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어 만나리  6


오목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소문처럼 헤프고 막되먹은 계집애도 아니다.

소문과 사실의 괴리, 그러나 어린 소녀,오목이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하루하루 겪어내는 잔혹한 현실에서 살아내는 법을 온몸으로 겪어낼 뿐이다.

최초 맛을 들였던  구멍가게 아저씨가 오면 얼른 캄캄한 다락방에 올라가 숨 죽이고 그가 제 풀에 물러갈 때까지 웅크려 있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처음으로 오목이 자신의 저렴한 값을 깨우쳐 주었다. 아버지가 돈을 전 혀 주지 않은 지  며칠 지나자  집 안에 쌀만 조금 남아 있고  먹을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오목이는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구멍가게에 가서 두부 한 모와 계란 두 개를 집었다.

“ 돈을 내야지 “ 구멍가게 아저씨가 말했다.

“ 지금은 돈이 없어요, 다음에 낼께요 “ 하는 오목이를 아저씨는 퀴퀴한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조금 지난 후, 아저씨는 “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 또 뭐가 필요하면 언제던지 오너라.” 하고 친절을 가장해 느물느물하게 말했다. ‘ 아저씨는 나쁜 놈이야, 다신 이 가게에 오나 봐라.’

오목이는 다시는 절대 그 구멍가게에는 가지 않았다.

먹을게 떨어지면 차라리 맞아 죽을 각오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 돈좀 주세요,반찬거리 사게요  “

돈을 타면 먼 뒷길을 돌아 큰 거리 번잡한 가게에서 식품을 구입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가게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오고, 또 무슨 영문인가  낮에는 오목이가 혼자 집에 있다는 소문에  동네 건달들이 꼬여 들었지만 오목이는 꼭꼭 숨어 있기만 했다.

사실과 소문이 이렇게 다르지 마는 누구 하나 오목이를 감싸주는 이는  없었고 소문은 뻥튀기처럼 불어만 갔다..

그런 오목이가 언젠가 부터 길을 향해 난 창문에 붙어 서서  몰래 밖을 내다 보는버릇이 생겼다. 하마 들킬세라 몸은 옆으로 빼내고 얼굴만, 두 눈만, 살며시 창으로 내놓고서.

그 사람, 명수 오빠가 지나간다. 교모는 납작하게 눌러  삐뚜스럼하게 쓰고 교복 상의 칼라 훅을 풀어  셔츠가 허옇게 드러나고,  힙 부분은 꽉 끼지만 내려올수록 바지 가랑이가 거리를 쓸어낼 듯 넓게 퍼진 나팔바지, 그리고 가볍게 옆구리에 낀 납작한  책가방,완전 날나리 학생의 모습이지만 오목이는 그의  멋진 모습에 가슴이 뛴다.

그런던 어느 날, 지 때문에 지 집 마당에 몰려들어 시끌벅적  쌈들을 해대는  건달들을 통쾌하게 패주고 쫒아내 주던 명수 오빠를 보고 이게 꿈이 아닌가 .

오목이는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그리고 뭐라도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열 다섯 오목이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걸 처음 알아 본 이는 가끔 오목이를 찾아 들던  교회

전도 부인이었다. 그이는 가엾은 오목이의 처지를 동정하며 교회로 인도하려 애썼다. 그러나

오목이 아버지에게는 전혀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하여  가끔 오목이에게 들러 간절한 기도나 드려 줄 뿐이었다. 그 이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나 불신자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교회도 못 나가고 잦은 제사, 더우기  시모가 수시로 무당을 들여 푸닥거리를 하는, 그게 몹시 못마땅하였고, 결국엔  도저히 못 참아 시집과 남편을 박차고 뛰쳐나온 신앙 앞에 근성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한편 ‘ 소박대기 ’라는 꼬리표가 기구한 팔자처럼 붙어 다니던 여지임에랴.

무지하고 강퍅 한 아버지한테 허리가 두리뭉실해지며 나날이 불러가는   배를 들키는 날에는 오목이는 맞아 죽을 것이 분명함을 아는 전도부인이 말했다.

