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어 만나리   9


웬지 카니네 집 방문을 극히 꺼리고 회피하려는  명수씨를 설득하고 달래며 집을 출발한 것은 일요일 정오가 좀 지나서였다. GPS에 카니가 불러준 주소지를 입력하며

“ 아, 카니, 미드타운 부촌에 사네요. 하프 밀리언 주택이 즐비한 곳인데 ” 은주씨가 웃으며 말한다.

병목 형상의 도로 탓인지 한참이나  번잡하고 자꾸 밀리게 되는 큰 길을 벗어나느라  시간이 한참 지체되었다.

그리고  겨우 한적한 소로로 접어들자  바야흐로 풍성하게 우거지는 신록에 가려  큼직한 저택이 드문드문 보이는 동네 길로 들어선다.


느릿느릿 번짓수를 점검하며 가다가  야트막한 돌담 위에 번지수만 적힌 주소지에서 지피에스 안내는 끝났다.

그러나  집은 보이지 않고

가느다란 외선으로 된 프라이빗 ( 개인용 )  도로를 따라 드물게 보는 회화나무가 자잘한 잎들을 팔랑이며 줄지어 서 있다.

“ 미국에서 보기 드문 회화나무일세. 이걸 집 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인물이 난다는 길상목으로, 동양에선 귀하게 여기는 나무지.” 여지껒 뚱하던 명수씨가 비로소 한 마디 한다. 심은 지 한 이 십여  년은 됐을까, 후리후리하게 자라고 밑둥이 실하여 귀티의 풍모가 보인다.


차가 파킹랏에 멈추어 서자 카니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청바지에 체크무늬 면셔츠가 신선한 활력을 준다.

“ 찾아 오는데 힘 들지 않으셨나요? 어쨋던 잘 오셨어요. 들어 오세요.”

안으로 들어서는데 40 세 전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웃으며 맞이한다.

은주씨는 무심히 그를 보다 “ 헉 ‘하고 들이킨 숨을 내놓지 못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그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 본다.

명수씨도 막상 그를 보자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듯, 큰 소리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남자가 얼른 명수씨의 팔을 잡으며 게스트룸으로 인도한다.

“ 제 이름은 왕 김이라고 합니다. 참 많이 뵙고 싶었어요.”그는 침착하게 말하며 손을 내민다.

“ 여보, 어쩜 젊었을 적 당신을 꼭 빼 닮았어요.  당신이 옆에 없었다면 당신이 ‘젊어지는 샘물’을 먹고 나타났다고 생각할 뻔 했어요. “ 은주씨는 숨 죽여 얘기했지만 카니도  왕 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그리고 슬그머니 웃는다.

넓직한 실내의 통유리 넘어로 덩굴잠미가 한창인 화사한 뒷뜰이 통째로 보이고 잘 꾸며진 수영장에는 맑은 물이 푸르게 찰랑이고 있다.

“ 아, 제 손자들도 소개하지요. 사내아이가 둘, “ 하며 카니는 이층을 향해 “ 션, 루키, 어서 내려 오너라. 린다, 너도 와서 인사해야지 “ 아이들은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즉시 통통통 뛰어 내려 왔다. 한 놈은 12 살 션이구요, 얘는 10 살 루키예요. 내 예쁜 며느리  린다 “

검은 머리 검은 눈에 당당한 체격의 두 소년, 그리고 금발 푸른 눈의 며느리는 의외로 수줍고 조용해 보였다. 그러나 서툴지 않은 한국어로

“  잘 오셨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 명수씨에게는 고개를 숙여 인사 하고 은주에게는 다가와   다정하게 허그 한다.

가족 모두가 이들의 방문을 몹시 기대하고 흥미로워 했을 듯한 분위기.


명수씨는 다시 맞은 편 소파에 앉은 왕을 찬찬히 살펴 본다. 여기에 내 DNA 일부가 이렇게 크게 일가를 이루고 존재하다니, 처음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바였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싹이 트고 자라나고 가지를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아, 나란 놈은 잘 살아 왔다고 자부했음에도 , 이 일가 앞에선  왠지  치졸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카니 앞에 면목이 없 다.

은주씨도 눈을 반짝이며 왕을 주시한다. 그리고 옆에 앉은 남편을 바라 보고, 공통점이 뭔가, 뭐가 이렇게 같은 분위기가 되는 걸까 열심히 관찰한다.

“ 미스터 김은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은주씨가 왕에게 묻는다.

“ 네, 저는 쎈메리 하스피탈 ( 성마리아 병원 )에서 흉부외과 닥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고요. 제 아내도  작은 닥터 오피스를 운영하며 주로 소아, 청소년들의 일차 진료를 맡는 홈닥터를 하고 있지요.’  

