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 5 )    2005/08/16 01:17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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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다음 날 아침 며느리는 엄 노파를 병실까지 데려다 주고는 볼 일이 급하다며 선 자리에서 돌아 나갔다.

아들은 어제보다 더 안색이 창백하고 입술이 메말라 있다. 노파는 익숙한 솜씨로 찬 물을 따라

마른 입술을 축여주고 물수건을 만들어 얼굴과 손발을 닦아준다.

" 내가 병원서 환자들을 좀 다뤄 봤어야. 가족 없는 가엾은 노친네들을 많이 돌봐줬지."

명호는 미소 띈 얼굴로  몸을 맡긴 채 잠잠이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 어머니 그 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하고 말 문을 연다.

" 이 눔아 내가 억척시럽게 살었시야. 이제 누구에게 손 안 벌리고도 살 만하게 산다.

내가 부자여, 부자." 

" 무슨 사업을 하셨어요?"

" 내가 무신 장사여? 네 동상들, 명자, 명애말이여. 걔들이 여간 똑똑시런 것들이 아니여.

걔들 덕이여."

 

   < 어머니의 이야기 1 >

이 눔아, 네가 무정시레 떠나고, 그 때 젤 집 안이 엉망이었다. 네 형 죽고, 상심해서 앓아 누웠든 네

아버지가 태산같이 의지하던 너마저 떠나니, 얼마 안 있다 그만 돌아가신겨. 네가 가을에 떠나고

그 이듬 해 오월 엿나흘에 네 아바지 돌아가싯신게, 기일이나 알아 둬.

갈 사람 다 가고, 오막살이 가난한 집에 네 어린 두 동생하고 나만 남더구나.그 때, 아직 고등 학교에 다니던

명자가 핵교를 딱  끊더구만. 그리구 양장점 시다로 들어가,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구 열심히 했제.

틈틈이 양재학원도 다니구, 애를 쓰며 몇 해 부대끼더니 뜩하니 제 양장점을 차린게여. 고게 꽤

솜씨 좋고, 싹싹해서 게서 돈 좀 벌었다네. 그 뿐인 줄 아네? 신랑도 어니서 그렇게 잘 골랐는지

마음 무던허고 인물 좋고 공부도 많이 해서 큰 회사에 좋은 자리에 있다는구먼. 지 동상 명애도

지 신랑 연줄로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어 명애도 지금 잘 살고 있어야. 가만 있자아, 명자가 아들

둘에 딸 하나에, 명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아이구, 명자는 아들 둘 모두 군대 있어야.

니 동상들두 이제 중년이 다 됐다. 참 무참한 인생이지만 세월은 빨리도 가는구나.

엄 노파는 담담하게 지나간 세월을 풀어 놓는다. 슬픔도 괴로움도, 또 분노도 깊숙이 묻어 놓은 채

현실에 골몰했던 그 때가 오히려 다행이었던듯이, 생생하게 풀어 놓는다.

엄 노파는 아들을 건너다 보며 빙그시  웃는다 그리고 얘기를 계속한다.

네 동상 명자 명애는 안즉도 너를 용서하지 못한단다. 네게 맺힌 감정이 무척 많은게여.걔들은 유감 살

만도 하지. 걔들이 내게 얼마나 잘 하는지 몰러. 사위들두 끔찍하구. 내 혼자 사는게 안스럽다고

지들 같이 살자구 아무리 졸랐지만 난 안 갔다.

 난 걔들한테 말했지. 얘들아 난 기다릴 사람이 있단다. 니 오빠가 찾아와서 우리가 간 곳을

모르면 얼마나 섭하겠니? 하룻 밤 잘 곳도 없다면 무슨 낙으로 집으로 돌아오겠느냐? 난 네 오빠

오기를 기다리며 이 집 지키고 있을게니, 네들이 이해해라. 그러니 더 삐쳐서 지들 앞에선 오빠

얘기 하지도 말란다. 에미가 영 움직이려 않하니, 지들끼리 의논해서 - 너도 알지야? 뒤 텃 밭으로 쓰던

땅이 좀 있지야? 게다 한 스무 가구 살 만한 집을 지어 준게야. 방 하나나, 둘에, 부엌. 화장실 딸린

살만한 셋 집으로말야. 마침 근처가 많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 빌 새가 없이 나고 들어

이 늙은이 먹고 살 만하단다.  그치만 명호야 걱정 말아라. 우리 살던 본채는 그대로 있어 뒤란 우물도

그대로 두었다. 뒤로 산자락이 가까워 아직 물이 맑고 시원한데 딸들은 그거 먹지 말라고

매일 잔소리다. 딸의 잔소리가 별로 싫지 않은 엄 노파의 이야기는 유머가 있고 가락이 있고 그러며

끝 없이 이어진다. 팔십 가까운 노인이면서도 흥이 올라 상기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명호의 마음은 따뜻하고 편안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행복감과 평화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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