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 날이 밝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는 다 되었다. 얼마 안 되는 짐도 꾸려 놓았고, 시간에 맞추어 며느리가 공항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그러나 엄 노파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몰랐던 느낌, 처음으로 여태껒 살았다는게 원망스럽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적막하다. 삶이라는게 물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게 무겁게 어깨를 등허리를 내리 누르는 듯, 가슴이 짓눌리고 숨이 답답하다. 점점 숨이 가빠온다. 엄 노파는 다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방 안을 서성인다. 이러기를 벌써 몇 번 째, 전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방 안을 맴맴 도는 엄노파의 입에서 처음에는 낮은 한숨으로, 신음으로, 그러다 비명인 양 푸념인양, 타령조가 흐른다. 어쩌꺼나 어쩌꺼나. 불쌍한 내 아들 , 가엾은 우리 명호. 울면서 떠나갔네, 후회 안고 떠나갔네 엄 노파의 어깨가 조금 씩 들썩거린다. 어쩌꺼나 어쩌꺼나 늙은 모숨 이내 목숨 모질게도 질긴 목숨 이 먼 길을 내 왜 왔나. 엄 노파는 이제 두 팔을 활짝 피어 손가락을 까닥인다. 천지신명 산신 용신 대자대비 석가불님 이 늙은이도 잡아가소 아들따라 가고잡소. 엄 노파는 답답한 앞가슴 옷섶을 풀어헤치고 메마른 앙가슴을 두 주먹으로 탕탕 친다.그러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옷소매로 닦아낼 때, 비로소 빠꼼이 열린 문으로 누군가 들여다 보고 있음을 알아챈다. " 함머니 뭐해요?" 아직 어린 애기로만 보았던 손자가 한국말로 묻는다. 잔뜩 겁이 묻어 있지만 그래도 한 밤 중 미친 짓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꽤나 염려스러운 인정스런 목소리이다. " 아가야, 너 한국말을 할 줄 아는구나, 누구에게 배웠느냐?" " 네, 조금. 아빠랑은 한국말로 얘기했어요." " 오냐, 장한 내 손주, 참 기특하구나." 엄 노파는 와락 아이를 가슴에 품는다. " 근데 정말 할머니가 우리 아빠의 엄마예요? "암,암! 그렇구말구, 너도 네 엄마한테 나아서 자라듯이 네 애비도 내가 낳서 키웠지." "그럼 할머니, 아빠도 나처럼 어린애였어요? 어떤 애였어요?" 아이는 정다운 아빠에 대하여 뭐든지 알 것같은 할머니에게 친근감이 생기는듯 한꺼번에 많은 질문을 한다. 아이는 아직 아빠와의 영원한 이별이 믿어지지 않는 채, 쓸쓸히 잠 못 들고 있다가 할머니와 아빠에 대하여 얘기를 하게 되니 생기가 돈다. " 할머니, 울 아빠에 대하여 얘기해 주세요. 난 아빠가 아주 아주 좋거던요. 아빠하고 똑같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아빠에 대하여 많이 알고 싶어요." " 오냐 , 얘기해 주고말고, 할미 집에 가면 네 애비 쓰던 책상이랑 핵교서 타온 상장, 또 학상 때 사진도 있다. " 엄 노파도 손주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며 잠시 시름에서 벗어난다. " 정말예요? 할머니 집, 어디지요? 나 가고 싶어요." " 그래, 너 커서 등에 날개 달면 그 때 오너라. 핼미가 너 올 때거정 기둘리고 있을께." 과연 그 때까지 내가 살건가? 하는 염려도 슬쩍 내려 놓은 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아들 명호에게 말한다. ' 명호야 , 네가 아주 헛 산 것도 아니구나. 네 넋이 그대로 네 아들에게 있어야." 엄 노파는 그래도 눈을 조금 붙치고 낼 아침 일찍 일어날 생각을 한다. 大尾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