부드러운 목소리,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 그러나 그 내면에 무한한 긍지와 당당함이 느껴진다. ‘ 참으로 잘 난 아들이다’

마침 카니가 쟁반에 음료수와 치즈, 스넥을 가져 오고,  왕의 아내 린다도 스프링 쿨 러 음료수와  잔을 가지고 와 테이불에 늘어 놓는다.

“ 디너는 다섯 시쯤  준비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린다가 손님들에게 묻는다.

“ 그럼요, 좋아요” 은주가 대답하자  “ OK “ 린다가 생긋 웃으며 주방 쪽으로 간다. 왕도 슬그머니 자기 아내 린다를 따라 자리를 뜬다.

“ 카니, 어쩜 이렇게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어요?  다른 자녀도 있나요?”

“ 아니요, 단 하나의 아들이얘요.”

“ 근데 카니, 아들을 언제 낳아 벌써 손자까지 두었어요?

“ 네, 제가 좀 일찍 십대에 엄마가 되었어요.” 카니는 재빠르게 말하며 슬쩍 명수를 본다.

“ 서양 며느리와 함께 사는게 불편하지 않나요? ‘ 은주는 자신의 시집살이를 연상하며 묻는다.

“ 글쎄요, 아직은 몰라요. 내가 집에 잘 안 붙어있어요.이 집은 다만  일 때문에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다  쉴겸 해서 돌아오는 제 아지트 같은 곳이지요 “  카니는 흰 이를 드러내 활짝 웃으며 말한다.

“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그런데 카니 , 세계 곳곳을 살피는게 당신의 직업이었나요? “


그때 왕김과 린다가  다가와서 상냥하게 말한다.

“ 디너가 차려졌어요 , 와서 식사를 하시지요”

큰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으로 인해 밝은 넓직한 식당, 큰 테이불에는 새하얀 린넨 식탁보  위에 꽃과  접시, 포크 나이프 행커치프까지 빈틈없이 말끔하게 차려져 있다.

그리고 차례차례 음식이 나온다.  갓 구워낸 듯 따뜻하고 구수한 빵과 스프 , 셀러드, 메인으로  비프스테이크, 후식인 과일과 디저트,

카니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 오늘 음식은 아들 왕과 린다가 정성스레 만든  작품이랍니다. 맛있게 드세요 “

다섯 사람은 각자 다른 상념에 젖어 식욕은 별로인데 깔끔하고 심풀하게 준비한 메뉴는 험 잡을 틈 없이 완벽하다.

션과 루키는 일찌감치 자신들의 몫을 해치우고 자리를 뜬다.  

대충 먹고 난 은주씨 상냥하게 말한다.


“ 참 맛 있게 잘 먹었어요, 도대체 이런 하이 콸러리  음식 어디에서 전수 받은 거지요?”

며느리 린다에게 물으며 칭찬을 겸한다.

“ 내 시어머니의 요리솜씨가 무척 좋으세요, 난 따라가기 불가능합니다. “

일동은 다 같이 웃으며

카니, 며느 리 린다에게 눈으로 말한다.

‘ 고마워 린다, 나를 돕느라고 많이 애 써 주어서.’


  

식사가 끝난 후 명수씨 부부는 카니와 함께 뒷 뜰 대크로 나가 한 잔 더 하기로 한다.

뒷뜰 풀장에서 왕과 아들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덩굴장미가 향기를 뿜으며 활짝 피어 있고 아이들이 그들의 아빠와 평화롭게 공을 주고 받으며 수영을 하는 모습,

너무 신선하고 아름답다, 세 사람은 별 말 없이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

세 사람 다 착잡하고 복잡한 심정이다.

와인 병이 비자 카니가 새 와인을 가지려 자리를 뜬 사이,


은주씨가 남편을 흘겨 보며 날카롭게 말한다.

“ 당신 비겁하군요, 왜 솔직하지 못하죠?  난 당신의 비밀이 의심스러웠어요.

난 이미 카니가 어리디 어린 미혼모였다는 걸 말해 주어서 알고 있었 어요. 아들과 함께 기가 막히게 험하게 살아 온 내력도 얘기를 들었어요, 여러 가지가 궁금하고  의심스럽고 그래서 더 관심이 많았 는데 이제 여기 와서 그녀 아들 얼굴의 퍼즐을 넣고 보니 똑 떨어진 그림이 보여지네요.

카니가 굳이 우리를 초대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나요?”

