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 " 그래 넌 그 동안 어떻게 소원성취하고 행복하게 산겨? 엄 노파의 음성은 나즉하고 부드러웠지만 명호는 어머니의 물음에 ' 아얏' 하고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눈시울을 무겁게 내리고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다.혀도 마찬가지로 버석거린다. " 어머니 저는 유학생으로 들어와 고생도 많았으나 공부도 무섭게 했습니다.학위만이 나의 구원이었으니까요. 결국 나의 목표는 달성되고 고생한 만큼 보상받은 셈이지요." 난 자만의 바쁜 일상 속에서 현실에만 열중해서 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다만 그렇게 살아 왔어요. 하는 말은 점점 잦아들어 가뿐 숨이된다. " 어머니 좀 피곤하군요, 눈 좀 감고 있겠어요." < 명호의 어둔 방 >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무기력은 두렵기조차 하다. 이대로 까무루기 정신을 놓고 나면 세상과의 영원한 괴리가 아닐까? 그러나 이상하도록 의식은 더욱 투명하고 두서없이 떠도는 이미지들은 또렷하다. 이젠 더이상 회피하지 않고 명징한 정신력을 집중하여 자신을 깊이 응시한다.의식의 구비를 돌고 돌아 외지고 구석진 조그만 공간을 찾는다. 헐어 없애려 애썼지만 끝내 소멸되지 않고 그 곳에 있는 음습하고 혐오스러운 공간. 상처와 고뇌만을 상기기켜 차라리 마음의 금지구역이 된 그 곳서 멀어져 더욱 열심히 일에 매달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더욱 살뜰이 보살피고 쾌적한 생활의 여건을 만들어 멋지게 살면 그게 행복하고 완벽한 삶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나날이 떨어졌어도 대수롭게 생각지 않다가 눈동자와 살갗에 노란 황달기가 생기자, 몸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검사를 받은 거였다. 처음 받은 검사 결과는 간염이었다. 유년에 감염된 비 형 바이러스가 잠복되어 있다, 허약해진 틈새를 타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비 형 간염, 아무리 도망치려 애썼건만 가난한 유년의 병마에 발목 잡힌 나는 놀랍게도 잊은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는 그 때 그 자리 그대로임을 깨달은 것이다. 흙손과 톱이나 망치 등을 넣은 연장 망태를 둘러 매고 일다니던 투박한 손의 아버지 , 조그마한 초가집 그 봉당에서 사금파리 모아놓고 소꿉놀이하던 어린 두 누이 동생, 늘 바쁘게 동동거리던 어머니의 축축한 앞치마에선 찝찌름한 짠지 냄새가 났었다 가난한 미장이 집 셋 째 명호는 인물 좋은 수재였다. 주위에 선망과 기대를 받으며 장학생으로 대학까지 마쳤으나,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한 명호의 사회생활은 그렇게 찬란한게 아니었다.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다리를 잃고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온 둘 째 형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술과 싸움으로 험하게 살다, 끝내 자살하고 만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아버지는 그예 심화병으로 자리에 눕고, 가난에 오그라드는 집 안의 형편은 명호로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명호의 야망은 이런 현실에 심하게 반발하였다. 여기에 발목 잡힐 수 없어 탈출하는거야. 바위에서 뛰쳐나온 손오공처럼 난 부모도 가족도 모두 없어. 난 돌 김가가 되어 이 집에서 뛰쳐 나가야 되.여기서 주저 앉으면 내 인생 개껍데기 되는거야. 내 이상을 찾아 이 누더기 현실을 훌훌 털고 탈출하는거야. 결심하고 명호는 유학 시험을 보고 수속하고, 그리고 매정하게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전진만 생각하며 가장 완벽한 성취를 이룬다 자신하며 살아왔다. " 그런데 어머니, 솔직이 난 어머니가 몹시 그리울 땐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이제 어머니 앞에 선 제 자신이 너무 작고 못나 보이는군요. 아직 철 들지 않은 어린아이 그대로얘요." 그여코 명호는 목 안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같은 흐느낌과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세요." "명호야, 아들아,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란다. 네가 죄인이라면 나도 떳떳한게 아니야. 그리고 나는 널 생각하면 '기다리면 언젠가 만나려니'만 생각했단다.이렇게 만났으니 에미는 더 좋을 수가 없구나. 이제 서로 절대 떠나지 말자꾸나." " 어머니 늦었어요, 너무 늦어, 전 곧 다시 떠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 번은 내 뜻이 아니얘요." 명호의 흐느낌은 너무 심하여 호홉 곤란이 되며, 온 몸을 뒤틀다 차츰 의식을 잃어 간다. " 가엾은 내 아들, 하느님 내 아들을 살려주셔요." 엄 노파는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로 간구한다. 다음 장에 [ 8 ]편이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