 맥주 순수령을 포고하여, 보리와 효모, 홉 그리고 물로만 맥주를 만들라고 했다던가. 그리하여 지금도 독일에서는 위의 네 가지만으로 만든 맥주만을 최고로 친다고 한다. 상면 혹은 하면 제조법도 있다고 하는데, 맥주 애호가라고 하긴 하지만 그런 차이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자.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천편일률적인 오비나 카스 맥주 외에도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수제 맥주가 인기라고 한다. 다만 가격이 일반 대중 맥주와는 좀 차이가 있어서 마음껏 마시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래전에는 돈이 없어서 맥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버드와이저랑 밀러 라이트가 들어와서 겉멋으로 마셔 보았는데 영 그렇더라. 나의 진짜 맥주 시음기는 IPA(India Pale Ale)의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난 좀 더 쌉쌀한 맛이 좋다. 그러니까 독일에서 출발한 라거보다는 영국식 에일 맥주가 더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맥주는 샘 애덤스 IPA다. 인도를 식민지배한 영국 사람들이 고향에서 맛보던 맥주맛이 그리워 아열대지방에서 맥주를 제조하기 위해 홉을 더 첨가해서 쌉싸름한 맛의 맥주를 만든 게 시초였다고 하던가. 아니면 본국에서 만든 맥주통을 배에 싣고 적도를 두어번 오가면서 오크통에서 오묘한 맛이 생겼다는 썰도 있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독일 뮌헨에 가서는 히틀러가 폭동을 선동하다가 체포되어 옥살이를 했다는 호프브로이하우스에도 가서 맥주를 마셨다. 거기서는 기본이 1,000cc였다. 아침에 뮌헨 시장에 가서 보니 아침부터 어떤 아저씨가 맥주통 위에 당당하게 1,000cc 한 조끼를 걸치는 장면에 감탄하기도 했다. 아, 이 동네에서는 이렇게 마시는구나 싶었다. 뮌헨중앙역 부근의 뢰벤브로이에서는 디즈니 캐슬 투어를 함께 한 여행 동료와 거나하게 취하기도 했었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홍대 부근에서 다시 만나 필즈너 맥주를 신나게 주고받고 그랬더랬지. 그게 벌써 십년 전 이야기로구나.
영국의 펍(pub)과 독일의 켈러(keller)라는 공간이 단순하게 술을 마시는 장소가 아닌 동네 사교의 장이라는 점에 대한 저자의 저술도 마음에 들었다. 도시화는 다수의 익명성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적 공동화를 부추기는 점도 있지 않은가. 서구 유럽사회의 유구한 지방자치제 역사는 어쩌면 이런 펍과 켈러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의 현안과 갈등해소를 바탕으로 했던 게 아닐까. 상처 받은 영혼들이 힐링을 쫓아 공허한 디지털 공간을 누비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요즘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맥주들이 마트에 차고 넘친다. 예전에 저장시설이 일천하던 시절에는 오크통으로만 운반이 가능했었다고 하는데, 병맥주와 캔맥주가 차례 대로 개발되면서 전 세계로 맥주의 유통이 가능해지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사실 하나는 편의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체코 맥주 필즈너 우르켈(오리지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이 일본 아사히 맥주에게 팔렸다는 점이다. 아사히 맥주는 전범기업에서 만든 술이라고 그동안 나의 맥주 구매목록에서 제외했었는데, 그럼 이제 필즈너 우르켈도 역시 같은 이유로 배제해야 하나 싶다. 그럼 이제 안녕 필즈너!
이번 달이 10월인데, 맥주의 본고장 독일 그중에서도 뮌헨의 옥토버훼스트에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기네스의 고향 아일랜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저자가 받은 현지 사람들의 환대도 너무 부러웠다.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도 ‘마시는 빵’ 맥주를 사랑했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술 마시는 건 좋지만, 자제의 미덕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종교개혁가는 강조한다. 양조전문가(brew master) 부인이 빚은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던 종교인이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