“ 당신한테는 정말 부끄럽고 면목 없소, 근데 나도 까마득한 옛날 에피소드, 잊고 있었고 솔직이 믿을 수 없었고 또  현실로 인정하기 괴로왔소. 그러나 막상 와 보니 부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소.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소? “

한없는 무력감을 느끼며 명수씨가 말한다.

“ 난 짐을 싸서 집을 나가면 그만이얘요. 난 홀몸 , 아주 심풀하죠, 카니와 그 아들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새 가정을 만드세요. 외롭고 힘들게 살아 온 모자를 따뜻하게 감싸 주세요.”

별로 술을 즐기지 않는 은주씨로서 와인 몇  잔에 활짝 대범해 진다. 모르겠다. 진심에서 하는 말인지, 책임질 수 있는 말인지, 스스로의  설음으로 목이 메이고 눈물이 왈칵 난다.

카니가 새 와인< Beringer 2010>을 한 병 들고 오며 말한다.

“ 은주씨, 우린 아무 것도 바뀌는게 없어요. 다만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의 관계망이 넓어졌다는 사실만 알기를 바래요.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우리 모두 훌륭하지 않나요? “

쾌활한 목소리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 저는 아들 왕이 레지던트를 끝내고 생활이 안정된 뒤 ,뜻한 바대로  유엔본부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 경제 사회 위원회>에서 일해 왔어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이 있으면 즉시  현지로 가 현황을 조사하고  보고하며 또한 일목요연하게 도와줄 일을 작성하여 각 구제활동 분야에서 일하는 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하는 거얘요.”

카니는 각 와인잔에 와인을 따른다.

“ 근데 이 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욕심에 유니쉐프(unicef )로 자리를 옮겼어요. 그리고 문화나 종교, 또는 정치적 이유로  여성들의 인권이 너무 열악한 아프가니스탄으로 갑니다. 자라나는 여자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와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사회참여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룩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일겁니다. 기한은 정해진게 아니고 아마  거기서 오래도록 그들과 함께 살 각오로 떠나는 거얘요..”

“ 아, 거기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오랜 역사의 종교나 문화적 편견이 너무 크다고 하던데요.”

은주씨의 말이다. 명수씨도 걱정스럽게 카니를 바라 본다.

“충분히 알고 있어요. 다른 국제 사회 봉사단체들과 연대하여 일을 진행해 나갈 겁니다. 그리고  이제 곧 출발할 날짜가 되었어요. 그래서 은주씨의 가게에서도 더 이상 일을 못 하게 됐어요. 죄송하게 됬어요.”

카니는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 것이 벅찬듯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명수씨 부부를 응시한다.

“ 제가 바라는 것은 오늘 처음 인사한 내 아들 왕이와 그의 가족들 포함하여 모두  함께 원만하고 정다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주십사는 것입니다. 저의 의도는 이것이 다 입니다. “

하며 나머지 잔을 비운다.

카니의 긴 이야기가 끝나고 그들은 각기 다른 상념으로 조용히 잔만을 비운다.


이제 카니의 집을 떠나며 은주씨가 닥터 왕에게 말한다.

“ 닥터김, 머지않아 당신을 우리 집에 초대하겠어요. 당신의 가족 모두 꼭 와 주세요”

“ 아, 물론 가겠습니다. 잊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

왕은 정말 기쁜듯이 말한다.  

명수씨는 기쁘고 쁘듯한 마음과 서운하고 휑한 마음 , 그 양극의 마음에서 분간이 안 되고

어색한 웃음만 머금는다. 그리나 차마  속으로 말한다.

‘ 카니 난 당신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소, 몰라보도록 훌륭하게 성장한  당신 모자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오.’

닥터 왕도 부드러운 눈길로 명수씨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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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8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가 끝나,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보일러나 콤프레셔, 온갖 프레스 기계들도 잠잠하니, 사방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은주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아직 일을하고 있다.

일주일의 입출금을 정리하고 내일, 토요일 고용인들에게 지급할 주급을 계산한다.