“ 오목아 너 왜 배가 불러지는지 아니?”   

“ 전도사님, 나 요새 밥 맛이 너무 좋아 되게 많이 먹어요, 그래서 살이 쪘나봐요 “

“ 바보야, 네 배를 만져 보렴. 뭐가 꿈틀대지 않니?”  

“ 네, 맞아요, 배 안에서 뭐가 움직여요. 이게 뭐지요?”

“ 아기란다.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너 사내를 가까이 한 적이 있느냐?”

오목이는 수줍게 머리를 숙였다.

“ 네,마냥 좋은 사람이 있어 요”

전도부인은 ‘휴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수소문하여  노량진 역 앞 < 자애 모자원 >으로 몰래

오목이를 보냈다. 거기는 오목이처럼 어린 나이에 원치 않게  임신 한 처녀애들, 또는 불행하게 남편이 먼저 죽거나 버림을 받아  아이들과 살 길이 막막한 홀어미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일단 의식주를 지원해 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과 취업을 알선해 주어 자립 갱생의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사회 봉사 기관이었다.

오목이가 그 곳으로  간 것은 제 이의 탄생과도  같은 새로운 기회고 행운이었다. 전도부인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겠지만 원장님은 어린 소녀 오목이를 각별히  보살펴 주었다 .생활의 기본 상식을 가르치고 , 글자도 깨우치게 했다.

모자원에서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낸 오목이는 몇 달 후

건강하고 잘 생긴 아들을 낳았다.

원장 어머님이 아기에게 < 왕 >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모자원의 온 가족들이 축하해주고,

아기옷과 기저귀 등을 보태 주었다

그리고 철부지 어린 엄마, 오목이에게 아기 기르는 방법도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하여 오목이는 차츰 아기 기르기도 익숙해 지고 왕이는 건강하게 토실토실 잘 자라났다.

얼마 후  오목이는 재봉 기술도 배워 봉제도 잘 하게 되었다. 오목이 생애의 특별한 발전이다.

그리고 오목이의 특별한 재주는 음식 만들기였다. 도대체 한 번 맛 보면 못 하는 음식이 없고 그녀의 손이 지나간 음식은 비상한 맛에 끌림에다가, 넉넉지 않은 재료를 갖고도 훌륭한  몇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재주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오목이 아들 왕이가 4 살이 되었을 땐,  피부가 희고 훤칠한 외모에 의젓함 까지 겸해  모자원  모든 식구들이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어린 엄마 오목이도 이젠 봉재 솜씨나 음식 솜씨나 한 몫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루는 원장 어머님이 오목이를 불렀다.

“ 미8 군  장교가 홈메이드를 구한다더라. 그래서 네 얘기를 했단다. 마침 그들 부부는 네가 좋다면 네 아이를 그들이 입양할 마음 도 있다고 하더라 . 너한테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

“ 내 아이는 주고 싶지 않아요. 내가 길러야 해요 “

“ 네 아이를 그들 앞으로 입양하면 왕이는 미국 시민으로 자라고 좋은 교육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야. 너도 그 집에서 함께 살면서 네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고 말이야, 너한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 잘 생각해 봐라.”

“ 왜 하필 나지요? 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싫은데요.”

“ 그들이 너한테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자기들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구나, 넌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면 되는거야. “

모자원 식구들도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냐며 모두 어서 가라고 야단들이었다. 오목이는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 사랑하는 사람 ,오빠의  소중한 내 아기- 아마 왕이가 없었다면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도 없었을거야.  아버지의 그 폭력적인 일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비천하게 살고 있을거야,-

나는 왕이와 함께 새로 태어난거야. 난 왕이가 자라듯 나도 함께 자라는거야.

왕이와

함께 새로 태어난거야. 난 왕이가 자라듯 나도 함께 자라는거야.

왕이와 함께라면 뭘 못 하겠어.’

며칠 후 오목이는 원장님을 찾아 가 말했다.

“ 원장님, 가겠어요.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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