크리너에서 주로  일하는 멕시칸들은 다수 불법체류가 많고 또는 생활상태가 미국에 적응이 덜 되어 아직 은행 계좌도 없는 초기 이민자들이 많다. 그들은 언제나 현금( cash )지급을 원한다. 손에 현금이 만져질 때 비로소 돈벌이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본래 중국인들의 상권이던 크리너 업중이 1970 년 대 부터 한국인으로 넘어오자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깔끔 하고 재빠른 솜씨가 환영을 받아 한 때 한인 세탁소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0 년대에서 정점을 찍으며 2000 년 대 들어서 9.11 참사, 이락, 아프카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첨단 대기업들이 더 이상 정장 수트 차림보다는 캐주얼 복장을 선호하여 드라이 클리닝 옷이 대폭 줄고, 또 더하여 각 의류제품 회사는 경쟁적으로 물세탁 바지, 다림질이 필요 없는 논 프레스 셔츠들을 인기 상품으로 내세우는 등 등, 하는 이유로 세탁업은 사양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탁계 내에도 이미 포화상태의 과밀 한 동업종 가게들의 출혈  경쟁이 치열했고,

설상가상   비에남인( 월남인 )들이  게릴라 전법으로  엄청 빠르고 손쉬우며, 무지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세탁업을  밀고 들어홨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경영난에 허덕이며 고용인을 줄이고 주인이 그 노동을 모두 커버하려니 너무 힘들고, 또 펄크가 해롭다는 공해문제로 정부 규제는 더욱 심해지고, 열악해지는 분위기에서  세탁업은 나날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따라서 은주씨도 열 몆 개의 드랍샵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차츰 축소하여 지금은 여섯 개 가게와 독립된 건물, 큰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기업은 주인 혼자 독식이 근본적으로 안 된다. 종업원의 최저 급료가 법적으로 제한되 있으며 기계가 돌아가게끔 하는 유틸리티,( 전기세, 가스비, 서풀라이 비용, 인권비, ) 등의 비율이 만만치 않고, 그리고 정부에 내는 세금, 그건 총수입의 33% 대의 커다란  지출이다. 그러니 긍극적으로 하나의 비지니스를 열어서 경영한다는 건  여럿이 다같이 먹고 살자는 민주적 기본 이념이다. 은주씨가 이런 모든 규제에도 오늘 날까지 번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외형적 수입도 중요하지만 내면적인 은주씨의 근검절약과 규모있는 재테크가   크게 도움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은주씨 개인적으로는 거의 낭비하는 일 없이 남는 금액을 착실히 모으고 십만불 단위로 저축을 하며 가게나 부동산을 매입하여 수익증대를 확대해 나가는 방법으로 기업을 키워 왔다.

오늘의 수입 계산도 썩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은주씨는 지출을 점검하고 그 나머지 자신의 인건비나 투자 금액의 일정 수준이 겨우 채워진 것 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토에 깃들어 먹고 사는 여러 가족들, 이제까지 여기를 스쳐가며 아이들을 키워내고 생활 기반을 다져 독립해간 수많은 초기 이민 가족들을 생각하면 나름 보람을 느낀다.


사무적인 일을 끝내  한숨 돌리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남편 명수씨 “ 나 오늘 일이 아직 안 끝나 좀 늦겠소, 걱정 말고 먼저 들어가 쉬어 요”

은주씨는 막연한 불안감에 머리를 갸웃한다. 남편 명수씨의

전에 없이 빈번하게 늦는 귀가. 시도 때도 없이 막연하게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느닷없이 베푸는 과도한 친절,

‘ 아, 뭔가 그에게 일이 생기고 있어. 무얼까.’

“ 아, 참 여보” 은주씨는 다급하게 남편을 부른다.

“ 카니가 당신과 나, 자기 집에 초대했어요. 이번 주말에요. 난 그러마고 했어요, 당신도 주말 비워 두세요.”

전화선 너머 명수씨 후드득 숨을 몰아 쉰다.  그러나 곧 평정한 목소리를 가다듬어

“ 알았소, 집에 들어가 다시 얘기 합시다 ” 하며 전화를 끊는다.


은주씨는 잠시 하루의 피곤을 잊은채 생각에 잠긴다.

카니는 자기가 결혼은 하지 않았고  미혼모로 아들 하나를 키워 왔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사정이 있어 이 곳 일을 그만 두겠다는 말도 했다. ‘ 이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우리 가게에 필요한 존재가 됐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 카니는 매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한 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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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7


오목이 모자가 들어가 살게 된 곳은 미8 군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 근무하는  리처드 딕슨 대령 colonel과 멜리사 무어 딕슨 부부 집이었다 그들의 나이는 .사십 살 중반 쯤 되었고 딸과 아들 남매가 있으나 본국에서 대학 재학 중이므로 부부만이 한국에 나와 살고 있다.

미세스 멜리사는 페미니즘에 관한 학문 연구에 골몰하며  사회적인 여성 지위 향상에 관심이 많은 학자였다. 따라서 아직 여성학의 불모지인 한국에 와서 몇 몇 여자대학에 출강하며 여성학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가르치고, 여성 전문의 학자로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메이드로 들어온  오목이에게도 깊은 관심과 이해로 따뜻하게 대해 주고 서양 음식 만드는 것도 차근차근 기초 부터 가르쳐 주었다.

지적이고 당당하게 살아 가는 미세스 멜리사를 보며 오목이도 여자로서의 반듯한 자질과 긍지의 근본을  알아가며 스스로도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추려 생각을 모은다.


“ 그들은 5 년을 복무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인정 많은 그들은 우리 모자도 초청을 해 주었어요.곧 뒤 따라 간 우리 모자에게 기본적으로 살 길을 마련해 주시기도 했지요.

난 그 때, 미국에 온 두 가지 목적을 확실하게 정했어요.

첫 째 , 내 아들 왕이 훌륭하게 기르기

둘 째 ,  아들 왕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한 나 자신  계발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돈 벌기.

그 때만 해도 신천지 미국에서 일거리는 지천이었어요. 난 서양 음식 만드는데도 어느 정도 자신도 있고 미세스 멜리사가 보증을 서 주어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얻었지요.꽤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내 음식점을 차렸어요. 그러나 경영이 서투른지 얼마 안 가 문을 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생선 가게를 열었어요. 새벽 일찍 싱싱한 생선을 받아 와서 부위별로 깨끗이 손질하여 진열해 놓고, 원하는 이들은 즉석 튀김이나 스테이크로 구워 주기도 했어요.그 새로운 상술이  완전 대박이었어요. 그 때 꽤 많은 돈을 벌었지요.

그러나 내 목표는 돈이 아니었어요. 내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나도 그에 상응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난 아들이 상급학교로 진급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계속 열심히 공부해 학력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고 드디어  아들이 대학 가던 해에 나도 근처 주립 대학을 가는, 그런 식으로요. 물론 졸업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해 냈어요.

남편 없이 아들 하나를 키우는 젊은 여자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동정이나 연민은 마세요.

그건 그닥 어렵지 않았어요. 아들보다 겨우 열 다섯 살 더 먹은 젊은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어요? 내 아들은  동생 같기도 하고  때로 튜더 ( 가정교사 )가  되어 주고 또 친구가 되어 주었어요 .아들과 난 그냥 한  인생 , 그 자체였죠. 이해가 되나요?


카니는 명수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한다.

“ 천지사방을 모르고 스스로  미혼모의 길로 들어선 것,내 자청한 것, 그게 내 운명인 것  나 충분히 알아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매달렸지요.

그러나 살아 오며 때때로 가슴 깊이 스며드는 그리움과 외로움, 그건 원과 한을 넘어 내 거룩한 신앙같은  사람, 때로는  당신이 그리움을 넘어  너무 밉고 미워서 뜨거운 분노가 내 심장을 할퀴었어요. 당신을 멀리서 바라 보며

‘죽이고 싶다, 짓밟고 싶다. 때때로 분노와 원한이 훨훨 타 오르는 거였어요 내 인생 전체를 통째로 쇠꼬챙이로 꿰 뚫는 참담한 고통, 그것을 그에게도 똑같이 꿰뚫어 주고  싶었어요.”


잠잠히 듣던 명수씨,  쇠꼬챙이로 심장이 찔린듯 멍먹한 가슴으로 카니를 끌어 안는다

. “ 당신은 누구지요? 난 오목이가 생각나지 않아요. 너무 먼 옛 얘기얘요. 전설 또는 민담을 듣는 것 같구려. 그런데 난 아무 것도 모른 채,태평하게 살아 온 내 삶이 부끄럽소

카니, 이제  내가 당신을 어떻게야 하나요?  왜 이제야 나타난거요  “하며  볼을 부빈다.

눈물로  젖어 든  카니의 얼굴, 그 위에 명수씨의 뜨거운 입술이 온통 휘젓는다. 이윽고  카니의 입술이 겹쳐지자 둘은 것잡을 수 없는 열망과 욕정으로 뜨거운 활화산 되어 함께 깊이깊이 침잠한다.

아무 것도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젠 원망도 분노도 소멸한다.


지난 밤의 긴장과 피곤, 과로로 아직 잠에서 깨어니지 못한 몽롱한 명수씨,

카니는 두 손으로 그의 볼을 감싸고 뺨과 이마, 입술에 키스 한다.

‘ 너무 귀하고 달콤한 내 사랑 당신 ‘

명수씨도 아직 꿈 속인 양, 미소 지으며 키스한다.

그러나 명수씨는 가슴 터지도록 궁금한 그것을, 카니는 가슴 속부터 치밀어 올라와

목에 걸려있는 그것을  마지노선처럼 꼭 눌러두며 피차 건드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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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6


오목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소문처럼 헤프고 막되먹은 계집애도 아니다.

소문과 사실의 괴리, 그러나 어린 소녀,오목이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하루하루 겪어내는 잔혹한 현실에서 살아내는 법을 온몸으로 겪어낼 뿐이다.

최초 맛을 들였던  구멍가게 아저씨가 오면 얼른 캄캄한 다락방에 올라가 숨 죽이고 그가 제 풀에 물러갈 때까지 웅크려 있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처음으로 오목이 자신의 저렴한 값을 깨우쳐 주었다. 아버지가 돈을 전 혀 주지 않은 지  며칠 지나자  집 안에 쌀만 조금 남아 있고  먹을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오목이는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구멍가게에 가서 두부 한 모와 계란 두 개를 집었다.

“ 돈을 내야지 “ 구멍가게 아저씨가 말했다.

“ 지금은 돈이 없어요, 다음에 낼께요 “ 하는 오목이를 아저씨는 퀴퀴한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조금 지난 후, 아저씨는 “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 또 뭐가 필요하면 언제던지 오너라.” 하고 친절을 가장해 느물느물하게 말했다. ‘ 아저씨는 나쁜 놈이야, 다신 이 가게에 오나 봐라.’

오목이는 다시는 절대 그 구멍가게에는 가지 않았다.

먹을게 떨어지면 차라리 맞아 죽을 각오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 돈좀 주세요,반찬거리 사게요  “

돈을 타면 먼 뒷길을 돌아 큰 거리 번잡한 가게에서 식품을 구입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가게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오고, 또 무슨 영문인가  낮에는 오목이가 혼자 집에 있다는 소문에  동네 건달들이 꼬여 들었지만 오목이는 꼭꼭 숨어 있기만 했다.

사실과 소문이 이렇게 다르지 마는 누구 하나 오목이를 감싸주는 이는  없었고 소문은 뻥튀기처럼 불어만 갔다..

그런 오목이가 언젠가 부터 길을 향해 난 창문에 붙어 서서  몰래 밖을 내다 보는버릇이 생겼다. 하마 들킬세라 몸은 옆으로 빼내고 얼굴만, 두 눈만, 살며시 창으로 내놓고서.

그 사람, 명수 오빠가 지나간다. 교모는 납작하게 눌러  삐뚜스럼하게 쓰고 교복 상의 칼라 훅을 풀어  셔츠가 허옇게 드러나고,  힙 부분은 꽉 끼지만 내려올수록 바지 가랑이가 거리를 쓸어낼 듯 넓게 퍼진 나팔바지, 그리고 가볍게 옆구리에 낀 납작한  책가방,완전 날나리 학생의 모습이지만 오목이는 그의  멋진 모습에 가슴이 뛴다.

그런던 어느 날, 지 때문에 지 집 마당에 몰려들어 시끌벅적  쌈들을 해대는  건달들을 통쾌하게 패주고 쫒아내 주던 명수 오빠를 보고 이게 꿈이 아닌가 .

오목이는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그리고 뭐라도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열 다섯 오목이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걸 처음 알아 본 이는 가끔 오목이를 찾아 들던  교회

전도 부인이었다. 그이는 가엾은 오목이의 처지를 동정하며 교회로 인도하려 애썼다. 그러나

오목이 아버지에게는 전혀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하여  가끔 오목이에게 들러 간절한 기도나 드려 줄 뿐이었다. 그 이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나 불신자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교회도 못 나가고 잦은 제사, 더우기  시모가 수시로 무당을 들여 푸닥거리를 하는, 그게 몹시 못마땅하였고, 결국엔  도저히 못 참아 시집과 남편을 박차고 뛰쳐나온 신앙 앞에 근성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한편 ‘ 소박대기 ’라는 꼬리표가 기구한 팔자처럼 붙어 다니던 여지임에랴.

무지하고 강퍅 한 아버지한테 허리가 두리뭉실해지며 나날이 불러가는   배를 들키는 날에는 오목이는 맞아 죽을 것이 분명함을 아는 전도부인이 말했다.

“ 오목아 너 왜 배가 불러지는지 아니?”   

“ 전도사님, 나 요새 밥 맛이 너무 좋아 되게 많이 먹어요, 그래서 살이 쪘나봐요 “

“ 바보야, 네 배를 만져 보렴. 뭐가 꿈틀대지 않니?”  

“ 네, 맞아요, 배 안에서 뭐가 움직여요. 이게 뭐지요?”

“ 아기란다.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너 사내를 가까이 한 적이 있느냐?”

오목이는 수줍게 머리를 숙였다.

“ 네,마냥 좋은 사람이 있어 요”

전도부인은 ‘휴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수소문하여  노량진 역 앞 < 자애 모자원 >으로 몰래

오목이를 보냈다. 거기는 오목이처럼 어린 나이에 원치 않게  임신 한 처녀애들, 또는 불행하게 남편이 먼저 죽거나 버림을 받아  아이들과 살 길이 막막한 홀어미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일단 의식주를 지원해 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과 취업을 알선해 주어 자립 갱생의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사회 봉사 기관이었다.

오목이가 그 곳으로  간 것은 제 이의 탄생과도  같은 새로운 기회고 행운이었다. 전도부인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겠지만 원장님은 어린 소녀 오목이를 각별히  보살펴 주었다 .생활의 기본 상식을 가르치고 , 글자도 깨우치게 했다.

모자원에서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낸 오목이는 몇 달 후

건강하고 잘 생긴 아들을 낳았다.

원장 어머님이 아기에게 < 왕 >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모자원의 온 가족들이 축하해주고,

아기옷과 기저귀 등을 보태 주었다

그리고 철부지 어린 엄마, 오목이에게 아기 기르는 방법도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하여 오목이는 차츰 아기 기르기도 익숙해 지고 왕이는 건강하게 토실토실 잘 자라났다.

얼마 후  오목이는 재봉 기술도 배워 봉제도 잘 하게 되었다. 오목이 생애의 특별한 발전이다.

그리고 오목이의 특별한 재주는 음식 만들기였다. 도대체 한 번 맛 보면 못 하는 음식이 없고 그녀의 손이 지나간 음식은 비상한 맛에 끌림에다가, 넉넉지 않은 재료를 갖고도 훌륭한  몇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재주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오목이 아들 왕이가 4 살이 되었을 땐,  피부가 희고 훤칠한 외모에 의젓함 까지 겸해  모자원  모든 식구들이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어린 엄마 오목이도 이젠 봉재 솜씨나 음식 솜씨나 한 몫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루는 원장 어머님이 오목이를 불렀다.

“ 미8 군  장교가 홈메이드를 구한다더라. 그래서 네 얘기를 했단다. 마침 그들 부부는 네가 좋다면 네 아이를 그들이 입양할 마음 도 있다고 하더라 . 너한테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

“ 내 아이는 주고 싶지 않아요. 내가 길러야 해요 “

“ 네 아이를 그들 앞으로 입양하면 왕이는 미국 시민으로 자라고 좋은 교육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야. 너도 그 집에서 함께 살면서 네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고 말이야, 너한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 잘 생각해 봐라.”

“ 왜 하필 나지요? 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싫은데요.”

“ 그들이 너한테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자기들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구나, 넌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면 되는거야. “

모자원 식구들도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냐며 모두 어서 가라고 야단들이었다. 오목이는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 사랑하는 사람 ,오빠의  소중한 내 아기- 아마 왕이가 없었다면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도 없었을거야.  아버지의 그 폭력적인 일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비천하게 살고 있을거야,-

나는 왕이와 함께 새로 태어난거야. 난 왕이가 자라듯 나도 함께 자라는거야.

왕이와

함께 새로 태어난거야. 난 왕이가 자라듯 나도 함께 자라는거야.

왕이와 함께라면 뭘 못 하겠어.’

며칠 후 오목이는 원장님을 찾아 가 말했다.

“ 원장님, 가겠어요.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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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어 만나리   5


과연 이은주씨의 통 큰 스케일과 세심한 계획에 의해 남편 김 명수씨의 육순 생일 파티는

화려하고 거창하게 열렸다. 아틀란타 번화가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 9 층 넓은 홀,

꽃으로 장식한 오십 여 개의 테이블, 부페식으로 차려진 풍성한 음식들, 그리고 한 쪽

바에서는 무한정의 각종 술이 제공되고,

친척들, 그리고 아틀란타 지역에서 헌다 긴다하는 명사들, 명수씨와 은주씨의  동 업종에서 친밀한 관계를 갖는 친우들, 각양각색의 손님들.

초대한 이들이 거의 자리를 차지해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초장부터 흥겹다

 시간에 맞추어 . 턱시도를 입은 명수씨와 자잘한 꽃무늬를 수놓은 미색 저고리, 연두색 치마,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은주씨가 손을 잡고 입장한다.

모두 일어서 손벽을 치고 사진사의 후레시가 터지고,  마치 은혼식을 치르는 부부같다.

부부가 중앙 자리에 읹자, 친척들이 나가 인사하고 악수하고 , 그리고 조카, 어린 조카 손주들이 앙증맞게  생일 축하 합창을 한다. 그리고  꽃과 선믈들을 올린다.

고모부부나 이모, 삼촌 사촌 형제들  웃 어른들도 나가 명수 부부를 포옹하고 덕담을 나누고,  

정답고 화기로운 분위기이다. 평소 명수 부부가 은연중 베풀었던 은덕의  결과이리라.

또한 모든 이들의 눈길을 받는 한 여자, 카니는 검은 색 긴 드레스에 머리를 틀어 올리고

길게 드러난 목에는 열 두개의 다이아몬드가 하얀 색 풀레튠 사슬에서 반짝인다.

저 날씬하게 키가 크고 이국적으로 세련된 여자는 누구일까. 하는 대중의 호기심 어린 눈길은 아랑곳 없이  홀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손님들을 체크하고 음식을 점검하며, 주의깊게

분위기를 살피는 카니는 이 곳서도 영락없는 이은주씨 회사의 충직한 매니저이다.

대충 인사가 끝나고 식사도 끝나가는 시간,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여 분위기를 업 시키고 초청 가수가 나와 오프닝으로 예전 한명숙이 불렀던  < 사랑의 맹세 >를 멋드러지게 불러서 흥을 돋운다.

이윽고  첫 댄스는 주인공 명수씨 부부가 풀로어에 나가 준비했던 춤을 선보인다.

샬론디옹의 power of love ( 사랑의 힘 ) 곡에 맞추어 느린 스텝으로 춤추는 은주씨,  명수씨 목을 감싸 안으며 부드러운 사랑의 눈빛을 보낸다. 모든 이들이 흐믓하게 바라 본다.

다음 부터는 여러 쌍들이  나와서 춤추며 여흥이 무르익는 시간,

어린 조카 손주 아이들이 미리 준비해 선보이는 k pop 티아라의 ‘ 롤리 폴리’춤과 노래는 너무 깜찍하고 귀여워서 많은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를 받으며 웃음과 기쁨을 선사한다.

 드디어 명수씨가 카니의 손을 잡았다. 카니의 긴 드레스는 무릎 위로 깡충 올라갔고 매끈하고 탄탄한 두 다리, 좀 더 빠른  리듬 따라 현란하게 움직이는 가슴과 배, 엉덩이 , 숨이 차서 미쳐 따라내지 못하는 명수씨를 부드럽게 리드하며 , 명수씨의 눈 속을 파고 들어 정열과 도발적 몸짓으로 밀착해 오는 뜨거운 입김, 탄력있는 피부의 접촉.

카니가 명수씨의 목을 끌어 안으며 속삭인다.

“ 내가 일생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순간, 열심히,끈질기게 살기를 참 잘 했어요”

명수씨는  현실과 꿈 속을 드나들며 몽롱한 의식 속에 말한 다.

“ 카니, 당신은 누구요? 어느 행성에서 살다가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이요?”

카니 애매하게 웃으며 명수씨를 더욱 꼭 끌어 안는다.

“당신을 만난게  행복해요 ”

마침 음악이 끝나가며

“ 오늘 파티 끝나고 나에게로 오세요,  이 호텔  1208 호에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카니는 의미 담긴  깊은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말하며 그로 부터 물러난다.


“ 친구들과 뒷풀이 약속이 있소, 좀 늦을 수도 있으니 당신도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재미있게 노시구려”  명수씨는 아내에게 이런 술수를 쓰는게 영 태연하지 못하다.

그러나 은주씨, 반색을 하며 “ 아 잘 됐네요, 나도 친구들과  어디 가서 회포나 풀지요.”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흩어지고 그들 부부도 그렇게 헤어졌다.


머릿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는 1208 호, 명수씨는 터질듯 흥분된  가슴으로 노크한다.

카니는 또 다시 달라져 있다. 금방 샤워를 끝내고 맨 얼굴에 흐트러진 젖은 머리, 그러나 흐슨하게 여민 검은 실크 가운 아래 드러나는 맨살은 결코 평범하지 않게 눈길을 끈다.

명수씨의 시선을 의식하며 카니, 좀 지친듯 몽롱한 웃음으로 나이트 테불로 인도한다.

테불 위에는 와인과 두 개의 와인 잔 이 있다. 그러나 명수씨, 알 수 없는 조급함에

눈 가득 들어오는 흰 시트의 더불베드, 푹신한 베개와  쿠션, 욕망이 부글댄다.

“ 나를 죽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좋은 기회야, 날 죽여 보라구 ”


그러나 카니, 서두르지 않고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며 심상하게 말한다.“ 당신, 오목이가 궁금하지 않나요? 오늘 밤은 그녀에 대해서 얘기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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